유사언어학
1. 개요
類似言語學 / Pseudolinguistics
'언어학의 탈을 쓴 거짓된 이론'을 일컫는 말. '''즉 언어학이 아니며 정상적인 학문도 아니다.''' 언어란 것은 본디 대단히 정치적이고 많은 사람들의 정체성 및 자존심에 연관된 경우가 많으므로 정치적인 의도로 허구의 언어이론을 조작하는 경우가 많다. 참고로 '유사언어학' 혹은 'Pseudolinguistics'는 정립된 용어라기보다는 이런 뜻을 나타내기 위해 임의로 만든 조어에 가깝다.
2. 유사 언어 비교
가장 흔한 형태. 전혀 상관없는 'ㄱ' 언어와 'ㄴ' 언어를 비교해서 '이런이런 점에서 'ㄴ'은 'ㄱ'을 닮았다. 그러므로 'ㄴ'은 'ㄱ'에서 파생된 언어다'라는 논리를 전개하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는 대개 비교언어학적 방법론이 결여되어 있다. 어쩌다보니 뜻과 모양이 조금 비슷한 단어를 추려내서 닮았으니 동원어라고 우기는 식. 문제는 이러한 주장에 비전공자들은 금세 혹한다는 것이다.
혹은 파생된 언어가 아니라 'ㄴ' 언어를 쓰는 민족은 'ㄱ' 민족에게 정복당해서 여러 어휘를 받아들여야만 한 것이다'라는 소설을 펼치기까지 한다. 환빠가 대표적인 예.
이런 면에서는 민간어원도 유사언어학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사무라이'가 '싸울아비'에서 왔다거나 영어의 Many가 '많이'에서 왔다든가.
영단어의 어원을 찾아보려는데 검색결과로 유사언어학이 나와서 검색에 차질을 겪는 경우도 있다.
영어는 우리말입니다라는 괴상한 책도 있다. 거의 이 분야의 끝판왕 수준이었던 책. 과거형인 이유는 작가가 20년 후에 아리랑이라는 '''훨씬 미친 책'''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3. 바벨탑 쌓기
비교언어학의 발전으로 인도유럽어족, 중국티베트어족을 비롯한 수많은 어족을 밝혀냈지만 이 모든 어족이 어디서 왔는가 하는 문제는 아직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니 당연히 인류의 최초의 언어[1] 를 밝혀내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을 수밖에 없고 19세기에 이 문제로 하도 시끄럽자 1866년에는 파리언어학회가 아예 언어의 기원을 논하는 걸 금했을 정도다. 그리고 그 때부터 지금까지 별다른 진전이 없다. 사실 이것도 성서고고학의 하나로, 종교의 경전을 과학으로 플어내려는 시도이니 할수록 오류가 드러나게 되는 그저 헛짓일 뿐이다.
일단 최초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수천명 정도의 소집단에서 시작되었다는 가설이 사실이라면, 최초의 언어 같은 것이 존재하기는 했을 가능성도 있다. 또 원시인도유럽어 같이 비록 문자는 없는 언어지만 비교언어학적 방법론을 통해 어느정도 재구성하는데 성공하기도 했다. 하지만 인간들이 하나의 부족이었을 때 통일된 언어가 있었는지, 아니면 세계 각지로 흩어진 후에야 각각 나름대로의 언어를 발달시켰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모든 언어가 하나의 조상을 둔다고 해도 그걸 복원하려는 시도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보는 회의론자들도 있다. 호모 사피엔스가 등장한지 20만년이 넘게 지난 것으로 추정되는 점을 고려해볼 때 언어의 역사도 최소 몇만년은 될 것이고, 이 정도면 이미 언어의 모든 표현들이 수차례 교체될 수 있을만큼[2] 긴 시간이므로 본래의 모습을 추적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이다. 특히 각 집단이 오랜 이주 과정에서 마주친 여러 언어로부터 받아들였을 수많은 차용어들은 언어의 일관된 변화규칙을 이용한 재구를 미궁에 빠뜨리며, 과거로 거슬러갈수록 이런 불확실성은 더욱 커진다.
언어를 사용했을 것이라는 해부학적 증거가 화석에서 나온 네안데르탈인이 현생 인류와 연관 없이 살았다가 절멸된 것이 아니라, 수만 년 동안 현생 인류와 공존했었고 혼혈까지 되어서, 현생 인류에도 네안데르탈인의 유전자가 3~5%나 들어 있다는 것이 밝혀진 지금, 모든 인류의 공통 조상 언어가 있었다는 주장은 더욱 그 힘을 잃게 된다.
하지만 바벨탑을 향한 인류의 욕망은 끝이 없는 것인지 최초의 언어를 밝힌답시고 여러 어족의 기초어휘(물, 손, 코 등)을 모아놓고 유사점을 주장하는 시도도 많이 있지만 하나도 안 닮아 보인다. 최근의 예로는 미국의 언어학자 Merritt Ruhlen이 아래의 단어가 원시 인류어에 포함되었다고 주장하였다.[Ruhlen,1994]
ku = 'who'
ma = 'what'
pal = 'two'
akwa = 'water'
tik = 'finger'
kanV = 'arm'
boko = 'arm'
buŋku = 'knee'
sum = 'hair'
putV = 'vulva'
čuna = 'nose, smell'
'노스트라트 가설'(Nostratic theory)도 이런 종류에 속한다. 이 것은 덴마크의 언어학자 홀거 페데르센에 의해 처음 제안된 이후 러시아의 세르게이 스타로스틴 교수 등이 발전시켜온 가설로, 인도유럽, 아프로아시아, 우랄, 드라비다 등 어족들이 공통의 조상을 두었다 주장하며 이 그룹을 '노스트라트('우리들')어족'이라 이름붙인 것이다. 그밖에 스타로스틴은 바스크, 나-데네, 중국티베트, 예니세이, 북코카서스(동,서 코카서스를 묶은 것) 어족 등을 '데네-코카서스(Dene-Caucasian)어족'으로 묶었는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이 데네-코카서스 어족을 오스트로아시아, 몽몐, 카다이, 남도 어족 등으로 구성된 '남방(Austric)어족'과 함께 '데네-다이(Dene-Daic)어족'으로 묶은 다음, 이것을 다시 노스트라트 어족과 묶어 '보레아(Boreal)어족'이라는 거대 어족을 제안한 바 있다.
간단히 예를 들자면 네이버 오픈백과의 이 글 같은 사례이다. 여기서 한술 더 떠 흑화하면 '''우리 언어가 바로 최초의 언어'''라고 주장하는 만렙환빠 이론이 탄생하기도 한다.
4. 야펫 이론
이러한 유사언어학은 대개 자신의 민족이 최고임을 증명하기 위한 국수주의에 써먹히기 마련인데 소련 초기에 니콜라이 마르라는 양반은 '''계층투쟁론'''을 위해 유사언어학적 드립을 치기도 했다.
이름하여 야펫 이론인데, 이 이론에 따르면 현재 유럽에서 쓰이고 있는 인도유럽어족은 사실 정복자(그러니까 지배계층)가 쓰던 말이고 유럽의 원주민(그러니까 피지배계층)들이 쓰고있는 언어는 사멸된 것이 아니라 지배언어의 하위적 특성으로서 잔존해 있다. 나아가 한 언어권의 지배층/피지배층 간보다 '''전혀 다른 언어권의 피지배층끼리 더 유사점이 많다'''는 이론.
한 마디로 말해서 '''만국의 노동언어여 단결하라.''' 이보다 더 노골적으로 정치적일 수 없는 그야말로 유사언어학의 극치지만 '''부르주아 과학이 아닌 진정한 프롤레타리아 과학이로다'''라는 찬사를 들으며 소련에서 널리널리 써먹혔다고 한다.
이 마르라는 사람 때문에 한때 소련의 언어학이 나락에 빠질 뻔 했지만, 50년대 이오시프 스탈린이 발표한 '마르크스 주의와 언어학의 제문제'[3] 를 통해 반박함으로써 이는 몰락하게 된다.
5. 언어신비주의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는 뭔가 영적이고 신비로운 미지의 언어가 있다고 주장하는 것. 기독교계열의 방언이 여기에 잘 들어맞는다(...) 특히 보이니치 문서같이 미해독 문서를 둘러싸고 이런 방향으로 흑화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SCP-1390이 이 바로 이 개념을 가지고 만들어 낸 일종의 소설이다.
한편 일본어에는 신령스러운 힘이 깃들어 있어서 그것이 일본에 복을 가져다 준다는 언령신앙[4] 도 언어신비주의의 일종이다. 언어가 사고보다 우위에 있어서 사고를 좌지우지한다는 가설(사피어-워프 가설)을 극단적으로 몰아붙이면 이런 쪽으로 흑화하게 된다. #
6. 관련 문서
[1] 이거 오컬트 계에서 흥미를 갖고 접근하는 분야다. 바벨탑 이전의 인류가 말했던 언어라는 속성에 덧붙여, '''신도 악마도 그 언어를 쓴다''' 라는 설정까지 붙여 네크로맨시 영역에서 다루고 있을 정도.[2] 예컨대 한국어에선 18세기까지 해가 저문 시간대를 "나죄"라고 불렀으나 지금은 흔적도 안남고 "저녁"으로 대체되었다.[Ruhlen,1994] Merritt Ruhlen, The Origin of Language, 1994[3] Марксизм и вопросы языкознания, 마르키씨즘 이 버쁘로씌 이즤꺼즈나니야[4] 이 때의 言霊은 코토다마(ことだま)라고 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