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영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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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재단법인 육영재단(育英財團)은 1969년 4월[1] 박정희의 부인 육영수가 어린이 복지사업을 위해 설립한 재단법인이다. 다음해인 1970년 10월 남산에 어린이회관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또한, 어린이 잡지인 "어깨동무"를 인수해서 발행하기 시작하였다.
1975년 10월 지리적으로 불편하던 남산의 어린이회관을 국립중앙도서관에 넘기고 현재 서울특별시 광진구 능동의 현 위치로 어린이회관을 짓고 이전하였다. 원래 남산의 어린이회관과 식물원은 일제시대 때 신사가 위치했던 곳으로 일제의 잔재를 씻고자 1959년에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건설이 기획되었었다. 실제 착공식까지 열리고 현상공모로 김수근의 작품이 선정되었지만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계획이 중지되고 현재 서울특별시의회(부민관)를 국회의사당으로 쓰다가 1975년에 여의도로 옮겨졌다. 그 부지가 육영재단으로 넘어간 거였다. 그 부지에 육영수의 뜻대로 남산공원과 식물원 및 어린이회관이 지어였으나 접근성이 최악이었다는게 문제. 결국 회관은 1974년 국립중앙도서관[2] 으로 용도가 변경되고 이후 현재는 서울특별시교육청 교육정보연구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육영재단과 어린이회관이 위치한 광진구 능동부지는 대략 4만여평의 부지로 서울특별시 산하의 서울어린이대공원과 연결된 녹지로 상당히 알짜 부지로 여겨지고 있다. 재산가치만 수조원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육영재단 재산권 분쟁이 이뤄지는 이유는 이런 막대한 재산가치 때문으로 여겨지고 있다.#기사 원래 이 부지는 서울컨트리클럽의 소유였으나 원당으로 이전시키고 후적지에 설립된 것이다.
어린이 복지사업을 위해서 어린이회관과 기타 사업을 영위했다. 또한 출판사업도 했는데, 어린이 종합교양지 <어깨동무>와 그림책 <꿈나무>, 그리고 80년대 한국 만화사에서 터닝 포인트라 할 수 있는[3] '''아기공룡 둘리와 달려라 하니 등을 연재'''한 보물섬의 발행사이기도 했는데, 1982년 보물섬 창간 이후 보물섬이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약 10년 동안 한국 만화계에서 말 그대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
80년대 어린이 회관 내에는 과학관이 있어서 버스만 타고 가면 입장료도 공짜로 우주모형과 전자석 기중기나 각종 음향효과나 빛을 내는 장치 등 당시 어린이들 눈에는 첨단 과학 장치인 것들을 무료로 누구든 접할 수 있었다. 저녁에는 거대 로봇을 가동하는 꿈을 키워주는 행사가 있었고 매년 어린이날에는 만화잡지 과월호를 한 권씩 무료로 증정했다. 방학 기간에는 시설 내에서 어린이 캠프도 운영해서 합숙을 하면서 체험학급을 할 수 있는 드문 기관이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여타 만화잡지가 창간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고, 1996년에 만화산업에서 완전히 손을 뗐지만, 그래도 현재도 국제친선어린이 민속잔치, 세계아동미술전람회 등을 매년 개최하고, 어린이회관, 서울 청소년교향악단을 운영하는 등 각종 어린이 관련 사업들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시설의 노후화와 저조한 투자라는 두 가지 악조건 속에 현재의 능동 어린이회관은 완전히 노후화된 상태로 정작 어린이들도 외면하는 곳이 되었다. 거기에 예전에 하던 출판사업은 96년을 기점으로 완전히 그만 두었다. 그 이후는 육영재단의 운영권을 가지고 박근혜와 박지만을 상대로 박근령 측에서 싸움을 일으켰다. 이에 따라 재단을 감독하는 서울특별시교육청도 재단 분쟁 때문에 제재를 가했다. 육영재단은 공익재단이므로 이사장을 비롯해 개인이 재단 자산의 처분 등을 통한 사익을 취할 수 없고 운영상에도 정부 기관의 관리를 받는다. 그럼에도 재단 내의 유치원 등의 이권을 목적으로 분쟁이 일어난 것.
하나 상술된 외면의 모습과는 달리, 육영재단 내부는 권력 다툼과 비리·전횡 의혹으로 꾸준히 세간의 논란을 불러왔다. 특히 1990년에 일어난 육영재단의 난 이후 상황은 가히 복마전(...)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수준.
육영재단은 비영리 공익재단으로 1974년, 설립자 육영수 여사가 국립극장 총격 사건으로 사망하고 뒤이어 1979년 육영수 여사의 남편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당한 이후인 1982년 박근혜가 이사장에 취임하여 운영을 맡아오다가 1990년 통일교와 관련이 있던 박근령이 이사회를 장악하며 박근혜가 쫓겨나고 박근령이 새 이사장에 올랐다. 그러나 박근령은 재단의 유치원 웨딩홀 경영 등에서 사익 추구로 논란을 일으키며 2007년 남동생 박지만과 조직폭력배들까지 동원된 사태가 일어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육영재단의 이사장직을 역임했던 박근령이 재단을 불법운영을 했다는 사실이 발각되어 2008년 이사장직에서 해임되는 등의 논란이 있었다. 원래 창립자 가족 등 특수관계인은 재단 이사의 20프로를 선임 가능하며 이사장 선임은 서울시 교육청의 허가사항이다. 현재는 그에 더해 임시이사제 시행으로 이사회 추천인원에 대해서 동부지방법원의 허가가 있어야 이사 선임이 가능하다. 해당 재단의 토지 가격이 천문학적이라지만 공익재단 특성상 목적사업인 어린이 교육에 웨딩홀 등 수익사업에서 나오는 돈의 70프로를 사용해야 하며 현재는 전반적으로 낡은 시설로 인해 거의 운영이 마비상태다. 일각에서 재단이 특정인의 재산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달리 사실상 공익재단은 정부자산이라고 봐도 크게 다르지 않으며 재단 운영권 역시 감사에서 부정이 드러나면 정부가 언제든 박탈 가능하다.
홈페이지
1. 개요
재단법인 육영재단(育英財團)은 1969년 4월[1] 박정희의 부인 육영수가 어린이 복지사업을 위해 설립한 재단법인이다. 다음해인 1970년 10월 남산에 어린이회관을 설립하면서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또한, 어린이 잡지인 "어깨동무"를 인수해서 발행하기 시작하였다.
1975년 10월 지리적으로 불편하던 남산의 어린이회관을 국립중앙도서관에 넘기고 현재 서울특별시 광진구 능동의 현 위치로 어린이회관을 짓고 이전하였다. 원래 남산의 어린이회관과 식물원은 일제시대 때 신사가 위치했던 곳으로 일제의 잔재를 씻고자 1959년에 대한민국 국회의사당 건설이 기획되었었다. 실제 착공식까지 열리고 현상공모로 김수근의 작품이 선정되었지만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계획이 중지되고 현재 서울특별시의회(부민관)를 국회의사당으로 쓰다가 1975년에 여의도로 옮겨졌다. 그 부지가 육영재단으로 넘어간 거였다. 그 부지에 육영수의 뜻대로 남산공원과 식물원 및 어린이회관이 지어였으나 접근성이 최악이었다는게 문제. 결국 회관은 1974년 국립중앙도서관[2] 으로 용도가 변경되고 이후 현재는 서울특별시교육청 교육정보연구원으로 사용되고 있다.
현재 육영재단과 어린이회관이 위치한 광진구 능동부지는 대략 4만여평의 부지로 서울특별시 산하의 서울어린이대공원과 연결된 녹지로 상당히 알짜 부지로 여겨지고 있다. 재산가치만 수조원으로 평가받을 정도로 육영재단 재산권 분쟁이 이뤄지는 이유는 이런 막대한 재산가치 때문으로 여겨지고 있다.#기사 원래 이 부지는 서울컨트리클럽의 소유였으나 원당으로 이전시키고 후적지에 설립된 것이다.
1.1. 역대 이사장
2. 사업내용
어린이 복지사업을 위해서 어린이회관과 기타 사업을 영위했다. 또한 출판사업도 했는데, 어린이 종합교양지 <어깨동무>와 그림책 <꿈나무>, 그리고 80년대 한국 만화사에서 터닝 포인트라 할 수 있는[3] '''아기공룡 둘리와 달려라 하니 등을 연재'''한 보물섬의 발행사이기도 했는데, 1982년 보물섬 창간 이후 보물섬이 엄청난 인기를 얻으며 약 10년 동안 한국 만화계에서 말 그대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했다.
80년대 어린이 회관 내에는 과학관이 있어서 버스만 타고 가면 입장료도 공짜로 우주모형과 전자석 기중기나 각종 음향효과나 빛을 내는 장치 등 당시 어린이들 눈에는 첨단 과학 장치인 것들을 무료로 누구든 접할 수 있었다. 저녁에는 거대 로봇을 가동하는 꿈을 키워주는 행사가 있었고 매년 어린이날에는 만화잡지 과월호를 한 권씩 무료로 증정했다. 방학 기간에는 시설 내에서 어린이 캠프도 운영해서 합숙을 하면서 체험학급을 할 수 있는 드문 기관이기도 했다.
1990년대 들어서는 여타 만화잡지가 창간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고, 1996년에 만화산업에서 완전히 손을 뗐지만, 그래도 현재도 국제친선어린이 민속잔치, 세계아동미술전람회 등을 매년 개최하고, 어린이회관, 서울 청소년교향악단을 운영하는 등 각종 어린이 관련 사업들을 계속해서 하고 있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시설의 노후화와 저조한 투자라는 두 가지 악조건 속에 현재의 능동 어린이회관은 완전히 노후화된 상태로 정작 어린이들도 외면하는 곳이 되었다. 거기에 예전에 하던 출판사업은 96년을 기점으로 완전히 그만 두었다. 그 이후는 육영재단의 운영권을 가지고 박근혜와 박지만을 상대로 박근령 측에서 싸움을 일으켰다. 이에 따라 재단을 감독하는 서울특별시교육청도 재단 분쟁 때문에 제재를 가했다. 육영재단은 공익재단이므로 이사장을 비롯해 개인이 재단 자산의 처분 등을 통한 사익을 취할 수 없고 운영상에도 정부 기관의 관리를 받는다. 그럼에도 재단 내의 유치원 등의 이권을 목적으로 분쟁이 일어난 것.
2.1. 정기간행물
- 어깨동무 (1967~1987): 아동 종합월간지
- 꿈나라 (1975~1985): 미취학 아동 대상 월간지
- 보물섬 (1982~1996) : 1982년 10월 창간되어 93년 3월 8일자부터 격주간지로 바뀌었는데 9월까지는 매주 8일, 23일에 발행되었으나 그 해 10월부터 매주 10일, 25일에 발간되었으며 다음 해인 1994년 8월 월간지로 되돌아오는 동시에 제호명도 <빅보물섬>으로 바뀌었고 1996년 1월호부터 <보물섬>으로 제호명을 환원시켰으며 그 해 9월 폐간되었다.
- 댕기 (1991~1996) : 1991년 11월 30일 창간되어 같은 해 12월 16일 2호, 1992년 1월 1일 3호를 발간했으며 그 해 2월부터 3일과 18일에 발행해 오다가 다음 해 10월부터 9일과 15일에 발행했고 1996년 9월 폐간됨.
- 마인 (1995년 8월~1996년 4월) : 월간 순정지.
3. 분쟁
하나 상술된 외면의 모습과는 달리, 육영재단 내부는 권력 다툼과 비리·전횡 의혹으로 꾸준히 세간의 논란을 불러왔다. 특히 1990년에 일어난 육영재단의 난 이후 상황은 가히 복마전(...)이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는 수준.
육영재단은 비영리 공익재단으로 1974년, 설립자 육영수 여사가 국립극장 총격 사건으로 사망하고 뒤이어 1979년 육영수 여사의 남편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당한 이후인 1982년 박근혜가 이사장에 취임하여 운영을 맡아오다가 1990년 통일교와 관련이 있던 박근령이 이사회를 장악하며 박근혜가 쫓겨나고 박근령이 새 이사장에 올랐다. 그러나 박근령은 재단의 유치원 웨딩홀 경영 등에서 사익 추구로 논란을 일으키며 2007년 남동생 박지만과 조직폭력배들까지 동원된 사태가 일어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육영재단의 이사장직을 역임했던 박근령이 재단을 불법운영을 했다는 사실이 발각되어 2008년 이사장직에서 해임되는 등의 논란이 있었다. 원래 창립자 가족 등 특수관계인은 재단 이사의 20프로를 선임 가능하며 이사장 선임은 서울시 교육청의 허가사항이다. 현재는 그에 더해 임시이사제 시행으로 이사회 추천인원에 대해서 동부지방법원의 허가가 있어야 이사 선임이 가능하다. 해당 재단의 토지 가격이 천문학적이라지만 공익재단 특성상 목적사업인 어린이 교육에 웨딩홀 등 수익사업에서 나오는 돈의 70프로를 사용해야 하며 현재는 전반적으로 낡은 시설로 인해 거의 운영이 마비상태다. 일각에서 재단이 특정인의 재산이라고 주장하는 것과 달리 사실상 공익재단은 정부자산이라고 봐도 크게 다르지 않으며 재단 운영권 역시 감사에서 부정이 드러나면 정부가 언제든 박탈 가능하다.
4. 여담
- 육영재단(育英財團)이 육영수(陸英修)의 이름에서 재단명을 지었다고 많이들 생각하는데, 사실 한자가 다르다. 한자 뜻대로 육영사업을 위한 재단이다.
- 마스코트는 수달 캐릭터 '도이'와 '조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