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5촌 살인사건
1. 개요
2011년 9월 6일, 육영재단 강탈 사태 핵심 관련자이면서 대략 1년 6개월 후 한국의 대통령이 되는 당시 유력대선주자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의 5촌 조카이자 서로 사촌이었던 박용철과 박용수가 같은 날 북한산에서 사망한 사건.
박용철은 누군가에 의해 살해[1] 되었고, 그 범인으로 지목된 박용수는 박용철 사망 몇 시간 후 북한산에서 목을 매고 사망한 채로 발견된다. 그런데 당시 매체들은 이듬해 겨울에 있을 대선에 영향이 갈까봐 이 사건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았다. 그리고 경찰은 석연찮은 의혹을 뒤로 한 채, 사건을 둘 사이의 원한에 의한 살인과 자살로 종결시킨다.
사건 발발 후 5년이 지나서야 그것이 알고싶다 팀을 통해 지상파에서 최초로 다루어졌을 정도[2] 로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래 일어난 범죄 사건들을 통틀어 단언컨대 가장 최고 수준의 불가침 영역에 속해있는 미스테리한 사건이다.
2.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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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박근혜, 박근령, 박지만 남매는 육영재단 소유권 때문에 크게 싸운다. 이때 육영재단은 이사장 박근혜를 등에 업은 최태민 일가가 전횡을 저지르고 있었는데, 이를 보다 못한 박지만과 박근령이 당시 노태우 대통령에게 "언니랑 최태민 좀 떼어내 달라"고 탄원서까지 보냈을 정도였다.
하여튼 이 문제 때문에 다투다가 결국 박근령은 친언니인 박근혜를 밀어내고 차기 이사장에 취임하였다. 육영재단은 부동산만 4조 원 가치(2016년 시가 기준)를 지니고 있는 대형 재단으로, 임대 수익사업으로 꽤 많은 돈을 벌었으나, 재단 운영이 폐쇄적이라 온갖 비리 의혹으로 점철되었던 탓에 수익금에 대한 루머가 무성했다. 한데 이런 현상은 박근혜가 물러나고 박근령이 취임한 후에도 딱히 해소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던 와중 2007년부터 그동안 힘을 합쳐왔던 박근령과 박지만의 사이가 갈라지기 시작한다. 주요 원인 중 하나는 바로 박근령의 남편인 신동욱 때문이었는데, 신동욱은 2007년 2월에 14살 연상의 박근령[3] 과 약혼하고 1년 8개월 후인 2008년 10월에는 결혼한다. 그런데 약혼한 이 때쯤부터 박지만은 신동욱이 육영재단의 운영권을 독점할 것을 두려워했는지 박근령-신동욱 커플과 갈등을 빚게 된다.[4]
그렇게 시간이 지나면서 갈등이 깊어지자 박근령-신동욱 부부와 박지만 양 측에선 조직폭력배와 불법 용역회사 등을 동원한 폭력행사까지 서슴치 않게 되는데, 급기야 2007년 11월 28일에는 '''불량배 200여 명이 동원된 대규모 폭력 사태'''까지 터진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8년에 박근령이 육영재단을 운용하는 과정에서 재단을 불법 운영하고, 재단 운영비를 박근령이 횡령, 착복하는 등의 범법 행위가 발각되면서 이에 박지만은 박근령에 대한 공세를 더욱 밀어붙였고, 한센병자를 동원한 박지만 측은 기어코 육영재단을 장악하는데 성공해, 당시 이사장이던 누나 박근령과 누나의 남편인 신동욱, 그녀의 측근들 대부분이 육영재단에서 쫓겨나게 되었다.[5] 당시 기사, 당시 영상
3.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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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철은 육영재단 폭력사건 당시 박지만의 최측근으로서 폭력 사태를 주도한 바가 있는 인물이다. 박용철은 박정희의 둘째 형 박무희의 손자이자 국제전기기업 대표인 박재석의 아들로 태어났다. 즉, 박근혜, 박근령, 박지만 삼남매에게는 5촌 조카가 된다.[6] 결혼 후 가족과 함께 캐나다로 이민을 떠났기에 사망 당시 국적은 캐나다였다. 박용철은 2007년에 귀국하여 당시 제17대 대통령 선거의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 출마했던 박근혜의 경호원 노릇을 했는데, 이때 박지만과도 손을 잡고 육영재단 문제에도 관여하였다.
2007년 7월 박용철은 박근혜 캠프에서 중국 재경부 장관을 만난다는 이유로 당시 박근령의 약혼남이자 백석문화대학교 겸임교수였던 신동욱과 중국 칭다오에 함께 갔다. 그런데 칭다오에서의 첫날 밤에 신동욱이 자기 신변이 위험하다면서 건물에서 뛰어내려 골절상을 입고 중국 공안에게 신고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에는 육영재단 폭력사건에 개입하여 박근령 이사장을 쫓아내는 것을 주도했다.
당시 중국에서 구사일생으로 귀국한 신동욱은 2년 반 뒤인 2010년 2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홈페이지 (싸이월드 미니홈피)에 “박지만이 박용철을 시켜 나를 살해하려 했다. 육영재단 강탈 사건에서 박지만은 허수아비였고 배후는 박근혜의 주변 사람들이다.”라는 주장을 사진과 함께 올렸다.[7] 이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지면서 문제가 되자 홈페이지 주인이던 박근혜는 하나뿐인 제부 를 명예훼손죄 및 허위사실유포죄로 고소한다.
2016년 12월 16일 자 노컷뉴스 기사에서 육영재단의 폭력사건에 관여했던 관계자의 증언을 다루었는데, 이 관계자에 의하면 당시 신동욱이 표를 깎아 먹는다'고 판단한 박지만 EG회장과 참모 진영에서 '신동욱을 없애는 게 낫다'고 판단했고 이에 신동욱을 미얀마에서 총기로 살해할 계획이 있었다고 한다.
재판 과정에서 신동욱이 주장한 청부 살인 시도 건은 인정되지만 박지만과의 연관성은 부정되었다. 이 소송에 증인으로 출석한 박용철은 박지만이 이 사건과 무관하고, 박지만의 측근인 정용희 씨가 사주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2010년 9월 1일, 재판 과정에서 박용철이 자신이 한 증언을 번복하는 일이 발생했다. 당시 증인으로 나온 육영재단 전 법무실 부장 이 모씨가 “박지만이 박용철에게 신동욱을 제거하라고 지시한 육성 녹음이 있고 통장으로 돈을 부쳐 준 증빙이 있다.”라는 얘기를 박용철에게 들었다고 증언했다. 박용철도 이를 긍정하면서 “EG그룹 회장 박지만의 비서인 실장 정용희가 내게 회장 박지만의 뜻이라고 말한 육성을 휴대전화 단말기에 녹음해 놨다.”라고 증언하였다.
박용철의 증언 이후인 2011년 8월, 신동욱은 처남이 자신의 살해기도에 연루되었다는 증거를 내놓지 못하여 법정 구속되었는데, 이에 신동욱 측 변호인은 2011년 9월 27일로 예정된 변론에 박용철을 증인으로 신청하였고 박용철이 9월 27일에 증언하기로 한 상황이었다.
그런데 변론을 20여 일 앞둔 2011년 9월 6일, 중요한 증언을 하기로 했던 박용철이 북한산 국립공원 사무소 수유분소 앞에서 의문의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그리고 신동욱은 결국 이 소송에서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복역하게 된다.
박용철이 이처럼 진술을 번복한 이유에 대해서는 본인이 자세한 내막을 밝히기 전에 숨졌으므로 자세한 부분은 알 길이 없다. 다만, 박용철은 자신의 주도로 육영재단에서 박근령 세력을 축출한 후 육영재단 어린이회관(...)[8] 관장에 잠시 임명되었으나 이내 교체되었고, 이후 박지만 세력에게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9] 따라서 당시 박용철의 지인들과 범죄 전문가들은 박지만의 푸대접에 불만을 품은 박용철이 박지만을 압박하려고 진술을 번복했을 것으로 추론하고 있다.
4. 수사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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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9월 6일 새벽 1시경 북한산국립공원 사무소 근처에서 박용철이 살해된 채로 발견되었다. 박용철은 자신의 차 근처에 쓰러져 있었는데, 시체는 얼굴과 배가 칼날에 수십 차례 난자당하고 두개골이 함몰되어 있었다. 칼날로 복부를 찌르고 손목을 비틀면서 후벼 판 흔적을 보아, 범인은 살인에 상당한 지식이 있으며 경험도 풍부한 자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박용철이 치명상을 입고 쓰러진 뒤에도 범인은 확실하게 죽이기 위해 장도리로 박용철의 두개골을 세 차례 강력히 가격한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박용철이 발견된 곳은 숲속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사무소 근처의 주차장이며 가로등이 비추어주는 범위 내이다.
한편, 박용철의 시체가 발견된 지 4시간 후인 새벽 5시 경, 박용철의 사촌형인 박용수란 인물이 박용철 살해 현장에서 3킬로미터 떨어진 용암문 근처의 산길에서 목이 매달린 채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시신의 어깨에는 수건이 덮여 있었다. 박용수도 박무희의 손자로서 동양육운 회장 박재호의 아들이였다. 즉, 두 사람은 친사촌 사이다.
경찰은 누가 봐도 평범해보이지 않는 이런 사건에 대해, 수사를 시작한지 겨우 5일만에 "박용수가 박용철을 살해하고서 죄책감에 자살했다"는 결론을 내렸다. 경찰에 따르면 박용철이 박용수에게 1억을 빌린 적이 있는데 박용철이 돈을 갚지 않고 있었으며, 사건 당일 박용수가 범행 도구를 미리 사놓은 점, 유서를 작성한 점, 범행 전 박용철씨를 만취시키고 자신은 술을 마시지 않았던 점(부검 결과 박용철은 혈중 알코올농도 0.196%, 박용수씨는 0.01% 미만), 박용철과 평소에 사이가 좋지 않았으며 박용철이 자신을 무시하는 것 때문에 불만이 많았던 점 등을 근거로 박용수가 박용철을 살해했다고 결론 내렸다. 관련기사
그런데 아래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경찰이 발표한 수사 내용은 여러모로 의문점이 많아서 그대로 믿기 힘들며 사건을 어떻게든 서둘러 매듭지으려고 하는 듯한 느낌이 강하다. 실제로 경찰 발표가 나온 후 본격적으로 각종 의문들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2016년 12월 19일 경찰청장 이철성은 "수사에 대한 외압은 없었으며 의혹만으로 재수사를 할 수는 없다" 라고 못박았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2017년 1월 9일 오후 2시 박근혜 대통령의 제부인 신동욱 공화당 총재를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 신동욱의 말에 의하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조서 하나와 이 사건 관련한 조서 하나를 썼는데, 특검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수사로 원체 바쁘게 돌아가다 종료되었기 때문에 이 사건과 관련해 더 이상 유의미한 진전이 이루어지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2017년 7월 5일, 비공개였던 수사기록이 피해자 유가족에게 공개되었다. #
5. 의혹
- 유족에 의하면 알려진 것과 달리 박용철과 박용수는 실제로는 사이가 좋았고, 서로 원한도 없었다고 한다. 사건 전일 박용철, 박용수와 함께 술을 마셨던 황선웅[10] 씨의 증언으로도 당시 술자리 분위기가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에서는 박용수가 박용철의 찜질방 운영비를 빌려준 일로 사촌 형제 사이에 문제가 생겨 살인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경찰은 박용철이 박용수에게 돈을 빌렸다는 어떠한 증거도 내놓지 못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 나온 박용철의 지인(前 육영재단 임원)도 박용수가 박용철에게 1억이나 빌려줄 여유가 없었다고 증언했다.
- 두 사람의 체구나 성격을 봐도 박용수가 박용철을 살해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박용철은 105킬로그램의 거구에 유도를 오랫동안 했고, 폭력 전과가 6개나 있는 조폭 출신에 거친 성격의 소유자이며, 주량이 세서 평소에 한번 술 마실 때 많이 마시는 편으로 주변에 유명한 사람이었다.[11] 반대로 박용수는 167센티미터의 키에 70킬로그램이 조금 넘고 남들에게 싫은 소리를 못하는 성격이라고 한다. 박용수가 자신의 육체를 압도하고 성질까지 괄괄한 사촌동생 박용철을 칼로 난자해 살해했다는 점도 이상하거니와, 박용철의 시체에 난 ㄱ 자와 V 자로 꺾여 있는 상해 흔적은 도무지 평범한 사람이 내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러므로 가족관계를 제하고 보더라도, 살면서 주먹질도 별로 안 해본 50대 일반인이 술에 취한 50대 조폭을 본인이 크게 다치지 않을 정도로 신속하게 압도하며, 칼로 마구 찌르고 둔기로 머리도 쳐 죽였다는 게 결론이라 납득하기 어렵다.
- 박용수가 노트 한 장을 찢어 남긴 유서도 매우 이상했다. 자신의 시체를 절대 땅에 묻지 말고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달라는 내용이었는데,[12] 자살한 사람의 유서라고 하기에는 내용이 많이 이상하다. 국과수에서 이 유서가 박용수의 필적이 맞는지 조사했는데 확인이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런데 기자 주진우가 사설 검증원에 의뢰한 결과 확실하게 단정할 수는 없지만 서로 같은 필체는 아니라는 대답을 들었다. 그런데도 경찰은 그 종이글씨를 박용수의 유서로 단정해서 모든 걸 빨리 묻으려는 느낌이 짙었다.
- 박용수의 시체를 부검한 결과 위에서 캡슐이 녹지 않은 변비약이 나왔다. 몸에 알약이 들어가면 30분이면 녹는데, 알약이 그대로 남았다는 것은 자살하기 30분 전에 먹었다는 의미이다. 사촌동생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자살을 결심한 사람이 자살하기 불과 30분 전에 장 운동을 활발히 해주는 약을 먹는다는 게 말이 되겠는가?
- 자살을 한 곳도 이상하다. 정말 사촌동생을 죽이고 죄책감과 당혹스러움에 자살을 결심했다면, 사촌동생을 죽인 그 자리나 근처, 혹은 자기집처럼 평소 익숙한 곳으로 가서 자살하는 게 자연스럽다. 한밤 중에 전등 하나 없는 산으로 가서 컴컴한 어둠 속에서 몇 시간[13] 이나 등산한 후 자살한다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하다. 더군다나 그가 산행을 했다고 알려진 길은 이정표나 불빛을 내는 어떠한 것도 없어서 인근 주민들은 대낮에도 기피했던 길이라고 한다.
- 박용철의 시체를 부검한 결과 수면제 성분(졸피뎀과 디아제핀)이 다량 검출되었으며, 박용수의 시체에서도 소량의 졸피뎀이 검출되었다. 즉 박용철은 수면제로 항거 불능인 상태에서 칼과 장도리 등으로 가격당해 죽었다는 뜻이다. 더구나 졸피뎀과 디아제핀은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의사의 처방이 없으면 구매가 불가능한데, 두 사람은 의사 처방을 받은 적이 없다. 박용철과 박용수의 혈중 알코올 농도와 검출된 졸피뎀의 양이 비례했던 점을 들어 술에 약을 타 몰래 먹인 것 아니냐는 추측이 배상훈 프로파일러의 팟캐스트에서 제시되었다. 이 약들은 술과 함께 먹을 경우 사망할 수도 있기 때문에, 본인이 원해서 수면제를 탄 술을 먹었을 가능성은 낮다.
- 박용수의 시체에는 목과 팔 무릎 곳곳에 긁힌 상처가 있는데, 이는 목을 매달기 전에 누군가와 몸싸움을 했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목을 매달고 죽은 박용수의 시체에 큰 타월이 덮여 있었다는 점도 뭔가 이상했다. 자살하는 사람이 사전에 자기 몸을 가린다는 건 부자연스럽다.
- 박용수의 가방에서 발견된 칼에는 박용철의 혈흔이나 박용수의 지문이 검출되지 않았다. 만일 진짜로 박용수가 범인이라면, 사촌동생을 죽이고 자살까지 결심한 마당에 자신이 범인임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지문을 깨끗이 지워버렸다는 얘기가 되는데, 이것은 뭔가 말이 안 된다. 피살 사건 현장에서 60미터 떨어진 개천에서 발견된 다른 칼에는 박용철의 혈흔이 검출되었으나, 박용수의 지문은 없었다.
- 박용수의 가방 자체도 의심 대상이다. 박용수는 평소에 가방을 가지고 다닐 경우 무조건 본인이 아끼는 고가의 특정 외제 백팩 하나만 매고 다녀서 주변 사람들이 어떤 가방이 그의 것인지도 바로 다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박용철 살해사건 당시 가방은 백팩도 아닌 손가방이고, 주변인들이 박용수가 가지고 다닌 걸 한 번도 본 적 없는 가방이다.
- 황선웅이 증언한대로 박용수와 박용철이 죽기 전, 세 명이서 술을 마신 곳이라고 하는 강남구 신사동의 '스텝바'('스텝'이라는 이름의 술집)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전 버전에서는 '잠원동에서 신사동으로 올라가는 길에 스텝바라는 약 20년 쯤 된 바가 있다'고 반론이 추가된 바 있으나, 이 스텝바는 실제로는 서초구 잠원동에 있다. 따라서 이 바는 문제의 '스텝바'가 아닐 가능성이 높다.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의 두바이 제보자의 말 중에서 13번 입구라는 말이 나왔는데 저 숫자가 지하철역 번호라면 13번이 있는 강남인근 역은 교대역과 청담역이 있는데 교대역은 바로 옆이 병원이나 교대 후문등이 있어 정황상 청담역이 유력해보인다.
- 위의 항목에 나오는 신동욱 관련 재판에서 유력한 증거인 박용철의 휴대전화기가 피살 사건 현장에서 사라졌다. 박지만의 살인 교사가 녹음됐다는 바로 그 휴대전화기가 사라진 것이다.
- 이 사건을 기사화한 기자 주진우에게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 박근혜의 친척이라는 사람이 휴대전화 메세지로 추가 정황을 알려주었다.
박용수는 평소에 술을 잘 마시지 않는데 왜 대리운전을 불렀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박용철과 박용수는 어느 친척보다도 사이가 좋았다. 박용수가 박용철의 사업 자금도 대주었다.
박용수가 박용철을 살해하고 자살했다는 경찰의 수사 결과를 납득할 수 없다.||
- 박용수 주변인물들의 증언에 따르면 박용수는 죽기 얼마 전 치과에서 임플란트 시술을 받았으며[14] 시신 옆에서 발견된 가방이 박용수가 평소에 들고 다니던 가방이 아니라는 의혹을 제기했다.
- 경찰은 사건 종결 후 1개월여 만에 이미 깨끗이 치워진 박용수의 여관방에서 갑자기 흉기를 구입한 곳의 카드 영수증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 경찰이 주장하는 흉기의 구입처에 문의한 결과 실제로 박용수가 이 곳에서 흉기를 구입한 것이 아니라 단지 경찰이 범행에 사용되었던 흉기와 같은 제품을 파는지 여부만 확인하고 갔다고 한다.
- 유서에 연락처로 적혀있던 매형에게 인터뷰한 결과 오랜기간 동안 전혀 왕래가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뜬금없이 매형의 연락처를 적어 놓았던 것이다.
- 2007년 육영재단 폭력사건 당시 수사에 개입했던 성동경찰서장은 이만희였고, 박용철 살해사건을 담당했던 강북경찰서장은 김영일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20대 총선에서 새누리당의 공천을 받아 출마했다. 이만희는 경상북도 영천시·청도군에서 당선되었으나, 김영일은 전북 익산시 갑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춘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현재 이만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규명을 위한 국정조사에서 증인과 짜고 위증을 교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 2011년 9월 6일 발생한 박용철 살인사건의 관할 서울북부지방검찰청의 검사장 이득홍 전 서울고검장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담박’의 대표변호사 중 하나이며, 우병우 전 수석과 사촌동서지간이다. 기사.
5.1. 주변 인물의 행방불명과 의문사
박용철의 경호원 노릇을 하던 조폭 두목[15] 이자 살인사건 당일 박용철, 박용수 두 사람과 술을 같이 마셨다가 헤어졌다고 증언했었던 황선웅[16] 은 2012년에 출소 직후 컵라면을 먹다가 천식기운으로[17] 죽었다고 한다.(...) 그것이 알고싶다 문서 참고.
2017년 1월 1일 박지만의 수행비서 주 씨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죽은 주 아무개라는 자는 박지만의 EG에서 18년 동안 근무하였으며, 비서실에서 10년 넘게 근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찰에서는 1월 2일 자살, 타살 여부를 밝히기 위해 주 아무개의 시신을 부검할 예정이라고 한다. 주 아무개의 죽음에 대해 주 아무개가 이 사건에 관련이 있어서, 혹은 주 아무개가 이 사건에 대해 박지만에게 불리한 증언을 하려 했기 때문에 살해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있다. 현재까지 밝혀진 바에 따르면 그것이 알고싶다 측에 이번 사건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인물이라고 한다. #
이에 대해 경찰청장 이철성은 정밀부검을 하면 보름이 걸리는데도 불구하고, 그 다음날 성급히 지금까지 나온 부검 결과론 타살 흔적은 보이지 않고 주 아무개의 사인은 허혈성 심근경색으로 인한 사망으로 보인다고 발표했다. 이에 서둘러 사건을 종결시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았다.
신동욱은 자신의 트위터에 “인연이 있는 박용철, 박용수, 이춘상[18] , 황XX, 허XX, 주XX 등 계속해서 미스테리한 주검이 발견됐다”[19] 며 “죄 없는 사람들 그만 희생시키고 내 목숨을 가져가라”는 글을 올렸다. 국민일보 또 4일에는 “저와 관련된 사건 속 등장인물이 4년 동안 6명이 떠났다”고 주장했다. 기사
주진우의 말에 따르면 이 주 아무개라는 자는 죽은 박용철, 정용희라는 자와 함께 박근혜 주변에서 일을 봤었던 세 사람 중 하나로, 박용철 밑에서 활동을 했었고, 신동욱 관련 재판에 나와서 박용철, 박지만을 위해 증언을 했었던 핵심관계자 라고 한다.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지만 평소 건강이 안 좋아진 기미도 딱히 없었으며 죽기 전에 이미 지인과 골프 약속도 잡혀 있었다고 한다. 또한 박지만 밑에서 궂은 일은 다 했던 사람으로, 박용철 사망 당일에도 박지만과 동선이 겹친, 다시 말해서 박지만과 같이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주 아무개와 박지만의 사이가 틀어졌고, 정용희도 현재는 박지만과 사이가 소원한 상태인데, 아울러 주 아무개와 정용희의 사이도 틀어진 상태라고 한다.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그리고 주 아무개의 죽음이 알려진 2017년 1월 1일 주진우와 주진우의 가족을 향해 어떤 자동차가 돌진을 하는 일이 있었다고 한다. # 그리고 주 아무개가 박근령의 남편 신동욱의 ‘박근혜-박지만 명예훼손 재판’에 출석해 증언했던 것으로 확인되었다. #
한편, 김용민의 브리핑(1월 3일자) 인터뷰에서는 최순실이 노승일에게 '''"너 그러다 죽어. 나 무서운 사람이야."'''라고 협박성 발언을 했다고 한다. 유튜브
정두언은 1월 4일 방영된 강적들에 출연해서 육영재단 사태 때 박근령 측에서 도운 숭모회 회원 두 명이 '차치기'와 '퍽치기'로 죽었다고 말했다.
최재석은 색다른 가설도 내놓았는데, 바로 아버지 최태민의 죽음이 이 모든 의문사의 시발점이라는 것이다. 또 자신도 최순실에게 고용된 불량배들에게 협박당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조.
6. 주진우-김어준 허위사실 유포 재판
이 사건은 발생 직후 후속 보도가 거의 없어 그저 4촌 간 금전관계에 의한 원한살인사건 정도로 묻힐 뻔 했으나, 김어준과 주진우는 대선 직전인 2012년 12월 8일 자신들이 진행하던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봉주 24회에서 위에서 제기된 의혹들을 '''최초로''' 제기하였다. 2011년 11월 이미 박지만 측은 주진우를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바 있는데, 이는 주진우가 한 출판 기념회에서 "1964년에 박정희 대통령은 독일에 가서 독일 대통령을 만난 바 없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박지만은 나꼼수에서 제기한 의혹까지 합해서 다시 2012년 12월 김어준-주진우를 고소하였다.이 사건을 취재하다가 박근혜 당선 전에는 조폭에게, 당선 후에는 검사에게 쫓겼다. (주진우)
박근혜가 대통령에 취임한 지 3달 만인 2013년 5월 14일, 검찰은 박지만이 고소한 내용으로 "허위사실 유포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에다가 대통령 선거법 위반을 추가하여 주진우를 체포하고 경찰서 유치장에 수감시켰다. 검찰은 법원에 주진우에 대한 구속영장을 신청하였으나, 법원은 영장을 기각하였고, 주진우는 14시간 만에 풀려났다. 언론인을 이런 혐의로 구속하는 것은 1987년 이래 드문 일로, 독재정권에서나 벌어진 일이었는데, 검찰은 박근혜에게 충성심을 보이려고 했는지 이런 무리수를 두었다.
결국 2013년 10월 김어준과 주진우에 대한 1심재판에서 재판부는 국민참여재판(배심원 평결)의 의견을 들어 이들에게 무죄를 선고하였다. 검찰은 "대선국면에서 박근혜에게 타격을 주기 위해 사건을 왜곡하였다"라고 주장했지만, 배심원들은 위에서 나열된 여러 의혹들을 볼 때, 주진우의 의혹제기가 충분히 합리적인 것이라고 판단한 것이다.[20] 이런 무죄판결에 불복한 검찰은 상고하였지만, 2015년 1월, 2심에도 마찬가지로 무죄를 판결하였다. 검찰은 다시 이를 대법원에 상고하였고, 2017년 12월 7일 김어준 주진우의 공직선거법 위반 및 명예훼손 혐의를 두고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선고를 내렸다.
한편 주진우와 김어준은 2014년 8월, 이 사건에 대한 결정적 제보를 받고 증언을 청취하러 두바이에 간 바 있다. 김어준은 나꼼수에서는 항상 "쫄지마"라고 말했지만 이 사건은 워낙 관련자들이 위해를 당한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두려움을 느끼고 팀을 조직해 신변을 보호하려 했다고 한다. 이 팀은 김어준과 주진우를 비롯해 국회의원 2명(정청래, 진선미)[21] , 변호사 2명(민변회장 한택근, 김용민[22] ), SBS의 배정훈 PD, 한겨레의 탐사보도팀 기자, 딴지 벙커1 PD 등 총 9명으로 이뤄져 있었으며, 두바이에 3박 4일간 원정하여 결정적인 제보를 녹화했다고 한다. 김어준이 디테일에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을 믿어줄 사람이라며 정청래 의원에게 동행을 부탁했고, 정청래 의원 역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진선미 의원에게 동행을 부탁했다고 한다. 민변회장의 경우에는 김용민 변호사가 동참을 요청 했다고.
이 제보는 바로 2016년 12월 17일에 방영된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일부가 방영되었다. 워낙 충격적인 것이기에 증언을 녹취하고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져 박근혜가 완전히 통치력을 상실할 때까지 2년이나 공개하지 못했다고 한다.[23] 17년 11월 방송된 김어준의 블랙하우스에서도 다시 한번 이 '두바이 증인'이 등장했는데 증언을 완전히 공개 못하는 이유가 크로스체크, 교차검증이 불가능해 공개가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던 중 사건 당일 '제 3자를 목격했다.'는 증언이 나와서 블랙하우스에서 인터뷰 내용이 일부 공개되었다.
7. 진상에 대한 접근
2016년 12월 19일, 그것이 알고싶다 배정훈 PD는 이 사건은 조폭 H가 저지른 청부살인사건이며, 살인을 지시한 사람은 "우리가 예상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고발뉴스 또한,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에서 이 사건이 지금까지 알려져 왔던 사실과 다르다면 그 배후의 추악한 권력의 실상을 세상에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방송을 했고, 후속 취재는 이미 시작했고 추가로 들어온 제보의 확인 작업을 계속 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대통령 ‘문고리 4인방’의 맏형 격인 이춘상 보좌관이 조직폭력배와 한센인들이 대거 동원된 2007년 ‘육영재단 폭력사태’ 기획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는 증언이 나왔다.(노컷뉴스)
2017년 2월 5일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박용철이 죽기 1년 전부터 그를 죽여달라는 살인 청탁을, 육영재단 측 관계자가 복수의 인물에게 언급했다는 증언을 확보하고, 그 살인사주를 한 핵심인물 A씨를 찾아가봤지만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8. 경찰의 재수사
정권 교체 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2017년 9월 15일, 피해자 박용철의 유족들이 경찰과 검찰에 고소장을 제출해 재수사를 요청했다.
그로부터 1주일 뒤인 2017년 9월 22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에 해당 사건이 배당, 재수사 절차에 들어갔다. 제3의 인물이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을 조사할 계획이라고.
기사를 보면 2019년에도 수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9. 관련자료
9.1. 나는 꼼수다 봉주 24회
팟빵링크 45분부터
봉주 24회 으스스한 가족 이야기 사운드클라우드
2012년 12월 8일, 이 문제에 대해 최초로 의혹을 제기한 방송. 이 에피소드 한편으로 주진우 기자와 김어준 총수가 구속되어 유치장에 갇히고 재판까지 받게 된다. 참고로 이 방송내용은 그저 이 사건에 의혹이 많다는 점과 배후가 존재하지 않겠냐는 추정 정도로 끝났는데, 이 때까지만 해도 배후를 특정인으로 확정하지 않았고, 그저 추정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그저 언론인의 의혹 제기를 문제 삼아 검찰이 기소까지 했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의외로 받아들여졌다.
1심, 2심에서 무죄를 선고하였다. 대법원에서 유죄를 선고하거나 최악의 경우 사건을 파기환송할 수 있으나, 애초에 배후를 추정조차 않은 의혹제기 수준의 방송에 검찰이 무리수로 기소를 한 사건이기에[24] 무죄선고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보았다. 사실 이 사건에 유죄판결이 내려진다면 언론의 자유를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결과가 되어버리니 정권이 교체되기까지 한 상황에서는 유죄를 받을 확률은 거의 없다고 예상하는 분위기였다. 결국 2017년 12월 7일, 이들의 무죄가 확정되었다.
9.2. 주진우의 현대사 시즌2
[특집] 박근혜 5촌간 살인사건 의혹 총정리 2014년 11월 18일 방송되었다.
9.3. 프로파일러 분석
배상훈 프로파일러가 본인의 팟캐스트에 2부에 걸쳐 범죄 분석을 했다.
박근혜 5촌 살인사건1 프로파일링에 따른 현장 재구성
박근혜 5촌 살인사건2 범인은 외부에 있다
9.4. 신동욱 교수의 증언
2016년 11월 25일 김어준의 파파이스에서 신동욱 교수의 증언과 주진우 기자의 취재로 재조명되었다. 한겨레 홈페이지 '''그리고 이 사건의 배후는 바로 2016년 말 한국 사회를 쑥대밭으로 만든 장본인이다라는 제보가 들어왔다고 한다.''' 기사1 신동욱은 정영진 최욱의 불금쇼에도 출연해 다른 방송에서는 알려지지 않은 부분을 밝히는 등, 이 사건의 배경에 대해 보다 자세하게 설명했다. 1부 2부
참고로 박용철은 태도를 바꾼 걸로 추정된 시기 이후 신동욱에게 '조심하시라'[25] 는 얘기를 많이 했다고 한다.
9.5. 그것이 알고싶다 1057회 방영분
신동욱은 2016년 12월 4일 SBS 본사에서 '그것이 알고싶다.' 촬영을 마쳤다고 인터뷰하면서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이 사건을 다룰 예정임을 밝혔다. 박근혜 5촌 살인사건을 취재 중인 그것이 알고 싶다 배정훈 PD는 2014년 주진우 김어준과 함께 해당사건의 중요 제보자를 만나기 위해 그가 도피하고 있던 두바이까지 동행했던 일명 두바이팀의 멤버 모 지상파 배 PD로 추측된다. 36분 경 참고, 두바이에 갔다 왔단다.
결국 2016년 12월 17일, 방송이 확정되었다. 방송 제목은 '''죽거나 혹은 죽이거나 - 대통령 5촌 살인 사건의 진실'''[26] 이다. 위의 사건 설명에 나온 것처럼 의혹투성이의 기괴한 사건이니, 진실을 알리기 위한 목적에서든 시청률을 높이기 위한 목적에서든 이 사건의 의혹을 파헤치는 보도가 이미 몇 번이나 나오고도 남을만 하건만 믿기 힘들게도 이 '그것이 알고싶다' 보도가 '''지상파 및 종편방송 등 주류방송 중에서 최초로 한 보도'''다. 이 사건 보도를 금기시하며 압력을 행사한 검은 세력이 있었으리라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27]
어쨌든 이 날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본 사건과 연관된 육영재단 내분에 대해서도 꽤 다루었으며, 추가적으로 알려진 일부 내용을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신동욱이 중국에서 모함 혹은 청부살인 당할 위기를 느껴서 빠져나갔다는 내용으로, 박용수가 마지막으로 자살하러 가는 길이었다고 알려진 북한산 산자락 입구에 출입 인원수를 카운팅하는 센서가 있었는데, 이 센서의 당시 기록을 바탕으로 해서 박용수가 자살하러 갔을 때 박용수 말고도 추가적인 인원이 카운팅 되어 있었다는 정황 증거.[28] 당시 박용철을 에스코트하던 사람 중 한 명인 황 아무개가 어이없게도 사발면을 먹다가 사레가 들려서 죽은 듯한 모습으로 죽어 있었는데, 이 또한 의문사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29] 그 사람에 대해 조사했던 주진우 기자가 말한 바에 따르면, 황씨는 청량리의 유명한 조폭 두목의 아들 겸 조직 행동대장이었고 평소 건강에 이상이 없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 외 이 사건에 관련된 최소 1~2명의 행적이 오리무중이라는 이야기이다.
그것이 알고싶다 팀은 사건 추적을 진행하면서 경찰 측에 새로 든 의문에 대한 해명을 요구하지만, 경찰은 회피하기에 급급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이승훈 PD는 자신의 SNS에서 '장준하 선생이나 마티즈에서 자살한 국가정보원 요원, 자살한 성완종 회장까지 자신의 집이 아닌 야산에서 자살했겠느냐?'는 의미심장한 글을 남겼다. #
또한, 2년 넘게 취재하면서 그알팀에게 중요 제보를 했거나, 인터뷰를 했거나, 사건에 연루되었다고 의심되는 핵심 인물 중 다수가 갑작스럽게 사망하거나 실종되는 일이 연달아 발생했다.
김어준 총수가 2016년 12월 19일 방영된 라디오 방송인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이 사건을 먼저 취재하고 공론화시켰던 김어준 - 주진우 기자가 배정훈 PD에게 '''"반드시 누군가가 취재 편집본을 삭제할 테니까, 백업을 하라"고 조언'''했다. 처음에 배정훈 PD는 '그들'이 그렇게까지 치졸한 짓을 못할 줄 알았는지 김어준이 한 경고를 무시했다. 그러나 취재를 진행하면서 '그들'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고, 개인적으로 백업을 했다. 그리고 실제로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직전에(!) SBS 편집 서버에서 모든 자료가 날아갔다. SBS 기술진이 복원을 시도했지만 그것조차도 불가능'''[30] 했다. 김어준이 한 경고가 예언이 된 셈이다.
이미 예고편까지 나간 상황에서 자칫 초대형 방송 사고가 터질 뻔했지만, 이 때 배 PD가 개인적으로 백업한 편집본 덕분에 겨우 방송사고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이는 누군가가 방송을 막으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방영 직전 '''방송국 편집실까지도 침투'''[31] 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또 한편으로는 '''그것이 알고 싶다 팀이나 SBS 방송국 내에 그들이 심어둔 스파이'''가 있다는 의심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이에 대해 SBS 측은 단순 오류라고 밝혔다. 물론 실제로 중대한 실수가 있었다고 해서 그걸 그대로 발표하면 방송국 자체 신뢰도에 문제가 생기니 설령 무슨 일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사실 그대로 발표하기 애매한 부분이 있을 수도 있긴 하다. 특히 SBS는 방영 당시 지상파 중에서 그나마 신뢰성이 있다고 여겨지던 방송사라[32] 더더욱 신뢰성 문제에 고민했을 여지는 있다.
한편, 이 방송을 먼저 취재했던 주진우 기자는 그 동안 다양한 권력 부패, 사이비 종교, 폭력 조직에 관련된 취재를 하면서 숱한 살해협박과 물리적인 살해 시도 및 납치 시도를 받아왔지만, '''이번 사건을 취재하면서 생애 가장 끔찍한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그는 SNS를 통해 취재과정에서 자신을 도와줬던 한 조직폭력배가 주 기자에게 손도끼를 휴대하고 다니라 조언했을 정도라 한다. '그들'의 사주를 받은 이들이 쇠망치로 주진우 기자 머리를 노리고 있다고 했단다. 그 이후 김어준과 함께 하는 팟캐스트에서도 밝히길 주 기자는 귀가 길에 어두운 집 앞 골목길에서 망치에 머리를 맞아 죽는 두려움에 시달렸다고 한다.[33] 김어준 역시 혼자 집에 있을 때 가장 두렵다고 했다. 배 PD는 둘의 이런 두려움을 2년간 함께 취재하면서 이제 자신도 공감한다고 밝혔다.
이후 익명의 제보자가 사건이 일어난 당일 네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제보했다. 날짜가 정확히 2011년 9월 6일인 것을 확신한다고 했는데, 자신은 파트너와 함께 야외에서 옷을 벗고 사진을 찍어주는 취향을 가지고 있으며 9월 6일은 69를 거꾸로 조합한 날이라 같은 야노 취미를 가진 사람들 사이에서 기념일이었고 자신과 파트너가 야노를 하기 위해 현장에 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건이 일어난 북한산 일대는 야노 커뮤니티에서 일종의 성지라고 한다. 제보자는 수풀에서 파트너와 야노를 하던 중 사건 당사자들이 차를 타고 온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했다. PD는 이후 9월 6일에 북한산을 방문하여 실제로 북한산에서 야노를 하는 커플이 많다는 것도 확인했다. 하지만 목격하게 된 경위가 제보자에게는 다소 수치스러운 것이기에 제보자는 경찰에 증언하거나 PD와 만나는 것은 거부했다.
9.6.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 2017년 2월 5일 방영분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다룬 내용보다 조금 더 진전이 있었다. 방송을 통해 새롭게 공개된 내용들이 꽤 많았다.
우선 박근혜의 제부이자 박근령의 남편인 신동욱 총재가 박용철이 뭔가 핵폭탄을 가지고 있다는 뉘앙스로 증언한 생전 육성 녹음 파일을 공개했다. 그리고 박용철이 죽기 1주일 전, 지인[34] 에게 모종의 노트북과 휴대폰을 맡겼는데, 그 지인은 자신이 받은 휴대폰에 박용철이 존댓말로 10분도 넘게 길게 통화한 녹취파일이 존재했었다고 밝혔다. 박용철이 돌아와서 가게운영을 맡기길 기대했는데 뉴스에 박용철의 사망소식이 나오자, 깜짝 놀라서 휴대폰의 기록을 살펴 본 후 노트북에 백업해두고 휴대폰은 초기화시켜 냅두다가 시간이 지나 버렸다고 한다. 그 지인이란 사람이 제작진에게 제보해 노트북 하드디스크를 확보한 것. 하지만 제작일로부터 10년이 지난 하드디스크였고, 잦은 포맷으로 인해 하드디스크 읽기 작업에 에러가 있는 상황이었다. 결국 업체를 찾아가 디지털 포렌식 한 결과 상태가 불량해 복구는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현재도 복구 노력은 계속 이어지는 중이라는 사실이 공개되었다.
그리고 범죄전문가들은 당시 박용수의 이동경로가 이상하다며 새로운 이동루트를 제시했다. 기존 이동루트를 따를 경우, 수면제를 먹은 사람이 야밤에 조명이 없는 산길을 걸어서 자살할 곳으로 이동하는 것이 상식적이지도 않고, 매우 어렵다는 것이다. 실제로 젊은 남성 제작진이 낮에 같은 루트를 빠르게 걸어본 결과 1시간 40분이 걸렸다.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이 사건이 박용수의 단독범행일 가능성은 거의 없으며, 최소 2~5인 정도 규모를 이룬 조력자들이 있었을 가능성을 매우 높이 보고 있었다. 따라서 조력자들이 있을 경우 기존에 알려진 루트와 달리 더 눈에 띄지 않으면서, 차량으로 시간도 단축하고 쉽게 이동할 수 있는 새로운 루트를 제시했다. 이런 추론이 나온 이유는 전문가들 모두가 박용수가 사망 최대 30분 전 정장제를 먹었는데, 진짜 자살이라면 자살하러 가는 중에 변비약을 먹었을 리가 없다는 것[35] 에 동의했기 때문이다.[36] 고로 방송상에서 직접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차량에 실려 이동하면서 설사약을 먹였을 가능성을 추측해 볼 수 있다. 목을 매달아 자살 할 경우 괄약근이 풀리면서 변이 나온다는 말을 살인범이 듣고 연출하려 했다면 설사약을 먹인 것이 설명가능하고, 30분 안에 녹아 없어지도록 되어 있는 알약이 박용철 살해한 곳에서 걸어서 1시간 40분 거리에서도 위장에 그대로 남아있는 것도 설명이 가능하다. 차량을 이용해 실어 날랐다면 상당한 시간 단축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 익명으로 제보 할 경우 목숨이 위험 할 수 있기 때문에 얼굴을 공개하고 인터뷰를 자청한 제보자(마성태 씨)가 있었다. 그는 박용철이 죽기 1년 전 쯤 육영재단측 관계자로부터 '''박용철을 죽여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거절했다고 주장했는데, 마성태 씨 외에도 비슷한 부탁을 받았다는 모자이크 처리된 다른 진술자의 증언까지 방송되었다. 그리고 이런 다수의 증언을 바탕으로 신뢰도가 높다고 판단한 제작진은 살인 사주를 한 핵심인물로 지목 된 A씨를 찾아가봤지만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는 내용도 방송되었다. 그리고 이런 추가 수집 내용을 근거로 경찰서에 재수사 할 의향이 없냐는 문의를 했지만, 경찰서는 사건의 직접적인 목격자나 물증이 없는 한 재수사는 어렵다는 기존 태도만 고수했다. 방송에서는 경찰 조사에 없는 증거와 증언들을 나열하면서 과연 재수사가 불가능한 것인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현재 박용철의 인맥도를 만드는 중이며, 진상을 밝히는데 필요한 핵심 인물들을 추려낸 듯 하다.[37]
이규연 국장은 방송 말미에 언론이 할 수 있는 역할은 여기까지라며 수사권을 가진 검경이 이 사건을 재수사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국민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뜻을 은연 중에 어필하기도 했다. 또한 이번 인터뷰로 얼굴을 드러낸 내부고발자와 그 외 많은 내부고발자들을 지키고, 또 다른 내부고발자들이 나와주기를 바라면서 이런 이들을 위한 많은 관심과 보호가 필요하다는 내용으로 방송을 끝맺었다.
9.7. 판도라(MBN) 2017년 10월 16일 방영분
MBN 시사예능프로 판도라에서 정청래 전 의원이 발제하고 게스트로 온 주진우 기자가 거들면서, 이제까지 이 사건이 뭔지 자세히 몰랐던 시청자들을 위해 개괄적인 내용을 다시 한번 설명했다. 그 내용은 이 문서에 서술된 것들을 읽으면 대부분은 이해할 수 있는 사항이다.
9.8.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2017년 11월 4일, 5일 방영분
SBS의 파일럿 프로그램 김어준의 블랙하우스 1회에서 이 내용을 다루었다.
그것이 알고싶다의 배정훈 PD와 김어준이 보드에 박근혜와 주변 사람들의 관계도를 구성해 놓은 것을 바탕으로 사건에 대해 설명하는 식이었는데, 위에 서술된 내용들이 거의 다 언급되었으며 이 방송에서 추가로 언급된 것은 묵혀져 있던 두바이 제보와 새로 공개되는 제보들이었다.
3년 전 두바이에서 김어준, 주진우 기자, 배정훈 PD는 살해 직전 술자리에 동석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만나 제보 내용을 듣게 되었는데, 이것이 내보내도 될 정도로 사실인지 크로스 체크할 여력이 없었으므로[38] 묵혀 두고 있었다. 그런데 작년에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이 문제를 다룬 이후 추가 제보가 들어왔는데[39] , 북한산에서 일어난 일을 목격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이 제보가 두바이 제보를 확인시켜주는 셈이 되었다. 따라서 두 제보를 이 방송에서 모두 공개하게 된다.
2회에서는 두바이 팀[40] 의 자세한 얘기가 나왔는데 2014년 인터뷰임에도 정윤회, 최순실이 엮여있다는 증언이 나왔었고 북한산 목격자와 동일한 내용의 주장(차종과 인원수)이 나옴으로써 제3자가 개입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이 사건에는 조선족 조폭이 연루되었다고 하며 그 조폭들이 사용하는 차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얼굴을 보지 않아도 그 자들이 연루됐다는 것을 바로 알아차렸다고 한다. 그런데 그저 두바이로만 모일 것을 약속하고 일정도 알리지 않은 채로 만난 두바이 팀이 3일간의 인터뷰가 끝나고 제보자와 같이 귀국하려고 공항으로 이동할 때 의문의 차량 4대가 두바이 팀을 따라잡았고 제보자는 황급히 택시를 타고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의문의 차량들은 제보자를 쫒아갔다고. 그 와중에 같이 갔던 정청래 의원은 핸드폰을 원격 해킹(!) 당하기까지 했다.
9.9. 김어준의 다스 뵈이다 1회
53분 24초부터(자동재생 주의)
그동안 자신들이 취재하고 추측한 사건의 내막을 '우리도 그렇게 추측했고 방송을 보는 여러분도 짐작했을 테지만 아직은 말할 수 없다'는 식으로 모종의 암시로만 언급했던 데 비해, 이번 방송분에서는 상당히 일목요연하게, 거의 실명 언급 바로 직전까지 가는 수준으로 직설적으로 정리해서 이야기했다. 즉, '''교차검증(크로스체크)이 가능하며 법적인 증거로서 효력이 있는 증거와 증언을 상당히 많이 확보하였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또한 방송 중에 '경찰이 한 번 덮었던 사건이라, 치부로 여겨서 다시 한 번 덮을 가능성이 있다'는 언급이 있었던 것으로 보아, 자신들이 이미 상당한 수준의 증거를 확보하였음을 은근히 드러내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도록 경찰을 압박'''하는 의미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김어준 측에서 추측하는 사건의 내막을 정리하면 이렇다.
이 사건의 제보자 중 한 명인 마성태 씨[41] 가 직접 출연했다. 마성태는 과거 용역깡패로 일하다가 육영재단 사태 때도 가담했다[42] . 사태가 어느 정도 마무리된 후 마성태와 그의 부하들은 계약직으로 고용돼 당시 육영재단 임시 이사장을 맡은 이원우의 경호를 맡았고,[43] 계약 기간 만료가 되며 그대로 육영재단에서 나왔다고 한다.육영재단을 둘러싼 박근혜, 박지만, 박근령의 이권 다툼 과정에서 불량배들을 동원한 폭력사태가 다수 벌어졌다. 첫 번째 다툼(90년)에는 박지만과 박근령이 한 편으로 박근혜와 분쟁을 일으켰지만, 두 번째(08년)에는 박지만과 박근혜가 한 편이 되어 박근령 측을 몰아냈다. 이 와중에 박용철은 박지만 측의 지시를 받고 칭다오에서 박근령의 남편인 신동욱을 살해하려고 시도하지만 (이것이 소위 '칭다오 사건'이다) 신동욱이 구사일생으로 달아나 다리만 부러지고 살아남았다.
문제는 박근혜가 2012년 18대 대선에 출마하면서 생겨났다. 당연하지만 대통령 후보와 그 남매들이 재산다툼을 벌이고 그 과정에서 폭력배가 동원되고 살인청부까지 벌어졌던 것이 알려진다면 당선에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최 씨성을 가진 모종의 인물의 지시로 신동욱 살인 미수 사건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당사자 박용철이 제거되었고, 이후로 박용수를 비롯, 사건에 대해 알고 있고 증인이 될 만한 사람들을 차례로 제거해 나갔다.
이 과정에서 일을 주도적으로 처리한 소위 얼굴마담 격 인물은 박지만의 비서인 정용희인데, 그는 사실 정윤회의 수하였다.
육영재단 세력 싸움에서 밀려난 박용철이 육영재단 노조와 함께 민주노총까지 끌어들여 시위를 이어가자 당시 박지만의 비서인 정용희는 마성태에게 박용철을 손봐달라고 부탁했고[44] , 이에 마성태는 사람 죽이는 일은 안 한다고 거절하고 이후로 육영재단과는 손을 끊었는데, 결국 박용철이 피살됐다는 기사를 접하고 마성태는 정용희에게 전화해 다음에는 내 차례냐고 묻자 정용희는 당황하며 전화를 끊었다고 한다.[45] 이 때문에 마성태는 한동안 도피 생활을 했고, 종교에 귀의한 것으로 보인다[46] . 한편 마성태는 박용철을 누가 죽였는지는 확신할 수는 없지만, 당시 박용철 주변인물까지도 다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누가 그랬는지 짐작은 하고 있으며 사건의 특성상 오히려 박용철 스스로가 믿고 있던 최측근에게 살해됐을 확률이 높다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한편 마성태는 EG 사무실에서 정용희를 비롯한 사람들과 본격적인 상견례를 겸했다가 칭다오 납치사건 이후의 신동욱을 봤다고도 말했다. 신동욱이 다리를 절면서[47] EG 사무실로 찾아와 난리를 피우자 정용희는 신동욱이 못 찾도록 숨었고, 신동욱이 쫓겨나자 '''박용철이 일을 제대로 처리 못했다'''며 푸념했다고. 마성태는 인터넷 기사를 자주 찾아봤는데[48] , 당시에는 신동욱이 누군지 몰라 그에 대해 검색해보다가 이 때 신동욱이 주로 언급했던 사람이 정윤회라서 마성태가 한 번은 정용희에게 정윤회가 누구냐고 묻자, '''그 어르신'''은 얘기는 왜 나오냐며 정색하는 등 당시 정용희의 행동은 박지만의 비서라고 하기보다 다른 누군가에게 지시를 받는 게 아닌가하고 미심쩍었다고 한다. 주진우 기자는 정용희가 박지만의 비서실장이었지만 실제로는 육영재단을 비롯해 박근혜와 정윤회 등의 일도 다 맡아서 봤으며, '''실제 정윤회의 친척'''임이 밝혀지며 EG에서 나왔다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마성태는 본인만큼 이 사건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육영재단 사태 때 같이 일했고 정용희가 마성태에게 박용철을 손봐달라고 부탁했을 때도 동행한 인물[49] 이며 '''현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보좌관'''이라고 밝혔다[50] 어두운 과거를 가졌음에도 직접 나와 사건에 대해 말한 자신처럼 그 사람도 용기를 내 이 사건에 대해 증언을 해주기를 부탁했다. 주진우 기자가 덧붙인 바로는 마성태가 지목한 이 사람은 정용희의 후임으로 박지만의 비서로 일했고 김어준과 주진우가 5촌 살인사건 건으로 재판을 받을 때는 둘의 구속을 주장했다고 한다. 지금은 입장이 바뀐 셈이다.
10. 둘러보기
[1] 그것도 아주 끔찍하게 살해되었다. 후술될 내용대로 칼로 여러 번 찌르고, 망치로 추정되는 둔기로 머리뼈가 깨질만큼 머리를 수 차례 후려치기까지 해서 죽였다.[2] 시청률은 14.9%로 평시 시청률 대비 매우 높은 편이었다. 오히려 이 사건을 소개한 뒤로 그것이 알고싶다의 신뢰성이 더욱 높아졌다.[3] 박근령은 1954년생, 신동욱은 1968년생이다.[4] 약혼한 지 얼마 안 되어, 신동욱이 육영재단 건물 앞의 나무들을 전기톱으로 자르는 일이 발생했는데, 그 나무들이 박정희와 육영수가 생전에 직접 심은 기념식수라서 이를 알게 된 박지만이 분노하면서 갈등이 시작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신동욱이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에서 해명한 바에 의하면 당시 육영재단의 감사원장으로 어린이들이 많이 다니는 회관이니 가시덤불 등 애들에게 위험해 보이던 장애물들을 자른 것일 뿐, 박정희 관련 나무는 건드리지도 않았으며, 이는 단지 재단의 운영권을 차지하기 위한 시비를 걸기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고 반박을 했다.[5] 이 때 한센병자들을 끌고 온 우두머리 임두성은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 2번으로 금뱃지를 달았지만 2010년 10월 뇌물수수 혐의가 인정되어 결국 의원직을 잃게 된다. 애초부터 전과 12범이라 문제가 많은 후보였는데, 입후보 당시엔 이러한 사실을 숨겼다가(...) 당선 후 뒤늦게 드러났다. 참고로 이 문서의 주인공인 '''박용철'''과 그의 부하이자 훗날 컵라면을 먹다가 사망한 짱구파 두목 '''황선웅'''도 이 폭력사건의 주요 관련인물 중 한명이었다. 여튼 이 때부터 박근령은 육영재단 이사장에서 물러나고, 육영재단은 임시이사체제로 운영된다.[6] 더 쉽게 말하면 박근혜 남매의 사촌의 자식들이다.[7] 올릴 때마다 글이 지워졌는데, 40여 차례에 걸쳐 계속 올렸다고 한다.[8] 조직폭력배가 어린이회관 관장이라는 게 뭔가 섬뜩해 보일 수 있겠지만, 어린이회관은 일반인들도 결혼식장으로 이용하는 등 임대사업을 하는 곳이다. 쉽게 말해 이권이 걸린 곳이라 생각보다 상당히 꿀보직인 셈이다.[9] 육영재단 폭력사건을 아는 사람들은 이에 대해 '토사구팽'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여 박용철이 박근령의 축출에 이용된 후 박지만 측에게 버려졌다고 증언하였다.[10] 훗날 컵라면을 먹다가 사망한 그 사람이다. 박용철의 부하로, 조폭이었다.[11] 한 마디로 진짜 거친 조폭이었다.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 분에서 박용철이 육영재단 폭력사태를 주도한 사람 중 하나였다는 것이 드러났기 때문인데, 당일에 촬영된 영상에 박용철이 여러 사람들에게 '마스크들 좀 빼라, 겁나냐? 그리고 생활한 애들 있지? 너네 빠져라. 분명히 얘기한다. 나 영등포다. 니들 빠져라'라고 말하는 장면도 있어서 영등포 쪽에서 조폭 생활을 했던 사람인 걸 쉽게 추측할 수 있다.[12] 실제로 그의 유해는 유언(?)대로 화장되어 바다에 뿌려졌다.[13] 최소 한 시간 30분 이상[14] 자살을 계획한 사람이라면 굳이 거액이 들어가는 임플란트시술을 받을 이유가 없다.[15] 사실 황 씨는 박용철이 경호를 맡기긴 했지만 실제로는 조폭 후배였고, 신동욱의 증언상 당시는 이미 자신의 조직을 가진 조폭두목이었다고 한다. 조직이름은 '짱구파'하고 하는데, 신동욱은 황씨가 육영재단 폭력사건에서 박용철의 지시를 받고 짱구파 조직원 10여 명을 이끌고 깊게 관여했다고 한다. 본인이 그 때 박용철과 짱구파에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한다. 조직 전체 규모가 어느 수준의 규모인지는 알려지지 않았는데 10여 명만 동원한 걸로 봐서 정황상 많이 큰 조직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박용철 주변인들의 증언으로는 당시 황씨에 대한 별명이 '박용철의 그림자 무사'였다.[16] 이와 관련된 방송들에서 대체로 황 씨로만 언급하고 이름 언급을 피했지만, 사실 이미 박지만 수행비서 사망사건 후 몇몇 신문에서 5촌 살인사건을 다시 취재해서 황선웅의 이름을 보도했었고, 훗날 주진우도 팟캐스트에서 황씨의 본명을 말한 적이 있다.[17] 경찰은 컵라면을 먹다가 천식에 의한 위급상황이 와서 생긴 사망이라고 결론지었지만 그것이 알고싶다에서 취재한 내용에서 그와 조직생활을 해봤던 주변인들은 평소 그가 천식이 있다는 걸 들어본 적도 없다고 했다.[18] 박근혜의 심복 부하들로 알려진 문고리 4인방의 리더다. 흔히 정호성, 안봉근, 이재만의 문고리 3인방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박근혜가 대통령이 된 뒤 문고리 조직이 널리 알려져서 그런 것뿐, 사실 문고리 조직은 박근혜가 정치 입문한 후 유지되던 문고리 4인방이며, 정윤회의 추천으로 만들어진 문고리 4인방에서 대통령이 되기 이전까지 이춘상이 저 3명을 이끌던 맏형이자 리더였다. 18대 대선 선거운동기간 중 사망했다. 당시 박근혜와 선거본부 측은 당일 선거운동을 중단하고 그의 장례식장에 갔었다.[19] 후에 황 씨가 짱구파의 황선웅임을 팟캐스트 및 기타 방송에서 신동욱 스스로 밝혔다.[20] 다만 서독 건에 대해서는 허위사실이라고 인정하여 주진우에게 배상금 500만원을 박지만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하지만, 이는 형사사건이 아니라 민사사건이기 때문에 전과와는 아무 상관 없다.[21] 국회의원이 동행하게 된 건 취재 중 방해공작으로 인한 외교적 문제를 대비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22] 이 김용민은 나꼼수의 김용민이 아니라 국정원 간첩 조작 사건에서 화교탈북인 유우성을 변호해 이 사건이 국정원 조작임을 밝혀낸 변호사[23] 그알의 해당 편을 보면 두바이 증언자에게 질문을 하는 김어준의 걸걸한 목소리가 나온다.[24] 반대로 말하면, 무죄를 받을 것을 알면서도 몇 년 동안 재판을 질질 끌어 입막음을 하기 위해 기소를 한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25] 신동욱이 본인보다 나이가 어리지만 항상 '고모부'라고 부르며 존대말을 썼다고 한다. 사실 박근혜 남매와 5촌 조카 박용철은 나이 차이가 10살도 안 될 정도로 많이 나지 않는다. 박정희가 박용철의 할아버지의 막내 동생인데, 박정희와의 나이 차이가 크기도 하고, 박근혜 남매 자체가 박정희가 첫 번째 부인과 이혼하고 육영수와 재혼해 30대 중반 이후에 얻은 자식들이기 때문.[26] 예고편에선 대통령이 VIP로 표시되었으나, 본방송에서는 대통령으로 표시되어 나왔다.[27] 굳이 외압이 없었더라도 우리나라 방송사 뉴스의 대부분이 탐사보도나 기획취재보다는 단신, 단발성 기사의 비중이 매우 높다. 때문에 경찰이 이미 결론을 내고 수사를 종결한 사건에 대해 확정적으로 사건을 뒤집는 사실이 드러나기 전까지는 다시 의혹을 메인 뉴스에서 제기하기란 쉽지 않다. 한국 뉴스의 품질 저하가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다.[28] 제작진이 북한산 입구에 카운팅 기기가 있다는 것을 보고 해당시간, 5시에서 5시 59분까지의 입구의 카운팅을 확인하였는데, '''3'''이라는 숫자가 떠 있었다. 게다가 오전 5시 이전에는 사람이 출입한 기록조차 없었고 공식적으로 밝혀진 해당시간의 입장 인원은 박용수씨 1명으로 정상적이라면 입장:1/퇴장:0이 찍혀 있어야 하는데 '''입장:3/퇴장:3'''이 찍혀 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다른 입구로 들어온 사람이 나간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사건의 무대였던 용암문으로 향하는 입구와 다른 입구들은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으며, 북한산 자체가 야간 산행하기에는 부적합한 산이라는 것도 문제다. 방송에 나온 인근 주민들은 이정표조차 없는 길이라 평소에도 지나가지 않는 길이라고 증언했다. 앞에도 적혀 있지만, 3명이 오고 나간 5시 대 이전에는 입출산 기록이 전무하다. 이러한 정황으로 미루어 보면 기록에 남은 3명은 5시에서 5시 59분 사이에 용암문을 통해 드나든 것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29] 황 아무개가 지병으로 천식을 앓고 있었고, 컵라면을 먹다 천식 증세가 우연히 겹쳐서 사망했다는 것이 공식적인 사인이다. 그러나 주변인들은 그가 천식을 앓았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는 증언을 했다. 설령 실제 천식 환자였다 치더라도 천식 환자는 자신의 생명과 직결된 호흡이 언제 불안할 지 모르기에 항상 흡입약을 소지하고 다닐 수밖에 없다. 한 마디로 컵라면을 먹다 천식 증세가 겹쳐 사망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유다. 자세한 내용은 천식 문서 참고.[30] 영상 편집은 입출력 속도 문제 때문에 SSD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파일을 단순히 삭제하지 않고 내용을 모두 검게 덮어 씌우면 SSD 특성상 복원은 불가능하다. 물론 이 때도 그렇게 중요한 편집본을 PD 개인이 백업해둔 것 이외에 방송국 자체에 백업본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건 이상하다. 중요 시스템은 하드디스크를 병렬 구성하는 RAID 기술이 적용된 NAS가 구축되어 있다. 또한 데이터 손실을 막기 위해 별도의 시스템에 백업본을 만들어두기 마련이다. 복구가 불가능했던 까닭은 쉽다. 증분 백업 과정에서 자료가 없었고, 전문가가 자료를 없애는 과정도 용의주도했다.[31] 어느 나라에서나 방송국은 보안이 매우 까다로우며, 특정 세력이 점거하는 것을 막기 위해 미로처럼 복잡한 구조와 동선으로 지어진다. 게다가 편집실이면 더더욱 그렇다. CCTV도 곳곳에 깔렸으므로, 찾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침입자를 찾는다. 다만 그럴 의지가 없을 뿐이다.[32] MBC는 사실상 현재 국내 언론들 중에서 거의 마지막 남은 박근혜 정권 옹호 단체라는 비아냥을 당하고 있고, KBS 또한 당시까지 최순실게이트와 그에 따른 촛불집회 보도에 소극적이었으며 덕분에 MBC와 KBS 취재진은 촛불 집회에서 쫓겨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다. 반대로 SBS 뉴스는 두 방송사보다 비교적 이른 시점에서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최순실 게이트를 파헤치고 다수의 특종을 보도하였다. 지상파 중에서 유일하게 촛불집회를 생중계하기도 했다.[33] 처음에는 죽는 거 자체가 두려웠다가,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난 뒤에는 오히려 머리를 습격당한 뒤 죽지도 못하고 식물인간이나 장애인이 되어 가족들의 짐이 되는 망상까지 하게 될만큼 심각하고 비참한 공포까지 느꼈다고 한다.[34] 통역 등 곁에서 사업을 도우며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죽기 1주일 전 '1주일 후에 1억 정도 되는 가게를 운영해보라'는 말을 한 후 죽었다고 한다.[35] 보통 목을 매달아 자살하는 경우, 특히 비스듬히 눕는 형태 말고 전형적인 교수형 형태로 자살하는 경우 거의 다 죽는 과정에서 정액이 나오고 똥이 나온다고 한다. 자살이 아니라면 자살상황을 연출하기 위해 강제로 대변을 배설하게 하려고 먹였을 거라는 추측이 유력하다.[36] 이 외에도 시체의 목과 어깨에 덮여있는 수건이 이해가 가질 않는데, 이를 가장 쉽게 설명하는 방법은 다른 사람이 뭔가(범인의 흔적)가 묻을까봐 덮어뒀다고 한다면 쉽게 설명이 된다거나, 자살방법이 복잡하면 일단 자살이 아닌 것으로 보는 것이 기본이라거나, 목을 맸다고 해서 다 자살은 아니라는 언급도 나왔다. 방송 전반에 3탄을 암시하는 연출이 많았고, 전반적으로 조심스럽게 정황과 증거들을 비춰줄 뿐 어떤 결론을 내지는 않았다.[37] 유독 이 사건엔 조폭이 많이 연결되어 있는데, 나주칼잡이 같은 명칭들도 언급되었다. 그리고 이런 핵심인물들에게도 연락을 시도했지만 취재를 허락하지 않았다.[38] 확인해 줄 사람이 모두 죽거나 실종됐기 때문에 교차 검증을 할 대상이 없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한다.[39] 정황상 그알 항목 마지막에 기술한 그 '유의미한 제보'였던 것으로 추측된다.[40]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총 9명이지만 방송에 출연한 건 김어준, 김용민 변호사, 정청래 전 의원, 진선미 의원, 배정훈 PD, 주진우 등 6명이다. 정청래는 김어준이 사건의 심각성 때문에 목숨의 위협을 느껴서 신원 보증 차원에서 부르게 되었고, 정청래도 혼자 가기엔 불안해서 진선미를 불렀다고 한다.[41] 위에서 언급된, 주진우 기자에게 조폭들이 노리고 있으니 손도끼 같은 것을 가지고 다니라고 조언한 인물이다. 본인 설명에 따르면 주진우를 노리는 조폭들이 다들 연장 하나씩은 들고 다니는데, 가스총 같은 것은 꺼내서 격발하기까지 시간이 걸려서 대처하기에 늦다고 한다. 한편 마성태는 손을 씻고 이슬람으로 개종했는데, 과거 주진우가 이 사건에 대해 취재에 대한 고충을 토로하며 관련자 중 종교에 귀의한 사람도 있다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해당 인물로 추정된다. 참고로 두바이 제보자와는 별개 인물이다.[42] 정확한 시점은 얘기하지 않았지만 그가 상대했던 세력이 박용철이었다고 말한 걸 미뤄볼 때 2007년 말 육영재단 폭력사태로 박근령이 물러난 이후 시점으로 보인다. 실제로도 육영재단 노조 등이 건물을 점거하는 등 육영재단 폭력사태는 박근령이 물러난 후에도 한동안 계속되었다. 대외적으로는 박근령 이사장이 물러나면서 이에 따른 인사 교체로 인한 육영재단 노조의 반발로 보였으나, 실제로는 박용철마저 축출하려 하며 이에 반발한 박용철 세력을 상대로 또 다른 폭력 사태가 이어졌던 것이다.[43] 이원우 이사장이 기자회견을 준비하다 계란세례를 당한 일이 있었는데, 마성태는 나름대로 여론의 동정을 사보려 부하들에게 막지 말라고 지시했다가 도리어 이사장으로부터 박지만 측 사람이 아닌지 의심받아 정규직이 아닌 계약직이 되었다고 한다.[44] 마성태가 "다리를 부러뜨릴까요?"하고 묻자 정용희는 '''"그 정도로도 제가 부탁하겠습니까."'''하고 대답했다고. 즉 살인 의뢰였다.[45] 위에서도 나와있듯이 이 사건과 관련된 주변 인물들은 대다수 돌연사하거나 행방불명되었다. 마성태 역시 잠정적인 제거 대상이었던 셈이다.[46] 과거 주진우 기자에게도 이 쪽에서는 보호해줄 수 있다며 이슬람으로 귀의하기를 권유했다고 한다. 당당히 얼굴을 내놓고 인터뷰를 할 수 있는 지금 와서는 전도 행위였다고 농담 삼아 얘기했지만, 과거 그가 주진우 기자에게 했던 충고들을 미뤄볼 때 그도 심각한 신변의 위협을 느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주진우 기자는 직접 만나면 둘 다 위험할 수 있어서 한동안 전화로만 안부를 주고 받았다고 말했다.[47] 당시 호텔에서 탈출하던 과정에서 위에서 뛰어내리다 다리를 다쳤다.[48] 친박 논객들의 칼럼도 하나하나 다 찾아봤다는데, 정용희가 이러한 논객들을 관리하는 업무를 맡았다고 한다.[49] 당시 각각 행정과 법무 업무를 맡은 2명을 동행했다고 말했다. 이 중 법무 담당. 깡패에게 무슨 행정, 법무 담당이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시대가 바뀐만큼 머리 쓰는 일도 많다고 한다. 해커를 동원할 때도 있다고.[50] 조응천 의원의 보좌관이라는 설이 있다. 2016년에 박지만의 전 비서를 보좌관으로 채용했는데 이 사람이라는 것. 사실이라면 박지만과 친분이 있는 조응천이 증인 보호 차원에서 채용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