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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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려라 하니>의 하니와 <천방지축 하니>의 하니는 동일한 캐릭터이다. 2번째와 5번째 사진은 <천방지축 하니>의 하니.
1. 소개
2. 줄거리
3. 등장인물
4. 애니메이션화
5. 주제곡
6. 사건사고
6.1. 무단 극장판 제작 사건
7. 여담


1. 소개


이진주 원작의 만화. 장르는 일단 순정 스포츠물[1]로 분류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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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만화.[2]
만화잡지 보물섬에서 1985년 1월호부터 1987년 6월호까지 총 30화로 연재되어 총 4권으로 완결되었고, 1988년에 TV 애니메이션화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주인공인 하니 성우는 주희.
1980년대 중반까지는 자체적인 국산 TV만화영화는 뽀뽀뽀에서 방영하던 단편 만화영화를 제외하면 제작에 돈이 많이든다며 제작되지 않던 시절로 대부분 미국이나 일본에서 수입해온 애니메이션들이었다. 극장판 애니메이션은 그래도 국산의 비중이 높았기는 했지만 하청을 받아온 노하우를 바탕으로 제작한데다가 저작권 인식도 미비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캐릭터, 메카닉 디자인이나 줄거리면에서 일본 로봇 애니메이션을 베껴오는 경우가 적지 않은 등 표절시비에서 자유롭지 않았고 그나마도 1980년대 중후반에는 잠깐 명맥이 끊겼다는 점에서 달려라 하니의 의의가 상당하다. 비록 달려라 하니가 첫 국산 TV만화영화의 스타트를 끊은 작품은 아니지만 첫 시리즈물이라는 점에서 의의가 깊은 것. 거기에다가 1982년과 1983년에 프로야구, K리그, 민속씨름이 출범하고, 1986 서울 아시안 게임1988 서울 올림픽로 인한 스포츠 열풍으로 인한 플러스 인기까지 얻은것은 덤이었다. 특히 당시에는(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비인기 종목이었던 육상을 소재로 하고 있으면서도 이런 대단한 인기였다는 것도 주목할 점, 하지만 당시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에서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여자 육상 3관왕을 달성한 임춘애 씨가 주목받고 있었던 시점이라 당시 육상은 그나마 지금보다 사정은 좀 나았다. 그리고 이 작품에 나오는 하니 역시 임춘애 씨의 인생역경과 비슷해서 겹쳐보이기도 한다.[3][4]

2. 줄거리


어릴적 병으로 엄마를 잃은 하니는 혼자 살고 있는 고아였다. 엄마가 세상을 떠난후 아빠는 유지애[5]

라는 탤런트와 사귀게 되고 이후 엄마와의 추억이 깃든 집을 처분하고 중동(열사의 나라)으로 파견을 가게 된다. 그런 아빠에게 배신감을 느껴서 등을 돌린 하니에게 낙이라면 오직 달리는 것 뿐이었고, 그런 하니를 홍두깨 선생이 눈여겨 보게 되고 직접 육상부로 스카우트한다.
...그렇게 여자 육상선수 하니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3. 등장인물


  • 나애리 (성우: 최수민)[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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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나애리
나이
13세
직업
중학생, 육상선수
소속
진달래중학교
특기
육상
최고성적
세계 주니어선수권대회 준결승
지도자
유준태
> 신문 넣지 말라고 했지?! 요 꼬마야?!
> 네가 나한테 이기면 우리집 앞마당을 볼 수 있도록 개방해줄게.
> 도착했을때 암만 호강해봤자 돌아갈 때 금메달을 갖고 가지 못한다면 비참할 뿐이죠.[7]
이 작품의 라이벌이자 악녀 포지션 캐릭터. 전형적인 싸가지 없는 천재형 인물로, 장신의 단발머리 육상 소녀.[8] 진달래중학교 2학년이다. 등장시점에서부터 이미 잘 나가는 중학교 육상 유망주로, 여자 중학생 단거리 기록보유자다. 초중반에 하니에게 어그로를 끌어서 하니가 육상에 집중하게 하는 메인 빌런 역할이다. 단신이라는, 단거리 선수로는 치명적일 수 있는 단점을 가지고 있는 하니를 항상 무시하지만, 끝내 하니와의 대결에서 패배한다.
하니와는 첫 만남부터 악연이었다. 하니는 신문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며 어린 시절 살던 집과 정원의 대추나무를 보면서 엄마와의 추억을 되새기며 흐뭇해하고는 했는데, 하필이면 이 집에 이사를 와서 살던 것이 나애리였다.[9] 신문 문제로 첫 만남부터 트러블이 있었던데다, 그 뒤로도 나애리는 하니를 무시하는 언동을 계속했기에 자존심 강한 하니와의 반발은 필연적이었다. 사실 따지자면, 첫 만남 건은 신문 넣지 말라고 하는데 마음대로 넣은 신문보급소 측이 잘못한 것이다.[10]
물론 이것과는 별개로 나애리라는 캐릭터 자체가 전형적인 악녀 캐릭터라서 첫 등장부터 신문지로 하니와 동료 신문배달원의 싸대기를 날리질 않나, 하니가 육상을 한다는 것을 알고 나선 "육상은 아무나 하는 줄 아냐?"라고 비웃고 가버리질 않나, 여러 모로 어그로를 끄는 행동을 해서 자연스럽게 하니의 분노를 산다. 물론 이런 태도는 하니에게만 향하는 게 아니라서 기본적으로 남을 함부로 얕보는 거만함이 몸에 배여 있다. 그만한 자신감을 가질 만큼 실력도 출중한데다 재능에만 의지하지 않고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면모도 있고 자신의 코치인 유준태와는 달리 비겁하거나 음험한 면은 없어서 정정당당하게 실력으로 승부를 추구하는 면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인성 측면에서는 유준태와 함께 작중에서 가장 바닥을 달리는 인물이다. 굳이 분류하자면 같은 악역이라도 유준태가 비열한 스타일이라면 나애리는 비열하지는 않은데 싸가지가 없는 스타일(...).[11]
게다가 다크호스로서 주목받고 출전한 세계대회에서도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매너 좋은 우승후보 앞에서 상술했듯이 "도착했을 때 암만 호강해봤자 돌아갈 때 금메달을 갖고 가지 못한다면 비참할 뿐이죠."라는 망발을 날렸다. 마당을 들여다보는 하니에게 엄마가 자식교육 어떻게 시켰냐는 패드립까지 하고 하니에게 멱살을 잡히고 입고 있던 런닝셔츠 가슴 부위가 찢어지면서 너 거기에 기다리라면서 (갈아입을 옷을 가지러) 집으로 뛰어 들어간다. 나중에 예선 경기에서 하니한테 패배하고 이후 리타이어하여 끝까지 등장분량이 없다. 라이벌 치고는 초라한 퇴장.
도도한 악녀 포스 + 나름 빼어난 미모와 몸매로 당시 본작을 시청한 세대 중 일부가 "나애리를 보고 악녀 모에에 눈을 떴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도 가끔 있고 근래 들어서는 여왕님 캐릭터로 재평가설이 나오기도 한다. 2016년에는 터치인솔 x 달려라 하니 콜라보레이션으로 화장품 모델로 데뷔도 했다. 원작자 이진주 작가의 코멘트에 의하면, 원래 나애리의 외모는 하니의 것이 될 예정이었다. 16살의 고교 1학년생인 '포니'로 디자인을 했었다가 설정이 변경되며 지금의 하니[12]가 주인공이 되었고, 처음 디자인한 포니의 디자인을 라이벌의 디자인으로 재활용하면서 나온 캐릭터가 바로 지금의 나애리다. 첫 구상대로 작품이 나왔다면 나애리의 외모를 한 여고생 포니(...)가 주인공인 육상 만화가 되었을 것이라는 이야기. 주인공을 압도하는 꽃미모와 나이에 비해 성숙한 외모는 원래 주인공이었던 설정의 흔적일 가능성이 높다.조선일보 기사
>이 애가 자네가 지도하는 선수이던가?
>네가 나애리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해?
>
>세계주니어선수권 대회에서 하니에게
나애리의 코치이자 인성이 바닥인 인물. 부잣집 도련님 출신으로 한국 육상계에서 내로라하는 거물급 인사다. 오죽하면 홍두깨가 요구하던 하니에 대한 처우 문제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보던 육상연맹 노간부들이, 유준태가 나서서 "그렇게 해달라"고 한마디하자 "유 코치가 그런다면야"라고 꼬리를 내리고 순순히 따를 정도이다. 홍두깨와는 악연이 있는 사이로, 과거 자신의 아버지가 위탁한 가난한 소작농 아들이라는 것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본인 생각으로는 가난한 소작농 자식 주제에 자기보다 성적도 뛰어나고 운동을 열심히 한다는 이유 때문에 홍두깨에 대한 시기, 질투를 해왔던 것으로 보인다. 홍두깨와 어릴 적부터 라이벌이지만 항상 패배했기에 질투를 하고 열폭하여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으로 조폭들을 고용해 홍두깨를 집단 폭행하여 큰 부상을 입혀[13] 육상선수에서 은퇴하게 만들지 않나, 온갖 비열한 방법을 쓰면서 방해하던 악랄한 악역이다. 첫 등장도 갑자기 나타나 웃으면서 홍두깨를 비아냥거리며 하니에게 "나에게 오면 한국 최고의 육상 선수로 만들어주겠다"고 하지만 하니는 단칼에 거부했다. 결국 나애리를 우승시키고자 하니에게도 홍두깨에게 하던 짓처럼 온갖 비열한 짓을 하는데... 마지막에 하니가 마라톤에 출전하였을 때, 홍두깨 앞으로 찾아와서 지난날의 잘못을 참회한다.
>두깨 씨, 저랑 결혼해유~♡
>두깨 씨 밥 좀 챙기라고 큰아버님께서 당부하셨구만유.
홍두깨 선생님의 아내. 맛깔난 충청도 방언을 사용한다. 처음에 홍두깨는 사진을 보고 기겁했지만, 외모와 달리 마음씨는 천사. 요리 실력도 대단하기는 한데 양 조절이 안되어 재료비가 너무 나가 홍두깨가 꽤나 고생하기도 하지만, 아버지가 몸저 누운 양기리네에 집안일 봉사를 하여 양기리 형제를 먹여살리고 아버지 간호도 해 주는 등 홍두깨의 부탁도 기꺼이 잘 들어준다. 겉으로는 표현 안하려고 애써도 의외로 질투심이 대단해서 홍두깨가 다른 여자와 같이 있는 것에 꽤나 예민한데, 스스로도 외모가 못났음을 잘 알고 있어 홍두깨의 마음을 얻기 어려운 현실을 직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홍두깨가 썸타던 창수 누나 이명화와 함께 있는 것을 현장에서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은 나머지 편지 1장만 남기고 잠시 자취를 감추었다가 다이어트를 하고 예쁘게 꾸미고 사투리를 고친 후 그를 다시 찾아왔다. [14] 이에 홀딱 반한 홍두깨는 그녀와 결혼을 결심하여 해피 엔딩으로 이어지는 듯 했으나, 이후 홍두깨가 국제대회를 다녀온 그 짧은 사이에 요요 현상이 와서 본래의 모습으로 복귀했다.[15] 홍두깨와의 결혼이 확정되었으니 더 이상 살 뺄 필요가 없어 마음껏 먹어서 그랬다고 하는듯(...) 그래도 결혼 후에 알콩달콩 신혼도 즐기고 임신도 하는 등 부부생활은 나름 순탄하게 가는 듯 하다. 작중에서 결혼 후 홍두깨가 하니의 대회 전 "응원 오라"고 처제에게 전화할 때 대화로 보아, 고향은 충남 예산군인 듯하다. 자신과 똑같이 생기고 키만 다른 여동생들이 여러명 있는 걸로 봐서, 일단 집안에선 장녀인듯. 나애리와 함께 역시 콜라보레이션으로 화장품 모델 데뷔를 했다. 어쨌거나 대인군자 홍두깨 선생의 배필이 될 만한 마음씨를 지닌 대인군자 캐릭터.
조연 남캐로 이 작품의 대표적인 개그 캐릭터 중 한 명. 메가데레 속성을 가지고 있다. 입학 첫 날에 하니 옆자리에 앉았다가 하니가 먹던 초콜릿을 한입 준다며 먹던 부분을 창수 입에 들이대서 더럽다고 과민반응을 보이는 바람에 대판 싸운다. 하지만, 하니의 사정[16]을 알게 된 이후로는 하니와 친하게 지내려고 수업시간에 하니의 얼굴을 그리기도 하고,[17] 육상부도 따라 들어오며 대놓고 들이대기 시작한다. 혼자 자취하는 하니에게 갖다준다며 냉장고의 식료품을 죄다 털어가거나, 아침부터 식구들을 모두 깨워서 하니 응원을 시키는 등 자신의 하니바라기질에 가족까지 동원하여 민폐를 주는 개그를 자주 선보인다. 오죽하면 창수 부모님이 "우리 노후가 걱정된다"고 말할 정도. 어머니와 누나가 상당한 미인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창수가 속썩여서 자주 망가지는 모습이 나온다. 다른 만화같으면 여주인공의 서포트를 담당하는 서브 남주급 스탠스겠지만 이 만화에서는... 눈물이 앞을 가린다.외모와 행동이 시이 켄수를 연상케 한다.
깡마르고 졸린 눈을 한 육상부원. 이래 봬도 하니, 창수와 함께 빛나리 중학교 육상부 원년 멤버되시겠다. 원래 배구부 소속이었는데 육상부 창단모집에서 "간식은 물론 주시는 거겠죠?" 하며 들어온다. 아마도 집안이 가난해서 간식에 집착하는 것 같다. 편부 가정으로 보이며 계란 장사를 다니던 아버지가 허리를 다쳐서 학교에 결석하고 계란 팔이를 하러 다닌 적이 있지만 홍두깨와 고은애의 도움으로 극복해 낸 듯하다.
창수의 대학생인 누나. 음대생으로 추정된다. 요즘 기준으로 봐도 작화가 훌륭한 편이며 작중 최고의 미인 캐릭터로, 홍두깨와 같이 있는 모습을 본 고은애가 질투심을 느끼고 잠시 떠나 있었다. 그 후 잠깐 홍두깨와 타는 분위기가 있었지만,[18] 홍두깨가 깨는 모습을 많이 보여준 관계로[19] 잘 풀리지는 않았다. 그래도 홍두깨의 결혼식이 끝난 후 찾아와 축하의 꽃을 건네며 자신의 졸업식 피아노 연주회 초대권을 준 걸 보면, 싫어지지는 않은 듯 하다.홍두깨 선생이 항상 꼬질꼬질한 이미지로 다니다보니 나이가 들어보여 도둑놈처럼 보일수 있는데 이제 막 교사로 부임했고 작 중 나이도 아직 창창한 25세다. 명화가 가장 어리게 잡아 대학교 1학년이라 하더라도 20살이니 실제로는 생각보다 어울리는 나이차.
>하니...난 너를 이해할 수 있어.... 나도 너와 같은 환경에서 자랐거든....
>네가 나를 이겨준다면 난 멀리 사라져줄게.
전직 탤런트이자 하니의 새엄마. 그리고 이 작품 최고의 대인군자. 가히 못된 계모상의 안티테제격인 인물로 봐도 무방한 것이 이 사람과 하니의 관계는 구박하는 계모와 불쌍한 의붓딸 클리셰가 완전히 역전되어 있다. 과거 방송국 무대에서 조명등이 떨어지면서 깔려 죽을 뻔한 위기의 상황에서 당시 스탭으로 일하던 하니 아버지의 기지로 목숨을 구하게 되는데 유지애는 이 사건을 통해 하니 아버지를 평생의 은인으로 생각하고 사랑에 빠져 결혼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로 인해 하니에게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 생모의 빈자리를 차지했다는 이유로 미움을 사게 된다. 사실은 상술했다시피 우리가 생각하는 계모의 이미지와는 딴판으로 생각이 깊고 하니를 친자식처럼 여기며 배려하는 사람인데 나중에 최종화 독백에서 밝혀진 동기로는 자신이야말로 어린 시절 하니와 똑같이 새엄마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아온 것을 하니를 통해 스스로 보상받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고 한다. 하니가 다리부상을 당해 사실상 육상선수의 꿈을 접어야 했을 땐 재활을 위해 인기 탤런트로서 잠시 전격 은퇴를 선언하여 자신이 가진 부와 명성을 모두 포기한 뒤에[20] 하니가 재활하면 자신이 하니 아버지를 떠날 거라는 조건을 내걸어 하니가 자신에 대한 증오를 통해 재활의 의지를 불태우도록 악역을 자처한다.[21] 하니 아버지가 중동 건설 현장에서 사고를 당해 눈을 크게 다쳤을 때 지극정성으로 보살펴 주어 시력을 회복하게 하는 등 부부애 또한 대단하며 하니 아버지가 완쾌되고 하니가 장거리 육상 선수로의 재활이 확실해졌을 때 약속대로 하니 아버지 곁을 정말 떠나려고 했다. 최종화 이전 이런 그녀의 진실된 모습에 결국 하니도 츤데레 같은 반응을 보이며 그녀를 엄마로 인정하는 모습을 보인다.
히틀러 수염이 인상적인(...) 빛나리중학교 교장. 홍두깨가 설립한 육상부에 대해 처음엔 못마땅해 하지만, 그 이후 육상부의 대회 성적에 따라 일희일비하며 홍두깨에 대한 대우가 달라진다. 나중에 홍두깨와 고은애의 결혼식에서 주례를 맡기도 하는데, 급하게 오느라 면도도 못하고 옷도 제대로 못 챙겨 입은 홍두깨에게 자신의 양복 상의를 벗어줘, 무사히 식을 마칠 수 있게 해주기도 했다. 천방지축 하니에서도 잠시 나오는데 거기선 다른 학교 교장으로 나오며 대사도 거의 없다.
홍두깨와 함께 빛나리중학교 교사로 있는 인물. 30대 여교사로 시집을 가지 못한 노처녀인지라 유독 연애나 결혼에 관해서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며 홍두깨가 고은애와 결혼을 하게 되어서 고은애가 청첩장을 주게 되었을 때 신경질을 내며 통탄해하는 모습도 나온다.
건설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6화에서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일찍이 하니의 어머니와 사별하고, 방송국에서 조명이 떨어졌을 때 유지애를 구하게 된 계기로 유지애와 연인 관계를 맺게 된다. 이후 일을 하기 위해 중동으로 출국하였다가 현장사고로 눈을 다쳐서 앞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 후 막판에 눈이 회복되면서 다시 앞을 볼 수 있게 되었으며, 하니를 응원하게 된다. 사실 하니 아버지의 직업으로 설정된 1970~80년대 당시에 중동 건설 현장 파견은 대단히 호황이었고, 벌이도 좋은 직업이어서 많은 사람들이 중동으로 나가서 일을 했던 시대상이 반영된 설정이다. 고로 하니도 본인이 집 나가서 궁상맞게 살고 있는 것일 뿐, 아주 부잣집은 아니라도 아버지 본인만의 재력으로도 최소 중산층 이상, 새엄마의 재산까지 합친다면 명백하게 부잣집 따님 되시겠다. 다만 <달려라 하니>가 방영되었던 80년대 후반에는 대충 중동 건설 경기도 끝물 무렵이기는 했다. 이름이 나오지는 않지만, 유지애가 늘 '하 선생님'이라고 부르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하씨일텐데, 고로 하니의 이름은 외자 이름인 니(...)라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22]
  • 하니의 어머니
작중에서는 이미 고인이다. 하니의 회상에서만 등장한다. 생전에는 하니에게 다정한 엄마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하니 역시 유지애 역시 그런 하니 어머니를 닮은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도 있다. 어째선지는 모르겠지만 하니의 회상에는 늘 한복을 입은 모습으로만 나온다.그래봐도 1980년대 후반기였는데!![23]
직장에 다니는 회사원으로 창수와 명화 남매를 키워왔던 가장이며, 창수가 하니를 데리고 오면서 하니를 알게 된다.
가정 주부로 창수와 명화 남매를 키워왔으며 매번 하니를 자랑하는 창수 때문에 속앓이를 앓는다. 창수가 육상부에서 뛰는 것을 원치 않는 편으로 홍두깨에게 따지려고도 하였다.
하니와 같은 빛나리중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이자 학교 규율부장. 통칭 '빵순이'. 단발머리에 덩치가 커 보이는 편이며 규율부장으로서 매일 아침 학교 교문에서 복장이 불량한 학생들을 지적하는 역할을 한다. 하니와는 학교 선후배 지간이며 입학식 때 복장문제에 건방지게 나오는 하니를 탐탁치 않게 여기며 싸움까지 하였지만 중반 이후 나중에 하니가 태도를 바꾸게 되고 육상선수로 뛰면서 그녀를 응원하게 되었고 하니 역시 빵순 언니가 자신을 생각해 준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실 오방순이 하니를 응원한 것은 하니가 태도를 바꾸고 육상선수로 뛰면서 응원한 것이 아니라 하니가 편부자녀였기 때문이다. 하니가 나애리와 처음만난 육상대회에서 나애리를 제치고 예선1위를 했을때 기자들이 나애리를 이긴 하니를 취재했는데 기사로 하니가 어머니가 없고 아버지는 건설업에 종사하여 당시 돈벌이에 좋은 중동으로 파견나가 있었기 때문에 하니가 부모님 없이 혼자 자취하는 학생이라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하니의 사연을 알고 오방순은 눈물을 폭풍오열하며 하니에게 자기가 심했다며 사과하고 하니도 바뀐 오방순의 태도에 당황하다가 진심임을 알고 가까워진다. 이후에는 마지막까지 하니를 응원했으며 하니가 다리 부상으로 단거리를 뛸 수 없게되자 또 폭풍오열하며 안타까워했으며 하니가 미라톤으로 재기에 성공하자 누구보다도 기뻐했다.
  • 홍두깨의 큰아버지(성우 : 김병관)
시골에 사는 노인으로, 홍두깨와 고은애의 혼사를 위해 홍두깨의 집에 찾아오게 된다.
  • 고은애의 여동생들
충남 예산군에서 서울로 상경하였으며, 홍두깨의 처제들이기도 하다. 고은애와 판박이로 닮아있는 편이며, 고은애까지 포함해 6자매이다.

4. 애니메이션화


KBS 2TV 금요일 애니메이션
시간대 신설[24]

1988.8.15~11.20

1989.7.7~9.29

'''달려라 하니'''

천방지축 하니[25]

1988년 8월 15일부터 11월 20일까지 KBS2에서 방영되었다. 분량은 총 13화로 딱 1쿨 분량. 참고로 한국에서 최초로 정규 편성되어 방송된 국산 TV 애니메이션 시리즈다. 제작은 대원동화, 감독은 홍상만과 이학빈, 녹음연출은 민영문 PD가 각각 맡았다.
제작시기가 1980년대 중후반이라서 그런지 에니메이션 에피소드 중에 하니의 아버지가 중동에서 일해서 하니와 떨어져 있었다는 내용이 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중동 건설붐이 남아있을 때라 중동 파견 근로자가 많았던 한국의 모습을 반영한 듯.
정말 따져보면 오래된 애니이다. 오래된 것으로 보였던 카드캡터 사쿠라보다도 10년 전 애니니깐 사실상 30년 전 애니이다.[26]
하니라는 캐릭터는 이진주가 데뷔작인 '하니를 백작 품에'때부터 스타 시스템의 주인공 캐릭터[27]로 사용했던 캐릭터인데, 그 많은 하니 중 가장 인기를 끈 버전이 바로 달려라 하니의 하니다. 원래 본작에는 '포니'라는 이름의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쓸 예정이었으나 당시의 국민차라고 할 수 있던 현대자동차 포니가 연상된다고 심의에서 통과가 되지 않자 기존에 쓰고 있었던 하니를 다시 등장시켰다는 비화가 있다.
주인공 하니가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성장 드라마물로도 볼 수 있다. 사실 하니보다는 주변 인물들, 특히 장정진이 맡은 대표적인 캐릭터인 하니의 코치 홍두깨 선생이나 악역 겸 라이벌 나애리(성우는 최수민) 등이 더 빛을 발했으며 남자 메가데레 캐릭터 창수(성우는 김순원), 개그 캐릭터 양길이(성우는 이진화), 고은애(성우는 김성희)등의 조연도 맹활약했다. 하니의 원수이자 새엄마 뻘이 되는 탤런트 유지애[28](성우는 권희덕[29])도 아주 멋진 캐릭터 중 하나다.

5. 주제곡


애니메이션판에서 가수 '''이선희'''가 부른 주제가는 지금도 한국 애니메이션 주제가 중 손꼽히는 명곡.

[30] 다만 1988년 본방 당시에는 사진식자식 수파 타이틀을 썼고, 제작진과 성우진 이름도 나왔다.

난 있잖아~!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 하늘 땅만큼.

엄마가 보고 싶음 달릴 거야, 두 손 꼭 쥐고!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하니! 이 세상 끝까지 달려라 하니

난 있잖아~! 슬픈 모습 보이는 게 정말 싫어, 약해지니까.

외로워[31]

눈물 나면 달릴 거야, 바람처럼~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하니! 이 세상 끝까지 달려라 하니

난 있잖아~! 내 별명 악바리가 맘에 들어, 그래야 이기지.

모두모두 제치고 달릴 거야, 엄마 품으로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하니! 이 세상 끝까지 달려라 하니

달려라 달려라 달려라 하니! 이 세상 끝까지 달려라 하니

2016년 6월 21일 1대 100 김원희 방영분에서 3단계로 이 노래를 부르는 사람이 김완선, 이선희, 강수지 중 누구인가 찾는 문제로 등장했으며 96명 중 20명이 떨어졌다.
2018년 5월 10일 해피투게더 가정의 달 특집 쟁반노래방에서 미션곡으로 나온 바 있다.
그 외의 삽입곡으로는 가칭 빛나리 육상부 주제가 '해가 떠도 달려라, 달이 떠도 달려라. 흐르는 땀방울 보석되어 빛나리...'가 잘 알려진 곡이지만 너무 짧고, 이나마도 교장(성우는 김정호) 대사가 들어가서 잘리기 때문에 끝까지 들어볼 기회가 별로 없다(...). #,#

2016년에 NH농협은행의 CM송으로 리메이크되었고 올림픽 기간에는 원작자인 이진주씨가 참여한 올림픽 버전도 만들어졌다.


2021년에는 삼성자산운용에서 달려라 하니를 패러디한 '굴려라 머니' 광고를 만들었다. 업로드한지 한 달도 안 되어서 조회수 500만회를 달성했다.

6. 사건사고



6.1. 무단 극장판 제작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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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데없이 2018년 30주년 기념으로 극장판이 제작된다고는 정보가 나왔었다. 헌데 포스터에 나온 자세나 신발을 보면 달리기가 아니라 피겨 스케이팅 선수 같다는 느낌이라 김연아를 모델로 한 거 아니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포스터 디자인이 중국계 미국인 일러스트레이터 Yuumei그림을 도용한 것으로 의심되어 논란을 가중시켰다. 아이나무[32] 측에서는 공식 포스터가 아니라 내부적으로 Look&Feel을 확인하기 위해 시안을 만든 것인데 실수로 공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런데 위 포스터의 내용은 작가 이진주에게 확인 결과 사실이 아니라고 한다. 이진주 작가 블로그를 보면, (주)아이나무는 이진주 작가의 동의를 받지 않고 영화진흥위에 극장용 사업을 신청한 것으로 작가의 동의가 없는 것이어서 진행 될 수 없는 것이다. 포스터의 배경도 일본 유메이의 작품을 그대로 베껴서 하니의 실루엣만 넣어 제작한 것으로 일본 저작권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 현재 대원동화에서 극장용을 준비중에 있어 조만간 공식적인 발표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33][34]
2017년 7월 27일, 아이나무 서범강 이사가 페이스북 답글로 제작이 중단됐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 참고로 아이나무 서범강 이사는 댓글에 어떻게 원작자와 상의도 없이 그작품의 극장판을 만드려고 하셨나는 댓글에 설마 그랬겠느냐 오해가 생길 수 있는 정확하지 않은 내용은 정중하게 자제 부탁 드린다는 답글을 달며 원작자 이진주의 동의를 구했다는 암시를 했으나 직후에 해당 글을 댓글을 올린 이가 이진주 작가 블로그에 이진주 만화가가 올린 글의 캡처본을 올리자 대응을 하지 않자 피드백을 요한다는 글을 올렸다.
이에 서범강 이사가 아닌 다른 네티즌이 서범강 이사가 다른 네티즌이 같은 의혹을 제기한 댓글에 답글로 달았던 '저희는 원작자 님의 동의 하에 애니메이션 제작을 추진하였고 적법한 권리를 가지고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더이상 본 건에 대해 정확한 확인없이 오해가 발생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정중하게 부탁 드리겠습니다.' 라는 글의 캡처본을 올리며 아이나무 측에서 원작자인 이진주 만화가의 동의를 구했다고 밝힌 내용의 캡처를 공개했으나 문제는 해당 주장은 아이나무 서범강 이사의 개인적인 주장일뿐 원작자인 이진주는 최초 문제를 제기하여 극장판 제작이 중단된 뒤에 해당 글을 삭제하여 이후 극장판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아서 아이나무 측에서 원작자인 이진주의 동의를 구했는지 구하지 않았는지는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해당 사건에서 포인트는 다음과 같다.
  • 원작자 이진주이진주 작가 블로그를 통해 원작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음을 제기했다.
  • 원작자 이진주는 아이나무툰에서 달려라 하니 시즌2를 연재한 적은 있지만 연재를 중단했으며 연재중단 시점은 작가가 자신의 블로그에서 아이나무에서 제작하는 달려라 하니 극장판은 자신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고 포스팅을 한 시점과 유사하며 조선일보 기사에서는 작가가 연재를 중단한 이유를 종목을 '육상'에서 '피겨 스케이팅'으로 바꿔 연재를 해서 혹독한 비판을 받고 연재를 중단했다고 하였으나 그것은 기자의 추측일뿐 원작자 이진주가 연재중단에 대한 이유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블로그를 통해 아이나무 측에서 기획한 무단 극장판에 대한 이의제기를 해서 중단 되었다는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 아이나무에서 기획하고 대원동화에서 제작준비를 하고 있던 중 달려라 하니 극장판이 제작이 중단되었으나 중단된 이유는 공개하지 않았다.
  • 아이나무에서 달려라 하니 극장판 제작 중단 전까지 받던 의혹은 대표적으로 원작자 이진주가 제기한 원작자의 동의를 구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원작자인 이진주는 아이나무툰에서 달려라 하니 직접 블로그를 통해 동의를 한 적이 없다고 밝혔는데 이진주가 밝히기 전까지 아이나무에서 극장판을 기획하고 제작준비를 한 근거는 이진주가 아이나무툰에서 달려라 하니 시즌2를 연재했는데 작가가 연재를 하고 있음을 근거로 극장판 제작을 기획했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달려라 하니는 만화가 이진주의 작품으로 전적으로 저작권은 이진주에게 있다. 아이나무는 단순한 플랫폼을 제공할 뿐이라 극장판을 제작하려면 원작자인 이진주와 반드시 계약을 했어야 했으나 이진주가 해당 글에 밝힌 바로는 계약서 등의 서면합의는 없었다.
  • 아이나무에서 기획하던 달려라 하니 극장판 포스터 디자인이 중국계 미국인 일러스트레이터 Yuumei의 그림#을 도용했다는 것과 일본 유메이의 작품을 그대로 베껴서 하니의 실루엣만 넣어 제작한 것으로 일본 저작권에도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아이나무 측에서는 공식 포스터가 아니라 내부적으로 Look&Feel을 확인하기 위해 시안을 만든 것인데 실수로 공개한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정작 당사자인 유메이 측에게 공식적인 사과는 하지 않았다.

7. 여담


이 만화에서 하니가 다니는 빛나리중학교의 실제 모델은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 위치한 성내중학교[35][36]이고, 하니가 살던 아파트 옥탑방은 강동구 성내동. # 실제로 이진주씨가 현재까지도 이 곳에 거주하고 있으며[37][38] 성내중학교는 작가의 자녀가 다닌 학교라고 한다. 그래서 강동구에서는 하니에게 주민등록증을 부여했고, 하니는 둘리에 이은 한국 만화 캐릭터 중 2번째로 주민등록증을 가진 캐릭터가 되었다.[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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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12일, 강동구 성내동에 성내하니공원이 개장되었다.[40]
명대사는 단연 "'''나애리, 이 나쁜 계집애!'''"[41]
작중 내내 하니를 보면 '''치마를 입은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늘 청바지나 트레이닝 바지를 입는 편으로 치마를 입은 모습은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편. 달려라 하니 뿐 아니라 천방지축 하니에서도 항상 청바지를 입고 있는 모습이 나오며 치마를 입은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실 원작상에서도 하니는 청바지나 트레이닝 바지 외에 치마를 입은 모습을 볼 수 없었는데 활동을 많이 해야 하고 악바리같은 성격 때문에 순수하고 여성스러움을 상징하는 치마를 입는 모습을 보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어째서인지 나애리의 존재[42]가 작품 중후반 세계 주니어 육상대회에서 하니에게 패배하는 시점부터 갑작스럽게 사라져 버린다. 하니의 새엄마 유지애가 나애리가 살던 집(정확히는 더 예전에 하니가 살던)을 사는 장면으로 봐선 집까지 팔아버린 채 어디론가 잠수를 타 버렸다는 추측만이 가능한데, 이후에도 나애리의 코치인 준태는 재등장하여 홍두깨 선생과 화해의 시간을 가지지만 나애리는 끝까지 등장하지 않았고, 화해 또한 없다.
결국 마지막회에서 하니의 환상에서 잠시 준태와 함께 등장해서 하니를 응원했다(…). 그나마 나애리의 행방에 대한 타당성이 있는 해석은 '하니와 나애리의 종목이 단거리와 장거리로 달라졌고 서로 갈라졌기 때문에 선수로서는 맞설 일이 없어졌다.' 정도다.
'달려라 하니' 후반부에 하니는 발목 부상[43]으로 단거리 육상선수에서 마라톤 선수로 전향하지만 이마저도 결국 여의치 않았다. 애초에 단거리 선수와 장거리 선수는 사용하는 근육이 전혀 다르며, 중장거리도 아닌 마라톤으로 단시간에 전환한다는 것은 가능성이 극히 희박하다. 결국 근성으로 뛴 경기에서도 감동적인 완주는 해내지만 꼴찌.
그런데 이 시대에는 마라톤이 대중성도 없었고 전문 선수들만 참가할 수 있는 거라서 일반인들은 힘들어서 못해내는 거라고 생각했지만 30년이 지난 요즘시대에는 일반인들도 많이 해내고 있고, 1년 정도만 착실하게 준비한다면 하니가 도중에 쓰러진 거와는 달리 별 어려움이나 쓰러짐 없이 완주는 가능하다. 그리고, 연습을 하면서 자기 페이스를 알아가고 실전에도 꾸준한 속도를 유지하면서 달리지, 도중에 쓰러질만큼 무식하게 달리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다. 자기의 능력껏 꾸준하게 달리는 게 감당 못할 만큼 부상을 참아가면서 빨리 달리다가 쓰러지는 것보다도 당연히 성적도 잘 나온다. 아무래도 이 시대의 마라톤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드라마틱한 엔딩을 위한 장치가 겹쳐진 결과로 봐야 할 듯 하다.[44]
이후 보물섬에서는 하니가 높이뛰기 선수로 거듭나는 '날아라 하니'도 연재되었다. 날아라 하니는 달려라 하니의 직접적인 후속작인데 내용은 하니가 육상을 그만둔 뒤 아버지가 낙상사로 돌아가시면서 하니는 유지애를 미워하게 되었고 여려가지 갈등과 시련을 겪다가 높이뛰기로 종목전환을 하고, 이전에 살던 옥탑방에 이사한 뒤 하니가 드디어 유지애를 엄마라고 부르면서 해피엔딩으로 끝나게 된다. 그러나 날아라 하니의 줄거리가 달려라 하니의 재탕인데다가 아버지가 세상을 뜬다는 식으로 시작해서 갈등이 재개된다는 전개였기 때문에 전작만한 인기를 얻지 못했고, 결국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지는 않았다. 그 대신 천방지축 오소리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했는데 등장인물을 하니 시리즈에 나오는 캐릭터로 교체해서 천방지축 하니로 방송되었다. 아무튼 이진주는 이 달려라/날아라 하니 이외에도 다이아몬드 하니를 비롯하여 많은 '하니'시리즈를 연재하였다. 다만 이러한 '다른 하니' 시리즈 중 다이아몬드 하니, 하니와 워리를 제외하면 대부분 잡지 연재작이 아닌 대본소용 작품들이어서 그렇게까지 대중적으로 알려지진 않았다.
이 만화와 '천방지축 하니'의 중학교는 모두 교복이 아닌 사복이다. 시대가 시대였던만큼 (80년대 중후반) 교복 자율화 시기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역시 국산 애니메이션인 영심이의 등장인물(영심이, 왕경태)도 교복이 아닌 사복을 입는다.
인터넷에서는 천방지축 하니와 달리 오랫동안 KBS 방영 당시의 오프닝이 올라온 적이 없어 혹시 아쉽게도 소실된 것이 아닌가 했지만 이는 제작했을때 나름대로 꽤 신경을 쓴데다가 재방을 수없이 한것을 감안하면 현실성은 없는 얘기였고, 다행히(?) 2013년 초에 유튜브에 한 유저가 방영 당시의 오프닝을 올림으로서 그 논란은 쏙 들어갔다(...) 물론 초기 방영 당시에는 오프닝에 제작진 목록에 광고주와 브랜드명이 떴기는 했지만 말이다. 실제 2020년 KBS 아카이브에서 올려놓은 영상을 보면 처음 2TV에서 방영했을 때랑 1TV에서 방영했을 때의 오프닝이 모두 올려져있다.
해피투게더 쟁반극장 2003년 6월 26일 방송분에서 도전했던 애니메이션이다. 조성모, 김윤경 출연. 이 방송분에서는 역대 최악의 진흙탕(?) 싸움으로, 마지막 가만히 있는 신에서 상대팀의 방해로 인해 좀처럼 승자를 가리지 못했다. 이효리는 아예 쟁반노래방 소절막대 소품으로 방해에 성공하여 상대팀의 NG를 내는 활약을 펼쳤다. 결국 신동엽 팀에서 김윤경이 제안한 방해가 실패로 끝나면서 이효리, 조성모 팀이 승리를 거두었다.
거침없이 하이킥에서 패러디된 적이 있다. 이민용에게서 도망가는 강유미의 달리기 속도가 빠르다는 걸 알게 된 어느 체육교사가 강유미를 육상대회에 내보내는데, 이때 나오는 노래가 '''"달려라 유미"'''로, 여기서 들을 수 있다. 이 설정은 지붕뚫고 하이킥신세경이 물려받은 것같다. 지붕킥에선 체육선생이 운동신경 좋은 걸 알고 육상선수로 내보내려 하지만, 하필 기간제 선생이었다. 그 때문에 경기는커녕 체육복 값만 물게 된다.
경북 지방의 참소주 광고에서 이수경이 주제곡을 개사한 노래를 불렀다(...) #
응답하라 1988 5회에서, 진주가 보는 TV 화면으로 등장하였다.
야인시대 합성물 중에서도 패러디 작품이 있다.(...) #
애니메이션판 기준으로 은근히 먹방 장면이 퀄리티 높게 자주 등장하는 편이다.
1990년대 이후 이명화와 오방순의 성우 정경애를 시작으로 고인이 된 성우들이 늘고 있다. 1997년에는 이명화와 오방순의 성우 정경애괌 비행기사고로 일찍이 작고하였고 2004년 홍두깨 성우 장정진떡 사고로 작고하였으며 2010년대 들어서는 홍두깨 큰아버지의 성우 김병관이 2017년에 작고하였고 2018년 3월 16일에는 유지애의 성우 권희덕마저 고인이 되면서 방영한지 30년만에 성우 4명이 세상을 떠났다.
2010년에 녹음 연출 PD이자 KBS에 방영된 모든 국내 애니메이션의 PD였던 민영문 PD가 아쉬운 54세로 세상을 떠났고 2011년에는 이진주 작가의 부인인 이보배 작가도 세상을 떠났다. 특히 노환과 급병으로 별세한 김병관, 권희덕을 제외하면 나머지 정경애, 장정진 두 성우는 각각 '''비행기 추락사고와 오락프로 떡 흡입사고로 인한 인위적 별세'''로 하니 시청자들에게 충격과 비극을 안겨주었다.
1997년 이명화와 오방순 성우 정경애는 남편 장세준과 아들들과 함께 휴가차 괌으로 여행을 가던 중 비행기가 니미츠힐에 추락하면서 그 자리에서 가족 모두가 몰살당한 것으로 알려져 충격과 안타까움을 더했다. 특히 하니가 방송된지 9년만에 하니 출연 성우 중 최초의 고인이기도 하여서 당시 시청자들의 충격이 컸었다. 그리고 2004년 홍두깨 성우 장정진은 KBS 예능 프로그램 일요일은 101%에 출연했다가 떡을 먹던 중 목 부분에 걸리게 되어서 호흡곤란으로 병원에 입원하였으나 차도 없이 안타깝게도 별세한 것으로 알려져서 정경애에 이어서 큰 충격과 비극을 안겨주었다. 특히 장정진은 특유의 목소리로 대중적인 면에서도 주목을 받아왔던 성우이자 하니의 주연급 성우라 충격이 컸었으며, 그렇게 이 사고로 해당 예능 프로는 긴급 종영되었다.

[1] 한창 보물섬에 연재되었을 때는 "학원명랑물"로 홍보했다.[2] 결승선 통과하는 하니의 뒤에서 에잇하는 표정을 짓는 소녀가 바로 나애리다.[3] 임춘애 씨는 성보여자상업고등학교 2학년이던 1986년, 서울 아시안 게임 여자 계주에 출전해 800m, 1,500m, 3,000m 금메달을 기록했다. 2년 후에는 1988 서울 올림픽 성화 주자로 나섰다. 그때 당시 "학교 코치 사모님이 끓여주신 라면만 먹고 뛰었어요."라는 인터뷰는 본의 아니게 와전되어서 한때 헝그리 정신을 대표했던 인물이었기도 하다.[4] 여담으로 하니가 애니화되기 1년 전인 1987년에 KBS1에서 임춘애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서 <아리수변 꿈나무>라는 달려라 하니와 비슷한 소재의 1시간짜리 만화영화를 방영했으나 별 다른 인기를 끌지 못했다. 그리고 작중 주인공인 임춘애는 "아마추어 선수의 상업적 이용은 스포츠 정신에 어긋난다."는 육상연맹 측의 클레임으로 인해 '임신애'로 개명되고 말았다.[5] 90년대 중반 재방송분에서는 최진실로 재더빙된 적이 있었다. 기묘하게도 성우 권희덕은 최진실의 초창기 CF 광고 전문 성우였다.[6] 의외로 '나예리'로 이름을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많다. '애리'라는 이름은 이진주 작가의 조카의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성우 최수민은 본작에서 내레이션도 함께 담당했다.[7] 하니가 호주육상협회의 초청으로 육상대회에 나오기 위해 호주에 도착했을때 하니를 보면서 했던 말이다.[8] 여담으로 이진주 작가가 <달려라 하니> 연재 이후에 후속작으로 집필한(단, 내용은 이어지지 않는다) 다이아몬드 하니에서도 나애리가 등장하는데, 디자인이 바뀌어 가슴까지 내려오는 긴 머리로 나온다.[9] 나중에 이 집은 유지애가 사들여서 다시 하니가 살게 된다. [10] 실제로 작품의 배경시대였던 1980~90년대에는 신문 끊기가 정말 어려웠다. 절독하겠다고 의사표시를 해도 보급소 측에서 전혀 들어먹지를 않았다. 대문에 크게 '신문사절'이라고 종이에 써서 붙여놓은 집을 보는 것도 꽤 흔한 일이었다. 오늘날에도 이런 짤방이 유행하는 것을 보면 없어지지 않은 악습이지만, 그 시절엔 정도가 훨씬 심했다. 심지어 신문 넣는 일을 가지고 보급소 직원끼리 시비가 붙어서 칼부림까지(!) 난 사건도 있었을 정도다. 1996년도 사건이다. 당시 기사.[11] 아래에 링크된 조선일보 기사에서도 나애리의 캐릭터를 아폴로 안톤 오노에 비유했다. 20년 가까이 지난 지금은 거의 잊혀졌지만 2000년대 초의 오노는 그야말로 거의 국적(國敵) 취급을 받는 국민 밉상이었는데 단순히 김동성이 받아야 할 금메달을 빼앗아 갔다는 이유보다도 오노 본인의 부적절한 언동이 어그로를 끌었기 때문이었다.[12] 하니 캐릭터 자체는 달려라 하니 이전에도 이진주 작가가 레귤러 주인공으로 사용하던 캐릭터였다.[13] 단순히 부상을 입히는 정도가 아니라 살인미수다. 홍두깨의 회상에서 조폭들에게 두들겨 맞다 도망치는데 절벽에서 밀어버려 굴러떨어졌고 이때 다리가 부러져 육상선수로서의 생명이 끊어졌다. 홍두깨가 살았기에 살인죄가 아닌거지 어엿한 폭행교사에 살인미수에 해당한다.[14] 하지만 당시에 자신의 식욕을 상당히 억누르고 있었던 거 같다. 포장마차에서 홍두깨가 음식을 권하자 "다이어트 중"이라고 거절하기도 한다.[15] 하지만 사투리는 쓰지 않는다.[16] 엄마가 돌아가셔서 편부자녀인데 아버지는 하니를 위해 돈벌려고 중동에 가서 하니 혼자 살고 있는 것[17] 때마침 선생님께 딱 걸렸는데 이 때 창수가 당당히 "선생님 그건 하니 산맥이에요!"라고 외쳤다. 당연히 그림은 선생님께 압수당하고, 옆에 앉은 하니도 다소 쪽팔려할 정도.[18] 이들 캐릭터 성우들이 모두 고인이 되었던 때문에 챔프 채널에서 재방영되었을 때 눈시울을 붉혔던 시청자들도 있었다.[19] 데이트에 입고 온 복장이 평소랑 똑같은 점퍼에 넥타이만 맨 것부터 깨는데, 피아노 연주회에서 코를 골고 졸지를 않나, 자다 깨서 자기 혼자 앵콜을 외치지 않나... 이쯤 되면 잘 되는 게 이상하다.[20] 이 기자회견을 병원 라운지에서 시청한 하니는 링거병을 TV에 집어던져 TV를 박살내 버렸다.[21] 일단 자신 앞에서 항상 저자세로 나오던 지애 아줌마가 갑자기 세게 나오니 당황하는 하니의 표정이 일품.[22] 천방지축 하니에서는 이미 고인이 된 체조부 코치 출신 하니의 친아버지로 회상신으로만 등장.[23] 천방지축 하니에서도 하니의 어머니가 잠시 등장하는데 머리 스타일이 다르고 한복 입을때만 외모가 비슷하며 몸이 약해진 상태로 최종회에서 죽음을 맞이한다.[24] 이 작품을 시작으로 KBS 2TV에서 매주 금요일 저녁에 국산 애니메이션을 방영하기 시작했다. 다만 첫방영 당시에는 주말 저녁시간대에 방송되었다.[25] 달려라 하니 시리즈[26] 한국의 시대상을 보면 아는데 그나마 잘 산다 축에 들기 시작하는 80년대라서 망정이지 1960년대 배경이었으면 이해 자체가 안 되었을 수도 있다. 1980년대말과 2000년대의 차이도 어마어마한데 지금과 80년대 따위하고 비교하는 거 자체가 모욕일 수도 있다.[27] 80년대만 해도 작품마다 이야기도 다르고 세계관도 별개이지만 등장하는 캐릭터의 외모, 이름, 성격 등은 정해두고 돌려가며 사용하는 경우가 매우 흔했다. 이현세 작가의 오혜성이나 이상무 작가의 독고탁, 고행석 작가의 구영탄, 김성모 작가의 강건마 같은 캐릭터들을 생각하면 이해가 빠르다.[28] 처음에는 하니의 냉대에 조마조마해하지만, 하니가 부상당한 후 재활하려 할 때 어그로를 끌면서 자전거에 탄 채로 '네가 날 이기면 너희 아빠에게서 떠나주마'라는 강수를 둬 하니를 부활시킨다. 부활에 성공해 유지애와의 내기에서 이긴 하니는 "자전거나 더 좋은 걸로 갖고 오시죠."라며 시대에 앞선 츤데레를...[29] 최진실 생전에 최진실이 출연한 CF 담당성우였다. 최진실을 CF 퀸의 자리에 올려놓은 멘트인 "남자는요, 여자 하기 나름이에요."가 이 분 목소리. #[30] 기획한 방송사가 KBS인 것도 있지만 1980년대 당시의 여의도 광장은 지금보다 훨씬 랜드마크로서의 대표성이 강한 곳이었다.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송이 있었던 지 5년밖에 안 지난 시점이기도 했고, 여의도에 살고 있는 주민이면 누구나 찾아와서 거니는 공간이기도 했다. 현재는 한강 고수부지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31] '외로'''와'''' 로 들린다.[32] 또봇 웹툰 '제로이야기'를 연재중이기도 한 웹툰 플랫폼 이기도 하다.[33] 애니메이션박물관 한승태 학예연구사 자문.[34] 애니메이션 제작 동의 여부와는 별개로 이진주 작가가 아이나무툰에 스케이트를 소재로 달려라 하니 시즌 2를 연재한 적은 있었다. 조선일보 기사 하지만 중간에 연재가 중단되었다고 하며 현재는 아이나무툰에서 작품을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연재가 중단된 타이밍이 블로그에서 해명한 시점과 비슷해 뭔가 찜찜한 느낌도 있다.[35] 그러나 실제로 작가가 연재 전 기획단계에서부터 성내중학교를 모델로 삼는건 시간연대상 불가능한 일이다. 달려라 하니의 보물섬 첫 연재는 85년 1월 이지만 성내중학교의 개교는 1985년 3월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나 지금이나 성내동 관내에는 성내중학교 이외에는 중학교가 하나도 없기 때문에 연재 중간이나 애니메이션 제작시에 모델로 삼았을 수도 있다......지만 실제 성내중학교와 작중 등장하는 빛나리 중학교와의 유사점은 건물색 이외에는 전혀 찾을 수 없다![36] 성내중학교가 실제 모델로 알려진 것 때문인지 어떤 기사에서는 빛나리 중학교 육상부의 실제 모델이 성내중학교 육상부라고 밝히지만 성내중학교에는 육상부가 존재했던 적이 없다. 애초에 운동장 대각선 길이도 채 100m가 되지 않기 때문에 육상부는 꿈도 못꾸고 작중에 등장하는 체육관, 배구부, * 육상부 본부로 사용된 화장실 건물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37] 건물 이름도 '''하니빌'''이다![38] 참고로 근처에는 홍두깨가 자취하던 슈퍼마켓이 있었지만 2010년 폐업하고 재건축이 되면서 현재는 흔적을 찾을 수 없다.[39] 주민등록번호상으로 둘리는 1983년 생, 하니는 1985년 생이다.[40] 참으로 조촐하기 그지없지만 국내 최초로 만화를 대상으로 한 공원이라는 의의가 있다. 둘리의 거리는... 결국엔 철수(?)했으니 논외로 치자.[41] 그 나애리의 성우차태현의 어머니인 최수민. 정말 싸가지 없는 소녀 연기를 절륜하게 연기해냈다. 히든 싱어이선희 특집 때 하니 이야기가 우연히 나왔는데, 차태현이 '어? 엄마가 거기서 나애리 했었는데!?'라고 해서 다시 화제가 되었었다.[42] 작품 초반, 나애리가 기권으로 출전하지 않은 경기에서 사기가 떨어진 하니는 그 경기에서 꼴찌를 할 정도로 라이벌 의식이 강했다.[43] 경기 도중 아킬레스건이 부상을 입었다. 단거리 육상선수로서는 치명적인 부상. 그래도 꾹 참고 기어코 1위로 골인했는데 국내로 돌아와서 교통사고를 당하는 바람에...[44] 그런데 여의치 않았다고는 하지만 국제 마라톤대회는 성인대회인데 하니는 당시 주니어 세계선수권 우승이나 홍두깨 선생의 결혼, 아버지의 눈 부상 등 이런저런 일이 많았다지만 시간이 많이 흘러봐야 고작 중학교 1~2학년의 어린 여학생일 뿐이다. 단거리에서 장거리로 전향한지도 얼마 안된 중학생, 어린 나이의 여자아이가 42.195km의 마라톤 코스를 완주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성공적이라 봐야 한다. 부상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어린 나이에 마라톤을 완주했다는 것은 체계적인 훈련만 따른다면 20대~30대 초반엔 충분히 대성할 실력이고 국제무대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정도로 재능이 있다는 의미다. 실제 작중 스타디움 들어올 때 5시간동안 자리를 지킨 관중들이란 묘사가 나오듯이 완주까지 약 5시간이 걸렸음을 감안하면 부상 이후 장거리로 전향 직후의 해당 나이대에서의 완주 기록치는 절대로 나쁜 기록이 아니다. 현재 21세기인 지금도 각종 마라톤대회에서의 최연소 완주기록은 10대 초반의 초등학교 고학년~중학생이 기록하는데 완주까지의 시간은 4~5시간대이다.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80년대 후반이라면 중학생 또래의 기록으로 보면 세계 최고기록이었을 확률도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