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물섬(만화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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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영재단이 1982년부터 1996년까지 발행한 만화잡지. 참고로, 발간 당시 육영재단의 이사장은 박근혜 전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다.
오랜기간 동안 명맥이 끊겨있던[1] 만화잡지가 이 시기부터 다시 발행되었으며 창간때부터 90년대에 이르기까지 상당수 유명작가들이 보물섬에 만화를 연재하였기 때문에 한국만화사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쳤다. 원래 육영재단이 발간한 어린이 교양잡지 어깨동무의 별책부록이었으나, 본책보다 만화만으로 채워진 부록의 인기가 높자 만화잡지로 단독발행하게 된다. 만화만으로 채워진 잡지는 1960년대에 사라지고 그 이후로는 대개 어린이 대상의 교양성 기사를 싣는 잡지에 보너스로 만화를 몇개 끼워서 연재하던 형식이었으나 보물섬은 잡지내용을 오직 만화만으로 채우는 당시로는 파격적인 시도를 했고 그 결과는 어린이들의 열광적인 지지. 기존의 어깨동무, 소년중앙, 새소년 등의 어린이 잡지와 넘사벽으로 차이를 벌리며 엄청난 인기를 구가한다. 보물섬의 엄청난 인기에 자극받은 기존 어린이 잡지도 잡지에서 만화의 비중을 대폭 늘렸지만 결국 보물섬의 아성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본래 교양지였던 소년중앙은 보물섬처럼 만화잡지로 전향하였다가 다시 본 책은 교양을 지향하고, 별도로 만화만을 수록한 별책을 부록으로 주었는데 그 부록만으로도 보물섬의 두께에 육박할 지경이었다. 문자 그대로 배보다 배꼽이 컸던 상황. 부록으로 주는 만화책에는 따로 이름을 붙였는데, 소년중앙의 만화부록은 "만화홈런왕"이었다. 그러나 이후 만화가 모두 없어지고 초기의 교양지로 바뀌었다가 1994년 9월호를 끝으로 하이틴, 영레이디와 함께 폐간되었다.[2]
보물섬의 지존자리는 이후 주간 만화잡지 아이큐 점프가 창간될 때까지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1980년대 중후반 전성기 때 이 잡지에서 연재된 인기 만화 몇 개가 본격적인 국산 TV애니메이션 제작과 맞 물려 애니화되기도 했다.(대표적으로 아기공룡 둘리, 달려라 하니, 펭킹 라이킹 등). 월간지라서 그런가 책이 두꺼운 것이 특징. 500페이지가 넘었으며 종이 질이 그렇게 좋았던 것도 아니라서, 충분히 목침에 비견할만한[3] 두께가 된다. 장르는 상당히 다양해서 명랑만화, 학습만화, 소년만화, 순정만화를 가리지 않고 거의 뭐든지 연재되었다. SF만화를 꽤 많이 연재했던 것도 특징. 다만 지금 와서는 보물섬에 연재되었던 만화는 아기공룡 둘리, 맹꽁이 서당, 달려라 하니, 꾸러기와 맹자 정도를 제외하면 정보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더불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90년 초반에 비디오 애니메이션 대여시장에도 진출했던 것이다. 보물섬 비디오란 제목으로 마물헌터 요코(금문영상에서 낸 것 말고 다른 회를 출시했다. 제목이 댕기....(요코 성우는 최수민)이나 란마 1/2 극장판을 더빙하여 출시하기도 했다.
90년대 일본만화가 정식 수입이 된 이후에도 국산 만화로 버텨왔지만 1980년대 후반에 만화잡지 창간붐이 불며 아이큐 점프와 소년 챔프 같은 주간 만화잡지가 수십만부에 달하는 엄청난 판매부수를 자랑하게 되었고, 순정만화도 르네상스를 시작으로 여러 잡지들이 창간되기 시작하면서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있었던 보물섬은 독자층 이탈로 판매부수가 감소하게 되었다. 물론 육영재단에서 댕기를 창간해서 꽤나 오래 가기는 했다만 보물섬 자체에는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두 잡지에서 1992년 8월 자매지로 <월간 코믹 점프>(93년 3월 '월간 아이큐점프'로 제호명 변경-95년 3월 폐간) <월간 챔프>(95년 9월 폐간)를 창간한 데 이어 육영재단에서 1992년 11월 25일 창간되어 10일과 25일에 발행되던 격주간 만화잡지 <Next>가 1993년 2월 10일자로 폐간되자 같은 달 23일자부터 격주간으로 바뀌었는데 9월까지는 8일과 23일에 발행했으며 10월부터 다음 해인 1994년 7월까지 10일과 25일에 발행했는데 큰 효과는 없었고, 1994년 8월 월간지로 환원하는 동시에 제호명도 '빅보물섬'으로 바뀌었으며 보물섬에 연재되는 만화들의 수준도 점점 떨어져가는 중에(김성모 씨가 럭키짱의 파일럿판에 해당하는 '그레이트 캡장'을 연재하기도 했다. 그 뒤 럭키짱을 닥터 K라는 제목으로 연재했으나, "1부 끝"이라는 이름으로 연재 중단.) 결국 1995년 1월 창간된 팡팡에 밀리자 1996년 9월 폐간되었다. 폐간되기 직전에 가선 결국 일본 만화도 어느정도 연재가 되었다. (문제는 여기에서 연재된 만화가 상당히 수위가 높은 만화였던 모모이로 사바스[4] 였다)
하지만, <보물섬>이 월간지로 환원한 동시에 제호명을 변경하면서[5] 위기에 처한 건 국산만화와 일본만화를 동시에 실어 온 <월간 아이큐점프>[6] 와 <월간 챔프>였는데 이들 중 <월간 아이큐점프>는 라이벌 잡지인 <월간 챔프>를 만든 대원에서 또다른 비순정 월간만화잡지 <팡팡>을 창간(95년 1월)하여 입지가 좁아지자 95년 3월 폐간되었다[7] .
아울러, <월간 챔프>는 위의 일들로 연쇄적인 영향을 받아 95년 9월 폐간됐고 대원은 그 이후 98년 6월 창간하여 2002년 11~12월 합본호를 끝으로 폐간된 주니어챔프 이전까지 <팡팡>으로 한동안 비순정 월간만화잡지의 명맥을 이어나갔다[8] . 사족으로, 육영재단은 1995년 7월 월간 순정만화잡지 마인을 창간했지만 화이트(95년 6월 창간-2001년 3월 폐간), 밍크(95년 8월 창간)와의 경쟁에서 밀리자 96년 봄 폐간시켰다[9] . 그 밖에 CLAMP의 X를 현지화하여 단행본으로 정발하기도 했으나 폐간되면서 3권에서 절판되었다.
1. 개요
육영재단이 1982년부터 1996년까지 발행한 만화잡지. 참고로, 발간 당시 육영재단의 이사장은 박근혜 전 대한민국 대통령이었다.
오랜기간 동안 명맥이 끊겨있던[1] 만화잡지가 이 시기부터 다시 발행되었으며 창간때부터 90년대에 이르기까지 상당수 유명작가들이 보물섬에 만화를 연재하였기 때문에 한국만화사에 있어서 큰 영향을 끼쳤다. 원래 육영재단이 발간한 어린이 교양잡지 어깨동무의 별책부록이었으나, 본책보다 만화만으로 채워진 부록의 인기가 높자 만화잡지로 단독발행하게 된다. 만화만으로 채워진 잡지는 1960년대에 사라지고 그 이후로는 대개 어린이 대상의 교양성 기사를 싣는 잡지에 보너스로 만화를 몇개 끼워서 연재하던 형식이었으나 보물섬은 잡지내용을 오직 만화만으로 채우는 당시로는 파격적인 시도를 했고 그 결과는 어린이들의 열광적인 지지. 기존의 어깨동무, 소년중앙, 새소년 등의 어린이 잡지와 넘사벽으로 차이를 벌리며 엄청난 인기를 구가한다. 보물섬의 엄청난 인기에 자극받은 기존 어린이 잡지도 잡지에서 만화의 비중을 대폭 늘렸지만 결국 보물섬의 아성을 넘어서지는 못했다.
본래 교양지였던 소년중앙은 보물섬처럼 만화잡지로 전향하였다가 다시 본 책은 교양을 지향하고, 별도로 만화만을 수록한 별책을 부록으로 주었는데 그 부록만으로도 보물섬의 두께에 육박할 지경이었다. 문자 그대로 배보다 배꼽이 컸던 상황. 부록으로 주는 만화책에는 따로 이름을 붙였는데, 소년중앙의 만화부록은 "만화홈런왕"이었다. 그러나 이후 만화가 모두 없어지고 초기의 교양지로 바뀌었다가 1994년 9월호를 끝으로 하이틴, 영레이디와 함께 폐간되었다.[2]
보물섬의 지존자리는 이후 주간 만화잡지 아이큐 점프가 창간될 때까지 계속 이어지게 되었다.
1980년대 중후반 전성기 때 이 잡지에서 연재된 인기 만화 몇 개가 본격적인 국산 TV애니메이션 제작과 맞 물려 애니화되기도 했다.(대표적으로 아기공룡 둘리, 달려라 하니, 펭킹 라이킹 등). 월간지라서 그런가 책이 두꺼운 것이 특징. 500페이지가 넘었으며 종이 질이 그렇게 좋았던 것도 아니라서, 충분히 목침에 비견할만한[3] 두께가 된다. 장르는 상당히 다양해서 명랑만화, 학습만화, 소년만화, 순정만화를 가리지 않고 거의 뭐든지 연재되었다. SF만화를 꽤 많이 연재했던 것도 특징. 다만 지금 와서는 보물섬에 연재되었던 만화는 아기공룡 둘리, 맹꽁이 서당, 달려라 하니, 꾸러기와 맹자 정도를 제외하면 정보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
더불어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90년 초반에 비디오 애니메이션 대여시장에도 진출했던 것이다. 보물섬 비디오란 제목으로 마물헌터 요코(금문영상에서 낸 것 말고 다른 회를 출시했다. 제목이 댕기....(요코 성우는 최수민)이나 란마 1/2 극장판을 더빙하여 출시하기도 했다.
90년대 일본만화가 정식 수입이 된 이후에도 국산 만화로 버텨왔지만 1980년대 후반에 만화잡지 창간붐이 불며 아이큐 점프와 소년 챔프 같은 주간 만화잡지가 수십만부에 달하는 엄청난 판매부수를 자랑하게 되었고, 순정만화도 르네상스를 시작으로 여러 잡지들이 창간되기 시작하면서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있었던 보물섬은 독자층 이탈로 판매부수가 감소하게 되었다. 물론 육영재단에서 댕기를 창간해서 꽤나 오래 가기는 했다만 보물섬 자체에는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다. 두 잡지에서 1992년 8월 자매지로 <월간 코믹 점프>(93년 3월 '월간 아이큐점프'로 제호명 변경-95년 3월 폐간) <월간 챔프>(95년 9월 폐간)를 창간한 데 이어 육영재단에서 1992년 11월 25일 창간되어 10일과 25일에 발행되던 격주간 만화잡지 <Next>가 1993년 2월 10일자로 폐간되자 같은 달 23일자부터 격주간으로 바뀌었는데 9월까지는 8일과 23일에 발행했으며 10월부터 다음 해인 1994년 7월까지 10일과 25일에 발행했는데 큰 효과는 없었고, 1994년 8월 월간지로 환원하는 동시에 제호명도 '빅보물섬'으로 바뀌었으며 보물섬에 연재되는 만화들의 수준도 점점 떨어져가는 중에(김성모 씨가 럭키짱의 파일럿판에 해당하는 '그레이트 캡장'을 연재하기도 했다. 그 뒤 럭키짱을 닥터 K라는 제목으로 연재했으나, "1부 끝"이라는 이름으로 연재 중단.) 결국 1995년 1월 창간된 팡팡에 밀리자 1996년 9월 폐간되었다. 폐간되기 직전에 가선 결국 일본 만화도 어느정도 연재가 되었다. (문제는 여기에서 연재된 만화가 상당히 수위가 높은 만화였던 모모이로 사바스[4] 였다)
하지만, <보물섬>이 월간지로 환원한 동시에 제호명을 변경하면서[5] 위기에 처한 건 국산만화와 일본만화를 동시에 실어 온 <월간 아이큐점프>[6] 와 <월간 챔프>였는데 이들 중 <월간 아이큐점프>는 라이벌 잡지인 <월간 챔프>를 만든 대원에서 또다른 비순정 월간만화잡지 <팡팡>을 창간(95년 1월)하여 입지가 좁아지자 95년 3월 폐간되었다[7] .
아울러, <월간 챔프>는 위의 일들로 연쇄적인 영향을 받아 95년 9월 폐간됐고 대원은 그 이후 98년 6월 창간하여 2002년 11~12월 합본호를 끝으로 폐간된 주니어챔프 이전까지 <팡팡>으로 한동안 비순정 월간만화잡지의 명맥을 이어나갔다[8] . 사족으로, 육영재단은 1995년 7월 월간 순정만화잡지 마인을 창간했지만 화이트(95년 6월 창간-2001년 3월 폐간), 밍크(95년 8월 창간)와의 경쟁에서 밀리자 96년 봄 폐간시켰다[9] . 그 밖에 CLAMP의 X를 현지화하여 단행본으로 정발하기도 했으나 폐간되면서 3권에서 절판되었다.
2. 연재작
- 고교 외인부대 - 이현세의 야구만화. “공포의 외인구단”의 프로토타입이라 할 작품으로, 한 교사/야구 감독이 자신이 부임한 고등학교에서 문제아들만 모아서 야구팀을 꾸린다는 내용이다.
- 곤충소년 - 김동화
- 공포 환타지
- 검객스카라무슈 - 만화가 이현세가 야구 만화만 그리다가 보물섬 창간 기획으로 그린 만화. 프랑스 혁명을 배경으로 귀족인 형과 시민의 편인 동생의 갈등을 그렸다. 결말은 동생이 죽는다. 이 당시 이현세의 만화는 결국 주인공이 사망했던 듯...
- 괴짜 파이터
- 그건 말야 ...!
- 그레이트 캡장
- 꾸러기와 맹자
- 나간다! 용호취 - 소림사의 바람과 함께 장태산이 연재한 작품이다.
- 나의 라임오렌지나무 만화판 - 만화가 이희재가 원작판권을 따지 않은 상태에서 연재했다.
- 내 사랑 깨몽 - 이보배
- 녹색의 기사 - 황미나 - 왕자 지그프리드와 그이 의적 친구들이 왕자의 잃어버린 신분을 찾기위해 달의 여신을 만나려 여행을 하는 이야기
- 다이아몬드 하니 - 이진주
- 달려라 하니 - 이진주
- 대륙전사 아파치
- 도리도리 도리깨
- 땡땡의 모험 - 육영재단 이사장이었던 박근혜가 땡땡주의자여서 연재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비슷한 일화로 정수장학회에서 지분이 어느정도 있는 MBC에서도 땡땡의 모험이 방영된 적이 있다.
- 도미 이야기
- 맹꽁이 서당 - 윤승운
- 모모이로 사바스 - 연재명은 '고스트 보디가드'.
- 바람개비
- 브라보 탁박사
- 빵야빵야 - 김철호
- 사나이 오토방기
- 소년 로보캅
- 소림사의 바람 - 만화계의 거장 장태산이 연재한 작품이다.
- 수리수리 마구단 - 본래 1982년에 나왔던 만화를 10년쯤 뒤 보물섬에 다시 연재한 것. 내용 변경은 없었다.
- 슈퍼스타
- 신한국 황대장 - 김진태
- 아기공룡 둘리 - 김수정
- 아빠 우리아빠
- IQ 300 - 단행본으로 '성난 유리턱' 10권을 발행하였다.
- 악동이
- 야수의 전설
- 요정 핑크
- 울퉁불퉁 탐정 체스터
- 왕고집통 - 단행본 발행하지 않음.
- 원시소년 토시 - 최신오
- 이블자블 대소동
- 철갑마왕
- 초능력 큐 - 역시 단행본 발행하지 않음.
- 킹 라이브 맨
- 태백권법 - 황미나: 유파 <태백권법>의 전승자를 어머니로 둔 용이-솔이 오누이의 일상물.
- 태양의 아들
- 특파원 맘보 - 손상헌: <뒤죽박죽 신문사>라는 가상의 신문사에서 특파원으로 일하는 맘보를 주인공으로 한 명랑 개그만화.
- 파라다이스 - 황미나
- 펭킹 시리즈 - 김영하
- 고봉이와 페페
- 펭킹 동자
- 펭킹 라이킹
- 펭킹 몽킹
- 맹물 & 펭킹
- 펭킹 타이킹
- 핑핑 참깨
- 태풍의 다이아몬드
- 호기심 세계
- 흡혈귀는 왜 배고픈가
- LA 떠돌이
[1] 보물섬을 최초의 만화잡지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은데 1940~50년대 이미 만화잡지가 있었다. 이후 모두 폐간되어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졌기 때문에 생긴 오해. 만화잡지 문서 참조.[2] 어깨동무나 학생과학은 아예 장르를 달리하는 교양지로서의 길을 시도한다.[3] [image]
보물섬은 그 어떤 잡지보다 두꺼웠다.[4] 보물섬 연재 당시 이름은 '고스트 보디가드'였다. 95년 1월호부터 연재.[5] '모모이로 사바스'와 더불어, '할렘 비트'(94년부터 주간 소년 매거진 연재)(95년 7월호부터)를 수입하여 연재하는 등 개방적인 분위기로 변경됐고 96년 1월호부터 <보물섬>으로 제호명이 환원됐다[6] 서울문화사 발간. 92년 8월 '월간 코믹 점프'로 창간하여 93년 3월 제호명 변경.[7] <월간 아이큐점프>가 폐간된 뒤 이 잡지의 주축 작가와 기자들을 주축으로 격주간 <샤크>가 창간되었으나 13호 만에 조기 폐간되었으며 그 탓인지 <월간 아이큐점프>가 서울문화사의 유일한 비순정 월간만화잡지가 됐다[8] 그 탓인지 이후 참여한 시공사는 대원,서울문화사와 달리 비순정 월간만화잡지를 발행하지 않았다. [9] 그 후 격주간 순정만화잡지 댕기와 보물섬을 잇달아 폐간시킴으로써 최종적으로 만화사업을 접었다
보물섬은 그 어떤 잡지보다 두꺼웠다.[4] 보물섬 연재 당시 이름은 '고스트 보디가드'였다. 95년 1월호부터 연재.[5] '모모이로 사바스'와 더불어, '할렘 비트'(94년부터 주간 소년 매거진 연재)(95년 7월호부터)를 수입하여 연재하는 등 개방적인 분위기로 변경됐고 96년 1월호부터 <보물섬>으로 제호명이 환원됐다[6] 서울문화사 발간. 92년 8월 '월간 코믹 점프'로 창간하여 93년 3월 제호명 변경.[7] <월간 아이큐점프>가 폐간된 뒤 이 잡지의 주축 작가와 기자들을 주축으로 격주간 <샤크>가 창간되었으나 13호 만에 조기 폐간되었으며 그 탓인지 <월간 아이큐점프>가 서울문화사의 유일한 비순정 월간만화잡지가 됐다[8] 그 탓인지 이후 참여한 시공사는 대원,서울문화사와 달리 비순정 월간만화잡지를 발행하지 않았다. [9] 그 후 격주간 순정만화잡지 댕기와 보물섬을 잇달아 폐간시킴으로써 최종적으로 만화사업을 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