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배

 


[image]
'''이름'''
이근배(李根培)
'''국적'''
대한민국 [image]
'''출생'''
1940년 3월 1일 (84세)
'''출생지'''
충청남도 당진시 송산면 삼월리#
'''첫 시집'''
사랑을 연주하는 꽃나무 (1960)
'''등단'''
경향신문 신춘문예 「묘비명」, 서울신문 신춘문예 「벽」, 조선일보 신춘문예 「압록강」 당선 (1961)
'''최근 작품'''
추사를 훔치다 (2013)
'''제15회 만해대상 문학부문 수상'''
존 롤스턴 솔, 정진규
(2010)

'''이근배, 모옌
(2011)'''

수아드 알 사바, 김재홍
(2012)
'''제27회 정지용문학상 수상 「사랑 세 쪽」 '''
나태주
(2014)

'''이근배
(2015)'''

신달자
(2016)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수상'''

시조 작단의 좌장

살다가 보면

넘어지지 않을 곳에서

넘어질 때가 있다

사랑을 말하지 않을 곳에서

사랑을 말할 때가 있다

눈물을 보이지 않을 곳에서

눈물을 보일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기 위해서

떠나보낼 때가 있다

떠나보내지 않을 것을

떠나보내고

어둠 속에 갇혀

짐승스런 시간을

살 때가 있다

살다가 보면

- 이근배의 , '살다가 보면' -

1. 소개
2. 수상
3. 경력
4. 시집
5. 벼루 수집가
6. 관련 문서


1. 소개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시인, 시조시인, 현대시인. 1940년 3월 1일, 충청남도 송산면에서 출생[1]. 당진정보고등학교, 서라벌예술대학 문예창작과[2]를 졸업하였다.
시조 작단의 좌장으로 평가받고 있다.
중학교 2학년 무렵부터 아버지가 보던 일본책 여백에다 펜촉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고등학교 1학년 때, 동아일보에 프랑스의 18세 소설가 프랑수아즈 사강이 「슬픔이여 안녕」이라는 소설로 세계적 베스트셀러가 되고 있다는 기사를 읽고 자신이 먼저 그런 소설을 써야 했다는 생각에 공부를 더 해보고 싶어 무작정 서울로 도망을 갔다는 일화가 있다.
집안에서는 공주사대(현 공주대학교 사범대학)를 가길 원했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학교 선생이나 공무원이면 당시 어른들이 바라는 최고의 직업이었다. 그러나 이근배는 선생이 되긴 싫었고 그는 신문에서 서라벌예술대학교 문예창작과에서 장학생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보고 자기가 장학생 선발과정에서 장학생이 되면 보내달라고 그의 조부에게 간청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장학생 선발과정에서 을류 장학생[3]이 되었고 서라벌예대 문창과 58학번으로 진학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서라벌예대 재학시절 김동리에게서 소설을, 서정주에게서 시를 사사했다. 1960년 첫 시집 <사랑을 연주하는 꽃나무>를 서정주 서문으로 출간한 이후에 1961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시조 <묘비명>이 당선된 것을 시작으로 같은 해에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조 <벽>과 조선일보 신춘문예 시조 <압록강>이 당선되었다. 이근배 시인의 서라벌예대 재학 시절 시 창작 강의를 하던 박목월 시인은 서울신문 신춘문예 시상식 장소에서 “오 바로 너였구나. 어쩐지 시어가 참 곱고 신선해서 네가 아닌가 했었다.”라며 칭찬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1962년에는 동아일보 신춘문예 시조 <보신각종>이 당선되었고, 조선일보 신춘문예 동시 <달맞이꽃>가 당선되었으며 1964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 <북위선>기 당선됨으로써 문단 최초 신춘문예 5관왕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2. 수상


1983년
가람시조문학상
1983년
가람문학상
1987년
중앙시조대상
1987년
한국문화작가상
1997년
육당문화상
1999년
월하문학상
2000년
편운문학상
2002년
현대불교문학상
2007년
제5회 유심작품상 시조부문
2010년
제9회 고산문학상 시조부문
2011년
제 15회 만해대상 문학부문
2011년
은관문화훈장
2014년
제46회 한국시인협회상
2014년
제4호 이설주문학상
2015년
제27회 정지용문학상
2017년
제7회 한국시조대상
2017년
제4회 심훈문학대상

3. 경력


1972년
한국시인협회 상임위원
1972년
한국문인협회 이사
1972년
한국시조시인협회 부회장
1973년 ~ 1975년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위원회 위원장
1983년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994년 ~ 1996년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장
1997년 ~ 2009년
지용회 회장
2002년 ~ 2003년
한국시인협회 회장
2003년 ~
만해시인학교 교장
2008년 ~
대한민국예술원회원
2015년 ~ 2017년
대한민국예술원 부회장
2019년 ~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4. 시집


<사랑을 연주하는 꽃나무> (1960)
<노래여 노래여> (1981)
<동해 바다 속의 돌거북이 하는 말> (1982)
<한강> (1985)
<사람들이 새가 되고 싶은 까닭을 안다> (2004)
<추사를 훔치다> (2013)

5. 벼루 수집가


[image]
시, 시조에서의 문학적 성취 외에 문화 예술계에서 자타가 인정하는 명품 벼루 컬렉터로도 유명하다.
유학자인 할아버지와 면암 최익현의 수제자였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릴 적부터 붓글씨를 익혀 왔는데, 1973년 창덕궁에서 문화재관리국 주최로 열린 벼루전시회가 계기가 되어 40년 넘는 세월동안 벼루를 수집하였다. 한국 벼루 500여 점, 중국 벼루 500여 점, 합쳐서 총 1000여 점에 달하는 벼루를 갖고 있다. 당(통일왕조), 북송, 명나라, 청나라대 벼루와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 등 황제가 사용하던 벼루, 조맹부 주이존 유용 옹방강 완원 이홍장 등 명사들이 사용했다는 기록이 새겨진 벼루를 여럿 갖고 있다고 한다.
벼루에 대한 애정 때문에 스스로를 연벽묵치((硯癖墨痴)[4]라고 평하기도 하였고 벼루에 관한 연작시만 무려 80편 정도를 썼다.

6. 관련 문서


[1] 본래 1939년생이나, 호적에 이와 같이 정리되어 있다.[2] 중앙대 문예창작과의 전신. 과거 서울대 문리대와 더불어 ‘한국 문학의 사관학교’라고 불릴 정도로 막강 문맥을 자랑한다.[3] 갑류는 전액 장학생이고 을류 장학생은 반액만 내주는 장학생.[4] 문방사우에 빠지는 어리석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