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러시아어 : '''Оди́н день Ива́на Дени́совича'''
영어 : '''One Day in the Life of Ivan Denisovich'''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소설.
1951년 1월 1일[1] 주인공 슈호프가 기상 신호를 듣고 잠에서 깨어 강제 노동 후 취침에 들어가기 까지 꼬박 하루 동안 그와 주변 인물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통해 당시 소련 굴라그의 생활상을 묘사하고 있다. 이걸 보면 스탈린 치하의 소련이 얼마나 막장이었는지 알 수 있다.
수용자들은 빈대 투성이인 낡은 침구를 쓰고, 죄수복도 낡아 빠진 옷감으로 만들어져 추위를 막기에 역부족이다. 끼니라고는 취사반원들이 자기 몫으로 실컷 빼돌려 겨우 몇 숟가락 밖에 안되는 죽인 까샤(гречневая каша)[2] , 썩은 생선과 야채로 멀겋게 끓인 수프인 발란다(баланда),[3] 제대로 굽지 않은 딱딱한 검은빵인 흘롑(хлеб)[4] 과 썩어서 곰팡내가 진동해 아무도 마시지 않는 최하급 차가 전부다. 그나마 5일중 하루는 절식일로 지정해 이것조차 최저한의 보장된 양만을 배급하기 때문에, 그 때마다 죄수들은 주린 배를 움켜쥐며 버텨야 한다.
교도관들은 죄수를 거의 인간 취급하지 않고, 좀 걸리적거리거나 뭔가 수상쩍어 보이면 채찍을 휘두르는 악질 교도관도 나온다. 이들은 각 작업반 별로 한 명씩 일종의 프락치 역할을 하는 죄수를 골라 수상한 동료들을 밀고하게 만든다. 죄수들이 몸이 아파 의무실에서 가면 의무관은 진찰은 커녕 그저 애매한 소리만 늘어놓고, 까딱하면 의무실에 갔다는 것만 가지고도 작업 태만으로 독방인 부르에 수용되기 일쑤다.
노동 환경도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데, 소설만 해도 주인공이 소속된 작업반은 본래 바람막이, 난로조차 없는 '사회주의 생활 단지'라는 주택 단지를 건설하는 공사에 투입될 예정이었으나, 반장과 부반장이 교도관들을 뇌물로 구슬러서 그나마 바람도 막을 수 있고 잠시동안 몸을 녹일 난로도 있는, 크게 간섭받을 일 없는 곳에서 벽돌 쌓기 작업을 하는 것이 '행운'으로 여겨질 정도의 노동 환경을 보여준다.[5] 이를 위해 어떤 다른 작업반이 사회주의 생활 단지로 간다는 묘사가 있듯, 그런 가혹한 노동환경은 수용소내 누구에게나 주어질 수 있었다.
1월의 굴라그가 얼마나 추운지에 대한 묘사도 곳곳에서 나온다. 점심시간이 되어 그나마 기온이 올랐을 때 주인공인 슈호프가 "따뜻해졌군. '''영하 18도쯤 될 걸.''' 벽돌 쌓기에 좋은 날씨야."라고 중얼거릴 정도니 이곳이 얼마나 추운 곳인지 알 수 있다. 그래도 이곳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라 지나치게 온도가 내려가면 죄수들의 강제 노동 역시 중단되는데, 그 기준은 '''영하 41도'''. 그 때문에 죄수들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식당이나 건물 안 등의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들어가 난로의 불을 쬐려고 하고, 작업장에서 나무조각을, 심지어는 멀쩡한 자재도 바람막이와 땔감용으로 사용하는 등 보온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작중에서 묘사된 수준의 혹한일 경우 보온은 그야말로 생존에 직결된 문제일 테니 당연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수용소의 열악한 환경과 함께 왜 죄수들이 굴라그에 들어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서술도 있어서, 당시 소련 정권이 인민들을 얼마나 개차반 취급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을 대한민국 군대에서 읽어보면 주인공이 너무너무 공감된다.''' 사실 계급이 확고히 나뉘고 어딜 벗어나기 힘든 곳이라면 비슷한 모습이 안 보일래야 안 보일 수 없다. 이 작품이 고전인 이유다.
작중에서 체자리와 부이노프스키가 소련 영화 전함 포템킨에 대해서 토론을 하기도 한다.
한국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슈호프가 다른 작업반에 있는 라트비아인에게서 담배를 살 때 같은 반 죄수들이 한국에서 발발한 전쟁을 주제로 떠들고 있었다.
1970년에 영국과 노르웨이의 합작으로 영화화 되었다. 대사들을 비롯해 본작의 재현을 충실히 따르고 있지만 연기가 영 별로고 분위기는 책보다 훨씬 더 어둡고 적막하다.
영어 : '''One Day in the Life of Ivan Denisovich'''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소설.
1. 내용
1951년 1월 1일[1] 주인공 슈호프가 기상 신호를 듣고 잠에서 깨어 강제 노동 후 취침에 들어가기 까지 꼬박 하루 동안 그와 주변 인물들에게 일어난 일들을 통해 당시 소련 굴라그의 생활상을 묘사하고 있다. 이걸 보면 스탈린 치하의 소련이 얼마나 막장이었는지 알 수 있다.
수용자들은 빈대 투성이인 낡은 침구를 쓰고, 죄수복도 낡아 빠진 옷감으로 만들어져 추위를 막기에 역부족이다. 끼니라고는 취사반원들이 자기 몫으로 실컷 빼돌려 겨우 몇 숟가락 밖에 안되는 죽인 까샤(гречневая каша)[2] , 썩은 생선과 야채로 멀겋게 끓인 수프인 발란다(баланда),[3] 제대로 굽지 않은 딱딱한 검은빵인 흘롑(хлеб)[4] 과 썩어서 곰팡내가 진동해 아무도 마시지 않는 최하급 차가 전부다. 그나마 5일중 하루는 절식일로 지정해 이것조차 최저한의 보장된 양만을 배급하기 때문에, 그 때마다 죄수들은 주린 배를 움켜쥐며 버텨야 한다.
교도관들은 죄수를 거의 인간 취급하지 않고, 좀 걸리적거리거나 뭔가 수상쩍어 보이면 채찍을 휘두르는 악질 교도관도 나온다. 이들은 각 작업반 별로 한 명씩 일종의 프락치 역할을 하는 죄수를 골라 수상한 동료들을 밀고하게 만든다. 죄수들이 몸이 아파 의무실에서 가면 의무관은 진찰은 커녕 그저 애매한 소리만 늘어놓고, 까딱하면 의무실에 갔다는 것만 가지고도 작업 태만으로 독방인 부르에 수용되기 일쑤다.
노동 환경도 가혹하기 이를 데 없는데, 소설만 해도 주인공이 소속된 작업반은 본래 바람막이, 난로조차 없는 '사회주의 생활 단지'라는 주택 단지를 건설하는 공사에 투입될 예정이었으나, 반장과 부반장이 교도관들을 뇌물로 구슬러서 그나마 바람도 막을 수 있고 잠시동안 몸을 녹일 난로도 있는, 크게 간섭받을 일 없는 곳에서 벽돌 쌓기 작업을 하는 것이 '행운'으로 여겨질 정도의 노동 환경을 보여준다.[5] 이를 위해 어떤 다른 작업반이 사회주의 생활 단지로 간다는 묘사가 있듯, 그런 가혹한 노동환경은 수용소내 누구에게나 주어질 수 있었다.
1월의 굴라그가 얼마나 추운지에 대한 묘사도 곳곳에서 나온다. 점심시간이 되어 그나마 기온이 올랐을 때 주인공인 슈호프가 "따뜻해졌군. '''영하 18도쯤 될 걸.''' 벽돌 쌓기에 좋은 날씨야."라고 중얼거릴 정도니 이곳이 얼마나 추운 곳인지 알 수 있다. 그래도 이곳 역시 사람이 사는 곳이라 지나치게 온도가 내려가면 죄수들의 강제 노동 역시 중단되는데, 그 기준은 '''영하 41도'''. 그 때문에 죄수들은 기회가 생길 때마다 식당이나 건물 안 등의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으로 들어가 난로의 불을 쬐려고 하고, 작업장에서 나무조각을, 심지어는 멀쩡한 자재도 바람막이와 땔감용으로 사용하는 등 보온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인다. 작중에서 묘사된 수준의 혹한일 경우 보온은 그야말로 생존에 직결된 문제일 테니 당연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수용소의 열악한 환경과 함께 왜 죄수들이 굴라그에 들어오게 되었는지에 대한 서술도 있어서, 당시 소련 정권이 인민들을 얼마나 개차반 취급했는지 알 수 있다.
- 슈호프는 그저 독소전쟁 중 전선에서 독일군에게 겨우 이틀 동안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해 복귀했는데, 상관이 적에게 회유된 스파이라고 몰아붙이는 바람에 졸지에 국가 반역죄를 저지른 죄수가 되었다. 처음에는 우스치-이지마라는 대규모 굴라그에 수용되었다가 영양실조로 죽을 뻔하고, 거기서 시베리아의 오지에 있는 이 이야기의 주 무대인 좀 더 작은 굴라그로 이감되어 수형 생활을 하고 있다. 주인공인 슈호프는 식량 소포를 받지 못해 죄수 중에서도 가난한 축에 속하지만 나름대로의 기술과 수완을 발휘하여 이득을 취하는 모습을 보인다. 슈호프는 작업장에서도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배치되는 벽돌 쌓는 일을 맡고 있고 오전에는 작업장의 난로에 달리는 굴뚝을 만들기도 한다. 거기다 알루미늄 전선을 녹여 자신이 쓸 숟가락을 직접 주조해 내기도 하고 작은 톱 조각을 주워다가 돌멩이에 갈아서 작은 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술까지 가지고 있다. 슈호프는 자신이 가진 이런 기술들을 이용해 부업을 하여 돈을 벌어 담배를 사는 등의 부수적인 이득을 얻는다. 다만 이러한 기술들을 가지고 있는 바람에 큰 위기에 빠지기도 했는데, 만약 신체 검사 때 톱 조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들켰다면 슈호프의 이날 하루는 그야말로 운수 좋은 날이 되어 버렸을 것이다.
- 슈호프 외에도 같은 작업반의 동료 죄수들인 라트비아 출신인 킬리가스와 나치 독일의 악명 높은 강제수용소였던 부헨발트에서 고문을 당하고 한 쪽 귀의 청력을 잃는 등의 고초를 겪다가 겨우 탈출한 세니카 클렙신 등도 마찬가지로 적군의 포로가 됐다가 탈출해 원대에 복귀했는데 상관이 인정 안 하고 스파이로 낙인찍어 굴라그로 끌려온 인물들이다. 이들은 주어진 형기가 끝나가더라도 계속 같은 죄목으로 추가 형기가 더해지기 때문에, 석방이라는 단어도 믿지 못하는 신세다.
- 주인공이 속해 있는 작업반인 제104반의 반장인 안드레이 프로코피에비치 추린은 단지 아버지가 부농이었다는 사실 만으로 성실하게 근무하던 군대에서 쫓겨나 죄수가 되었다. 더 막장인 것은 추린을 추방했던 군 장교들 역시 대숙청 때 총살당했다는 것이다. 추린이 군대에서 쫓겨나 집으로 갈 때 편의를 봐줬던 기차의 여대생들도 나중에 숙청되어 굴라그에서 일했다고 한다.[6]
- 작업반 동료인 부이놉스키는 해군 중령이었다가 독소전쟁 중 영국 해군에 파견 근무를 나갔는데, 이 때 알게 된 영국 해군 제독이 전후 자신에게 보내온 기념품 때문에 수용소로 끌려왔다고 서술되고 있다. 비록 죄수 신세가 되었지만 기백은 여전하며, 슈호프가 '군대 시절의 습관이 남아있다'고 평할 정도로 일을 명령대로 성실히 하는데, 악질 교도관에게 개겼다가 말미에 독방 신세를 지게 된다.[7]
- 원래 관료 출신(그것도 전용 관용차까지 있을 정도의 고위 관료였다고...)인 페추코프는 굴라그에서 남들이 피우다 버린 꽁초를 찾으러 다니다가 갈굼 당하거나 얻어맞고 오는 등 상당히 추잡한 인물로 묘사되고 있다.
- 알료시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알료샤는 독실한 침례교도로, 어떻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성경을 밀반입해 막사에 짱박아두고 틈날 때마다 읽고 있다.
- 우크라이나 출신의 부반장 파블로[8] 는 추린만큼의 카리스마는 없지만, 추린이 없을 때 대신 교도관들과 협상해 작업량을 늘리고 추린의 식사 셔틀도 대신 해주는 등[9] 나름대로 굴라그에서 강한 생활력과 수완을 보여준다.
- 물론 여기서도 이런저런 빽으로 비교적 편한 수감 생활을 누리는 인물도 있다. 영화 감독인 체자리 마르코비치는 자신의 첫 영화가 개봉도 하기 전에 높으신 분들에게 알 수 없는 이유로 찍혀서 들어왔는데, 연줄이 있어서 매달 받고 있는 식량 소포를 교도관들과 작업반장에게 뇌물로 주면서 따뜻한 사무실에서 서기로 일하는 땡보로 그려진다. 체자리 마르코비치는 당시 부유했던 지식인들의 허영을 보여주다시피 하는데, 자신은 감옥에 있으나 마치 다른 자들을 무의식적으로 무시하는 모습을 보이며, 자신과 급이 맞다고 생각되는 사람[10] 과만 어울리는 모습을 보인다. 그러면서 실생활에 유용한 주머니칼, 혹은 재빠른 소포 수령과 소포 보관은 슈호프의 도움을 받아야 해결하는 무능한 모습을 보인다. 그래도 체자리 마르코비치는 자신의 특기와 보직을 이용하여 자기가 속한 작업반의 작업량을 늘려서 식사 배급을 늘리는 등, 엘리트적인 면모 외에는 반에 도움을 주는 선한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체자리는 데니소비치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게 되는 부분이 나오는데, 체자리가 담배를 피우면 주변에 다른 수감자들이 몰려들어 "체자리, 마지막 한모금은 남겨주게"라고 말을 하는데 체자리는 제일 먼저 데니소비치에게 준다.
- 체자리보다도 하는 일이 없고 그냥 교도관실에서 밀고를 가장한 잡담이나 나누고 돌아오는 작업반 내 프락치인 판첼레예프는 그야말로 모두에게 경원시되는 천하의 개쌍놈처럼 취급받고 그와 관련된 이야기도 거의 안 나온다.
- 그 외에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받은 소포의 물품들을 짱박아 뒀다가 동료들에게 밀매해 호강하는 다른 작업반의 라트비아인 죄수, 간첩 누명을 쓰고 들어온 게 아니라 진짜 간첩질을 하다가 잡혀온[11] 뒤 작업 현장에서 몰래 짱박혀 자다가 잡혀 독방 신세를 지는 몰도바 출신 죄수의 에피소드도 잠깐 나온다.
그런데... '''이 작품을 대한민국 군대에서 읽어보면 주인공이 너무너무 공감된다.''' 사실 계급이 확고히 나뉘고 어딜 벗어나기 힘든 곳이라면 비슷한 모습이 안 보일래야 안 보일 수 없다. 이 작품이 고전인 이유다.
2. 여담
작중에서 체자리와 부이노프스키가 소련 영화 전함 포템킨에 대해서 토론을 하기도 한다.
한국에 대한 이야기도 나온다. 슈호프가 다른 작업반에 있는 라트비아인에게서 담배를 살 때 같은 반 죄수들이 한국에서 발발한 전쟁을 주제로 떠들고 있었다.
1970년에 영국과 노르웨이의 합작으로 영화화 되었다. 대사들을 비롯해 본작의 재현을 충실히 따르고 있지만 연기가 영 별로고 분위기는 책보다 훨씬 더 어둡고 적막하다.
[1] 본문 중에 "오늘부터 새해가, 곧 1951년이 시작된다."라는 구절이 있다.[2] 원래는 곡물 가루로 끓여야 하지만, 무슨 지푸라기 같은 것을 썰어넣은 누런 반죽 비슷한 게 나온다고 한다.[3] 수프의 재료는 사정에 따라 달라진다.저장해둔 채소로 죽을 쒀 배급하다가 6월이 되면 채소가 모두 바닥나서 곡물을 사용하고, 7월엔 곡물마저 바닥나 쐐기풀로 수프를 만들어 배급한다.[4] 그런 저질 빵만을 일컫는 단어가 아니라, 러시아어로 빵이라는 단어 자체가 흘롑이다.[5] 사회주의 생활단지는 허허벌판에서 하는 첫공사이다. 즉, 이곳에 가면 허허벌판에서 자신들의 탈주를 막을 철조망부터 설치하고 집짓기에 들어가기 때문에 지어지는 주택들이 어느정도 형태를 갖추어 바람막이및 난로 설치가 가능해질 때까지 대략 한달 정도는 영하 20~30도의 허허벌판에서 바람까지 맞으며 일해야 하는 환경이다.[6] 단, 이때의 인연 때문에 추린이 땡보직으로 전출시켜 줬다.[7] 독방에서 죽거나 죽기 직전까지 갈 운명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다만 이 인물이 모델로 삼은 실존 인물은 솔제니친이 실제로 수용소 생활을 하며 만난 해군 장교였고 스탈린 사후 복권되어 석방되었다.[8] 다른 서부 우크라이나인들처럼 수용소에 끌려와서도 상대방에게 깍듯이 존칭을 쓰는 존댓말 캐릭터로 묘사된다.[9] 작중 화자인 슈호프의 독백에 따르면, 굴라그 식당에서 음식을 밖으로 반출하는 것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걸리면 식사 압수는 물론이고 명령 불복종으로 독방에 수감되는 등 가중처벌 당하는데, 이 셔틀을 해준다는 것은 그만큼 위험 부담을 지고 있는 중요 인물이라는 것을 암시한다.[10] 이를테면 해군 함장처럼 높은 계급에 있던 사람이나 모스크바 출신 지식인[11] 다만, 이것이 확정적인 내용이 아니라 다른 죄수들이 그를 욕하는 장면에서 떠도는 소문으로만 언급될 뿐이다. 그 녀석은 억울하게 간첩 누명을 쓴 게 아니라, 진짜 간첩이라던데~ 이런 식으로.[12] 전에 있었던 수용소와 현재 있는 수용소의 생활을 비교하면서 "여기가 차라리 낫다. 여긴 밤 늦게까지 죄수를 부려먹지 않고 작업 할당량을 다했던 못했던 수용소로 돌려보내고 식량도 최저 100그램은 보장해주니 이만 하면 버틸 수 있다. 수용소 이름-현재의 수용소는 주로 국가 반역죄를 선고받은 죄수들이 많은 특수범 수용소다-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라는 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