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철(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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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相哲
1948년 2월 20일~
1. 개요
2. 생애
3. 비판
3.1. 화웨이 장비 도입 강행
3.2. 후배 임원에 대한 갑질


1. 개요


대한민국의 기업인으로, 경력의 대부분을 통신회사에서 쌓은 것이 특징이다. 가장 최근에 역임한 지위는 화웨이 총괄고문[1]이다.

2. 생애


1948년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났다. 경기고등학교,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기공학과, 미국 버지니아 폴리테크닉 주립대학교 대학원 전기공학 석사, 듀크 대학교 대학원 공학 박사 과정을 졸업하였다.
박사 취득 후 NASA 연구원으로 일하다 1990년대에 귀국 후 한국통신에 입사했고, 1996년 한국통신프리텔 대표이사 사장, 2000년 한국통신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2000년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을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한나라당 임태희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02년 7월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정보통신부 장관에 임명되었고, 정권 말기까지 장관직을 수행했다.
2005년부터 2008년까지 광운대학교 총장을 맡았고, 2010년 1월 통합LG텔레콤 대표이사 부회장으로 임명되었다. 부회장 재임시절 LG U+로 사명을 바꾸고 LTE에 집중 투자하여 망해가던 LG U+를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았으나, 후술할 화웨이 장비 도입으로 큰 비판을 받았다.
2015년 11월 부회장직을 퇴임 후 2017년 3월까지 LG U+ 상임고문을 맡았고, 2017년 5월 화웨이에 영입되어 총괄고문이 되었다. 2018년 7월 화웨이 고문직을 사임하였다고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화웨이 스폰" 5G관련 리더스 서밋 토론 세션에 참가 하는 등 여전히 활발할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3. 비판


모두 LG U+ 부회장 재임 시절 행적에 관한 비판이다.

3.1. 화웨이 장비 도입 강행


LG U+ 대표이사일 때 LTE 통신망에 화웨이 장비를 도입하였다. 화웨이는 중국 인민해방군 퇴역 장교가 설립한 기업으로 보안과 관련하여 많은 의심을 받고 있으며, 백도어[2] 문제가 발각된 바 있다. 당시 통신업계, 심지어 LG U+ 내부에서도 미심쩍은 중국산 장비를 도입하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는데, 이상철 부회장이 화웨이 장비의 가격 대 성능비가 우수하다고 강력히 주장하여 도입을 관철시켰다. 언론의 보안 우려에 이 부회장은 해외 유명 보안기업에 화웨이 장비의 보안성 시험을 의뢰했다고 밝혔으나, '''그 결과는 밝히지 않았다'''.
특히 LG U+는 당시 '''에릭슨LG의 장비를 뜯어내고''' 화웨이 장비를 설치했는데, 그룹 계열사에게 뒤통수를 맞은 에릭슨LG는 영업실적이 심각하게 악화되어 직원들을 정리해고할 수 밖에 없었다.
여기에 더해 화웨이 장비 설치 지역은 군부대가 많은 서울, 수도권 북부와 강원도인데, 주한미군 주둔지역에는 보안을 이유로 화웨이 장비를 배제한 반면 국군 작전지역에는 화웨이 장비를 거리낌 없이 설치했으며, 병사 수신용 휴대폰을 무상 제공하는 등 모순적인 정책을 폈다.
LG U+에서 퇴사하고 '''한 달만인''' 2017년 5월에 '''화웨이 총괄고문'''이 되어 논란이 일었다. 누가 봐도 LG U+의 화웨이 장비 구입에 대한 보은 인사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LG U+에 있을 때부터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음모론이 도는 등 매우 안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3.2. 후배 임원에 대한 갑질


LG유플러스에서 최연소 상무 타이틀을 달았던 카이스트 출신 임원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는데, 해당 내용은 이렇다.

2012년 4월 방송통신위원회가 국내 IPTV 가입자 500만명 달성을 기념해 A씨에게 동탄산업훈장을 주기로 한 것이다. A씨의 의사와는 전혀 무관하게 방통위가 결정한 일이었다.

새 본부장은 본부 공식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부회장님이 '대표이사에 앞서서 상무직급에 있는 A씨가 훈장을 받는 것이 불쾌하다. 훈장을 취소하고 싶다'는 취지의 말씀을 하셨다'''." 조직이 A씨에게 내리는 사실상의 '사형선고'였다.

A씨는 그 이후 눈에 띄게 말수가 줄었다. 회의를 들어가도 주도를 하지 못했다. 공황장애가 온 거 같다고 했다. 주위 사람에게 "사는 것이 재밌느냐"며 "그동안 회사와 집만 다니고 취미나 다른 일이 20년간 없었다"고 하소연했다.

사내 소문은 빨랐다. A씨는 과거 친했던 동료들이 자신을 멀리하고 등을 돌린다며 배신감을 토로했다. 사내 이메일로 "군중 속의 고독을 느낀다"고 호소하기까지 했다. 돌아오는 메아리는 없었다.

막다른 곳에 몰린 A씨는 목숨을 끊었다.출처

A씨가 자살하던 시기에 LG U+ 부회장이 다름아닌 "이 분"이다.


[1] Chief Advisor[2] 자사 통신장비와 스마트폰을 경유하는 정보를 소유주 동의 없이 중국 내 서버로 전송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