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TF

 

기업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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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식명칭
주식회사 케이티프리텔
영문명칭
KT Freetel Co., Ltd
설립일
1997년 1월 3일
해산일
2009년 6월 1일
주소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 269 (신천동)
업종명
무선 및 위성 통신업
상장여부
상장폐지
기업규모
'''대기업'''
상장시장
코스닥시장 (1999년 ~ 2004년)
유가증권시장 (2004년 ~ 2009년)
종목코드
032390
1. 개요
2. 상세
3. 콩라인 역사
4. 역대 대표이사
5. 역대 슬로건
6. Korea Team Fighting
7. 마케팅
8. 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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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KT의 이동통신 자회사로, 공식 사명은 '케이티프리텔'이었으나 약칭인 'KTF'가 널리 쓰였다.[1][2] CDMA(2G) 서비스를 시작한 초창기 3개 회사 중 하나였다.
010 통합 이전의 국번은 한국통신프리텔은 016, 한국통신엠닷컴(한솔엠닷컴)은 018이었으며, 양사 합병 이후 양 번호는 2012년 1월 3일 KT가 2G 서비스를 종료할 때까지 유지된다.

2. 상세


1996년부터 한국통신이 정보통신부로부터 개인휴대통신(PCS) 사업권을 얻어 '한국통신프리텔(주)'이라는 자회사로 출범시켰으며, 1997년 1월에 정식 설립되어 본사를 서울 서소문동 정안빌딩으로 했다. 그해 8월부터 'PCS 016' 시범서비스를 실시하고 10월에 정식 서비스를 실시했다. 1998년 10월 세계 최단기간인 1년만에 총 가입자 2백만 명을 기록하여 업계 2위를 차지했고, 자체 휴대폰 브랜드 '버디'를 판매했다.[3] 1999년 8월 25일에 브랜드를 'n016'으로 바꾸고 무선인터넷 서비스 '퍼스넷'을 탄생시켰고, 휴대폰 '네온'도 출시했다.[4]
동년 12월부터 코스닥시장에 등록한 뒤 서울 송파구 키노에 'n016 멀티존'을 열었고, 2000년에 10~20대 전용서비스 'Na'를 런칭한 후 서울 로데오거리에 '나지트' 1호점을 여는 한편, 한솔엠닷컴을 인수하면서 SK텔레콤에 이은 업계 2위가 되었으며, 2001년 양사 무선인터넷 서비스를 합병해 '매직엔'을 탄생 후 한국통신엠닷컴과 합병한 뒤 상호를 '(주)케이티프리텔'로 바꾸었다. 2001년 단말기부문을 KTF테크놀로지스로 분사하고 2002년에 세계 최초로 IMT-2000 서비스 'fimm'을 출시한 뒤 국내 최초로 제주 마라도에서 이동전화서비스를 개시했고, 이듬해에 KT아이컴을 합병했다. 심지어 인도네시아 휴대폰 회사인 모바일-8 사와 지분출자 계약을 맺었다. 2004년 한국증권거래소에 주식상장하고 2005년 12월에는 일본 NTT 도코모와 자본제휴를 맺었다.
모기업인 KT가 일찍부터 네스팟 브랜드로 노트북과 PDA를 위한 와이파이 존을 서비스했기 때문에 2000년대 초반 PDA폰이 막 출시될때 SK텔레콤에서 출시된 일반 소비자용 제품들이 Wi-Fi를 제거당한 고자스러운 PDA폰들이었지만[5], KTF용은 Wi-Fi가 멀쩡히 들어가 있어서 환영을 받았다.
KTF의 대주주로는 모회사인 KT 외에 일본NTT 도코모가 있었다. NTT 도코모는 KT와 KTF의 합병 이후로도 KT의 주요 대주주인데, 합병하면서 교환사채를 발행해서 그렇다. 이렇게 합병 이후에도 KT와 NTT가 협력관계에 있기 때문에 위피해제 이후 NTT도코모에서 발매했던 제품들도 수입이 되고 있으며[6], 국내에서 철수했던 노키아의 단말기를 다시 들여온 곳도 KTF.[7]
아직까지도 오래된 건물이라면 벽에 KTF간판이 붙어있는 걸 볼 수 있다. 일체형 간판이 대다수이다. 정작 가보면 오랫동안 빈 사무실이거나 주거공간으로 바뀌어 입주중인 곳이 대다수.

3. 콩라인 역사


2001년 회사통합으로 이동통신 시장에서 2위 자리에 오른 KTF는, 예나 지금이나 2등을 유지 중이다. 애시당초 1등인 SK텔레콤넘사벽이었기 때문이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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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년 2등 자리를 유지하던 KTF는 2003년부터 3G(WCDMA) 사업을 시작하면서 반전의 기회를 잡으려 했다. 2005년 현대-기아자동차와 제휴해 텔레매틱스 서비스 '모젠'을 개시하고 2005년 모바일게임 '지팡'과 음원서비스 '도시락'을 개설했으며, 2007년 3월부터 2G 시절에 자주 쓰던 KTF라는 브랜드는 거의 묻어버린 채 '''SHOW'''라는 브랜드를 내세워 파격적인 광고 물량 공세를 하였으며, 3G의 전국망을 가장 먼저 구축하여 "3G는 KTF가 SK텔레콤보다 낫다더라" 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성공하였다.
로고는 물론 2위의 이미지를 모두 씻어낼 겸 번호 브랜드를 없애고자 010 번호 통합에 매우 적극적이었으며, 심지어 3G 서비스 시작과 동시에 2G 단말기 수급을 중단하고 CDMA 기지국 관리 및 구축을 줄이면서 많은 고객들이 3G로 전환하는 현상과 함께 타 이동통신사로 떠나는 등 기존 번호를 중요시 여기는 고객들에게 적잖은 불편함이 있었다.[9]
그리고 결과적으로 SK텔레콤의 넘사벽을 넘지 못하였다. 3G에 한정해서 봐도 여전히 시장점유율 2위였다. 사실 그 점유율마저도 3년여간 수백만 명의 2G 가입자를 3G로 전환시킨 결과인데, 2008년 하반기 이후로는 2G 단말기를 출시하지 않았으니 어쩔 수 없이 대부분의 가입자가 3G로 전환할 수 밖에 없었다. 반면, SK텔레콤에는 2011년 7월 기준으로 800만 명이 넘는 2G가입자가 남아 있다. 사실, SK텔레콤의 생각대로 T도 이에 뒤지지 않을 만큼 유명 브랜드였다.
결국 2009년 6월 1일 KT와 합병하면서, KTF는 사라질 때까지 콩라인을 벗어나지 못하였고, KT는 2020년 현재에도 무선 이동통신 시장에선 2등을 차지한다. 심지어 LTE 초창기 땐 서비스 개시가 늦어지는 바람에 LG U+에 밀려 3위까지 떨어진 적도 있었다. 물론 금새 2위 자리를 탈환했다.
하지만 이 당시 통합 후폭풍은 꽤 강해서, 합병 떡밥이 돌기 시작할 때부터 SK텔레콤은 하나로텔레콤의 이름을 SK브로드밴드로 고쳐가면서 브랜드 통일화 작업을 강하게 밀고 있고, LG역시 통신 계열사 삼총사인 LG텔레콤, LG데이콤, LG파워콤의 통합을 시도해 결국 승인이 받아내어 통합LG텔레콤이라는 임시체제를 거친 다음에 LG유플러스로 전환을 완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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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F의 로고가 KT 로고에다 F를 덧붙인 거라서 KT에 합병당할 때 간판에서 F만 떼면 됐었다. 하지만 한 달도 안 돼서 KT 로고가 바뀌었다.


4. 역대 대표이사


  • 이상철 (1996 ~ 2000)
  • 이용경 (2000 ~ 2002[10])
  • 이경준 (2002 ~ 2003)
  • 남중수 (2003 ~ 2005)
  • 조영주 (2005 ~ 2009)

5. 역대 슬로건


  • First in Mobile (2001 ~ 2003)
  • Have a good time (2003 ~ 2009)
  • SHOW를 하라! 쇼! (2007 ~ 2009)

6. Korea Team Fighting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KTF는 월드컵 공식후원 이동통신사였다. 이때 KTF는 KTF의 약자를 따서 Korea Team Fighting라는 구호로 홍보를 진행하였다.
하지만 SK텔레콤붉은악마와 후원계약을 맺고 '붉은악마 마케팅', 즉 그 유명한 응원박수 '''대~한민국! 짝짝짝짝짝'''을 광고해버리는 바람에 오히려 더 쏠쏠한 재미를 보았다. 이 때문에 사람들이 월드컵 공식 후원사가 SK텔레콤인 줄 아는 사람이 다수일 정도로 마케팅에 실패했다. 월드컵 당시 광고에는 이영애안성기가 출연하고, 조수미 노래가 배경음악으로 사용됐다.
어쨌든, KTF측에서 Korea Team Fighting이라는 구호를 내걸며 회사 홍보에 활용한 덕분에 KTF가 저것의 약자인 줄 아는 사람이 꽤 많았다.
이때 KTF의 후원을 받는 응원단도 조직되었는데 그 이름도 KTF 이름을 응용한 '''Korea Team Fighting'''이었다. 붉은악마의 '대한민국'과는 다른 박자와 '코리아팀 파이팅'이라고 외치는 구호도 사용했다. 그러나 마케팅을 위해 급조한 응원단이란 한계를 넘지 못하고 이듬해부터 소리소문없이 사라졌다.

7. 마케팅


PCS 016 시절엔 인기배우 고소영과 신현준을 기용했고, n016 때는 가수 이정현과 조성모를 기용하기도 했다. KTF 때에 들어서는 대배우 안성기와 강수연이 전속 모델이었으며, '넥타이청바지는 평등하다'라는 내용의 CF가 유명했다. 박웅현 씨가 제작한 광고다. 양복 정장 차림에 자동차를 타고 가던 중년 신사가, 청바지 차림에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고 가는 청년을 보고 못마땅하게 여기며 지나간다. 그런데 사장실에 서류를 들고 찾아갔더니 그 청년이 바로 사장이라는 반전. 2003년에는 fimm 광고에 서태지를 기용한 바 있었으며, fimm에서도 서태지의 <인터넷전쟁> 리레코딩 버전 및 <Watch Out> 뮤직비디오를 각각 공개했다.

8. 스포츠


1999년에 'n016 프로게임단'을 창단해 대기업으로서 최초로 e스포츠에 발을 디뎠고, 2001년부터 'KTF 매직엔스'로 거듭났다. 2004년에 부산 코리아텐더 맥스텐도 인수해 '부산 KTF 매직윙스'로 바꿔 농구에도 손을 뻗기도 했으며, 이는 합병 이후에 부산 kt 소닉붐kt 롤스터로 유지된다.

[1] 요금고지서 등에는 (주)케이티프리텔로 표기되어 있었다.[2] 참고로 통합 이전의 브랜드는 '''PCS 016 - n016'''이었으며, 회사 이름은 한국통신프리텔이었고, CI는 한국통신과 동일했다.[3] 생산은 현대전자가 했다.[4] 생산은 텔슨전자가 담당함.[5] 정작 기업용에는 Wi-Fi가 멀쩡히 들어간 경우도 있었다.[6] 예로는 LG전자 옵티머스 GK 가 있다. 일본판 옵티머스 G Pro 를 KT 에서 단독으로 들여온 것이다.[7] 단, 독점공급 계약은 아니었다. SK텔레콤에서도 출시할 예정이었지만, 출시를 포기했다. 반대로 SK텔레콤 2G 모델이었던 모토로라 레이저도 KTF를 통해 3G 모델이 출시될 예정이었지만, SK텔레콤의 압력 때문인지 출시되지 못했다.[8] 다만 Fimm 240요금제는 june 250요금제보다 좋았다. Fimm 240 요금제는 무료패킷을 150MB로 제공하며 june 250은 약 78MB를 제공했다. 물론 둘 다 프로모션 기간일 땐 무제한이었지만.[9] 당시에는 01X 번호 비율이 많았고, 스마트폰 시대가 아니다 보니 3G의 특징인 무선인터넷이나 영상통화보단 음성전화에 치중되어 있던 시절이다. 따라서 010 번호를 바꾸면서까지 3G를 사용할 의미가 없었다. 반대로 010 번호를 사용 중인 고객은 굳이 성능이 떨어진 2G를 사용할 필요는 없었지만, 고객의 시각으로 봤을 땐 기업의 기준으로만 운용한다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밖에 없었다.[10] 2001년까지 한통엠닷컴 사장직 겸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