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범

 

'''이세범의 수상 및 영예 '''
[ 펼치기 · 접기 ]
'''KBL 챔피언결정전 우승 반지'''
'''2006'''
<color=#373a3c>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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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이세범(李世凡)
'''생년월일'''
1974년 8월 20일 (50세)
'''국적'''
대한민국
'''출신학교'''
용산고등학교 - 중앙대학교
'''포지션'''
포인트 가드
'''신체 사이즈'''
180cm
'''프로입단'''
1997년 대구 동양 오리온스 입단
'''소속팀'''
대구 동양 오리온스 (1997~2000)
대전 현대 걸리버스 (2000~2001)
서울 SK 나이츠 (2001~2005)
서울 삼성 썬더스 (2005~2006)
원주 동부 프로미 (2006~2009)
'''지도자'''
원주 동부 프로미 코치 (2009~2017)
용산고등학교 코치 (2017~현재)
1. 소개
2. 선수 시절
2.1. 고교-대학 시절
2.2. 프로 시절
3. 지도자 생활


1. 소개


한국의 전 농구선수이자, 현 농구 지도자.

2. 선수 시절



2.1. 고교-대학 시절


김병철과 함께 용산고의 앞선을 책임지며 용산고를 90년대초 고교 3강으로 이끈 가드로, 김병철이 졸업한 뒤 첫 대회였던 1992년 춘계연맹전에서 안정적인 게임 운영으로 서장훈-현주엽의 장신군단 휘문고와 박성배의 경복고를 연파하며 우승, 본인은 MVP를 차지한다.
중앙대 진학 후엔 같은 포지션의 쟁쟁한 의 존재와 본인의 득점력 부재로 인해 4년내내 주로 벤치만 지켰고, 주가가 많이 하락한 상태로 대구 동양 오리온스에 자유계약으로 스카웃된다.

2.2. 프로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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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의외로 프로에 오면서 백업 가드로 쏠쏠한 활약을 하며 2009년까지 총 5팀을 거치며 무려 12시즌 연속 선수생활을 했다. 대구동양 시절엔 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고 00-01 시즌을 앞두고 달랑 2500만원에 현금트레이드 되기도 하지만, 서울 SK 시절부터는 안정적인 경기운영 능력을 가진 백업가드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팀에서 꽤나 쏠쏠한 역할을 해주었고 03-04 시즌엔 황성인에 이은 NO.2 포인트 가드으로 총 47게임을 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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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시즌 서동용(188cm,F)와 1:1 트레이드로 서울 삼성에 합류한 이세범은 '2쿼터의 사나이'[1]라는 애칭을 얻으며 준주전급 1번으로 활약, 서울 삼성의 챔피언결정전 업셋에 깨알같은 공을 세운다. 서울 삼성에서의 한 시즌 맹활약을 바탕으로 이세범은 2006년 FA 시장에서 포인트 가드를 원하는 팀들의 영입대상이 되었고, 두 배로 뛰어오른 연봉(6천만원 → 1억 2천만원)에 원주 동부 프로미 유니폼을 입게 된다.
06-07 시즌 전반기까지 원주 동부의 주전 포인트 가드를 맡았으나 김주성의 아시안게임 출전 공백과 의 출장정지 파문까지 겹치며 팀이 하위권으로 추락하는 걸 막지 못했다. 시즌 후반기에 표명일이 트레이드로 합류하면서 이세범은 다시 백업가드로 돌아갔고 팀은 2게임차 8위로 아쉽게 플레이오프에 나가지 못한다.
다음시즌인 07-08 시즌엔 표명일의 백업요원으로 활약하며 원주 동부가 정규리그 1위 및 통산 세 번째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하는 데 일조하지만, 정작 이세범 본인은 서울 삼성과의 챔프전 결정전을 앞두고 '''급성 맹장염'''에 걸려 병원에서 팀의 우승을 지켜봐야 했다. 이후 08-09시즌에도 팀을 플옵 4강까지 이끈 뒤 은퇴했다.

3. 지도자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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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직후 2009년부터 16-17 시즌까지 원주 동부의 코치를 맡아 -이충희-김영만 감독 순으로 보좌했으며 김영만 감독이 계약 연장을 하지 않고 물러나자 코치직을 사임했다.
2017년 6월부터 모교인 용산고등학교에서 고교 지도자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관련 기사
[1] 당시 KBL은 2쿼터 한정으로 외국인 선수를 1명만 기용할 수 있었는데, 서장훈의 존재감이 컸던 삼성은 2쿼터에 외국인 빅맨을 빼고 이세범을 기용해 스피드를 보완하고, 서장훈에게 엔트리 패스를 찔러줘 쏠쏠한 재미를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