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범
1. 소개
한국의 전 농구선수이자, 현 농구 지도자.
2. 선수 시절
2.1. 고교-대학 시절
김병철과 함께 용산고의 앞선을 책임지며 용산고를 90년대초 고교 3강으로 이끈 가드로, 김병철이 졸업한 뒤 첫 대회였던 1992년 춘계연맹전에서 안정적인 게임 운영으로 서장훈-현주엽의 장신군단 휘문고와 박성배의 경복고를 연파하며 우승, 본인은 MVP를 차지한다.
중앙대 진학 후엔 같은 포지션의 쟁쟁한 선후배들의 존재와 본인의 득점력 부재로 인해 4년내내 주로 벤치만 지켰고, 주가가 많이 하락한 상태로 대구 동양 오리온스에 자유계약으로 스카웃된다.
2.2. 프로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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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의외로 프로에 오면서 백업 가드로 쏠쏠한 활약을 하며 2009년까지 총 5팀을 거치며 무려 12시즌 연속 선수생활을 했다. 대구동양 시절엔 기회를 거의 얻지 못했고 00-01 시즌을 앞두고 달랑 2500만원에 현금트레이드 되기도 하지만, 서울 SK 시절부터는 안정적인 경기운영 능력을 가진 백업가드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아 팀에서 꽤나 쏠쏠한 역할을 해주었고 03-04 시즌엔 황성인에 이은 NO.2 포인트 가드으로 총 47게임을 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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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6 시즌 서동용(188cm,F)와 1:1 트레이드로 서울 삼성에 합류한 이세범은 '2쿼터의 사나이'[1] 라는 애칭을 얻으며 준주전급 1번으로 활약, 서울 삼성의 챔피언결정전 업셋에 깨알같은 공을 세운다. 서울 삼성에서의 한 시즌 맹활약을 바탕으로 이세범은 2006년 FA 시장에서 포인트 가드를 원하는 팀들의 영입대상이 되었고, 두 배로 뛰어오른 연봉(6천만원 → 1억 2천만원)에 원주 동부 프로미 유니폼을 입게 된다.
06-07 시즌 전반기까지 원주 동부의 주전 포인트 가드를 맡았으나 김주성의 아시안게임 출전 공백과 의 출장정지 파문까지 겹치며 팀이 하위권으로 추락하는 걸 막지 못했다. 시즌 후반기에 표명일이 트레이드로 합류하면서 이세범은 다시 백업가드로 돌아갔고 팀은 2게임차 8위로 아쉽게 플레이오프에 나가지 못한다.
다음시즌인 07-08 시즌엔 표명일의 백업요원으로 활약하며 원주 동부가 정규리그 1위 및 통산 세 번째 챔피언결정전 우승을 차지하는 데 일조하지만, 정작 이세범 본인은 서울 삼성과의 챔프전 결정전을 앞두고 '''급성 맹장염'''에 걸려 병원에서 팀의 우승을 지켜봐야 했다. 이후 08-09시즌에도 팀을 플옵 4강까지 이끈 뒤 은퇴했다.
3. 지도자 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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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직후 2009년부터 16-17 시즌까지 원주 동부의 코치를 맡아 -이충희-김영만 감독 순으로 보좌했으며 김영만 감독이 계약 연장을 하지 않고 물러나자 코치직을 사임했다.
2017년 6월부터 모교인 용산고등학교에서 고교 지도자로서의 첫발을 내디뎠다. 관련 기사
[1] 당시 KBL은 2쿼터 한정으로 외국인 선수를 1명만 기용할 수 있었는데, 서장훈의 존재감이 컸던 삼성은 2쿼터에 외국인 빅맨을 빼고 이세범을 기용해 스피드를 보완하고, 서장훈에게 엔트리 패스를 찔러줘 쏠쏠한 재미를 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