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사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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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홍사붕(洪思鵬)
'''생년월일'''
1971년 7월 1일 (52세)
'''국적'''
대한민국
'''출신 학교'''
인천 송림초등학교 - 송도중학교 - 송도고등학교 - 중앙대학교
'''포지션'''
포인트 가드, 슈팅 가드
'''신체 조건'''
185cm
'''프로 입단'''
1994년 서울방송 농구단
'''소속팀'''
서울방송 (1994~1995)
(군복무) (1995~1997)
''' (1997~2001,2004~2006)'''
(2000~2003)
(2003~2004)
(2003~2004)
'''지도자 경력'''
안양 벌말초등학교 농구부 코치 (2006~현재)
1. 개요
2. 선수 시절
2.1. 고교-대학 시절
2.2. 실업-프로 시절
3. 은퇴 후
4. 시즌별 성적
5. 여담
6. 관련 문서


1. 개요


1, 2번을 겸할 수 있었던 '''원조 듀얼 가드'''로 리딩, 돌파력, 슛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었다.
KBL에서 총 9시즌을 뛰었으며 같은 송도고등학교 동문인 , 신기성, 김승현 정도의 초특급 가드는 아니었으나 1, 2번을 넘나들며 여러 팀에서 꾸준히 주전급으로 뛰었던 선수였다.

2. 선수 시절



2.1. 고교-대학 시절


전규삼 옹으로 대표되는 가드 사관학교 송도중-고 출신으로 190cm만 넘으면 빅맨으로 뛰던 당시로선 꽤나 장신(185cm) 가드였다. 고 2때 한두살 위인 오성식(부산중앙고 3학년), 이상범(연세대 1학년) 등과 함께 청소년 대표팀 가드로 뽑히기도 했다.
중앙대 입학 후 저학년 때에는 주로 식스맨으로 뛰다가, 3학년 때 당시 최연소 감독(28세)이던 강정수 감독이 부임하면서부터 중용되기 시작했는데, 표필상-정경호 더블포스트 체제가 전략의 중심이던 팀컬러에서 강정수 감독 특유의 체력을 강조하는 런앤건 팀 체제로 변모하면서 운동능력이 좋고 경기운영도 뛰어났던 홍사붕이 김승기와 함께 주전 가드로 낙점받았다. 이전까지 대학팀들간의 경기에선 잘나가다가도 농구대잔치에서 실업팀은 물론 금융팀들에게도 고꾸라지던 중앙대였지만, 홍사붕-김승기-김영만을 주축으로 연신 달리는 청룡군단으로 변신한 뒤 1992-93 농구대잔치에서는 마침내 금융팀들을 제치고 6강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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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학년이 된 1993 시즌 대학무대에서 홍사붕의 중앙대는 각각 서장훈, 양희승이 가세한 연세대, 고려대와 치열한 3파전을 벌였고, 시즌 2관왕에 오른다. 대망의 1993-94 농구대잔치에서 중앙대는 정규리그에선 12개팀중 7위에 그치며 겨우 8강에 올랐지만, 8강에서 만난 전대회 우승팀 기아자동차를 2승 1패로 격파하는 사상 최대 이변을 연출하게 된다. 중앙대 동생들은 동문 선배들이 주축인 기아자동차를 상대로 엄청난 체력전을 펼치며 연신 강압수비 & 속공을 펼쳤고, 전반까지는 -- 트리오의 노련미로 우세한 경기를 펼치던 기아차는 후반들어 체력이 다 떨어진듯 걸어다니는 듯한 모습까지 보여주며 역전당하는 공식으로 무너져 버렸다.[1] 유일하게 체력이 남아있는듯 했던 허재를 상대로 홍사붕은 후배 김희선과 번갈아가며 찰거머리 수비를 펼쳤고, 승부처인 3차전에서 허재를 17점으로 묶으며 홍사붕 본인은 무려 30득점(3점 6개)을 몰아쳤다.[2] 이후 4강에서 만난 상무를 상대로도 1차전을 먼저 잡는 듯 돌풍을 이어나가나 했지만, 국가대표 콤비 정재근-오성식의 노련미에 밀리며 청룡군단의 질주는 4강에서 멈췄고, 홍사붕의 대학 시절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다.

2.2. 실업-프로 시절


졸업 무대를 화려하게 마친 홍사붕은, 신생팀 창단버프가 끝나고 신인선수 수급에 어려움을 겪던 실업팀 SBS에 1994년도 유일한 신인선수로 스카웃되었다. 입단 하자마자 열린 4월 코리안리그에서 홍사붕은 정재근, 오성식 등 주축멤버가 아직 제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일약 팀의 에이스로 우뚝 서며 팀을 4강에 올리는 기염을 토한다. 특히 문필호, 전경배 등 지난 농대 전패 멤버들을 고스란히 이끌며 지난 농대 8강팀 현대전자, 기업은행을 연파한 바람에, 홍사붕은 문경은, 김승기를 제치고 대회 내내 가장 주목받는 신인으로 꼽혔다. 가을에 정재근, 표필상, 남경원이 제대하며 전력을 보강한 SBS에서 홍사붕은 주전 포인트 가드로서 팀을 이끌었고, 1994-95 농구대잔치에서 전대회 꼴찌팀 SBS를 정규리그 4위 및 플레이오프 4강까지 올려놓았다. 4강전에서 삼성전자김현준-문경은 쌍포를 막지 못하면서 SBS는 아쉽게 탈락했고, 홍사붕은 대회 종료 후 상무 입대를 택한다.
1995년도 상무 농구단은 사상 최고의 멤버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가드진에 이상민, 김승기, 홍사붕, 봉하민, 포워드에 문경은, 조성원, 김도명, 센터에 조동기, 김재훈 등 기량이 절정이던 20대 중반의 선수들을 올스타급으로 모아놓으면서 국가대표 못지 않은 라인업을 갖췄다. 이 때문에 농구대잔치에서 가장 유력한 우승후보였지만, 홍사붕 개인적으로는 이 두터운 선수층 탓에 상무 시절 대부분을 식스맨이나 수비전문 선수로 나서야만 했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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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7월 제대 후, 원소식팀이던 안양 SBS 스타즈에 합류한 홍사붕은 1997-98 시즌 팀의 주전 포인트 가드로 낙점받아 11.4득점-3.7리바-3.2어시-1.7스틸의 준수한 성적을 거두지만, 팀은 리그 8위로 플레이오프에 나서지 못했다.
다음 시즌인 98-99 시즌 안양 SBS는 외인 드래프트에서 포인트 가드 제럴드 워커를 뽑으면서 제럴드 워커-김상식[4]으로 백코트를 구성했고, 홍사붕은 1, 2번 자리를 오가는 키 식스맨으로서 활약했지만 팀은 또 다시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했고, 결국 강정수 감독이 경질되고 만다.
99-00 시즌엔 청주 SK 단장으로 물러나 있던 원로 농구인 김인건 감독이 새로 부임하는데, 일선에서 너무 오래 물러났던 탓인지 김인건 감독은 시즌 초부터 "우리 팀에는 제대로 된 포인트 가드가 없다"는 선언을 하며 홍사붕을 "경험 부족"을 이유로 벤치로 보내고 슈터 김상식과 포워드 조신영(193cm)을 번갈아가며 1번으로 내세우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선수 기용을 하곤 했다. 다행히 시즌 초반이 지나기 전에 홍사붕이 다시 주전 포인트 가드를 차지하며 팀을 이끌었는데, 이번에는 두 외국인 콤비 클리프 리드-데이먼드 포니가 말썽을 부리며 팀 분위기를 해치다 동반 퇴출되고, 거기에 팀의 중심 정재근마저 부상으로 쓰러지는 위기를 맞는다. 이후 대체 외국인 선수로 득점원 퀸시 브루어(192cm)와 수비형 센터 데릴 프루(200cm)가 합류하고, 신인 김성철과 2년차 토종 빅맨 윤영필로 주전멤버가 대거 바뀌는 상황속에서도 홍사붕은 특유의 부지런한 활동량과 안정적인 리딩을 보이며 팀을 금세 안정시켰고, 안양 SBS는 시즌 막판 5연승을 달리며 극적으로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하게 된다. 원주 삼보와의 6강 플레이오프에서 홍사붕은 1차전에서 7어시스트를 배달하는 등 안정적인 경기운영을 펼치며 팀을 3년만에 4강으로 이끈다. 이 시즌 홍사붕은 '''12.5득점-2.9리바-3.4어시-1.4스틸'''을 올리며 득점과 어시스트에서 커리어 하이 시즌을 기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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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1 시즌 루키 포인트 가드 은희석이 합류하면서 백업으로 밀린 홍사붕은, 포인트 가드 부재로 고심하던 인천 신세기 빅스유재학 감독의 부름을 받아 공익근무 중인 김훈과 1:1 트레이드를 통해 인천 신세기로 이적, 곧바로 주전 1번으로 낙점받았고 우지원, 켄드릭 브룩스, 이은호, 조동현 등의 멤버를 잘 이끌며 팀을 6강 플레이오프에 올려놓는다.
하지만 다음 시즌 최명도가 영입되면서 또다시 백업으로 밀려났고, 1-2번 자리를 오가며 최명도-조동현의 로테이션 멤버로서 자리잡으며 01-02 시즌 새로 합류한 멤버들(문경은-조니 맥도웰)과 함께 인천 SK[5]를 플레이오프 4강까지 올려놓는다.
02-03 시즌엔 부상으로 골골대던 조동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 홍사붕은 무릎부상에도 불구하고 한 시즌 동안 주전 슈팅 가드로 나서며 노장투혼을 보여주지만, 최명도-문경은-조니 맥도웰 등 주전 멤버들이 한 시즌만에 다들 노쇠화 기미를 보이는 바람에 7위로 아쉽게 플레이오프에서 탈락한다.
03-04 시즌을 앞두고 홍사붕은 이상민의 백업 포인트 가드가 필요했던 전주 KCC 이지스로 트레이드[6] 되지만, 전주 KCC에는 이미 훌륭한 후보 가드 표명일이 있었던 탓에 출장기회를 잡지 못했고, 시즌 도중 성사된 빅트레이드(전희철(전주 KCC) ↔ 조성원(서울 SK))의 반대급부로 끼어[7] 서울 SK로 한 시즌 간 임대 트레이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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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SK에서도 황성인-황진원의 백업으로 평범한 활약을 펼치고 시즌 종료 후 전주 KCC로 복귀한 홍사붕은, 비시즌에 인천 전자랜드로 이적했다가 04-05 시즌 개막 직전 다시 친정팀 안양 SBS 스타즈로 복귀하게 된다.[8]
33세의 노장이 되어 친정팀에 복귀한 홍사붕은 04-05 시즌 단테 존스 신드롬을 일으킨 안양 SBS에서 평균 8분 남짓 출장하면서 은희석, 이정석 등 젊은 가드들의 백업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고, 이후 KT&G로 바뀐 안양에서 한 시즌을 더 보낸 뒤 은퇴했다.

3. 은퇴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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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은퇴 후 2020년 현재까지 '''무려 15년째''' 경기도 안양시의 벌말초등학교에서 어린 유망주들을 지도하고 있다. 기사

4. 시즌별 성적


역대 기록
시즌
소속팀
경기수
2점슛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1997
SBS
군복무(상무 농구단)
1997-98
44
132/241
(54.77%)
44/138
(31.88%)
104/139
(74.82%)
500
162
141
74
2
1998-99
41
83/136
(61.03%)
34/85
(40.00%)
63/87
(72.41%)
331
72
59
32
3
1999-00
38
122/194
(62.89%)
42/108
(38.89%)
105/131
(80.15%)
475
110
145
55
3
시즌
소속팀
경기수
2점슛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00-01
SBS / SK빅스
40
68/126
(53.97%)
26/104
(25.00%)
63/92
(68.48%)
277
94
102
25
2
2001-02
SK빅스
33
30/61
(49.18%)
17/54
(31.48%)
8/12
(66.67%)
119
42
48
10
1
2002-03
42
90/174
(51.72%)
50/134
(37.31%)
32/48
(66.67%)
362
77
100
36
8
시즌
소속팀
경기수
2점슛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03-04
KCC / SK나이츠
22
19/44
(43.18%)
4/24
(16.67%)
13/17
(76.47%)
63
17
33
5
0
시즌
소속팀
경기수
2점슛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04-05
SBS
11
10/23
(43.48%)
3/7
(42.86%)
5/9
(55.56%)
34
7
12
3
0
시즌
경기수
2점슛
3점슛
자유투
득점
리바운드
어시스트
스틸
블록슛
2005-06
KT&G
15
13/25
(52.00%)
7/13
(53.85%)
13/18
(72.22%)
60
12
8
5
0
<color=#373a3c> '''KBL 통산'''
(9시즌)
286
567/1024
(55.37%)
227/667
(34.03%)
406/553
(73.42%)
2221
593
648
245
19

5. 여담


선수 시절 주당으로 유명했다. 안양 SBS 시절 '''김동광 감독과 대작이 가능한 유일한 선수'''였다고 한다.

6. 관련 문서


[1] 현대, 삼성은 물론 신생팀 SBS와의 스카웃에서도 밀리며 수년간 벤치멤버를 스카웃하지 못한 탓에, 허동택+한기범이 빠지면 믿고 내보낼 만한 선수가 없었던 게 기아차의 딜레마였다. 이걸 잘 아는 기아차 출신 강정수 감독이 체력전으로 정면승부를 펼쳤던것.[2] 홍사붕은 정규리그 마지막 기아차 전에서도 37점을 올리며 기아를 거의 잡을뻔했었다.[3] 결국 이 때 상무는 농구대잔치에서 2대회 연속 준우승에 그치고 만다.[4] 광주 나산으로부터 현금 트레이드를 통해 영입했다.[5] 신세기통신이 SK에 매각되었다.[6] 백업센터 김동언(195cm)과 1:1 트레이드[7] 서울 SK get: 전희철, 홍사붕(임대) ↔ 전주 KCC get: 조성원, 강준구(임대)[8] 상무에서 제대하는 오광택(185cm,F)와 1:1 트레이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