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현(축구선수)
1. 소개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2. 유소년 경력
대구광역시 출신으로 대구의 축구명문 청구고등학교를 나왔고, 한양대학교에 진학했다.
3. 클럽 경력
3.1. 부산 아이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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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부산 아이파크에 드래프트 우선지명으로 입단해 2010년까지 부산 공격진의 중핵을 맡아왔다. 특기는 국내 최고 수준의 스피드와 이를 이용한 드리블 돌파. 소말리아, 뽀뽀와 함께 삼각편대를 구성해 부산의 공격진을 이끌었다. 그리하여 7골 3도움을 기록하며 신인왕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앤디 에글리 감독이 뽀뽀와 소말리아를 보내면서 들어온 박성호와의 호흡이 맞질 않으면서[1] 기록이 약간 떨어지는 시기를 맞았다. 그래도 2007년에는 박병규, 조용형과 함께 터키에서 러브콜이 오기도 했고, 2009년에는 처음으로 국가대표팀에 뽑혀 파라과이전에 등장, "스피드 레이서"라는 본인의 별명을 입증하는 측면드리블을 시전하는 등 잘나가던 때였다.
3.2. 전북 현대 모터스
2011년 시즌을 앞두고 팀 동료인 정성훈과 함께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했다. 정확히는 전북 현대에서 임상협과 이요한과의 2:2대 트레이드였다.
이적 후 K리그 3라운드 부산전에서 친정팀을 상대로 이적 후 첫 골을 넣으며 인상을 심어주었고 이후 계속 주전으로 기용되며 2010년 전북을 떠난 최태욱의 공백을 말끔히 메워주고 있다. 놀라운 점을 무엇보다 부상을 당하지 않는다는 점... 부산에서 자주 부상으로 빠지던 모습을 생각해면 기묘할 정도였다. 어쩌면 전북 현대의 트레이닝 센터가 부산보다 더 선진화되어 있기 때문에 나온 결과일지도 모른다.
2011년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1:2로 끌려가던 중 후반 교체 투입되었다. 이승현이 로스 타임에 헤딩으로 동점골을 성공시켰다. 하지만 승부차기에서 패배하고 만다.
2012년에도 전북의 선수로 활약하면서 2013시즌이 되면서 상주 상무로 입대해 2014년까지 뛰었다.
상주 상무에서 전역하고 전북 현대로 복귀해 2015시즌을 맞이했다. 한교원과 주전 경쟁을 할 줄 알았는데 에닝요도 측면으로 들어와버렸다. 그리고 이재성마저도 측면에 투입되니 이승현은 거의 조커 격으로 출전하면서 경기 감각이 떨어진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시즌 종료 후에 자유계약으로 해지었다.
3.3. 수원 FC
2016년 1월 수원 FC로 이적하여 주장을 맡았다.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위치에서 뛸 수 있다는 점과 공격적인 팀플레이가 수원FC를 선택하게 된 이유라고 한다.
3, 4라운드에서 극장 역전골과 극장 동점골을 넣어서 승점을 벌어다 주었다. 3경기 풀타임에 처음 전남 드래곤즈 전에서는 선발 출장하여 김부관과 교체되었고, 11라운드 포항 스틸러스 전에서는 결승골을 넣었다. 지금까지 이승현이 넣은 모든 골들은 수원 FC에 승점을 벌어다 준 셈. 안타깝게도 이같은 분투에도 불구하고 수원 FC는 1년만에 K리그 챌린지로 강등당했지만, 이승현은 팀에 잔류하기로 결정하면서 2017년에도 팀을 이끌게 되었다.
서상민, 정훈과 함께 전북 현대 모터스 출신으로 막공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7월이 되면서 7골을 기록하며 팀내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수원이 부진하긴 하지만, 그 중에서도 홀로 축구를 한다고 할 정도로 팀을 지탱하는 중이다.
2017년 7월 23일 성남 FC전에서 300 경기를 앞두게 되었다. 인터뷰 마지막 후기가 압권인데, '''"400경기 인터뷰 때 뵙겠습니다."''' 였다(...)
2018년 후반기로 가면서 기존의 윙어보다는 오른쪽 수비수로 나오는 모습이 자주 보인다. 팀 주전 라이트풀백으로 입지를 굳혀가는 듯.
3.4. 강릉시청 축구단
2020년에 대한민국 3부 축구리그인 K3리그 참가팀 강릉시청 축구단으로 이적했다. 새로운 리그에서의 첫 시즌 기록은 리그 18경기 출전 3골, FA컵 2경기 출전.
4. 국가대표 경력
한양대 시절 청소년 대표팀에 선발되었고 2005년 FIFA U-20 월드컵에 대표로 출전했다.
2008년에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에선 대표선수로 차출되기도 했다.
2009년에는 국가대표 허정무 감독에 의해 국가대표에 발탁되어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으나 부상으로 하차 후 부름을 받지 못하고 있다.
부상이 상당히 잦은 선수로 출장을 좀 할만하면 부상을 당하고 부상에서 복귀하면 한동안 헤매는 통에 꾸준히 활약을 하지는 못했다.
5. 플레이 스타일
K리그를 대표하는 스피드 스타였다. 특히 유망주였던 부산 시절에 용병들이 힘과 기술을 이용해 수비진을 휘저어놓으면 어느새 그 안으로 파고들어 가는 고속기동이 일품이었다. 하지만 공을 받는 모습을 보면, 제법 투박하다.. 다만 속도에 비해서 라인깨기가 약한 타입이서 본인이 수비진의 뒤로 파고드는 것보단 패스와 함께 속도로 파고드는 플레이를 자주 했다.
그래서 발이 느린 수비진을 만나면 물 만난 듯 파고들었지만, 상대가 노련하거나 발이 빠르다면 벗겨내는데 어려움을 종종 나타내곤 했다. 전북으로 이적하고 나선 몸싸움도 제법 늘어났다.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서 기술도 제법 안정적으로 올라왔고, 노련하게 수비진을 공략하는 모습도 보이고 있다.
김인성이 이승현의 플레이 스타일을 빼다 박았다. 하지만 기술적인 완성도는 이승현이 더 높은 것 같다.
6. 여담
- 골을 넣는 날이면, 집에서 아내와 아이들이 다리를 주물러주면서 "아빠 힘들었지?"라고 해준다고 한다.
[1] 무엇보다 그 당시 박성호는 황연석, 손정탁과 함께 트리플 타워, 타워팰리스, 손정탁 클럽 소리를 듣던 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