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형

 

제주 유나이티드 FC 역대 주장
이동식
(2008)

조용형
(2009)


김은중
(2010~2011)
대한민국의 前 축구선수
[image]
조용형 (趙容衡 JO YONG HYUNG)
출생
1983년 11월 3일 (40세)
국적
[image] 대한민국
출신지
인천광역시
학력
부평동중학교 - 부평고등학교 - 고려대학교
포지션
센터백
신체 조건
182cm / 71kg
소속팀
부천 SK/제주 유나이티드 (2005~2006)
경남 FC (2007)[1]
성남 일화 천마 (2007)
제주 유나이티드 (2008~2010)
알 라이안 SC (2010~2014)
알 샤말 SC (2014)
스자좡 융창 (2015~2016)
제주 유나이티드 (2017~2018)
제주 유나이티드 (2019.6~2020)
지도자
제주 유나이티드 플레잉 코치 (2019~2020)
국가대표
42경기
별명
용팔이, 허용형[2], 고장난 자동문[3]
2005 K리그 베스트 일레븐
FW
박주영
FW
마차도
MF
김두현
MF
이천수
MF
이호
MF
조원희
DF
임중용
DF
유경렬
DF
조용형
DF
김영철
GK
김병지
1. 소개
2. 경력
3. 국가대표


1. 소개


대한민국축구선수. 포지션은 센터백이다.

2. 경력



2.1. K리그


[image]
부평고등학교,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2005년 부천 SK에 입단하였으며 2006년 부천의 연고이전 후 제주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활약했다.이 당시 활약으로 박병규, 이승현과 함께 터키에서 이적 제의가 오기도 했다.
2007년 경남 FC로 이적했으나 불과 4일만에 성남 일화 천마로 현금 트레이드 되었다. 하지만 스타팅 멤버에 변화를 주는 걸 극히 꺼리는 편이었던 김학범 당시 성남 감독의 용병술 때문에[4] 후보선수에 머물렀고 2008시즌 친정 제주로 복귀했다.
한때 홍명보가 '자신의 후계자라고 언급된 선수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는 조용형이다'라는 요지의 말을 하기도 했다.[5] 홍명보 외에도 수많은 축구인들이 조용형을 현존하는 대한민국 수비수들 중에서 최상급의 기량을 가지고 있다고 평하고 했다. 이러한 평가 때문인지 허정무 감독 재임기간동안 대한민국 국대 부동의 중앙 수비수 주전이었다.
센터백은 물론 중앙 미드필더까지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플레이어이며, 홍명보의 현역 시절을 연상시키는 정교한 롱패스를 활용한 공격전개 능력과 공의 흐름을 끊는 플레이가 일품이지만 피지컬과 스피드가 떨어지고 대인마크가 허술하다는 단점이 있다. 또한 수비시 집중력 저하로 인한 잔실수가 많은 편이라 전문가들의 평가와는 다르게 축구팬들 사이에서 평가는 굉장히 박했다. 월드컵 이전까지 팬들 사이에선 이정수, 곽태휘, 김형일보다 한 수 아래로 보는 평가가 많았다. 알툴 베르날데스 감독이 이끌던 2009시즌 제주에서 국가대표 동료인 강민수와 주전 센터백으로 이뤘으나 포항 스틸러스에게 8골이나 허용하는 등 수비에서 약점을 드러내 평가가 더욱 급전직하했다. 하지만 당시 제주는 팀 전력, 특히 미들에서의 압박이 굉장히 약했고, 감독과 선수들간 내분마저 있었다. 또 당시 포항은 파리아스의 축구가 절정에 달해 아챔, 리그컵을 우승하고 리그 3위(정규시즌 2위)를 기록한 막강한 팀이었다. 또한 현대축구가 준수한 선수 한둘 보유했다고 팀 성적이 확 바뀔 만큼 녹록하지 않다.

2.2. 중동 진출


2010 시즌 종료 후 해외에서 상당히 확실한 오퍼가 들어왔다! 기사
잉글랜드, 스페인, 이탈리아 등에서 오퍼가 들어왔다. 잉글리시 프리미어 리그 팀인 풀럼 FC과 스페인의 프리메라 리가 중위권 팀들이 영입대상으로 그를 점찍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심지어 세리에 A 팀인 US 팔레르모는 소속팀 제주 유나이티드와 의견을 나누고 있다고. 그리고 결국 이적을 했다. 카타르로...

유럽행을 원한다던 선수가 갑자기 중동으로 날아가자 팬들은 크게 실망했다. 제주 유나이티드는 그를 놓아주는 이유로 대승적 차원를 거론했는데 당연히 선수와 팀 둘 다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그런데 후발 기사를 통해 조용형이 카타르에서 2년만 뛰고 스페인 프리메라 리가말라가 CF에 입단하게 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사람들의 관심은 꽤 높으나 한국인 선수들과는 인연이 적었던 스페인이기에 사람들의 기대가 컸다. 말라가는 원래 중하위권 팀이었으나 최근 구단주 교체를 통해 팀을 재단장하고 있어 가능성이 꽤 있는 팀이었다. 이곳에서 자리를 잡으면 축구팬들이 염원하던 해외파 중앙 수비수가 탄생하게 될수도 있어 보였다.
그러나 단순히 언론에 실린 내용만 보고서 믿기는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많았는데, '말라가를 인수한 새 구단주가 중동의 석유왕인데 17억이 없어서 카타르에서 대납해주겠다는 건 말이 안되지 않느냐'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사실 타 구단 2년 뛰고 영입이라는 계약 자체가 전례가 없던 일인데다 먼저 뛰고 가겠다는 리그가 아시아에서도 중상위권 정도로 평가받는 카타르 스타 리그(아시안 챔피언스리그 진출권이 2장 걸려있다.)이다. 그리고 구단주가 바뀌었다고 2년동안 말라가가 강등당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었고, 애초에 1년동안 별일이 다 일어나는 축구판에서 2년 후 라리가 이적이라는게 얼마나 현실성 있고 신뢰할 수 있는 계약이냐는 의문도 많았다.
이 와중에 재판을 통해 5급 제2국민역 판정을 받고 군면제를 받았다.[6] 판결문에서 "진료기록 감정결과 수술로 왼쪽 무릎관절 외측 연골판을 3분지 2 이상 절제된 경우 관계 법령에 따라 제 2국민역에 편입되는 것이 마땅하다"며 "원고가 현재 축구선수로 활동하고 있고 현역복무를 할 수 있는 사람에 해당한다고 볼 여지는 있지만, 징병신체검사 등 검사규칙에 따라 신체등위 5급에 해당하는 이상 병역변경처분을 거부한 것은 위법"이라고 판시했다.
아무튼 2012년 말라가에 가든 못 가든 K리그 역사에 길이 남을 괴상한 이적 사례가 될 듯 하다. 그리고 2012년, 많은 팬들의 우려대로 말라가 이적이 불발되었다. 말라가 CF가 챔피언스리그 티켓을 거머쥐고 조용형 자리인 센터백에 무시무시한 투자를 해서 도저히 가서 주전을 보장받을수 없는 현실. 게다가 현재 알 라이안 SC에서도 연봉 30억이라는 K리그에선 기대하기 힘든 두둑한 오일머니를 받고 있어 딱히 돈 문제로 갈리도 없고 무엇보다도 라리가 EU선수 제한 3명에 낄 수가 없다. 12-13 시즌 후반에 말라가 구단주가 축구에 별 관심이 없었다는게 드러나 재정문제로 유럽대회도 못 나가고 스쿼드가 폭풍같이 스쿼드가 털리는데도 조용형은 한 마디도 언급이 안 되는 걸 보면 아무튼 유럽 진출은 실패했다는게 자명해 보이고 중동에 간 이후 국대에서도 멀어졌다. 대신 돈은 잔뜩 벌어서 손해만 본건 아니지만. 말라가 이적도 흐지부지 되었고, 2014년 여름 알 라이안 SC과 계약이 종료되었다. 이후 2014년 8월 30일 카타르 스타즈 리그 승격팀 알 샤말로 이적하였다. 계약기간은 1년간으로 알려졌다.

2.3. 중국 슈퍼 리그


2015년 1월 10일 중국 슈퍼 리그 승격팀인 스자좡 융창으로 이적하였다.#

2.4. 제주 유나이티드 2기


[image]
2016년 12월 9일 제주 유나이티드로 복귀한다는 기사가 나왔다. 링크 2017 시즌 제주 유나이티드로 복귀 후 3-5-2 포메이션에서 정중앙 센터백을 맡으면서 초반 짠물 수비에 큰 기여를 했다.
2017년 5월 31일 ACL 16강 2차전에서 나온 불미스러운 일로 인해 AFC로 부터 자격 정지 6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게 되지만 그 후 제주 유나이티드AFC에게 재심의를 요청하고 그 결과가 나왔는데 AFC 징계 항소위원회 재심의 결과 조용형 선수는 6개월에서 3개월로 출전정지 징계가 경감 되어서 다행히도 시즌 아웃만은 피할 수 있었다.[7] 제주 측은 조용형과 백동규의 징계를 완화하기 위해 다각도로 자료를 모으고 박지성 등을 비릇한 해외파와 중국리그 시절 동료 등등에게 탄원서를 받아내는 등 각고의 노력을 했다고 한다#
제주 유나이티드 복귀 이후 특유의 롱 패스 능력은 유감 없이 보여줬다. 낮고 빠른 롱 패스에 때로는 스핀까지 걸어 날리는데, 안현범정운(축구선수) 등 공격적인 윙백의 오버래핑 타이밍에 맞춰 공이 날아가는 모습은 꽤 장관이었다.
문제는 베테랑임에도 불구하고 큰 경기에서 가장 크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인다는 것. 위에 거론된 불미스러운 일의 발단도 조용형이 원정 경기에서 어리버리한 수비를 하며 수차례 수비 실책을 저지른 것이었다. 감정 싸움이 아니라, 수비 실수를 만회하려다 저지른 경고가 사건의 시발점이 됐다. 조성환 감독은 중요한 경기마다 조용형을 기용했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
2018년 3월 10일 경남 FC와의 원경 경기에서는 네게바를 팔꿈치로 찍어 퇴장당했다.
2018 시즌을 마지막으로 계약이 만료되면서 제주 유나이티드를 떠나게 되었다.

2.5. 제주 유나이티드 3기


2019시즌 중반 플레잉 코치로 제주에 복귀하였다.
2019시즌 끝으로 제주 유나이티드 가 강등되고 FA로 팀을 떠나게 되었다.
그러던 중 2020시즌 여름에 조용히 은퇴를 밝혔다.#

3. 국가대표


곽태휘는 1년에 반 이상을 침대에서 보내는 유리몸, 김형일은 지나치게 거친 플레이와 감정조절 미숙이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기에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었다. 물론 국대팬들이 그런 사정 생각하며 살진 않아서 2010년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 경기에서 삽질을 거듭해 미치도록 까였다. 특히 2010년 잠비아전에서는 볼 적응, 잔디 적응 문제가 겹쳐 그야말로 뉴캐슬 시절의 3B가 한몸에 빙의한 듯한 수준낮은 경기력을 보여주었다. 이런데도 허정무 감독은 조용형을 중용했는지라 허정무의 양아들 허용형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2010년 2월 10일 중국 쇼크때도 중국선수들의 피지컬과 개인기에 개발살나며 패배의 일등공신이 되어 자동문 소리까지 들으며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8] 팬들은 당시 파리아스 감독의 포항에서 잘나가던 황재원-김형일 라인을 부르짖으며 조용형을 성토했다. 대회 내내 1실점도 하지 않은 중국 수비수들을 제치고 동아시아대회 최우수 수비수로 선정되었는데 덕분에 더 욕을 먹었다. 그러나 황재원은 월드컵 전에 열렸던 에콰도르와의 친선경기에서 수차례 삽질을 했고, 과거 이라크전에서 자살골을 넣은 사실이 다시 부각되면서 호의적인 평가는 다소 주춤했다. 물론 황재원을 옹호하는 이들은 꾸준히 기용된 조용형, 강민수에 비해 부여받은 기회가 훨씬 적었을 뿐 실제로는 조용형 정도는 누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9]
이후 곽태휘가 벨라루스와의 평가전에서 곽태휘가 부상당하며 강민수가 선발되고 황재원은 앞서 말한 대표팀에서 잦은 실수와 수원 이적후 급격한 폼저하로 탈락해 월드컵 출전 센터백 명단은 조용형, 이정수, 김형일, 강민수 4명으로 확정되었다. 2010시즌에는 박경훈 감독의 지휘아래 다시 태어난 제주 철벽 수비진의 선봉장으로 활약했다. 이해 실점률은 리그 최하위권으로 준수했다. 이로서 전 시즌 제주의 수비력 문제는 단순히 수비수들만의 문제가 아니었음이 증명되었다.
남아공 월드컵에선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의 부동의 주전으로 활약했다. 1차전 그리스와의 경기에서는 이정수와 짝을 이루어 중앙수비수로 나섰고, 정말 온몸으로 처절하게 막아내며 대한민국의 승리에 공헌했다. 선제골 이외에는 별다른 활약이 없었던 이정수의 몫까지[10] 혼자 다 해내고 언론과 팬들에게도 많은 칭찬을 들었다. 비록 2차전에서는 세계 최고의 공격수들로 이루어진 아르헨티나의 공격진에게 도륙당했지만 3차전부턴 다시 괜찮은 모습을 보이며 16강 진출에 공헌했다.[11]
허정무 감독이 월드컵을 끝으로 사퇴하고 조광래호 체제로 들어서면서 부상에서 복귀한 곽태휘와 월드컵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한 이정수, 홍정호김영권같은 홍명보 올림픽 대표팀 감독 아래에서 길러진 젊은 수비수들이 중용받으면서 조용형은 주전 경쟁에서 서서히 밀려났다. 이후 2010년 10월 일본과의 친선 경기에서 포어 리베로라는 생소한 포지션에서 뛰었으나 이에 적응하지 못하고 욕이란 욕은 다 먹었고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이후로는 대표팀에서 제외되었다.
이후 최강희호 이후 2012년 5월 스페인과의 친선경기에서 오랜만에 대표팀에 복귀했지만 2019년 현재 이 경기가 조용형의 대표팀 마지막 경기이다.
[1] 4일 있었다[2]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앞두고 국가대표팀 경기에서 잦은 삽질과 수준 낮은 경기력을 보여주었음에도 불구하고 허정무 감독의 신임을 받아 계속 국가대표팀에 발탁되어 허정무의 양아들 허용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3] 절대 나쁜 뜻이 아니다. 조용형의 수비를 칭찬하는 말.[4] 노쇠화 기미가 보이는 박진섭을 대신해 풀백으로 실험했다가 기대 이하의 활약을 보이자 그냥 벤치에 박았다. 애초 전형적인 커맨더형 센터백으로 발이 느리고 피지컬이나 대인마크에 강점을 보이는 것도 아니라서 풀백으로는 부적절했다.[5] 2012년 이후로는 제주 유나이티드 후배인 홍정호가 이런 말을 듣고 있다.[6] 조용형은 2009년 2월 남아공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이란과의 원정경기에서 부상해 왼쪽 무릎관절 연골판의 3분의 2 이상을 절제했다. 이어 제 2국민역으로 병역처분 변경을 신청했다. 하지만 병무청이 정밀신체검사 결과 현역병에 해당하는 3급으로 판정됐다며 변경처분을 거부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제2국민역의 경우 군인으로는 복무가 불가능한 대상자들이다.[7] 이와 함깨 백동규의 징계도 3개월에서 2개월로 경감 되었다. 단, 조용형은 1년의 유예기간 동안 동일 행위로 징계를 받으면 3개월 추가 정지를 받게 된다.[8] 다만, 중국 쇼크는 참패한 내용이기는 했지만 전체적으로 팀이 리빌딩 단계였고 익숙하지 않은 포지션을 시험해보기 위한 수단으로 여겼었다. 물론, 그렇다고해서 당시 허정무 감독이 욕을 안 먹은 것은 아니다.[9] 이런 평가는 황재원이 포항을 떠나 리그에서도 삽질을 거듭하면서 사라졌다.[10] 그래도 이정수는 골을 넣었으니 어느 정도 봐줄만한 활약이었다.[11] 그래서 당시 자동문으로 욕먹던 조용형-강민수 라인이 사실은 강민수가 원인이었고 조용형은 피해자였다라는 의견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