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빈

 

'''대한민국 국회의원 (광주 광산구 갑)'''
제18~20대
김동철

'''제21대
이용빈'''

''예정''

'''대한민국 제21대 국회의원
이용빈
李龍彬 | Lee Yong Bin
'''
<colbgcolor=#004ea2> '''출생'''
1964년 12월 15일 (59세)
전라남도 광주시 (現 광주광역시 동구)
'''거주지'''
광주광역시 광산구
'''본관'''
전주 이씨
'''종교'''
천주교 (세례명: 빈첸시오 아 바오로)
'''학력'''
광주남국민학교 (졸업)
숭의중학교 (졸업)
금호고등학교 (졸업)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의학 / 학사)
'''병역'''
육군 병장 만기전역
'''가족'''
배우자 김미영
'''소속 정당'''

'''지역구'''
광주 광산구 갑
'''의원 선수'''
'''1'''
'''의원 대수'''
21
'''소속 위원회'''
국회운영위원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현직'''
제21대 국회의원
제21대 국회 더불어민주당 원내부대표
더불어민주당2050탄소중립특별위원회 산업분과 간사
더불어민주당국난극복 미래전환 k-뉴딜위원회 위원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위원
더불어민주당소확행특별위원회 위원
더불어민주당 6.15남북공동선언20주년특별위원회 위원
더불어민주당 5.18 40주년 특별위원회 부위원장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위원
더불어민주당 광주광역시당 광산구갑 지역위원장
'''경력'''
국민주권선거대책위원회 광주공동선대위원장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자문위원
광주이주민건강인권센터 이사장
시민플랫폼 나들 대표
안병하 치안감 기념사업회 이사장
광주외국인노동자건강센터 이사장
광주비정규직센터 이사장
이용빈가정의학과의원 원장
'''SNS'''


1. 개요
2. 생애
3. 정치 활동
4. 수상 내역
5. 선거 이력
6.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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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정치인이자 의사이다.

2. 생애


1964년 12월 15일, 전라남도 광주시 (現 광주광역시) 에서 태어났다. 동구에 있는 광주남초등학교, 남구에 있는 숭의중학교, 북구에 있는 금호고등학교,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하였다.
어린 시절부터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일을 하기를 원했기에 군인의 길을 걷고자 하였던 그는 육군사관학교를 지원하여 합격하였다. 그러나 군사독재 시절이었던 당시 육군사관생도는 많은 명예와 성공을 보장받을 수 있는 신분이었음에도, 군사독재 권력의 부당함과 폭력성에 대한 개혁 의지를 느끼고 있었던 그는 생도로서의 신분과 성공을 향한 쉬운 길을 스스로 포기하고 학교를 나와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에 다시 진학하게 된다.[1]
1985년 전남대학교 의대에 진학하여, 학생운동에 전격적으로 발을 들이게 되었는데, 가장 소란했던 87년 6월 정국 당시에는 전남대학교 총학생회 부회장으로서 투쟁에 앞장섰다.
대학교 졸업 후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고 의사로 활동하였다. 2001년 광산구 월곡동에 이용빈가정의학과의원을 개업하였고 마을 주치의로서 지역 노인복지관 등을 정기적으로 방문하여 의료봉사를 펼쳤다. 광주광역시 독거 노인, 외국인 노동자, 빈곤층 청소년들을 진료하였고 '광주외국인노동자건강센터(현 광주 이주민 건강센터')의 이사장으로 10년 동안 200여 명의 의료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사회적 약자들을 돌보아왔다.

3. 정치 활동



3.1. 제20대 국회의원선거


2016년 당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당대표로부터 더불어민주당으로의 영입제안을 받았으며, 이에 수락함으로서 호남영입인재 1호 인사가 되었다. 이후 광산구 갑 지역구에 출마하였다. 보수여당 심판론에 걸맞는 민주화운동 경력, 사회적 약자를 직접 돌봐온 의사로서의 이미지 , 사회참여 경험에서 만들어낸 탄탄한 공약으로 정치신인치고는 내세울 것이 많은 후보였으나 국민의당이 촉발한 반민주당 정서에 휘말렸다. 결국 더불어민주당을 탈당해 국민의당 후보로 출마한 다선의원 김동철에게 밀려 낙선하였다.

3.2. 제19대 대통령 선거


20대 총선 낙선 후 더불어민주당 광주광역시당 광산구 갑 지역위원장을 맡았다. 또 제 19대 대통령선거 당시 문재인 후보의 선거를 위한 '광주국민주권선거대책위원회' 광주공동선대위원장을 맡았으며, 광주의 꿈 이루기 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정권교체를 힘껏 지원하였다.

3.3. 문재인 정부 시기


국민의당의 호남권 약진 이후 무너진 광주광역시더불어민주당 조직과 지역위원회 내부 재건 활동을 전개하였다. 이 과정에서 혁신적인 모습과 미래 지향적인 당 조직 운영 정책을 인정받아 2019년 더불어민주당 소속 지역위원회 중 활동 최우수 지역위원회에 선정되어 당대표로부터 특별포상을 받기도 하였으며, 조직 운영의 투명성과 왕성한 활동력을 역시 인정받아 같은 해 2월 이해찬 당대표로부터 조직 당무감사 최우수 지역위원회 표창을 연이어 받기도 하였다.
2019년 초 광주지역 정책 단체인 '포럼 광주의 빛' 출범식에 박원순 서울시장,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 등과 함께 초청받아 토크콘서트에 출연함으로서 이들과의 끈끈한 정치적 관계를 대내외에 알림으로서 광산구 주민들의 많은 관심을 끌기도 하였다. 한편 이들이 출연한 토크콘서트를 위해 박광온 최고위원, 송영길 국회의원, 송갑석 국회의원, 서삼석 국회의원 등이 직접 방문하고, 이개호 농림부장관은 축전으로, 표창원 국회의원, 박홍근 국회의원, 남인순 최고위원, 김해영 최고위원 등이 축하 영상으로 화려한 응원을 보내었다.
토크 콘서트 출연 이후에도 지속적으로 박원순 서울시장 등과는 정치적, 정책적 동반자 관계를 가져왔으며, 박원순 서울시장이 의지를 가지고 추진중이었던 제로페이에 대한 당 차원의 홍보에 앞장서서 지역상권 결제시스템의 혁신과 제로페이 활성화를 위한 캠페인을 진행하였고, 그 결과를 인정받아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당대표로부터 또 한번의 특별 포상을 수여받기도 하였다.

3.4.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제21대 총선 광산구 갑 지역구 경선에 참가했다가 이석형 후보에 밀렸으나 이석형 예비후보가 금품 살포 혐의로 검찰에 고발당하고 압수수색까지 진행되어 이용빈이 다시 공천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지난 광산 갑 국회의원 선거 토론회에서 정의당 나경채 후보가 이용빈 후보가 보유하고 있는 토지의 값어치를 축소하여 발표하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이용빈 후보가 상당히 날카로운 질문이며 이는 모두 실수이고 고의나 목적이 있었던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한 나 후보는 가입하고 있는 보험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면서 국가 예산을 제대로 다룰 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재산에는 큰 관심이 없다고 답변했다. 의도적으로 재산을 축소하여 신고하면 허위 사실 유포에 해당하므로 국회의원에 당선된다 하더라도 의원직 상실이 거의 확실하다. 당선 이후 재판 및 조사를 받게 되면 의정 활동에 차질이 생기며 의원직 상실 판결이 나면 광산구 갑지역 유권자들은 재보궐 선거를 치뤄야하고 여러모로 복잡해지기 때문에 나경채 후보가 이용빈 후보의 후보직 사퇴를 주장했다.
험난했던 당 내 경선과는 다르게 본선 결과 여론 조사보다 더 높은 득표율을 얻으며 현 지역구 국회의원인 민생당 김동철 후보를 압도적으로 누르고 당선되었다. 여담으로 월곡동 의사 시절 친절했으며 제20대 국회의원 후보자 시절부터 각종 지역행사에 모두 참석했으며 중간에 가지 않고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한다. 지역구 관리를 상당히 잘했다 볼 수 있다.

4. 수상 내역


  • 2019 더불어민주당 제로페이 전국 확산을 위한 캠페인 당대표 특별포상
  • 2019 더불어민주당 조직 당무감사 최우수 당대표 특별포상
  • 2019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회 우수활동 사례 공모전 민주대상
  • 2019 보령의료봉사상
  • 2018 대한민국 자랑스러운 한국인 사회부문 공로상
  • 2018 광주광역시의사회 무등의림상 봉사상
  • 2014 대한가정의학회 올해의 가정의 상
  • 2010 보건복지부장관 표창
  • 2009 대한가정의학회 자랑스러운 개원 회원상

5.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광주 광산 갑

26,366 (34.23%)
낙선 (2위)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67,482 (77.77%)'''
'''당선 (1위)'''
'''초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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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화로 후에 지인 중 한 사람이 이 일에 대해 물으며 후회는 없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그때 내가 군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면 군부독재의 아래에서 권력의 손과 발이 되어 사람들을 밟고 그 위에 서야 했겠지만, 의사의 길을 걷게 되었기에 사람들을 살리는 데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었기에 후회함은 없다.”라고 답변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