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하

 

'''이은하의 주요 수상 이력'''
[ 펼치기 · 접기 ]

'''가요대상 대상'''[8]
김훈
혜은이
'''모래탑
당신만을 사랑해'''
(1977년)

최헌
'''이은하'''
오동잎
'''밤차
(1978년)'''

조경수
이은하
'''행복이란
아리송해'''
(1979년)
최헌
이은하
'''오동잎
밤차'''
(1978년)

조경수
'''이은하'''
행복이란
'''아리송해
(1979년)'''

조용필
윤시내
'''창밖의 여자
열애'''
(1980년)
조용필
윤시내
'''나는 너 좋아
공부합시다'''
(1983년)

김수철
'''이은하'''
못다 핀 꽃 한 송이
'''사랑도 못해본 사람은
(1984년)'''

조용필
정수라
'''그대여
도시의 거리'''
(1985년)


'''이은하'''
李銀河Lee Eun Ha
'''본명'''
이효순
'''출생'''
1961년[1] 3월 29일 (63세)
서울특별시
'''가족'''
부모님, 사촌동생 김정은
'''종교'''
불교
'''데뷔'''
1973년 '님마중'
1. 개요
2. 가수 활동
3. 대표곡
4. 정규 음반
5. 출연작
5.1. 영화
5.2. 드라마
5.3. 예능
5.4. OST
5.5. CF
6. 수상 경력
7. 가요 프로그램 1위
8.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가수.

2. 가수 활동


1973년에 <님마중>으로 데뷔하였다. 브라운관에는 1975년 동양방송에서 그해 발표한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으로 처음 모습을 보였는데, 그전에는 미성년자의 방송 출연이 엄격해서 억지로 나이를 올려서 출연한 것이다. 첫 데뷔곡이 방송을 타지 못했고, 이은하 본인도 밤무대에서만 부를 수밖에 없어 그닥 유행세를 타지 못한 데 비해,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은 방송을 타자마자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특히 당시에 한영애를 제외하고 보기 드문 허스키한 여성 보이스로 내지르는 시원한 가창력에 연예계가 집중했다. 방송 풍조상 TBC 전속으로 활동했지만, 이후 문화방송 10대가수가요제에서 1977년 수상하면서 두 방송사를 넘나들며 광폭 행보를 벌였다. 같은 시기 유행했던 대스타 혜은이와 쌍벽을 이뤘던 최고의 여자 가수였는데, 음악의 성격이나 분위기가 서로 달라서 라이벌로 비교되지는 않았다. '''1977년 처음 MBC 10대 가수에 선정된 이후, 1985년까지 무려 9년 연속으로 선정되었다.'''
이후 <최진사댁 셋째딸>[2]과 <밤차>[3], <아리송해>, <봄비>, <당신께만>이 연속적으로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70년대 말에 이은하의 노래가 나오지 않는 곳이 없었다. 게다가 데뷔무대인 TBC는 당시 한국 방송계에서는 따라잡을 주자가 없을 정도로 쇼오락 프로그램 부문에서는 최상위 품질을 자랑하던 곳이었고, MBC는 일본의 후지테레비와 제휴하고 있었기 때문에 TBC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름대로 쇼오락 부문에서 맹추격을 하고 있었다. 이 두 곳의 방송국을 확 잡고 있었으니, 대중에게 인기를 끄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상승가도를 달리던 이은하에게 갑자기 닥쳐온 시련은 신군부에 의해 자행된 1980년 겨울의 언론통폐합이었다. 이로 인해 동양방송과 동아방송이 한국방송에 강제 통폐합 되었고, 방송국이 하나의 소속사를 겸하던 당시 풍조상 소속사가 하루 아침에 사라진 것이나 다름 없는 이은하에게는 크나큰 충격이자 슬픔이었다. 그밖에 최진희, 한혜경, 정윤희, 이순재, 사미자, 송해 등 TBC 소속의 유명 톱스타에게도 어쩔 수 없는 현실이었다. 1980년 11월 30일 자정을 기해 동양방송은 송출종료 후 모든 사업이 KBS로 이관되었고, 이날 밤 고별특집방송을 통해 소속 연예인과 방송인들이 한자리에 모였는데, 이은하는 이 자리에서 방송 데뷔곡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을 부르다가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목이 메여 노래를 완창하지 못했다. 당시에 생방송에서 눈물을 흘리는 행위는 특별한 감정 상황을 제외하고는 제법 큰 방송사고였는데, 특히 생방송 스튜디오 방청석마다 신군부의 사복경찰 내지 사복요원들이 꼭 한 명씩 상주했었던 것을 생각하면 이은하의 처사는 "될 대로 대라"라는 일종의 항거였다.[4] 불쾌하게 여긴 신군부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알듯 이은하에게 출연정지 처분으로 보복했고, 바로 다음 날 12월 1일에 KBS에서 진행한 통합기념 특집방송에서는 출연이 제외되었다.[5]
그러나 출연이 재개된 이후에는 보란듯이 슬픔을 딛고 일어섰다. <겨울장미>와 <바람에 구름 가듯>을 통해 당당히 등장했는데, 1982년 조사된 연예인 인기랭킹에 따르면 이은하는 남궁옥분에 이어 2위로, 이미자, 혜은이보다 순위가 높았다. 산울림의 김창완이 작곡해 준 <사랑도 못해본 사람은>이 1984년 방송가 가요대상을 휩쓸고, KBS 가요대상까지 수상하면서 과거의 명성을 다시 되찾기 이른다. 이후 장덕이 작곡해 준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은 긴 곡명으로 유명세를 탄데다가, 팝발라드 형식에 이은하의 시원한 가창이 가미되어 기록적인 대히트를 기록하며 연예계 커리어의 정점을 기록했다.
1990년대 초반에 건설 관련 회사 사장이던 아버지가 빚보증을 잘못 서서 그로 인해 20억 원에 달하는 빚이 생겼으며, 90년대 당시 시세가 8억 원에 달하던 서울 자택까지 다 넘어가게 되었고 밤무대까지 뛰며 빚 아버지의 20억을 모두 갚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2015년에 다시 아버지로 인해 생긴 사채 빚이 50억 원에 달하게 되었으며, 파산 선고를 받아 면책 절차를 진행 중이다. #
빚을 갚기 위해 가수 활동을 무리하게 하다보니 허리 부상으로 스테로이드[6]를 계속 맞았는데, 그러다보니 부작용으로 쿠싱 증후군이 생겨 살이 30kg 이상 쪘다고 한다. # 이로 인해 현재는 상단의 사진과는 180도 다른 모습이다. 다만 지금은 감량에 성공하여 과거만큼은 아니지만 예전의 모습을 어느정도 회복했다.
이후 2020년 4월 25일 불후의 명곡 전설을 노래하다 가요톱10 골든컵 특집에 출연[7]하였는데, 비록 투병으로 인해 외모는 과거와 달라졌지만 여전히 녹슬지 않은 가창력을 보여주며 최종 우승을 차지했다. 이 날 그녀가 부른 곡은 임희숙의 대표곡 중 하나인 '내 하나의 사람은 가고'. 이후 2020년 10월 10일에 가요톱10 골든컵 특집 2편에 출연하였다.

3. 대표곡


  • 1976년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 1980년 11월 30일 동양방송 고별방송 때 이 노래를 부르다 눈물을 흘려서 3개월 동안 출연정지를 당한 적이 있다.
  • 1976년 최 진사댁 셋째 딸
  • 1977년 밤차
  • 1979년 아리송해
  • 1979년 봄비 - 당시 희대의 히트곡이었지만, 작곡가가 MBC 드라마를 염두에 두고 만든 곡이었기에 당시 KBS에선 방송금지였으며 이듬해 1980년부터 방송되었다.
  • 1979년 당신께만
  • 1981년 겨울장미
  • 1983년 바람에 구름 가듯
  • 1984년 사랑도 못해본 사람은
  • 1985년 다시는 사랑하지 않으리
  • 1986년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 1989년 돌이키지 마

4. 정규 음반


  • 1973년 1집 나의 별
  • 1973년 2집 알다가도 모를 일
  • 1975년 3집 고향
  • 1976년 4집 아카시아 꽃 필 때
  • 1976년 5집 아직도 그대는 내 사랑
  • 1977년 6집 안 오면 싫어
  • 1977년 7집 그 어느 날 밤
  • 1978년 8집 복순이
  • 1979년 9집 밤차
  • 1979년 10집 아리송해
  • 1980년 11집 초혼
  • 1980년 12집 사랑의 그림자
  • 1981년 13집 한 순간
  • 1982년 14집 네가 좋아
  • 1983년 15집 바람에 구름 가듯
  • 1984년 16집 사랑도 못해 본 사람은 - 해당 곡은 김창완의 작품집으로, 타이틀곡 전주에 긴기라기니 표절시비가 있어서 89년 베스트에 등장할 때는 재편곡된 트랙을 수록했다.
  • 1985년 17집 잊자
  • 1986년 18집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 - 장덕 작곡
  • 1987년 19집 여심
  • 1988년 20집 청춘
  • 1989년 21집 돌이키지 마 - 전영록 작사, 작곡
  • 1992년 22집 탈출
  • 1997년 23집 내게 미소를
  • 2007년 24집 드라마
  • 2012년 25집 내 노래

5. 출연작



5.1. 영화


  • 1982년 날마다 허물 벗는 꽃뱀
  • 1990년 영심이
  • 1991년 돈키호테 형래와 산쵸 특공대

5.2. 드라마



5.3. 예능



5.4. OST



5.5. CF



6. 수상 경력


  • 1977년 MBC 10대 가수상
  • 1978년 MBC 10대 가수상
  • 1978년 TBC 여자 가수상
  • 1979년 MBC 10대 가수상
  • 1979년 TBC 여자 가수상
  • 1979년 자랑스러운 성북 시민상 표창
  • 1979년 KBS 최고 가수왕상
  • 1980년 MBC 10대 가수상
  • 1981년 MBC 10대 가수상
  • 1981년 7월 23일~8월 20일 <가요 TOP 10> 5주 연속 1위 (한 순간)
  • 1981년 KBS 세계 가요제 우수 가창상
  • 1982년 MBC 10대 가수상
  • 1983년 MBC 10대 가수상
  • 1984년 MBC 10대 가수상
  • 1984년 제20회 백상예술대상 TV 부문 주제가상
  • 1984년 KBS 여자 가수상
  • 1985년 1월 13일~2월 10일 <가요 TOP 10> 5주 연속 1위, 골든컵 (사랑도 못 해 본 사람은)
  • 1985년 MBC 10대 가수상
  • 1985년 MBC 우리들의 스타상 인기 부문
  • 1996년 미주 한인회 중남부총연합회 감사패
  • 1998년 미국 애틀랜타 한인청소년센터 감사패
  • 2012년 3회 대중문화예술상 국무총리 표창

7. 가요 프로그램 1위


  • 1981년 한 순간 - 7월 23일 ~ 8월 20일 KBS 가요톱텐 5주 연속 1위
  • 1985년 사랑도 못해본 사람은 - 1월 13일 ~ 2월 10일 KBS 가요톱텐 5주 연속 1위

8. 여담



[1] 한동안 1958년생이라고 알려져 있었으나, 2007년에 1961년생으로 정정했다.[2] 민요를 기반으로 한 대중가요지만, 드럼 특유의 혼신의 박자 쪼개기와 경쾌한 반주로 인해 시대를 초월하는 힙함을 보여주는 곡이다. 조영남이 미국곡을 번안하여 수입했으나, 민요적 성격때문에 후에 민요풍으로 편곡되었다. 이은하 외에 많은 가수들이 커버할 정도로 유명세를 떨쳤다.[3] 이 곡에서 선보인 찌르기 춤으로 이은하의 유명세가 한층 강해졌다.[4] 게다가 당시 방송 상황은 출연진 모두가 미소 하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상당히 침울한 분위기였다.[5] 그밖에 함께 노래를 부른 박경애와 혜은이도 등장하지 못했다. 혜은이의 경우는 오히려 MBC에서 주로 활동했기 때문에 보복성이라 보기에는 어렵다. 이날 방송은 한국 방송사상 최초로 컬러방송이 정식 송출되었던 방송이다.[6] 당질 코르티코이드 종류로 염증을 잡아주는 만병통치약이라 불릴 정도로 효능은 좋지만, 부작용이 심한 편이라 절대 남발하면 안된다.[7] 불후의 명곡에는 주로 아이돌이나 2~30대, 뮤지컬 배우들이 출연하지만 이번 골든컵 특집에는 정수라, 김범룡 등 중견가수들이 출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