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도 마사히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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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964년 7월 19일 ~ (60세)
일본의 가수이자 배우다. 애칭은 '맛치(マッチ)'. 쟈니스 소속으로 현재 소년대 등과 함께 일본 남성 아이돌계의 왕고참격으로 대우받고 있다.[1]
2014년 최초의 쟈니스 50대 아이돌이 되었다. 2015년 12월에 데뷔 35주년을 맞았다. 이에 맞춰 신곡 大人の流儀를 발표하였으며 19년만에 홍백가합전 출전이 결정되었다.
레이싱이 취미이자 특기라서 직접 드라이버 겸 레이싱 팀 감독으로 활동하기도 한다. 스승은 일본에서 가장 빠른 남자인 '''호시노 카즈요시'''. 여담이지만, F3000 데뷔 당시 소속된 팀인 NAVI CONNECTION RACING TEAM의 감독은 배우 이시하라 프로모션의 배우인 타치 히로시였다.
1981년(제 32회)~1988년(제 39회), 1996년(제 47회), 2015년(제 66회) NHK 홍백가합전에 출장했다.(총 10회)
2011년 기준 총 판매량 1267만장.[2]
2. 활동
2.1. 데뷔 초기 (1979~1986)
1979년 드라마 '3학년 B반 킨파치 선생'에서 대중에게 처음으로 얼굴을 비췄고, 1980년 가수로 데뷔. 같은 소속사인 타하라 토시히코, 노무라 요시오와 더불어 '타노킨 트리오'[3] 로 불리우며, 특유의 거칠고 반항아적인 매력을 내세워 고 히로미, 사이조 히데키 등에 이은 최고의 남자 아이돌 스타로 등극했다.
남녀노소를 안가리는 그야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맛치 컷이라는 헤어스타일을 전국적으로 유행시키기도 했으며 스니커, NIKE등을 일본에서 최초로 유행시킨 장본인이기도 하고 전국적으로 맛치 친위대가 조직적으로 결성될 정도로 1980년대 초반을 뒤흔든 그야말로 레전드.
그의 최대 히트곡은 단연 ''''ギンギラギンにさりげなく''''(1981).[4] 일본 가요 청취가 거의 금지되다시피 했던 1980년대 대한민국에도 부산 인근을 시작으로 그당시 중-고등학생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암암리에 전파되어 롤러스케이트장 등에서 쉽게 들을 수 있는 노래였다.[5] 자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고.
2.2. 일본 레코드 대상 수상 (1987)
1987년, 당시까지만 해도 일본의 음악상 중 최고의 권위를 자랑했던 일본 레코드 대상에서 싱글 <愚か者(어리석은 자)>가 금상을 받으며 대상 후보로 올라서게 되었다[6] . 하지만 시상식 바로 직전 정체불명의 괴한에게 '엄마의 유골은 내가 가지고 있으니 레코드 대상을 사퇴하지 않으면 유골을 돌려주지 않겠다'는 협박 전화를 받았고 콘도 마사히코는 충격과 고민에 빠졌으나, '여기서 포기하고 대상을 수상하지 않는다면 하늘에서 엄마가 실망할 거다'라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평소 엄마가 자신의 연예 생활에 적극 지원을 했던 점을 고려해 결국 시상식에 참석했다[7] . 지금까지도 어머니의 유골은 돌려받지 못했으며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유골 사건을 제외하고 보면, 이때 수상한 싱글의 성적이 객관적으로 대상을 받을 성적은 아니었기 때문에[8] 지금까지도 여러 논란이 있다. 어쨌든 쟈니스가 지금까지도 시상식에 불참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원인 중에 하나가 이 사건이 아닌가 하는 추측이 있다.
쟈니스 사무소에게 있어서는 전설적인 인물이라고 볼 수 밖에 없는 것이, 당시 쟈니스는 고 히로미가 쟈니스 사무소의 연습생인 쟈니스 주니어들을 이끌고 바닝프로덕션으로 이적한 후 위기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 데뷔해서 '''쟈니스 최초'''의 밀리언셀러[9] 를 기록하고, '''최초'''의 일본 레코드 대상 수상을 이루어냈기 때문이다.[10] 사실 데뷔 때부터, 일본 레코드 대상 최우수신인상을 타는 등 상당히 인기가 높았던 아이돌이었다. 더불어, 2010년에 동 시상식 최우수가창상까지 수상하여, '최우수신인상-최우수가창상-대상'이라는 레코드 대상의 그랜드슬램을 달성하였다. 단, 이 2010년의 수상은 꽤 뜬금없는 것이라 논란이 있었다.
2.3. 이후
레코드 대상 수상 당시에는 이미 인기가 시들해져 싱글 판매량이 15~20만장 가량에 그치는 상태였다. 수상 이후에도 3~4개월 간격으로 싱글을 발매하며 활동하지만 7년간 발매한 15개의 싱글 중 3개만이 판매량 10만장을 넘으며 소소하게 커리어를 이어나갔다. 그러나 1996년 드라마 <銀狼怪奇ファイル(깅로 괴기 파일)> 의 주제곡으로 차용된 싱글 <ミッドナイト・シャッフル(미드나이트 셔플)> 이 큰 인기를 끌며 70만장 가량의 판매량을 달성해 연간 차트 34위까지 올라가는 등 잠시나마 제 2의 전성기를 누렸고 이후에는 활동이 뜸해져 평균 2~3년 주기로 싱글을 발매하며 활동하는 중.
3. 사생활
3.1. 나카모리 아키나와의 관계
1980년대 전설적인 여성 아이돌 나카모리 아키나와 연인 관계였었다. 두 사람 다 동시대에 활동했던 톱스타였기 때문인지, 당시 TV프로그램에서는 대놓고 이 두 사람을 엮거나 같은 샷에 잡아주는 일이 많았다. 그가 레코드 대상을 수상했을 때에는 울고 있는 아키나까지 카메라에 잡아주기도.
하지만 중화권에서는 1980년대 중반 경 아시아의 대스타 매염방[11] 과 연인관계였던 걸로 매우 유명하다. 그녀가 2003년 사망 직전에 살면서 가장 사랑했던 남자로, 그를 언급하며 보고 싶다는 말을 남겼다. 그 시기가 겹쳤으므로 당대 중일 최고의 스타 둘과 양다리를 걸친 셈.
아키나가 난파선(1987년)을 부를 무렵부터 사이에 이상이 있었다는 소문 등이 있으나 레코드 대상 수상 장면[12] 을 보면 꼭 그런 것도 아닌 것 같다. 그런데 마사히코는 갑자기 아키나를 차버렸고, 가족 문제를 비롯해 갖가지 문제들로 멘탈이 끝까지 몰렸던 나카모리 아키나는 이 일로 자살을 기도했다.
다만 이 사건은 찌라시에 의해 상당 부분 과장되었는데, 흔히 알려진 것과 달리 '''콘도가 바람을 피운 대상은 마츠다 세이코라는 설은 사실이 아니다.'''[13] 다만 두 사람의 결별과정에서 금전문제 및 '쟈니스가 약혼발표라고 나카모리를 불러놓고 강제사과를 시켰다'는 의혹은[14]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
1994년에 평범한 여성과 결혼했었으며, 2007년에 득남에 성공했다. 아들의 이름은 코스케(轟丞).
3.2. 후쿠시마 팬더 발언
최근에는 후쿠시마 원전 사태가 벌어진 후 쟈니즈에서 이 지역의 구호를 위해 'Marching J'라는 이름으로 모금을 실시했는데, 이 돈을 중국에서 '''팬더'''를 빌리는데 쓰자고 해 일본 네티즌들로부터 욕을 바가지로 얻어 먹었다. 드는 비용이 5년에 수십억'''엔'''. 팬더를 유치해 관광객을 불러모아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고자 하는 거라고 의도를 밝혔는데... 정말 답이 없다.[15]
3.3. 쟈니즈 후배들에 대한 꼰대짓
쟈니즈 후배의 고정방송에 게스트로 출연해 거들먹한 태도로 험담을 하는 등 그가 게스트로 출연한다 해도 그 팬들에게는 그리 달갑지 않은 대상이다. 예로 솔로 활동이 많아서 본인들도 걱정이 많던 시절의 KinKi Kids의 고정방송에 출연해 '''"언제 해체할 거냐"'''는 등의 발언을 한다거나 연말 음악방송에 나와서 다른 쟈니즈 멤버들을 자기 들러리로 세우고는 혼자 시간을 다 까먹는다거나 하는 일도 있었다. 그래서 일부 쟈니즈 팬들에게서는 '''쟈맛치'''[16] 라고 불리며 그가 게스트로 출연한다는 소식을 듣는 팬들은 한탄을 금치 못한다.
2014년 연말 FNS가요제로 쟈니즈 전 팀이 모이는 기적같은 특방이 잡혔지만, 정체는 '''콘도 데뷔 35주년 기념 스페셜 메들리'''로, 콘도 노래만 7곡 완창에 25분동안 줄창 콘도 노래만 부를 계획이라는게 발표되어 타 그룹 팬들을 분노케 했다. 회사 입장에서야 콘도를 밀어줄 수 있다지만, 사실상 콘도 디너쇼를 위해서 후배들을 모조리 들러리 세우는 격이니...[17]
2015년 데뷔 35주년 기념으로 신곡 발표 및 홍백가합전에도 출전하게 되면서 12월 들어 쟈니스 후배들이 진행하는 프로그램을 그야말로 모두 투어중이다. 이 기세로 새해 1월 1일 새벽 쟈니스 카운트다운 콘서트도 ''''또'''' 접수하러 올 가능성이 높다는 루머가 돌고 있어 쟈니스 팬들은 단체로 멘붕하는 중.
그리고 2020년에도 FNS가요제 출연이 예정되어 팬들이 멘붕했으나 아래 불륜 사건으로 인하여 출연 자체가 취소되었다.
3.4. 2020년 불륜 논란
2020년 11월 11일 기어이 사건이 터졌는데 자신보다 25살 연하인 31세 여성과 5년간 불륜 관계를 이어왔으며 10월 말에 두 사람이 오키나와 골프 여행을 다녀왔고 6월에도 도쿄 크루즈를 즐겼다는 의혹 기사가 터졌다. 심지어 대다수 미디어가 이에 대해 보도하지 않아 손타쿠 논란으로까지 번지는 중. #1 #2
콘도의 불륜 의혹이 기사화되자, 과거 업보 및 억지 푸쉬, 와타베 켄, 히가시데 마사히로에 비해 과한 미디어 쉴드 논란까지 겹쳐서 쉴드여론이 없다.[18] 쟈니스 팬들은 물론 네티즌들도 얼른 쟈니스에서 짐 싸서 꺼지라는 반응.
11월 17일 쟈니스 사무소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불륜을 인정하며 무기한 활동 중단을 발표했으며, 연예인 이외의 카레이싱 관련 활동[19] 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1 #2 #3
게다가, 그간 든든한 방패 역할을 해왔던 후지사와 메리 야스코 명예회장에게 "맛치답게 책임을 져라"라고 들은 걸 보면 사실상 이번 활동중단은 정리해고에 준하는 조치라고 봐도 된다. 실제로도 2019년 이후 오래 사무소에 있었지만 성과를 못 낸 연예인들이 퇴사하고 있다.
4. 기타
- 호불호가 갈리는 외모같아도 20대 시절은 꽤 미남이다.
- 가수치고 가창력이 심각하게 안 좋아, 데뷔한 지 30년이 지나도 평가가 좋지 못하다.
- 안잣슈의 코지마 카즈야가 이 사람을 동경해서 쟈니스에 원서를 냈다. 문제는 코지마는 상술한 2020년에 불륜 스캔들이 터진 연예인과 모두 관련이 있었다는 것. 와타베 켄은 코지마의 파트너고, 히가시데 마사히로는 코지마랑 같이 광고를 찍었다. 코지마 본인도 다른 사람들의 불륜 사건 때문에 광고가 강판되었다며 "혹시 내가 불륜남들을 끌어들이는 사람인건가?"라며 어이없어했는데 연말에 동경했던 아이돌이 또 터졌다. (...)
[1] 그러나 안습한 가창력, 본인의 처신 및 미디어, 사무소의 과도한 쉴드 문제로 인해 실제로 쟈니스 팬덤 내에서 받는 취급은 왕고참이 아니라 사고치고 전역 직전인 말년간부급이다(...).[2] 뮤직스테이션 2011년 1월 14일 방송 '사상 최강 아이돌 BEST 50' 참고.[3] 3인의 이름 앞글자를 따서 '타노킨'이다. 콘도의 近은 원음이 '킨'이라서..[4] 읽으면 '긴기라긴니 사리게나쿠'. 대충 '화려하고 은근하게' 정도의 뜻이다. 후에 혼성 그룹 큐빅이 '기나긴'이라는 이름으로 리메이크를 하였다.[5] 기막힌 외출 시즌 1에서 김준호가 대전롤러장 출신이라고 언급하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6] 금상 수상곡 중 대상이 결정된다[7] 대상 수상까지는 이 같은 사실을 알리지 않았기에 대중은 이를 모르고 있었다.[8] 최종 판매량 21만장으로 연간 35위에 그쳤다.[9] 데뷔작 '스니커 블루스'[10] 그가 수상한 이듬해인 1988년에도 쟈니스의 히카루GENJI가 대상을 수상.[11] 난파선을 포함한 아키나의 여러 노래를 커버했었다(...)[12] 영상은 난파선 항목에 링크되어 있다.[13] 실제로 스캔들 당시 마츠다와 콘도는 다른 스탭들과 동석한 상태였고, 나카모리의 자살기도는 해당 스캔들 보도에서 약 반년 뒤에 일어나 시간차가 컸다. 나카모리와 마츠다의 사이도 함께 방송에 나와 서로의 노래를 부를 만큼 원만한 편.[14] 나카모리는 이미 자살소동에 대한 기자회견을 한 바 있었고, 회견장에는 사과발표가 아니라 약혼식 등 경사스러운 일애 쓰는 금병풍이 설치되어 있었다.[15] 이게 지역 주민들 입장에선 황당한 소리일 수밖에 없는 게, 일본에서 90년대 버블경제 붕괴 이후 수많은 기초자치단체와 지역기업을 재정위기로 몰고 간 게 쓸데없는 대규모 테마파크, 박물관, 리조트의 건설이다.[16] 방해된다라는 뜻의 일본어인 '쟈마(邪魔-じゃま)'와 그의 애칭인 '맛치(マッチ)'를 합쳐 부르는 명칭이다.[17] 그래서 이 디너쇼의 말미에 히라이 켄이 인도인 분장을 하고 인도인 백댄서들과 함께 공연하면서 씬 스틸러스러운 모습을 보이자 시청자들이 대환영했을 정도다. 당연히 본인 띄우려고 이런 꼰대짓을 벌인 콘도의 공연은 깔끔히 묻혔다(...). 그야말로 죽쒀서 개준 꼴이 된 것이다.[18] 이에 쟈니스 팬들은 타키자와 히데아키의 멘탈을 걱정했다.[19] 사실 이게 본업이라, 카레이싱 관련 활동중단 발표가 나오기 전까지의 반응이 눈가리고 아웅한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