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성(1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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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鍾聲
1924년 05월 22일 - 1995년 12월 17일
대한민국정치인, 행정가, 기업가이다. 충남방적의 창업주이다. 1924년 충청남도 예산군에서 태어났다. 호는 청운(靑雲)이다. 본관은 전의 이씨, 종교불교이다. 5년제 대전중학교(현 대전고등학교), 경성법학전문학교(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를 졸업하였다.
1970년 충남방적을 창업하고 면방업계 거인으로 성장했다. 충남방적의 성공에 힘입어 80년대 회사를 그룹체제로 발전시켰다. 당시 충남방적은 30대 그룹군, 재계 순위 18위#까지 오르며 90년대 대기업으로 지정되었다.
부친 이기세는 네 번의 도지사를 역임하였다. 어머니와 조모 모두 세도가 안동 김씨 가문의 후손으로 문청산리 전투의 독립투사 김좌진 장군도 그의 외가쪽 인물 중 한 사람이다.
정석모 전 내무부 장관과는 사돈으로 정석모의 차남 정진석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그의 막내사위(막내딸 이미호의 부군)이다.

1. 기업인


이승만 정권 후기와 제2공화국 장면 내각 때 대한민국 법무부, 내무부(현 행정안전부)에서 근무하였다. 내각수반 비서실장을 끝으로 16년의 공직생활을 청산하고 1965년 고모부 민덕기[1]#씨가 경영하던 조선맥주주식회사 전무이사로 기업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1970년 독자적으로 국안방적을 인수해 충남방적으로 개명하고 충남방적 회장을 역임하였다.
1976년 대성모방주식회사와 한흥증권을 인수해 사업을 확장하고, 1977년 한일건설진흥주식회사를 설립하고 한국이연공업주식회사를 인수하며 1978년 창업 8년만에 1억불 수출탑을 수상했다. 이는 국내 기업체들 중 수출 랭킹 17위로 기록됐는데 당시 섬유, 그것도 면제품 단일 품목으로 1억불 수출을 이룩한 것은 재계에서도 놀라운 일이었다.
1979년 충남방적은 확보했던 27만평의 대지에 대전공장을 준공하고 국내 최대의 섬유류 제조업체로 자리매김한다. 그 해 2억불 수출탑을 수상했다.
충남방적은 일찌감치 글로벌 시장에도 진출한다. 1980년 LA 사무소에 이어 미국 중동부지역의 시장확대와 뉴욕에 수출입업무 사무소 개설을 시작으로 일본, 홍콩, 싱가포르, 방글라데시, 호주, 이탈리아, 서독 등 총 9개의 해외 지사망을 갖게된다. 1982년 미국에 충남방적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1987년 3억불 수출탑을 수상했다. 1988년 일본 오사카에 충남방적 현지법인을 설립하고, 일본 이연과 합작해 대한이연주식회사를 설립했다. 1992년 대규모 기업집단으로 지정되었다.

2. 정계진출


정계에도 진출했다. 1981년 제1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국민당 후보로 충청남도 예산군-홍성군-청양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민주정의당 최창규 후보와 동반 당선되었다. 당시 야당 출신으로 최고득표로 당선되어 한일의원연맹 부회장, 한국국민당 부총재직과 내무분과위원을 지냈다.
1985년 제1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국국민당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정의당 최창규 후보와 민주한국당 김성식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3. 교육 사업


평소 배움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항상 주어져야 한다는 것을 지론으로 삼았던 이종성은 고향 후학인재양성에도 힘썼다.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 근로자들의 '배움의 길'을 강조했다. 1973년 국내 최초 공장부설 학교인 천안 청운여고를 설립, 전액 무상으로 생산직 근로자들에게 배움의 길을 열어주었고 이후 에산 예덕실업고등학교, 대전 충일여중고, 오산 수영여고 등을 설립해 7천여명의 생산직 근로자들이 배우며 일할 수 있도록 했다. 1977년 2월 설립된 청운장학회에서 매년 2박80여명에게 3천여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1983년 혜전전문대학(현 혜전대학교)을 설립하고 1982년부터는 6년간 자신의 모교인 서울대학교 총 동창회 부회장을 지내고 1984년 제19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총동창회회장,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낙산장학회 이사장을 지냈다.
1994년 충남산업대학교(현 청운대학교)를 설립해 육영사업을 추진하던 중, 1995년 12월 17일 사망했다.

4. 상훈


산업계에 기여한 공로로 정부로부터 1973년 석탑산업훈장, 1974년 동탑산업훈장, 1975년 은탑산업훈장, 1977년 금탑산업훈장 등을 받았다.


[1] 학교재단법인 풍문학원의 설립자이다. 명문가의 후손답게 종로 관훈동의 태화관 건너편에 99칸짜리 저택 관훈동 민씨가옥에서 살았다. 동경제대 경제학부 출신이다. 할아버지는 본래 육군참령이었다 은행업에 뛰어든 조선 실업계의 유명한 갑부 민대식(閔大植)이다. 조선 최고의 갑부 중 한 사람으로 귀족 출신으로는 거의 유일하게 대자본가로 변신에 성공한 경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