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대한민국 국회의원 (충남 공주시·부여군·청양군)'''
''선거구 개편''
박수현[1]
이완구[2]

'''제20·21대
정진석'''

''현직''
'''정진석의 역임 직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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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 '''비서실장'''
''' 박희태 의장 '''
''' 강창희 의장 '''
25대
윤원중

'''26대
정진석 '''

27대
김연광

'''대통령실''' '''정무수석비서관'''
'''이명박 정부'''
3대
박형준

'''4대
정진석'''

5대
김효재

'''대한민국 국회 정보위원장'''
제18대 전반기
최병국

'''제18대 후반기
정진석'''[28]

제18대 후반기
권영세

'''대한민국 국회 국회운영위원장'''
제19대 후반기
원유철

'''제20대 전반기
정진석'''

제20대 전반기
정우택



'''국민중심당 원내대표'''
''창당''

'''초대
정진석'''

제2대
김낙성

'''대한민국 국회의원 (충남 공주시·연기군)'''
''선거구 개편''
정석모[29]
김고성[30]

'''제16대
정진석'''

제17대
오시덕
제17대
오시덕[31]

'''제17대
정진석'''

제18대
심대평

'''제27대 국회사무총장'''
'''대한민국 제16-18·20·21대 국회의원
정진석
鄭鎭碩 | Chung Jin-suk
'''
<colbgcolor=#e61e2b> '''출생'''
1960년 9월 4일 (63세)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거주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도곡동 로덴하우스 웨스트빌리지
충청남도 공주시 신관동 삼환나우빌
'''본관'''
동래 정씨[3] 임당공파
'''학력'''
성동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 / 학사)
'''병역'''
[image]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
'''신체'''
183cm, 95kg
'''가족 관계'''
정석모[4]
형 정진호
배우자 이미호[5]
장녀 정가영
차녀 정원영
사돈 박덕흠
'''종교'''
천주교(세례명 : 도미니코 사비오) [6]
'''소속 정당'''

'''지역구'''
충청남도 공주시·부여군·청양군
'''의원 선수'''
'''5'''
'''의원 대수'''
16, 17, 18, 20, 21
'''소속 위원회'''
외교통일위원회
'''현직'''
제21대 국회의원
'''경력'''
한국일보 논설위원
제16, 17대 국회의원 (충남 공주·연기)
자유민주연합 대변인
국민중심당 원내대표
제18대 국회의원 (비례대표)
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장
대통령실 정무수석비서관
국회사무총장
제20, 21대 국회의원 (충남 공주·부여·청양)
새누리당 원내대표 및 당대표 권한대행
'''외부 링크'''

1. 개요
2. 가족관계 및 청년기
3. 주요 정계 활동
3.1. 청와대 정무수석
3.4. 원내대표 사퇴 이후
3.5. 21대 총선 전후
5. 소속 정당
6. 선거 이력
7. 기타
8.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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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언론인 출신 정치인이다. 5선 대한민국 국회의원이자 지역구는 충남 공주시·부여군·청양군이다. 소속 정당은 국민의힘이다.

2. 가족관계 및 청년기


1960년, 충청남도 공주시에서 6선 국회의원과 내무부(현 행정자치부) 장관을 역임한 정석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 윤석남씨는 파평 윤씨[7] 윤증의 직계후손으로 노성 윤증고택이 그의 외가다.[8]
서울특별시 성동고등학교, 고려대학교 정경대학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였다. 성동고등학교 학생회장 시절, 미국 지미 카터 행정부의 정보기관이 청와대를 도청한 사실로 인해 온 국민이 궐기에 나서자 재학생들을 이끌고 신당동 로터리까지 진출하는 고교 반미 시위를 주도했다.
졸업 후 한국일보에 입사하여 15년간 기자 생활을 했다.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 시절에는 1994년 아이티 내전을 취재하기 위해 전쟁통에 뛰어들기도 했다. 한국일보 논설위원을 지냈다. 네 번의 백상 기자대상과 두 번의 한국기자협회 기자상을 받았다.
고려대학교 재학 중인 1984년 당대 국내 최대 면방섬유기업 충남방적 창업주이자 11대 국회의원을 지낸 이종성의 차녀 이미호씨와 결혼하였다. 처가 역시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양반집안이다. 처조부는 네 번의 도지사를 지낸 청백리 이기세이다.

3. 주요 정계 활동


2000년 김종필 자유민주연합 총재의 부름을 받아 자민련에 입당했고 부친 정석모의 지역구였던 충청남도 공주시연기군이 합쳐지면서 제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충청남도 공주시-연기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한나라당 이상재 후보를 꺾고 당선되었다. 이후 자유민주연합 대변인, 수석부총무를 지냈다.
2004년 제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민주연합 후보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탄핵정국에서 열린우리당 오시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이후 자유민주연합을 탈당하였고 2005년 오시덕의 선거법 위반에 의한 당선 무효로 치러진 재보궐선거에서 무소속으로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재보궐선거 전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 입당을 권유하였으나 사양하였다. 그리고 심대평과 함께 국민중심당을 창당하여 당 최고위원, 원내대표를 역임하였다.
2007년 제17대 대통령 선거에서 심대평이 출마를 포기하고 국민중심당이 무소속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하자 이에 반발하여 탈당하고 한나라당에 입당, 이명박 후보 지지를 선언한다.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자신의 지역구인 공주·연기 선거구 공천을 신청했으나 탈락하고 대신 비례대표 상위 순번에 배치되어 당선되었다. 이는 해당 선거구에 자유선진당심대평을 공천할 것이 분명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자 당이 배려를 한 경우. 2010년 대한민국 국회 정보위원장에 선출되었다.

3.1. 청와대 정무수석


2010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에 임명되어 국회의원직을 사임하였다. 본래 계파색이 강하지는 않지만 범친박계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으며 이명박 정부에서 탕평인사의 차원에서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되었다. 청와대 정무수석 재임 중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한나라당 대표의 면담을 성사시키고[9] 당내 안정과 정권 재창출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며 정권 재창출의 초석을 다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정무수석 시절 통큰치킨과 관련하여 논란이 있었다.[10] 정진석은 '통큰 치킨' 소동이 벌어지자 자신의 트위터에 관련 의견을 올려 '통큰 치킨 이벤트' 포기를 이끌어내면서 당시에 '계사오적' 이라는 멸칭으로 조롱받기도 했다. 실용정부 시절 범친박계에 약간 더 가깝기는 했으나, 의외로 이명박 및 친이계, 친이계의 인사들과도 상당히 친한 관계라고 한다. 일단 정진석은 대선 경선이 끝나고 한나라당으로 들어왔기에 계파 논쟁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또한 계파와 관계없이 두루두루 친분이 있는 정계 마당발이라는 평이다. 본인 스스로는 친박친이도 아닌 JP계라고 자임하고 있다.
2012년 제19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신의 지역구인 충남 공주 지역구에 공천 신청을 했으나 박종준 전 충남지방경찰청장이 공천된다. 대신 선거를 27일 앞두고 서울 험지에 출마해달라는 당의 요청에 새누리당 후보로 서울특별시 중구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통합당 정호준 후보에 밀려 석패하였다. 정호준 후보는 할아버지가 8선 국회의원 정일형, 아버지가 5선 국회의원 정대철으로 내리 중구에서 13선을 했으며 정진석은 6선 의원과 내무부 장관을 지낸 정석모의 아들로 2세 정치인 대결로 주목받았다. 거기에 조병옥의 아들인 자유선진당 조순형 의원도 중구에 출마하려다 정호준을 지지하고 사퇴했는데 만약 완주했다면 더 흥미진진한 대결이 펼쳐질 뻔 했다. 그 후 2013년부터 2014년까지 대한민국 국회 사무총장을 역임하였다.

3.2. 국회사무총장


정진석은 과거 총장실에서 행해지던 업무 보고를 각 실, 국을 찾아가서 직접 받거나 국회 사무처 비정규직 직원들을 모두 정규직으로 바꾸는 등 파격적인 개혁 인사를 단행했다. 또한 드래프트 제도를 폐지해 인사 청탁의 뿌리를 뽑으려고 노력하는 등 기존 대한민국 국회 관행을 깨고 변화를 주도했다는 평을 받았다. 국회의 문턱을 낮추고 국회와 국민 간 소통강화에 앞장섰다. '국회 생명사다리 범국민 운동'을 시작으로 '국회 생명사다리 상담센터'를 개설해 자살예방을 위해 국회차원의 대책을 마련하고자 했으며, 국회 본관에 스마트워크센터를 신설하여 행정효율을 높이고자 했고, 직접 세일즈 외교에 앞장서는 등 국회의 개혁과 변화를 이끌기 위해 보다 더 적극적으로 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14년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충청남도지사 선거에 출마하였으나 현직이었던 새정치민주연합 안희정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2016년 제20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통합된 공주시-부여군-청양군 선거구에 새누리당 후보로 출마해 48.1%의 득표율로 현역이었던 더불어민주당 박수현 후보를 이기면서 4선 고지에 올랐다. 2008년 이후로 오랜만에 고향으로 돌아온 셈. [11]

3.3. 새누리당 원내대표


2016년 5월 3일 원내대표로 선출되었다. 러닝메이트인 정책위원회 의장에는 김광림이 당선되었다. 계파갈등이 최고조에 이른 새누리당에서 어느 계파에도 속하지 않은 그가 친박, 비박 양쪽 진영에서 고르게 득표한 점이 배경으로 풀이되었다. 계파색이 옅고 19대 원외 인사로 총선 참패의 책임에서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던 그는 경선에서 나경원과 박빙 승부를 벌일 것이라던 당초 예상과 달리 총 119표 중 69표를 얻어 43표를 얻는 데 그친 나경원 의원을 26표 차로 여유있게 승리하며 새누리당 출범 후 초유의 '원외 당선인' 신분으로 집권여당 사령탑에 오르는 진기록을 세웠다. #
5월 10일 원내대표로서, 후임 당대표가 선출되기 이전까지 비상대책위원장을 겸직하게 되었다. 정진석은 ''중앙선을 걷겠다''며 계파 중립을 선언했지만 취임 초반 당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양측의 입장을 조율하는 난제를 떠맡았고, 친박비박계 사이에 끼어있는 '낀박'이라는 소리를 듣기도 하며 정치적 위기도 숱하게 겪었다. 당내 다수인 친박계의 지지가 원내대표 선출에 결정적이었다는 평가가 있었지만, 당 혁신위원회 주요 인사들의 다수를 비박계로 구성하였다.[12] 이에 반발한 친박계의 대대적인 보이콧으로 혁신위 구성을 확정짓기 위한 5월 17일의 당 전국위원회 개최가 정족수 미달로 무산되는 등 파란만장한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는 "나는 친박도 비박도 아닌 중도"라고 하며 앞으로도 친박의 대변자가 될 생각이 없다고 대립각을 세우며 정면돌파를 선택한다. #
유승민의 복당으로 친박계가 또다시 강하게 반발하며 원내대표직 사퇴 요구까지 거론하면서 십자포화를 받는 상황까지 이르렀지만 당내에서는 원 구성 협상, 복당 논의, 예산안 협상 등 중개국면마다 소기의 성과를 얻어낸 정진석 원내대표에 대해 난제를 특유의 뚝심으로 잘 풀어낸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면서 중심을 잡고 당내 친박비박을 조율하는 역할을 하며 '중앙선 정치'를 하고 있다는 평가를 듣기도 했으며 특히 취임 초기 '친박'이라며 눈초리를 보내던 비박 중심의 비주류 의원들은 한때 '최순실 사태'에 책임지고 물러나겠다는 정진석 원내대표를 오히려 만류하기도 했다. 더 나아가 선출된 지도자로서 친박 이정현 대표 대신 '당대표' 역할을 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친박(친박근혜)계가 주도하는 주류와 비주류 양측에 소신 발언을 잇따라 쏟아내는 동시에 공천개입 녹취록 파문, 우병우 수석 논란 등 민감한 현안에도 자기 목소리를 내며 정치영역을 키웠다. #. '최순실 국정농단' 논란으로 촉발된 탄핵국면에서도 '자유투표'를 이끌어내면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통과시킨 숨은 공신으로도 꼽힌다. 하지만 정진석 원내대표는 "보수 정치의 본령은 책임을 지는 자세라고 배웠다. 집권당은 대통령과 똑같은 무게의 책임을 가질 수밖에 없다.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데 대해 집권당 원내대표로서 책임을 지는 것이 온당하다"며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났다.
한편, 2016년 11월 7일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특별법안을 대표발의하였으며, 이 법안은 수정가결되어 2021년 2월 5일부터 시행된다.
이듬해 2017년 5월 17일 자유한국당 중진의원 간담회에서 친박계를 향한 성토를 쏟아냈다.

'''전국위원회 무산시키고 말이야. 못 하게 했잖아 혁신을.'''

'''이제는 정말 이 보수의 존립에 근본적으로 도움이 안 되는 사람들은 동지에서 이제 적으로 간주하여 무참하게 응징해야 된다고.'''


3.4. 원내대표 사퇴 이후


이거 안 됩니다, '''TK 자민련 남아서 뭐 할 거야 도대체?'''

전직 원내대표이자 당내 4선 중진의원으로서, 홍준표 대표의 극단적인 행보에 등을 돌려, 반홍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한편 2017년 8월부터, # 김무성 의원과 보수통합 및 기타 여러 의제를 다루는 '열린토론 미래'라는 토론회를 주기적으로 열고 있다. 김무성은 저 당시에는 바른정당이었다가 17년 11월에 한국당으로 복당했다. 이 토론회는 잠깐 하다 만 것은 아니었고, 2019년 11월까지도 열렸었다.
문재인 정부의 4대강 보 철거에 강하게 반대했으며, 자유한국당 당내에서 '4대강 보 파괴 저지 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지역구의 농민들이 금강의 물을 이용해 농사를 짓는데, 문재인 정부가 농민들의 의견도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보 개방 또는 철거를 강행하면서 이들의 생계를 위협했기 때문이다. # # 하천시설을 철거할 때 농·어업 등 산업, 거주지, 환경, 생태계 등에 미치는 영향 평가를 포함한 철거계획을 수립하도록 규정하는 하천법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13]

3.5. 21대 총선 전후


21대 총선을 앞두고 시행된 대다수의 여론조사에서는 더불어민주당 박수현 후보가 오차범위 안팎에서 우세한 것으로 나타났으나, 막상 출구조사를 보니 정진석 후보가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고 개표 결과에서도 근소하게나마 1위를 차지하는 '''대역전극'''을 써 충남 최다선인 5선에 성공했다. 특히 이는 보수 후보의 분열 속에서 이뤄낸 결과이다. 이로써 정 의원은 '''충청도를 대표하는 보수 정치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으며, 앞으로 당권에 도전할지 국회부의장으로 갈지 주목된다. # 여담으로 20대 국회의 보수정당(새누리당-자유한국당-미래통합당) 원내대표들 중 유일하게 생존했다. 정우택[14], 나경원, 심재철은 낙선, 김성태는 불출마.
당선 이후 아직 무소속 후보임에도 불구하고 대권 출마를 선언하는 등 일방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는 홍준표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이후 본인을 직접 거론하며 홍준표가 자신을 비방하자. 재반박하는 글을 SNS에 쓰기도 했다.#
홍준표가 김종인에 대해 뇌물 전과자, 노욕에 찬 발언이라고 주장하며 김종인을 계속해서 비방하자 이에 반발, 홍준표 전 대표가 (정진석 본인에게) 총선 직후 전화로 “김종인 만한 사람이 없다. 비대위원장으로 모셔야 한다”고 말했다는 사실을[15] 폭로하며 "그 때는 김종인이 동화은행 비리에 연루된 걸 몰랐냐"고 받아쳤다. 그리고는 “홍준표 전 대표가 생각 없이 쏟아내는 막말이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공인으로서의 최소한의 금도조차 없는 그가 우리 당의 미래가 될 수는 없다, 되어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였다. #
선거 직후 21대 국회 통합당의 첫 원내대표 후보군으로 거론되었지만, 이미 새누리당 시절에도 총선 패배 후 원내대표를 맡았다가 뒤이어 찾아온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대통령 탄핵 정국에서 제대로 고생한 경험이 있기 때문인지 출마하지는 않았다.
원내대표에 불출마한 대신 21대 전반기 국회부의장으로 유력해 보인다. 미래통합당 내 최다선 의원은 5선의 정진석, 서병수, 조경태, 주호영 4명인데, 서병수 당선인은 국회부의장 불출마를 선언했고, 조경태 의원은 당대표 도전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주호영 의원은 원내대표가 되었기 때문이다. # 결국 경선 없이 미래통합당 몫 국회부의장으로 추대되었다.
2020년 6월 4일 미래통합당 '사이다[16] 정책 세미나'에서 첫 강연자로 나서 ''''라떼는 말이야'(Latte is a horse)'''라는 제목의 자료집을 활용해 강연했다. 이 자리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보수 삭제' 추진에는 반대하는 의견을 냈다.[17] 그러면서 "윤미향이라는 최대 현안에 대해서 왜 당내 최고참인 제가 보도자료 내야하나. 야당의 1차적 책무가 정부여당을 감시 감독 비판하는 건데 그러려면 여러분의 권한을 행사 해야한다"며 초선 의원들의 적극적인 활동을 권유하고, 정부여당 견제를 위해 국회의원의 자료요구권을 적극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민주당에 대해서는 "50%의 지지를 받은 정당인데도[18] 100%의 지지를 받은 정당처럼 다 해먹겠다고 하고 있다"면서 "그건 오래가지 못한다"고 비판했다. # # #
2020년 5월 9일, 이전에 발의했으나 제20대 국회 종료로 자동 폐기되었던 하천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제21대 국회에서 1호 법안으로 다시 대표발의했다. 하천시설 철거 계획에 농·어업 등 산업, 거주지, 환경, 생태계 등에 철거가 미치는 영향 평가를 포함해야 한다는 것이 법안의 골자로, 자신의 지역구의 금강 공주보를 문재인 정부에서 주민 동의 없이 강제로 철거하려 했기 때문에 이 법안을 발의했다. 정 의원은 "현행법상 보 등 하천시설을 철거하는 경우에 대해서 절차가 마련돼 있지 않다. 국민의 세금으로 지어진 하천시설이 무분별하게 철거되는 문제가 있다"며 "지역주민과 농가의 보 철거 반대 여론이 정부의 정책결정 과정에 반영돼야 한다는 것은 최소한의 상식"이라고 설명했다. #
법사위를 비롯해 미래통합당과 더불어민주당의 원구성 협상이 결렬되자, 2020년 6월 12일 미래통합당 의원총회에서 "원구성 협상이 정상적으로 마무리되지 않으면 국회 부의장을 하지 않아도 좋다"고 발언했다. 이 말에 회의장 분위기가 숙연해졌다고 한다. #
2020년 6월 19일, 사회복지공동모금 수령 단체의 자금 집행 감독을 강화하고, 지정기부금 단체 지정 심사를 강화하는 내용의 사회복지공동모금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제2의 윤미향 사태를 막기 위해 발의한 것이다. 정 의원은 "현재 국내 공익법인에 전달되는 기부금은 연간 6조 원 정도에 이른다"며 "정부 차원의 회계 관리감독을 강화하여 투명성을 높이고 보다 건전한 기부문화가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
2020년 6월 23일, 지난 의총 때 밝힌 것처럼 민주당이 국회 법사위원장을 내놓지 않으면, 본인도 국회부의장직을 고사하겠다고 밝혔다. 정치 대의를 위해 개인의 영달이나 안락함을 내려놓겠다면서, 우리 당 3선 의원들도 상임위원장을 안 맡는데 자기 혼자 국회부의장을 맡을 수 없다고 이유를 밝혔다. 그러면서 고향 친구 윤석열[19]을 지켜내겠다고 했다. #
2020년 6월 29일, 민주당이 정보위원회 위원장[20]을 제외한 상임위원장 선출을 강행하자, 결국 "전대미문의 반민주 의회 폭거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국회부의장은 하지 않겠다"고 했다.[21] #
2020년 7월,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의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시작으로 여당을 중심으로 행정수도 이전 관련 내용이 이슈가 되기 시작하자 통합당에서는 가장 선제적으로 찬성 의견을 나타냈다.# 지역구인 공주시, 부여군이 세종시와 인접하여 그 행정수도 이전이 다시 현실화될 경우 파급력이 크기 때문.
2020년 9월, 자신과 사돈 관계인 박덕흠 의원이 이해충돌 논란에 휘말렸는데, 박덕흠 의원을 옹호하지 않았고, 오히려 탈당하는 게 좋다는 김종인 비대위원장의 뜻을 박덕흠 의원에게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김종인 위원장은 "사돈지간인데도 어려운 얘기를 해준 정진석이 고맙다"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와 관련해 정진석 의원은 "박덕흠이 탈당을 스스로 결심했고 지도부 의중을 알아봐달라고 해서 (김종인을) 만났던 것"이라고 했다. #
2020년 12월 8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 과오에 대한 사과 문제에 대해 "정당 대표의 사과와 반성은 그 자체가 목표일 수는 없을 것"이라며 "그러니 더 가열찬 전진과 반격의 토대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면"이라고 긍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참고로 정 의원은 MB정부 때 정무수석을 지내 범친이로 분류된다. 이와 관련해 9일 조선일보와의 통화에서 "김 위원장의 사과를 겸허하게 지켜보자"고 했다. 또 당내 갈등과 관련해서는 "이 문제를 두고 계속 갈등을 빚게 되면 결국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 좋은 일만 시켜주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
2020년 12월 17일, 2021년 서울·부산시장 재보선 공천관리위원장에 내정된 것으로 확인되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수도권·영남권 의원들과의 관계가 두루 원만한 정 의원이 경선과정에서 발생할 잡음을 최소화 할 적임자로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선 "충청권 핵심인 정 의원을 발탁한 배경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의 정계진출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는 해석도 나왔다. #

4. 사건사고 및 논란




5. 소속 정당


'''소속'''
'''기간'''
'''비고'''

2000 - 2004
정계 입문

2004 - 2006
탈당[22]

2006 - 2007
창당

2007
당내 노선 갈등으로 인한 탈당

2007 - 2010
입당

2010 - 2011
청와대 정무수석 취임

2011 - 2012
복당

2012 - 2013
당명 변경

2013 - 2014
국회 사무총장 임명

2014 - 2017
복당

2017 - 2020
당명 변경

2020
합당[23]

2020 -
당명 변경

6. 선거 이력


연도
선거 종류
선거구
소속 정당
득표수 (득표율)
당선 여부
비고
2000
제16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공주·연기

'''25,249 (25.18%)'''[24]
'''당선 (1위)'''
'''초선'''
2004
제17대 국회의원 선거
31,004 (35.51%)
낙선 (2위)

2005
2005년 재보궐선거

'''26,513 (43.31%)'''
'''당선 (1위)'''
'''재선'''[25]
2008
제18대 국회의원 선거
비례대표

'''6,421,727 (37.48%)'''
'''당선 (8번)'''
'''3선'''[26]
2012
제19대 국회의원 선거
서울 중구

28,904 (46.33%)
낙선 (2위)

2014
제6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충청남도지사
392,315 (43.95%)

2016
제20대 국회의원 선거
충남 공주·부여·청양
'''51,159 (48.13%)'''
'''당선 (1위)'''
'''4선'''
2020
제21대 국회의원 선거

'''57,487 (48.65%)'''
'''5선'''

7. 기타


  • 키 184cm에 몸무게 95kg인 엄청난 거구이다. 2020년 시점에서도 저 정도면 어지간한 20~30대보다 큰 몸집이다. 학창시절엔 농구선수로도 활동했고, 젊었을 적 씨름과 각종 무술에 능했다고 한다. 씨름 선수로 나가서 뒤집기 기술로 날리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이른바 팔씨름 장사인 것이다.
  • 연예인 이영애의 남편인 정호영이 정진석의 조카이다. 즉 정진석에게 이영애는 조카 며느리뻘인 것이다. 제 19대, 20대 총선 당시 이영애가 정진석의 선거 유세를 도와준 적이 있었다. 그런데 정작 정호영은 1951년생으로 정진석보다 나이가 9살이나 많다.
  • 친형인 정진호는 안기부 소속 공작원이었던 흑금성과 동업을 했었다고 한다. 대북 사업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 성 김 필리핀 미국 대사와 어린 시절 한국에서부터 친구이다. #
  • 21대 전반기 국회부의장에 내정됨에 따라, 국회의장단이 모두 충청도 출신으로 채워질 뻔했다. 박병석 의장(대전 서 갑)은 대전 출신이고, 특히 본인과 더불어민주당의 김상희 부의장(경기 부천 병)은 고향이 충남 공주 출신으로 동일하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이 법사위원장을 비롯한 18개 상임위를 모두 가져가면서, 정 의원은 21대 전반기 국회부의장직을 포기했다.
  • 2020년 6월 21일, 본인의 장녀박덕흠 의원의 장남결혼식을 올리면서 박 의원과 사돈을 맺었다. 충청권 중진의원 집안 간 혼사임에도 국회 원구성 상황 및 코로나19 등을 고려해, 정치권 관계자들 없이 가족 및 친지만 참여해 조용한 결혼식을 치렀다고 한다. 결혼 사실도 하루가 지나서야 외부에 공개했다. #, #, #
  • 2020년 7월 말 들어 민주당에 의해 떠오른 행정 수도 이전 관련 떡밥에 통합당 내에서 유이하게[27] 긍정적으로 말하고 있는 인물 중 하나다.

8. 둘러보기











[1] 공주시 선거구의 제19대 국회의원이다.[2] 부여군·청양군 선거구의 제19대 국회의원이다.[3] 31세손 '鎭O' 항렬. 동래 정씨(東萊 鄭氏)는 조선시대 왕손인 전주이씨(22명), 세도정치를 펼친 안동김씨(19명)에 이어 세 번째로 많은 정승(17명)을 배출한 명문가이다.[4] 6선 국회의원, 내무부 장관을 역임[5] 당대 최대 면방 섬유기업 충남방적 창업주 이종성(한국국민당 부총재, 제11대 국회의원)의 차녀. 장인 이종성은 행정가, 정치가, 기업가였던 입지전적인 인물이며 혜전학원(혜전대학교, 청운대학교)을 설립했다. 처남 동서 등이 두 대학의 이사장, 총장을 역임하고 있다.[6] 출처[7] 왕비를 가장 많이 배출한 성씨로 명문세도가이다. (문벌귀족 15가문을 시작으로 권문세족 안에서도 재상지종 9가문의 명문가였다.)[8] 정석모의 장남이자 정진석의 형은 흑금성 사건 주인공인 박채서와 같이 동업을 했는데 동업 당시 회사명인 아자커뮤니케이션의 실질적인 오너였던 정진호다. 당시 대북사업에 관심이 많았었던 사람 중 하나였다.[9] 원래 이명박은 박근혜의 지지율을 이용할 생각만 했지 전혀 가까이 하지 않았고, 친이계로 정권을 재창출해내려 했다. 그러나 정진석이 이명박을 설득하면서 양쪽 간의 관계를 중재하기도 했다.[10] 당시 롯데마트의 통큰치킨 판매로 치킨 자영업자들이 반발했고 대기업의 골목상권 침범 논란이 사회적인 이슈였던 시절이기도 했다. MBC 백분토론 등에서 토론을 벌일 정도로 쟁점 사안이었다.[11] 사실 정진석은 어린 시절을 공주에서 잠깐 보내고 고위 공무원인 아버지 정석모를 따라 일찌감치 서울로 상경해서 줄곧 서울에서 생활했다.[12] 특히 유승민 의원과 가까운 김세연, 이혜훈 의원을 포함시키면서 친박계의 반감을 사게 되었다.[13] 실제로 충청 민심은 4대강 보에 긍정적이다. 공주시에 가보면 곳곳에 공주보 철거 반대 현수막이 붙어있으며, 물 부족 현상과 공주보 도로 등의 문제로 인해 많은 주민들이 공주보 개방이나 철거를 반대했다. # 시에서는 공주보와 관련해 공주 농민 770명을 상대로 사전의견서를 접수하기도 했다. 결과는 '''754명(98%)이 보 철거에 반대'''했다고 한다. 반대 이유로는 '농업용수 부족 우려'가 가장 높았다. 그것도 사전의견서에 철거의 당위성을 강조하는 정부 입장이 그대로 적혀있어 편향적이었는데도 말이다. # 21대 총선에서도 이슈가 되었는데, 이춘희 세종시장, 홍성국 세종시 갑 후보를 비롯한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주민들의 여론을 의식해서 보 철거/개방에 찬성한다는 말을 쉽게 꺼내지 않고 더 지켜봐야 한다고 말하고 있으며, 미래통합당 소속 정치인들은 아예 보 철거/개방에 결사반대하고 있다. 민주당 소속이 다수인 공주시의회조차 보 해체에 반대했다. # 이후 21대 총선에서 정진석 후보가 박수현 후보를 누르고 당선되면서, 4대강 보 존치가 충청 민심임이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14] 정진석이 '충남의 맹주'로 꼽힌다면 정우택은 '충북의 맹주'로 꼽혔다. 하지만 정우택 의원은 21대 총선에서 지역구를 청주 상당구에서 험지인 청주 흥덕구로 옮겼다가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후보에게 낙선하면서 타격을 입었고, 본인의 원래 지역구였던 청주 상당구에서도 정정순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되었다.[15] 실제로 홍준표는 총선 직후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서도 김종인을 비대위원장 후보로 거론하며 "카리스마도 있고 오랜 정치 경력도 있고 민주당이나 우리 당에서 혼란을 수습해 본 경험도 있으니 어떨까"라며 긍정적인 의견을 보인 바가 있다.[16] '''사'''회 문제와 '''이'''슈를 '''다'''함께 해결'의 약자이다. 세미나에서 실제로 사이다를 마시기도 했다.[17] 다만 정 의원은 김종인 비대위 출범에는 찬성했다.[18] 실제로 21대 총선에서 253개 지역구 후보 표를 합산해서 득표율을 계산하면, 더불어민주당은 49.9%, 미래통합당은 41.5%로 격차는 8.4%p차다. #[19] 윤 총장은 서울 출신이나 윤 총장의 부친이 충남 공주 출신이다.[20] 국회법에 따라 정보위원장 선출은 국회부의장과 상의해야 하는데, 본인이 국회부의장을 고사함에 따라 국회부의장 선출이 완료되지 않아 정보위원장 선출은 이루어지지 않았다.[21] 이에 따라 21대 전반기 국회부의장으로 4선의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검토되고 있다는 기사가 나왔다. #[22] 낙선 이후 사실상 와해된 자유민주연합 탈당[23] 새로운보수당, 미래를향한전진4.0과 신설 합당[24] 당선자 득표율 치고는 상당히 낮은데, 해당 지역구에 후보가 '''10명'''이 나오는 바람에 표가 많이 분산됐다. 이는 역대 지역구 국회의원 당선자 중 가장 낮은 득표율이다. 2위는 18대 총선 당시 이인제 전 의원. 참고로 기초자치단체장 선거까지 범위를 넓히면 2008년 6.4 재보선 당시 경남 거창군수 후보로 출마하여 '''19.4%'''의 득표율을 받고 당선된 양동인 전 군수의 사례가 있다.[25] 전임자 오시덕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 상실. 2005년 국민중심당 입당
2008년 한나라당 입당
[26] 2010년 청와대 정무수석비서관에 임명되어 국회의원직 사퇴[27] 다른 한 명은 장제원 의원인데, 그 쪽은 아예 한술 더 떠 왜 당내에서 부정적으로 바라보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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