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아야사

 

'''이토 아야사'''
伊藤彩沙 | Ayasa Ito
'''이름'''
'''이토 아야사
(伊藤(いとう彩沙(あやさ, Ayasa Ito)'''
'''직업'''
성우
'''출생'''
1996년 8월 17일 (27세)
[image] 일본 교토부
'''국적'''
[image] 일본
'''신체'''
153cm[1]B형
'''소속사'''
히비키(2013~현재)
'''활동 시기'''
2013년 ~ 현재
'''데뷔작'''
두 사람은 밀키홈즈
묘진카와 아리스
'''좋아하는 음식'''
생크림, LINDOR, 푸아그라, 순두부, 팬케이크, 블루베리
'''링크'''

[2]
1. 소개
2. BanG Dream!에서
3. 주요 출연작
3.1. 애니메이션
3.2. 게임
3.3. 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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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일본의 여성 성우. 1996년 8월 17일생. 교토부 출신. 히비키 소속.
초등학교 1학년[3]NHK 스튜디오 파크 에서 애프터 레코딩 체험[4]을 했을 때 칭찬 받았던 것을 계기로 성우를 지망.
2010 년 '에리를 찾아라! 밀키홈즈 성우 오디션 투어'에 참가하지만, 오사카 지역 예선 준결승에서 탈락.
2013 년 본격적으로 연기 공부를 하기 위해 고등학교의 동아리를 그만두고 일주일 후에 잡지에서 우연히「밀키 홈즈 시스터즈 멤버 영입 오디션」의 광고를 발견해 지원하게된다.
같은 해 4 월 27 일 밀키홈즈 시스터즈 멤버즈 스카우트 오디션에 합격해 약 2,000 명의 응모자 중에서 그랑프리에 선정, TV 애니메이션 「두 사람은 밀키 홈즈」의 주인공 묘진카와 앨리스 역으로 성우에 데뷔했다. 이 오디션 최종 결승 탈락자 중 1명은 이후 BanG Dream!에서 Poppin'Party로 한 팀이 된 니시모토 리미.
토키와 카즈미 역의 아이미와 유닛「밀키홈즈 페더즈 '이 결성되어 밀키홈즈 4명을 합한 6명이 '밀키홈즈 시스터즈 '로 활동을 시작한다.
교토에 거주할때는 일이 있을때 마다 도쿄 등으로 이동하는 생활을 보내고 있었지만, 2015년 봄 고교 졸업을 계기로 상경.# , 대학에 진학하게 된다.# 현재 현역 대학생.
2016년 8월 20일 첫 개인 이벤트로 시부야 LOFT9에서 스무살 성인이 되는 생일기념이벤트 "伊藤彩沙お誕生日会 〜コドモじゃないもんっ!ハタチだもんっ!〜" 가 열렸다.
취미는 다카라즈카 가극 감상이며 화장품(코스메틱)과 헬로! 프로젝트의 오타쿠이다.
중학생 때는 엄청 눈에 띄기를 좋아하는 성격이라 부활동의 팜플렛에 실리고 싶어서 일부러 부활동을 시작했고 실제로 팜플렛에 실렸을 땐 굉장히 기뻤다고 한다.[5]
고등학생땐 연극부의 부장이었으며 코러스부에도 들고 있었다.#
어렸을 땐 다카라즈카 가극의 배우가 되고 싶었으나 키가 작아서 포기했다. 스즈미야 하루히의 우울을 보고 성우에 흥미를 가진 것 같다.
백합을 좋아한다. 킷타 이즈미와 백합이야기를 하는 친구 관계라고. #
친한 성우는 같은 사무소인 히비키 소속 성우들, 특히 아이미와는 자주 집에 놀러갈 정도로 친한 것을 넘어서 아이미의 여동생과도 사이가 좋다. BanG Dream!에서 엮이는 포피파 성우들과도 친하고 히로세 유우키와도 사이가 좋다. 아이다 리카코와도 친분이 있다. 소녀☆가극 레뷰 스타라이트에서 같이 엮인 출연진들도 집에 초대할 정도로 굉장히 사이가 좋은데, 이쿠타 테루와는 뭐든지 이야기 할 수 있는 사이라고한다.
동료 성우들이 인정하는 높은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가지고 있다. 첫 인상은 내성적인 것 처럼 보이는데, 두 번째로 만날 때부터 엄청 말을 잘해서 인상이 바뀐다고. 싱가포르로 떠나는 비행기에서 처음 만난 사이인 할머니, 외국인과 대화 한 것을 자랑스럽게 트위터에 올리기도 하였다.#
2020년 4월부터 사사키 미코이, 아이미와 함께 "성우 세 자매 팀 Y"란 이름으로 유튜브를 시작했다.
여담으로 뱅드림의 같은 밴드인 Poppin'Party내에서 유일하게 별명이 없다.

2. BanG Dream!에서


[image]
사진의 왼쪽부터 니시모토 리미, 오오하시 아야카, 아이미, 이토 아야사, 오오츠카 사에.
부시로드의 캐릭터x걸즈밴드 프로젝트 BanG Dream!에서 이치가야 아리사역으로 Poppin'Party라는 밴드 유닛의 키보드를 담당하고 있다.
처음 Poppin'Party에 합류할 때는 악기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탬버린 연주도 겸했으나 현재는 훌륭한 키보드 담당으로 성장했다.
( 탬버린 곡이 한 곡 밖에 없기때문에 오히려 오오하시 아야카쪽이 더 탬버린을 자주 사용하고 있다.)
자칭 '''미라클 댄싱 키보디스트'''.
키보드를 치면서 한 손으로도 연주가 가능한 곳이나 키보드 파트가 쉬는 부분에서는 스스로 만든 안무로 간단한 춤을 추고 있다.
라이브 중에 퍼포먼스를 하거나 춤을 추는 것에 대해 BanG Dream!성우와 캐릭터가 링크하는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아리사도 과연 이런 행동을 할까? 하고 고민했던 때도 있어서 원작자나 각본 스탭과도 상의했다.
스탭들도 "아리사라면 할거야"라고 말해주었고 스스로도 아리사는 할 땐 확실히 하는 아이라고 생각한 결과 당당히 퍼포먼스를 하게 되었다.
라이브 도중에 영상이 찍히는 것이나 관객들에게 주목받는 것에 거리낌이 없다고 하고 꼭 관객들도 같이 춤춰줬으면 한다고.[6]
Poppin'Party FanMeeting 2017에서는 포피파 멤버들과 Time Lapse에 맞춰 춤추는 코너를 진행했고 멤버들은 신나서 춤추는 아야사를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우시고메 리미역의 니시모토 리미에 의하면 좋은 말을 하거나 아이디어 등을 내서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주는 무드메이커적 존재.
아야사가 관객들의 호응을 유도해주고 콜이나 박수치는 부분을 가르쳐주기 때문에 관객들도 즐기기 쉽다고 한다.
피아노 코드는 의외로 쉽게 외울 수 있었지만 자신에게 리듬감이 없다는걸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고 한다. 레슨 때 STAR BEAT!〜ホシノコドウ〜의 A멜로만 죽어라 연습했던 때가 있었고 집에 갈 때는 울면서 갔다고.#
초기에는 타 멤버들에 비해 연주 실력이 부족했기에 본인이 밴드의 짐이 되는 것은 아닌가 하며 스스로 많은 부담과 갈등을 안고 있었다. 그러나 같은 멤버 오오츠카 사에의 "포피파의 키보드는 아야사 뿐이다."[7]라는 말에 크게 구원받았다고 한다.[8]
2018년 2월 24일 뱅드림! 걸즈 밴드 파티! 한국 서비스 관련 이벤트로 아이미와 함께 내한 행사를 가졌다. 한국 음식 중에서는 치즈닭갈비를 좋아한다고. 본인이 생각하는 반짝반짝 두근두근은 화장품. 메이크업에 관심이 많아서 한국 화장품을 잔뜩 사갈 생각에 신났다고 이야기했다. 좋아하는 한국 가수는 TWICE라고 말했으며 TT를 불렀다. 아이미가 리허설에서 댄스추는 아야사가 반짝반짝 두근두근하다고 이야기하자 즉흥적으로 춤을 췄는데 이걸 정식으로 선보여서 아이미가 부르는 타임랩스에 맞춰서 춤을 추기도 했다. 뱅드림 앞으로의 계획을 이야기하면서 한국에서 라이브를 하고 싶다고 언급했고, 마지막 소감으로도 '''반드시 한국에서 라이브 할게요!'''라고 외쳤다. 이로써 친한파 인증.
결국 라이브까지는 아니지만 BanG Dream! FILM LIVE가 한국에 상영이 결정되자, 2019년 8월 17일에 아이미와 함께 다시 내한했다. 그리고 마침 그 날은 아야사의 생일이였기 때문에 3회차에 깜짝 생일 축하를 하였다.또 MC겸 번역분은 아야사에게 인싸 용어를 가르쳐 주겠다며 '''지구뿌셔! 우주뿌셔!''' 를 가르쳐 주었다.그리고 이 말을 마스터한 아야사는 '''인싸아야사'''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일본에 귀국한 다음 날 인터넷 방송 레쿠냥에서 아이미가 '''인싸아야사'''라고 부르기도 했다.그 말에 아야사는 아이미가 '''아이미소'''라고 받아쳤다.

3. 주요 출연작



3.1. 애니메이션



3.2. 게임



3.3. 방송



[1] 일본어 위키피디아에 150.8cm라고 되어있는걸 보고 153cm로 성장했다고 본인이 언급[2] 사사키 미코이, 아이미와 공동 진행.[3] 일본어 위키피디아에 중학교 시절이라고 작성되어있는걸 보고 초등학교 1학년 때라고 말했다[4] 닌자보이 란타로의 녹음체험이였다고 한다. [5] バンドリ! ポッピンラジオ!41회[6] バンドリ! ガルパラジオ with Afterglow 25회 게스트 출연분에서 언급[7] Bang Dream 4th Live에서 언급[8] 피아노에도 능숙한 사에가 밴드 연습 때마다 아야사에게 연주를 가르쳐주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사에가 해준 말이었기에 아야사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