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여자대학교/사건사고
1. 개요
이화여자대학교와 관련된 사건사고를 모은 문서이다.
2. 1955년 통일교 사건
1950년대 통일교가 표교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포교 1순위로 대학생을 지목하며 적극적인 포교를 하였고 이화여대가 그 첫번째 포교대상이 되었다 포교 도중 한국의 개신교계에서 통일교에 대한 이단시비가 있었고, 개신교(감리회) 선교사가 설립한 미션스쿨로서의 종교색이 강했던 이화여대도 이 사건에 휘말렸다. 1955년 이화여대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에 가입한 교직원과 학생들에게 경고를 내렸고, 끝내 경고를 따르지 않은 19명의 교수와 학생들이 면직/퇴학 처분되었다.[1] 이 와중에 이대 양윤영 교수는 경찰에 끌려가기까지 했다. 당시 김활란 총장이 통일교 반대운동을 주도하며 문선명을 비난하는 투서를 보낸 적도 있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미션스쿨로서 종교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문선명교주와 성관계를 가지면 구원을 받을수 있다는 식의 헛소문까지 돌았고 그때 문선명이 이화여대생들을 불법으로 감금한 혐의로 고소되기도 했으나, 고발이 취하되어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화여대뿐 아니라 역시 개신교 미션스쿨인 연세대에서도 동일하게 퇴학과 제명이 있었다. 참조(통일교 신자의 블로그임)
3. 군가산점 폐지 주도
과거 1994년, 이화여대의 행적학과 조택 교수가 청와대 총무처 등에 당시 7급, 9급 공무원 채용시험에 있던 군복무 가산점 제도 폐지 청원을 내며 군가산점 폐지 운동을 처음으로 시작하였다. 숨겨진 일화로는 조택 교수가 될까라는 의문을 가지고 완전폐지로 넣었는데 법원에서 조정없이 완전폐지로 결정 낸 것. 이 과정에서 당사자 명의가 필요해 이화여대 졸업생 몇의 이름이 들어갔으며 연세대 출신 장애인 분도 동참했다. 그리고 약 4년후 1998년 10월 7급 '''공무원 시험에 응시했다가 떨어진'''[2] '이화여대생 졸업생 5명' 및 연세대 남성 장애학생 1명 #이 위헌 신청을 냈고 같은 해 12월에 위헌 판결을 얻어냈다.
4. 이화여대 축제 중 고려대생 난입 후 폭력 행사 사태
참고로 해당 영상에 인터뷰를 한 고대생의 발언이 문제시 되었다.학생은 "도가 지나치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고대생이 이대 축제에 난입하여 깽판을 치는것은 쭉 있어왔던 연례 행사이다." 라고 하며 이대생의 분노를 심화시켰다. 그러나 폭력은 절대로 '연례 행사' 따위의 말로 무마하거나 정당화할 수 없다.
1996년 5월 29일, 이화여대 축제인 대동제에 몰려온 고려대 학생 500여명이 이대생들을 밀치고 희롱하는 등 성추행, 폭력 등을 행사해 이대생이 중상을 입은 사건. 있어서도 안 됐고 앞으로도 일어나서는 안 되는 사건.
1980년대 중반부터 약 10여년간 근처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축제때마다 몰려오는 악습이 존재했었다. 이들은 근처 숲에서 술을 마시며 성희롱을 하고, 학생회장에게 막걸리를 붓고, 자제를 하는 교수의 차를 부수고, 여학생을 머리채 끌고 가 실신까지 시키는 등 이화여대에 심각한 물리적, 정신적 피해를 주었다. 도저히 악습으로 포장할 수 없을 정도이다. 사실 이대생들이 고소했어도 이들은 할 말이 없다. 이것이 쌓이고 쌓이다 1996년 대동제때 난입한 고대생들 때문에 4학년 여학생의 팔이 부러지는 사건이 일어나자 폭발한 이화여대측은 명백한 폭력이라며 고대측에 항의했다. 언론을 통해 이 폭력 사건들이 재조명되자 고대 측도 이를 인정, 해당 학생 7명을 정학시키고 양 대학간 축제난동 근절 대책위까지 설립했다. 이후 다음해 축제때는 지킴이가 생기고 비디오카메라 팀이 동원되면서 고대생이 떼지어 몰려와 폭력을 행사하는 일들은 사라졌다.
지금보다 훨씬 더 남녀차별에 대한 인식이 심하던 시기에 벌어진 고대생들의 민낯 중 하나. 이 사건 이후로 이화여대 축제에는 주점이 사라졌으며, 한때 '개와 고대생은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정문에 걸려있을 정도였다고 한다.관련 글
5. 여대생 청부 살인 사건
2002년 3월, 이화여자대학교 학생 하지혜 양이 경기도 하남시 검단산에서 무참히 살해당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하 양은 법과대학 4학년으로, 사법시험 공부를 하던 학생이었다. 하 양의 이종사촌 오빠의 장모 윤길자가 저지른 청부 살인 사건이었다. 어이없게도, 사위가 이종사촌 여동생과 불륜을 저지른다고 망상했기 때문이었다. 하 양의 부모와 친오빠는 큰 충격에 빠졌으나, 윤길자는 이후로도 별 처벌 없이 호화로운 생활을 하여 뭇 사람들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6. ECC 스타벅스 사건
음대 대학원에 재학중인 어느 대학원생이 페이스북에다 ECC 내 입점한 스타벅스 근처의 남자를 변태남이라며 사진을 올린 사건.* 해당 이미지에는 모자이크 처리 되었지만 실제로는 원본 그대로 올렸다.이화여대 다니는 사람은 다 아는! 이화여대 ECC 스타벅스 변태남… 광화문 스타벅스 앞에서 대발견! 헐! 사회생활도 하시고, 여자친구 분도 있으신? 아 나 진짜 미친다 눈썰미…
글을 올린 대학원생은 신상이 털려 페북을 탈퇴하였다. ECC 내 스타벅스는 2008년에 입점한 것이 맞지만 학생들의 증언에 따르면 사진의 남성은 ECC 내 스타벅스가 입점하기 전부터 정문 스타벅스에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7~8년 전부터 보였다는 말은 이를 가리키는 것. ECC 스타벅스가 입점하고 나서는 그리로 옮겨 갔다고 한다.
이 사건이 있고 나서 학생들 사이에서 해당 남성에 대한 증언이 쏟아졌는데, 앞서 기술한 대로 7~8년 전부터 정문 스타벅스 밑 ECC 내 스타벅스에 꾸준히 모습을 드러냈으나 교직원은 아니라고 한다.
지하철에서 목격했다는 증언도 있는 것을 보아 근처 주민도 아닌 듯하다고 한다. 굳이 ECC 스타벅스에 거의 매일같이 방문하여 심사위원이라 적힌 명패를 앞에 놓고 노트북으로 애니메이션을 감상하곤 했다고 한다.
사진 속의 남자가 이대생들을 대상으로 성추행을 하거나 몰래카메라를 촬영하는 등 범죄를 저질렀는지 여부는 알 수 없다. 다만 남자가 스타벅스로 매일같이 오는 목적이나, 남자의 거주지도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매일 얼굴을 보인다"라는 이유로 수상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이대생들의 피해 여부는 알 수 없지만 남자의 경우 초상권을 침해 당했기 때문이다.
글을 올린 당사자는 '이대녀'라 불리면서 온갖 사이트에서 까이고 결국 이 항목에 기재되기까지에 이르렀는데, 정작 사건의 당사자는 연세대학교 출신의 대학원생이었다고 한다. 물론 최초의 사건 유발자도 이대 대학원에 소속되어 있고, 일부 이대생들 역시 해당 남성을 변태남으로 매도한 것을 동조한 부분이 있었으나 일부 학생들의 잘못을 '이대녀'라며 이대생 전체를 욕한 것은 꽤나 이대생에게는 꽤나 억울한 일이다.
그래서, 이 사건을 냉정하게 바라보면 그 개념상실한 일부 이화여대생들의 문제인데다 (당연히 물타기는 의미가 없다) 스타벅스 측은 아무런 잘못도 한 게 없고 남성은 초상권 침해를 당한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7. 이화여대 장학금 테러사건
이화여자대학교 입학처 홈페이지에 등재되어 있는 입학설명회 영상 및 모집요강에서는, 특성화 학과인 스크랜튼[3] 대학 융합학부와 의과대학 '''정시 신입생 전원'''에게 전액 장학금을 준다고 홍보했는데, 실제로는 '''최초 합격생에게만''' 장학금을 지급하여서 오르비에서 논란이 점화되었다. . 문제의 입시요강 및 타 대학 입시요강과의 비교
결국 한 오르비 유저가 공정거래위원회와 교육부 대교협에, 그리고 이화여대 입학처에 민원을 넣었고 답변이 왔지만, 사과와 재발 방지만 약속받고, '''결국 추가합격 신입생에게 장학금이 지급되지는 않았다.'''
8. 박근혜 대통령 방문 거부 시위 사건
2015년 10월 29일 3시경, 박근혜 대통령이 전국여성대회가 개최되는 이화여자대학교 대강당을 방문하여 연설한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학생들이 "국민의 뜻 거스르는 박근혜 대통령 환영할 수 없습니다."라는 피켓을 들고 시위를 일으킨 사건. 기사 1 기사 2 기사 3 기사 4
9. 이화여자대학교 미래라이프대학 신설 반대 시위 사건
10. 이화여대 학생 사고영상 불법유출사건
이화여대는 보안용역업체 직원이 영상을 유출했다는 사실을 파악하고도 사건을 축소하려 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대학 측은 같은 달 20일 서대문경찰서에 상담만 하고서는 24일 A씨 어머니에게 "경찰에 수사의뢰를 했으니 기다리라"고 말했다. 이화여대는 이미 21일 자체 조사로 유출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수사의뢰는 없었다"며 "나중에 필요하면 수사의뢰를 하겠다고 한 게 끝"이라고 말했다. 현재 해당학생은 합의를 거부하고 이화여대와 용역업체 에스넷서비스, 이씨 등을 상대로 법적 대응을 시작했다. 이달 4일 서울서부지방법원에 1억원 규모 손해배상청구를 냈고 9일 서대문경찰서에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고소장을 접수시킬 예정이다. #
11. 이화여대 체육학과 부정입학사건
2004년, 이화여대 체육학과의 입시비리에 대해 검찰은 교수와 학보모를 모두 구속한데 이어, 조직적인 입시 부정이 있었는지 밝히기 위해 수사를 확대했다. 1 2 3 결국 입시비리에 가담한 교수의 4년형이 선고되었다. 4
12. 이화여대 양귀비 재배사건
이화여대 안에는 약초원이 있다. 그런데 2005년 어느 날, 이화여대의 비닐 하우스 안에서 양귀비 200여 포기가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는 사실이 경찰에 의해서 적발이 되었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니 약초원에서는 이미 '''10년 전부터''' 양귀비를 키워왔다고 한다. 이화여대는 허가 없이 양귀비를 키운주제에, 소량만 키웠다는 등 말같지도 않은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심지어 ''술까지 담가먹는'' 만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 그리고 그 사실을 알면서도 묵인한 교수까지 불구속 입건되었다. #
13. 여대 침입 사건 세미나 무산 논란
#Facebook: 연대 세미나 무산에 대한 이화여성주의학회 입장문
이화여대의 이화여성주의학회와 숙명여대의 페미니즘 단체 SFA에서 힘을 합쳐 《여대에 침입한 남성들과 여적여의 진실》 이라는 제하의 세미나를 기획했다가 뜻밖의 논쟁이 벌어져 무산된 사건.
당초 해당 세미나를 위해 주최측은 여대 침입 사건으로 피해를 입었던 인물을 발언자로 섭외했지만, 해당 인물은 남성에 대한 트라우마로 인해 강의실에 남성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보호해 달라고 요청했다. 주최측은 이를 받아들이려 했지만, 그 과정에서 주최측이 공지한 "지정성별 남성 참석 불가" 라는 표현에 대해 준비위원 중 하나가 트랜스젠더와 같은 성 소수자들을 배척하는 방침이라며 태클을 걸었고, 이것이 교내에 논쟁이 되어 결국 세미나가 무산되었다. 이화여성주의학회는 해당 사건에 대해 상단의 입장문을 올렸다.
자세한 내용은 《근본없는 페미니즘》 이라는 도서의 5장에서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14. 이화여자대학교 정유라 특혜 논란
'''항상 문제시 되어 왔던 예체능계 특례입학 논란에 대통령까지 연관된 사건. 개인이 국가를 쥐고 흔드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보여준 사건'''이며 동시에 학교의 명예를 크게 실추시킨 사건.
정윤회와 최순실[4] 의 딸인 정유라(체육과학부 15학번)[5] 양에 대한 논란이 있다. 정 양은 승마 선수인데,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서 체육 특기자 전형으로 이화여자대학교 건강과학대학[6] 체육과학부에 입학했다.
본래 체육 특기자 전형으로 뽑는 종목은 11개였고, 그 중에 승마는 없었다. 그런데 정 양이 입학하던 해에 종목이 23개로 늘었으며, 그 중에 승마도 포함되었다. 또한 체육 특기자 전형의 서류 접수 마감은 2014년 9월 16일까지였는데, 정 양이 금메달을 딴 것은 9월 20일의 일이었다. 정 양은 입학면접 때 선수복[7] 차림으로 금메달을 가지고 왔는데, 입학처장 남궁곤 교수가 공공연히 "금메달을 딴 학생을 뽑으라"고 했다고 한다. 참고로 본래의 규정에 따르면, 단체전에서 딴 메달은 인정되지 않는다(개인전 메달만 인정).
입학 후에도 정유라 양은 학교에 잘 나오지 않았다. 1학년(2015년) 1학기의 학점은 0점대에 가까워(대부분 F학점) 학사경고를 받았다. 1학년 2학기에는 독일에 머물며 승마 훈련을 한다는 이유로 휴학했다. 지도교수는 "경고가 계속되면 제적될 수도 있다"고 주의를 주었으나, 정 양의 어머니 최순실은 득달같이 학교로 달려와 항의했고, 지도교수는 즉시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었다.
2학년(2016년) 1학기에는 휴학하지 않았으나, 역시 독일에서 훈련한다며 거의 등교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화여대에서는 학칙을 개정하여 정 양의 출석을 인정해 주었다. 국제대회, 연수, 훈련, 교육실습 등에 참가한 경우, 2주 이내에 증빙 서류를 제출하면 출석을 인정해 준다는 것이다. 심지어 학칙을 개정한 시점은 2016년 6월인데, 3월 수업부터로 소급 적용했다. 정 양은 서류를 제대로 제출하지 않고서도 출석을 인정받았고, 성적도 크게 올라 전 과목에서 2점대(C학점)의 학점을 받았다.
정 양이 기한을 넘겨 제출한 레포트는 분량과 내용 모두 지극히 부실한 것이었다. 개인이 취미로 운영하는 블로그의 글을 그대로 베꼈고, 오타 투성이에, 비속어와 욕설까지 거리낌없이 썼다. 그러나 교수는 이를 문제삼지 않고, 오히려 지나치게 친절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일일이 첨삭하여 주고, 메일에 파일이 첨부되지 않았으니 다시 보내 달라고 공손하게 청하며, 깍듯하게 경어를 쓰는 등등. 학생을 가르치는 스승이라기보다, 마치 상전을 모시는 하인과도 같은 태도였다.
정 양은 방학 계절학기로 의류학과의 과목을 수강하였는데, 중국으로 가서 중국의 의류학과 대학생들과 함께 패션쇼를 하는 것이었다. 다른 학생들이 단체로 이코노미 클래스를 타고 중국으로 갈 때, 정 양은 교수들과 함께 비즈니스 클래스를 이용했다. 중국에서도 정 양은 다른 학생들과 함께 움직이지 않았고[8] , 수업에도 제대로 참여하지 않았지만, 정상적으로 학점을 받았다(B학점). 교수들은 오히려 정 양을 잘 봐주고 돌봐주라고 학생들에게 언질까지 했다고 한다. 문제의 의류학과 수업을 들었던 학생이 이를 비판하고 항의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였으나, 대자보는 아무런 소리소문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이런 여러가지 일들로 논란이 커지자, 정유라 양은 2학년 2학기를 휴학했다.
논란이 거세지자 정 양은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 계정을 탈퇴하였으며, 2014년경 페이스북으로 "돈도 실력이야"라고 올린 글과 인천 아시안 게임 인터뷰 중 "공주라는데 기분 좋죠, 뭐" 라는 발언 때문에 더욱 비판받고 있는 중.
논란이 국정감사를 통해 알려지면서 사회에 큰 파장을 주었고, 심지어는 이대 교수협의회가 나서서 총장 사퇴를 명분으로 내걸고 시위를 진행했다.
결국 10월 17일, 여러 의혹에 대해서 해명하기 위해 최경희 총장과 기자들과의 만남이 성사되었다. 이 자리에서 최 총장은 "최순실의 딸 정유라 양에 대한 특혜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학사 관리 부실 의혹에 대해서는 일부 인정했지만, 대부분 모르쇠로 일관했다.
10월 19일 최 총장은 "미래라이프대학 사태에 대해 소통이 부족했음을 인정하며, 최순실의 딸 정유라 양에 대한 의혹은 사실 무근이며, 저의 사직으로 그간의 분열을 멈춰주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사임하였다.#
하지만 정유라 양에 대한 특혜 외에도 해소가 되지 않은 의혹들이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규명을 요구하는 등 열기는 계속될 전망이다
그리고 이후, 정유라 양을 합격시키기 위해 기존 상위권 득점자 2명을 탈락시킨 정황이 포착되었다.
결국 본격적인 제재가 시작되기 시작했다. # 교육부가 3년간 이화여대의 입학사정관 재정을 지원을 했지만 이 시점으로 지원을 중단하고 지원조차 못하도록 막았다.
논란이 커지자 정유라 양은 온라인으로 자퇴서를 제출했다. 그러나 그와 별도로 정 양의 청담고등학교 졸업이 취소되어[9] , 자동으로 이화여자대학교 입학도 취소되었다. 동시에 정 양은 앞으로도 이화여대에 재입학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2017년 초 대학지원사업에서[10] 이화여대가 획득한 8개의 사업[11] 에 최경희 총장과 최순실이 개입하였다고 판단하여, 8개 사업에 대한 자격이 전부 순차적으로 박탈되었다.
2016년 국정조사에서, 안민석 의원의 질의에 대해 이화여대의 교수들은 부정입학을 지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부정입학한 당사자가 있는데, 부정입학을 지시한 사람이 없는 황당한 상황에 대해서, 안민석 의원은 최경희 전 총장을 강하게 비판하였다.
그리고 2017년 6월 23일에 결국 최순실을 포함한 연루된 사람들 '''모두 1심에서 유죄를 선고하였다.'''
이대가 이 사건 이후 민주화의 성지로 여겨지는지 유명인사들이 이전에 비해 자주 방문한다. 이화여대만이 박근혜 퇴진 운동을 하지는 않았고, 박근혜 퇴진 운동의 유일한 중심도 아니었지만 학생들로 대표되는 민주화운동에 있어 가장 화두에 올랐던 대학이었기 때문에 추앙되는 면이 있다. 그러나 다른 민주화운동에서 대학가의 활동과 달리, 시위가 '''학교'''의 민주화와 투명화[12] 를 목표로 시작된 것이었기 때문에 '''국가''' 민주화에 방점이 찍힌 다른 학생운동과는 성격이 조금 다르다. 그래서 이 시위를 대한민국의 민주화 운동으로 보기에는 다소 부족하고, 따라서 이대를 민주화의 성지로 보기에도 다소 부족한 감이 있다. 그럼에도 정유라 입시비리 사건은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에서 그야말로 엄청난 폭풍을 몰고 온 핵이었음은 틀림없기에, 학생으로 대표되는 민주화운동에 있어 이번 최순실-박근혜 게이트의 '''대표 대학'''으로 이화여대가 상징이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만약 '시위의 목적이 '''학교'''의 민주화에 있었다'라고 본다면 이화여대가 민주화의 성소라는 주장에는 동의하지 않을 것이고, '시위가 결과적으로 국가의 민주화에 '''기여했다''''에 초점이 맞춰진다면 민주화의 성소로 보는 것에 동의할 것이다. 어느 관점으로 볼 지는 각자의 해석에 달려있다.
15. 파주캠퍼스 백지화 및 먹튀 논란
파주시와 경기도, 그리고 이대는 과거 2006년 10월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뒤 월롱면 영태리 반환 미군기지 캠프 에드워드 21만9000㎡와 인접 국유지 7만㎡ 등 28만9000㎡에 파주캠퍼스 건립사업을 추진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국방부는 이대와 경기도·파주시 등의 요청을 받아들여 땅값을 애초 1750억원에서 1114억원으로 낮추어 주었다. 그러나 이대는 파주캠퍼스사업 초기에는 캠프 에드워드의 예상 땅값이 292억원이었는데 나중에 교육연구단지 조성 계획이 발표되면서 2010년 감정평가액은 652억원에 이르렀고(이대는 이 이상은 매입이 불가능하다고 입장을 밝혔다고 한다.) 이는 앞서 국방부가 600억원 가량을 낮춰준 1114억원에도 한참 미치지 못했기에(곧, 국방부와 땅값 차이를 좁히지 못해) 협의를 보는데 실패했다고 한다. 또한 이대는 덧붙여서 "최근 대학의 교육연구부지 확보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반값 등록금 논란 등 대학의 재정 운영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가하는 상황에 직면해, 사업을 더는 추진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결국 2006년부터 5년간 진행된 이대캠퍼스 조성 사업은 5년만에 백지화가 되었고 이대는 2011년 8월 19일자로 파주캠퍼스 조성 사업을 포기한다는 입장을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이러한 파주캠퍼스 사업을 백지화하는 과정에서 이화여대는 먹튀 논란에 휩싸였다. 이게 무슨 소리고 하니, 이대가 대학 이전을 명분으로 경기도와 파주시에 과도하다 싶을 정도의 행정적, 재정적 지원을 요구하고 경기도와 파주시는 이러한 대부분의 요구를 수용해주었다는 것이다.
먼저, 파주시와 파주시의회는 이대의 원활한 유치를 돕기 위해 2010년 4월에 조례를 개정, 상하수도 원인자부담금 87억여원을 면제해주기로 했다고 한다. 또한 2008년부터는 교하도서관 운영 역시도 이대에 위탁했고, 이 사업에는 매년 11억원이 지원되고 있었다. 또한 이 시기부터 시민대학 프로그램까지도 마련해 이대 교수들이 강의를 맡도록 했으며, 강의비 지원 등으로 총 1억5000만원이 쓰여졌다고 한다. 이에 대해 당시 파주시 이종춘 시정지원관은 “이화여대 유치 추진 과정에서 이뤄진 지원사업 대부분은 이대의 요청에 의해 이뤄진 것”이라며 “일부 요구는 지나치다는 내부 지적도 있었지만 파주시민들의 ‘대학 유치’ 바람을 저버릴 수가 없어 행정·재정적 지원에 최선을 다해왔다”고 말을 하였다.
경기도 역시도 파주시와 마찬가지로 다양한 사업으로 이대를 지원했다. 백지화가 일어나기 바로 전 해인 2010년 11월에만 해도 이대가 주관하는 자연사 특별전시회에 6억원의 예산을 보탰고, 콘서트에도 7700만원을 도왔다. 여기에다가 더해서 이대 파주캠퍼스가 정상적으로 조성될 경우 이대의 해외 연구기관 유치사업에 18억원을 지원하기로 약속도 했다. 이인재 파주시장 역시도 “지난 4월 김문수 경기도지사와 함께 이화여대 측에 땅값 차액 350억원을 주변 개발 등을 통해 지원하겠다는 약속을 공문으로 보냈다”며 “이런 상황에서 이대가 ‘땅값이 비싸다’는 이유로 사업을 포기하겠다는 것은 비도덕적이고 비상식적이다”고 분노를 표했다. 심지어 이대와 국방부가 땅값을 놓고 이견을 좁히지 못하자 경기도와 파주시는 이대에 차액보전을 문서로 약속했으나 이대의가 사업을 포기해버리자 이들은 크게 당혹스러워했다고 한다.
당연한 소리지만, 경기도와 파주시는 화가 머리 끝까지 났고 법적 대응과 함께 이화여대 앞에서 무기한 시위를 벌이기로 하는 등 강력 반발하였다. 또한 조청식 파주시 부시장은 “이대가 밝힌 사업 포기 사유는 사실과 다른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며 “파주시는 그동안 파주캠퍼스 조성사업을 추진하면서 발생한 주민 피해에 대해 손해배상 청구 소송 등 가능한 모든 법적 대응과 함께 무기한 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자신의 생각과 파주시의 앞으로의 행동방향을 밝혔다. 또한, 이화여대 유치 시민추진위원회 등 파주시민 1500여명은 8월 19일 오후 이대 정문 앞에서 ‘이대 파주캠퍼스 백지화 규탄대회’를 열어 “이화여대 파주캠퍼스 조성 포기는 주민들을 우롱하는 처사”라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실제로 서창배(57) 시민추진위원장은 “파주시민들은 이대가 환경단체의 반발과 소송 등으로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찾아다니며 이대를 도왔다”며 “5년이 지난 이제 와서 무 자르듯 사업을 백지화하는 것은 파주시민을 기만하는 것”이라고 크게 반발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사업이 시행되지 못하거나 중단될 경우에 대한 규정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고 파주캠퍼스 부지는 국유지인데 양해각서 작성 과정에서 소유자인 국가나 국방부가 전혀 참여를 하지 않아 법적인 구속력이 없다고 재판부가 판결을 내렸고 결국에는 패소했다고 한다. 믿고 지원해줬다가 파주시와 경기도만 억울하게 억단위의 돈을 날린 셈.
16. 성균관대 창업 동아리 노벨러 이화여대 앞 불법 노점 사건
2017년 9월 28일~ 10월 3일경까지 거의 1주일간 성대 에타를 강타했던 사건이다.
오르비 성희롱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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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균관대 창업학회 노벨러 2차 사과문
- 성균관대 창업학회 노벨러의 이대 앞 불법 노점
- 같은 시각 이화여대 커뮤니티의 해당 학생들에 대한 성희롱(ex. 정액요거트, 냄져, 와꾸눈갱오르비 성희롱 캡처)
- 위 학회의 불법 노점에 대한 사과
- 성균관대 에브리타임의 이화여대 비방(ex. 이대 잡년들인스티즈 상세정리글)
- 어느 성균관대생의 내부 고발
- 어느 이화여대생의 위 성희롱에 대한 내부 고발
2차 사과문에 의하면, 최초 성균관대 정문에서 진행하려 했으나, 해당일 학교가 쉬는관계로 다른 학교를 물색 -> 디저트 판매 대상으로 여대 + 거대상권인 이대를 선택하였다고 함. 기타까지 동원하고 반말 호객행위를 한 노벨러에 대응해 "여대면 요거트 먹는 줄 아느냐", "남자들이 와서 팔면 여대생들이 좋다고 사줄것 같으냐" 같은 비판이 있었다. 과연 어느 근거에서 '자취'하는 여대생이 해당 상품 수요층에 적당하다고 판단했을까? 과연 성차별이 개입하지 않았을까? 판단은 그대들의 몫이다. 왜 굳이 먼곳까지 왔을까? 다른 학교 앞 불법 노점을 차린 것에 대한 설명은 하지 못하였다. 또한 과연 해당 과일와 요거트가 신선했는지도 의문이다.
2. 최초 성대 에브리타임 반응성대 에탐 이용자들이 최초 이 사건을 접한 것은, 이대생 여자친구를 둔 성대생의 글로 인해서였다. 이 글에는 1. 불법노점 2. 경찰에게 신고해~신고해~ 반항 3. 배고프잖아 먹고가~ 반말 호객행위 등 내용이 적혀있었고, 이에 대해 성대생들은 학교 망신이라며 비판하는 자세였다.
3. 노벨러 사과문 이후노벨러의 1차 사과문이 페이스북 페이지에 개시되자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500개 이상의 댓글이 달리는 등 반응이 뜨거웠다. 대부분이 이대생의 댓글이었으며 다수는 "이게 사과문인가?" "이대에 대한 사과가 빠져있다" 라는 비판이었으며 소수는 "성대에선 글쓰기를 안가르치나" "성대클라스" "경영학 수업 수준" "맞춤법 비아냥" "공자님이 노하시겠네" 등의 학교에 대한 비아냥이 있었으며, 이에 대해 성대생들이 반발하자 비아냥 댓글의 대다수는 삭제되었다. 그 와중에 폭주한 성대생 한명이 "쥐좆만한 년들 뚝배기 깨고싶네" 라는 댓글을 달았고 이로 인해 갈등이 심화되었다.
4. 분쟁이 커진 이유위에 언급했듯 성대에 대한 도를 넘은 비아냥이 존재했으나 댓글 삭제로 인해 사라져 버리니 나중에 사건을 보게된 이대생 눈에는 적정수준의 비판댓글만 존재하는데 성대생들이 자기 학교라고 쉴드치네? 로 보였을 것이다. 따라서 악순환만 이어지고, 노벨러는 결국 사과문을 삭제한다. 하지만 각 커뮤니티에 박제되었다.
5. 이후 진행1) 노벨러 페이지에서 댓글싸움
2) 각 에탐에서 서로 디스
3) 성대 에탐 이용자 중 1인이 본인 페이스북에 성대 에탐의 실상이라며 이대 욕 및 성희롱하는 글을 게시
4) 이대 커뮤니티 이용자 중 1인이 이대 커뮤의 실상이라며 성대생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 글들을 게시
5) 여기저기 타 커뮤에 퍼지고 시간이 지나며 대충 마무리
5. 총평2) 각 에탐에서 서로 디스
3) 성대 에탐 이용자 중 1인이 본인 페이스북에 성대 에탐의 실상이라며 이대 욕 및 성희롱하는 글을 게시
4) 이대 커뮤니티 이용자 중 1인이 이대 커뮤의 실상이라며 성대생을 대상으로 한 성희롱 글들을 게시
5) 여기저기 타 커뮤에 퍼지고 시간이 지나며 대충 마무리
1) 노벨러의 잘못은 무엇인가?
불법노점을 행한 것과 반말을 하며 호객행위를 한것, 학생들의 통행을 막은 것, 그리고 쥐좆만한 년들이라는 성희롱 단어를 쓴것이다. 애초에 이대 커뮤에서 증언되었던, 크게 4가지로 요약되는 잘못 - 1. 불법노점 2. 경찰관에 대듬 3. 원래 빅이슈 판매원 자리인데 쫓아냈음 4. 반말호객행위를 함 - 중에서, 2번은 경찰서에 문의 결과 그러한 일은 없었다고 확인되었지만 이대생과 지나가는 사람들은 들었다고 증언함. 3번 또한 빅이슈에 문의한 결과 해당 시간에는 영업을 하지 않았다고 확인 되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마지막으로 4번의 반말호객행위 또한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오자, 이대생들은 다수가 들었는데 거짓말일 리가 없다라며 반응하였다. 당연히 거짓 혹은 오해의 가능성이 있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는 없다.
일부 사람들은 '''"성대가 잘못한 것은 맞지만, 이화여대도 저렇게까지 도를 넘어 성희롱이나 유언비어까지 퍼뜨리면서 과잉대응을 하는 행동은 스스로 품위와 수준을 떨어뜨는 행동이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성대도 이에 맞서 성희롱적인 발언을 하였다. 도찐개찐이지만 원인 제공자는 엄연히 성대이다. 성대든 이대든 아무리 폐쇄된 학교 커뮤니티라고 해도, 다른 학교 학생들을 성희롱하면서 대놓고 욕을 하고 비방글이 올라오는 것을 전혀 관리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도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불법노점을 행한 것과 반말을 하며 호객행위를 한것, 학생들의 통행을 막은 것, 그리고 쥐좆만한 년들이라는 성희롱 단어를 쓴것이다. 애초에 이대 커뮤에서 증언되었던, 크게 4가지로 요약되는 잘못 - 1. 불법노점 2. 경찰관에 대듬 3. 원래 빅이슈 판매원 자리인데 쫓아냈음 4. 반말호객행위를 함 - 중에서, 2번은 경찰서에 문의 결과 그러한 일은 없었다고 확인되었지만 이대생과 지나가는 사람들은 들었다고 증언함. 3번 또한 빅이슈에 문의한 결과 해당 시간에는 영업을 하지 않았다고 확인 되었다. 이런 분위기에서, 마지막으로 4번의 반말호객행위 또한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이 나오자, 이대생들은 다수가 들었는데 거짓말일 리가 없다라며 반응하였다. 당연히 거짓 혹은 오해의 가능성이 있지만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날 리는 없다.
결국, 성균관대 측에서도 이제는 이화여대생들을 성희롱하는 글을 쓰면서 분노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이슈가 잠잠해진 이후에는,성대 에탐에서도 엮여서 좋은 일 없다며 이대 비방이나 언급 자체를 자제하자는 분위기이다.
[1] 3월 24일 5명이 퇴학당했고, 2달 후 14명이 추가로 퇴학처분되었다.[2] 대체로는 장애인인 정강용 씨처럼 높은 성적을 받았는데도 군가산점제로 인하여 성적이 밀린 경우[3] 설립자 메리 스크랜튼 부인의 이름을 따서 지은 이름[4] 박근혜 대통령과 친분이 깊었던 최태민의 딸.[5] 본래 정유연이었는데 정유라로 개명했다. 대학 입학 전부터도 최순실, 박근혜 대통령과 연관된 논란이 많다.[6] 정유라 양이 입학한 이듬해, 단과대학 구성이 개편되어 건강과학대학은 없어졌고, 대신 신산업융합대학이 생겨났다. 이 신산업융합대학에는 정 양이 속한 체육과학부와, 정 양이 부당하게 특혜를 받은 의류학과가 포함되어 있다.[7] 원래 면접 때는 신분을 노출할 수 있는 차림이나 발언 등을 해서는 안 된다.[8] 경호원들과 함께 다녔다고 한다.[9] 청담고등학교 시절에도 결석, 지각, 조퇴가 많아 출석일수가 모자랐다. 심지어 경복초등학교와 선화예술중학교 시절에도 마찬가지. 다만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이라, 초등학교와 중학교만은 졸업취소를 시키지 않은 듯하다.[10] ACE사업, LINC사업, 잘 가르치는 대학, CK사업 등의 국가 주도의 고액지원사업[11] 5년간 약 600억가량이 지원되는 사업이었으며, 사업의 개수는 전국 대학들 중 최다.[12] 입시 비리 척결(정유라에 대한 처벌 및 재발 방지 대착 요구)와 장학금 무통보 폐지, 상업시설 유치 등에서 비롯된 불통 개선이 주요한 요구였다. 학교의 명예 실추로 인한 학벌 떨어짐에 대한 이야기는 어떤 대자보와 구호에도 전혀 안 나왔지만, 외부에서 "학벌 좋은 사람들이 이기심 부린다, 사다리 걷어찬다"라는 물증 없는 추측을 확신하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