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경왕후

 



'''조선 제24대 왕비
인경왕후 | 仁敬王后
'''
존호 · 휘호 · 시호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5px -11px"광렬효장명현선목혜성순의인경왕후
(光烈孝莊明顯宣穆惠聖純懿仁敬王后)
<colbgcolor=#bf1400> '''시호'''
인경왕후(仁敬王后)

<colbgcolor=#bf1400><colcolor=#ffd400> '''출생'''
1661년 10월 25일 (음력 9월 3일)
조선 한성부 회현방 사저[1]
'''사망'''
1680년 12월 16일 (음력 10월 26일)
(향년 19세)
조선 경덕궁 회상전[2]
'''능묘'''
익릉(翼陵)
'''재위'''
'''조선 왕세자빈'''
1671년 4월 30일 ~ 1674년 9월 22일
(음력 1671년 3월 22일# ~ 1674년 8월 23일)
'''조선 왕비'''
1674년 9월 22일 ~ 1680년 12월 16일
(음력 1674년 8월 23일 ~ 1680년 10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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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f1400> '''본관'''
광산(光山)
'''전호'''
영소전(永昭殿)
'''부모'''
부친 광성부원군 김만기(光城府院君 金萬基)
모친 서원부부인 청주 한씨(西原府夫人 淸州 韓氏)
'''형제'''
4남 3녀 중 장녀
'''부군'''
숙종
'''자녀'''
2녀[9]

1. 생애
2. 능묘
3.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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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


인경왕후는 1670년(현종 11년) 10세 때 왕세자빈에 간택되어 의동별궁에 들어갔으며. 다음해 음력 3월, 책봉되었다. 1674년 현종이 승하하고, 숙종이 즉위하자 왕비가 되고 1676년 16세의 나이로 정식으로 왕비에 책봉되었다. 1678년(숙종 4년)과 1679년(숙종 5년)에 2명의 공주를 낳았으나 모두 일찍 죽었다.
1680년(숙종 6년) 음력 10월 26일, 2경(二更 : 오후9시 ~ 11시)에 경덕궁에서 발병 8일 만에 천연두로 젊은 나이인 19세에[3] 승하한 인경왕후와 오랫동안 아이를 가지지 못하는 인현왕후 때문에 인현왕후를 중심으로 하는 서인희빈 장씨를 중심으로 하는 남인이 대립하는 계기가 되어 후일 인현왕후가 폐위되는 기사환국갑술환국조선 역사의 비극을 초래하게 된다.
참고로 인경왕후가 승하했을 때에는 숙종도 병에 걸려 숙종은 창덕궁에, 인경왕후는 경덕궁에 각각 따로 있었다. 이에 대신들이 인경왕후의 승하를 숙종에게 알리고자 하였으나, 명성왕후(숙종의 어머니)가 "주상이 밤에 구토하고 가슴과 배에 통증이 있다가 이제 겨우 잠들었으니, 중궁의 승하는 내일 아침에 알리라."라고 하여 숙종은 인경왕후의 부음을 다음 날 아침에야 듣게 된다.
서인의 거두였던 대학자 사계 김장생의 고손녀이기도 하다. 할머니 해평 윤씨는 윤두수의 고손녀이자 정혜옹주(貞惠翁主)[4]의 손녀이다. 숙부는 구운몽을 쓴 서포 김만중. 그리고 훗날 인현왕후 복위에 적극 가담한 김춘택[5]은 친정 조카이다.

2. 능묘


무덤은 서오릉 중 하나인 익릉(翼陵)이다. 경기도 고양시 용두동에 있으며,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8호로 지정되었다. 숙종 연간에는 왕릉의 능제를 단순화하고 석물을 간소하게 제작하도록 명하였으나, 그 이전에 만들어진 능묘이므로, 《국조오례의》의 제도를 따르고 임진왜란 이후의 양식을 나타내고 있다.

3. 가계


  • 남편 : 숙종(1661년 ~ 1720년, 재위 1674년 ~ 1720년)
    • 장녀 : 공주(1677년 ~ 1678년) - 조졸
    • 차녀 : 공주(1679년 ~ 1679년) - 조졸
인경왕후의 후임이었던 인현왕후와는 아주 묘하게 연결되는데 인경왕후의 5대조 김계휘의 동생인 김은휘라는 인물이 있는데 김은휘의 딸[6]이 송이창에게 시집가서 낳은 딸[7]이 민유중과 결혼한다. 여기서 태어난 딸이 바로 인현왕후이다.
촌수로 따지면 인경왕후가 인현왕후의 손녀뻘에 해당된다.[8]

[1] 현재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 일대.[2] 훗날 경희궁으로 바뀐다.[3] 재위한 조선의 왕비 중에서 4번째로 단명했다. 조선 역대 왕비 중 가장 단명한 왕비는 효현왕후 김씨로 그 다음은 장순왕후, 공혜왕후 순으로 승하했다.[4] 선조인빈 김씨의 딸.[5] 인경왕후의 오빠 김진구의 아들.[6] 김은휘의 또다른 딸은 금천 강씨 강찬이라는 인물과 결혼하는데 아들이 강석기, 다름아닌 소현세자빈(민회빈 강씨)의 아버지다.[7] 송준길의 누이기도 하다.[8] 이렇게 차이가 많이 나는 이유는 김계휘, 은휘가 형제긴 하지만 이 둘의 나이차가 15살 차이다. 김계휘의 아들인 김장생과 김은휘가 숙질사이지만 고작 7살 차이밖에 안 난다. 이미 여기서 한세대가 차이나고 또 삐끗하다보면 이렇게 벌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