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전
魂殿
1. 개요
조선시대에 왕과 왕비가 죽은 뒤 신주와 어진을 모시는 전각으로, 왕과 왕비를 위해 궁궐 내에 마련되는 사당이다. 3년상 동안에는 이 곳이 종묘 대신이며, 3년상이 끝나면 종묘로 신어(신주와 어진)를 옮기고 혼전은 철거된다.[1]
혼전과 빈소는 다르다. 빈소는 승하하고 발인하는 5개월 동안 조문을 받는 역할을 하고, 재궁[2] 을 왕릉에 묻고 나면 신주는 우주궤에 넣어 재궁을 싣고 왔던 상여에 올리고 궁궐로 돌아와서 미리 지정되어 있던 혼전에 봉안하는 반우(返虞)라는 의식이 행해진다. 이 때부터는 혼전에서 제례를 올리다가 3년상이 끝나면 종묘로 옮겨 제례를 올린다.
2. 역사
고려시대에는 국상이 나면 선덕전(宣德殿), 연영전(延英殿) 등 궁궐 내의 전각에 빈소를 마련하여 혼당(魂堂)으로 삼았다.
조선시대 최초의 혼전은 1396년에 설치된 신덕왕후의 혼전인데, 이 때는 따로 전호를 내리지 않고 그저 실록에는 "현비가 거처하던 인안전(仁安殿)에 혼전을 설치한다."라는 기록만 존재한다.
태조는 1398년 경복궁 내에 신의왕후의 혼전인 인소전(仁昭殿)을 건립하였다. 그리고 1408년 태조가 사망하자 태조의 신위도 인소전에 함께 봉안되었고, 이 때 전각 이름이 문소전이 되었다.
이어서 정종과 정안왕후의 혼전인 인덕전(仁德殿)이 정종이 살던 인덕궁 내에, 태종과 원경왕후의 혼전인 광효전(廣孝殿)이 생겼는데, 당시에는 3년상이 끝난 뒤에도 신어가 계속해서 남아 종묘와는 별도로 운영되며 궁궐 내의 종묘 역할을 하였다.
세종 대에 들어가서야 "한 세대마다 이렇게 혼전이 생기면 나중에 가서는 궁궐이 혼전으로 꽉 차겠다."는 의견이 나와서 1432년, 광효전을 문소전으로 합하고 경복궁에 봉성전(奉誠殿)을 건립하여 원묘로서 관리하였다.[3] 봉성전은 건립 한 달 후에 문소전(文昭殿)으로 이름을 바꾸고 원묘제를 이어가다 임진왜란 이후 경복궁 내의 문소전이 불타 중단된다.
세종 대에 원묘제가 생긴 이후 혼전은 원묘제와는 별개로 운영되었는데, 문소전과 광효전처럼 3년상이 지난 후에도 놔두지 않고 3년상을 다 치르면 철거되어 종묘에 봉안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3. 상세
궁궐 내 전각 중 한 곳을 임의로 혼전으로 지정하여 사용하는데, 전호(殿號)를 부여하고 전각 이름은 새로 부여된 전호로 바뀐다. 예를 들어 덕수궁 함녕전의 경우는 고종이 승하하자 함녕전에 고종의 혼전을 설치하고 고종의 전호를 효덕전(孝德殿)으로 정하는데, 이 때 함녕전의 이름이 3년동안 효덕전으로 바뀌어 있다가 고종의 신주와 어진이 종묘로 옮겨 봉안되자 다시 함녕전의 이름을 되찾았다.
왕후의 경우에는 부군인 왕보다 늦게 승하하게 되면 왕과 같이 3년상을 치르지만 부군인 왕보다 일찍 승하하면 기년상(1년상)으로 치른다. 11개월에 연제(練祭)를 행하고 13개월에 상제(祥祭)를 행하며 15개월에 담제(禫祭)를 지냈다.
왕후의 신주는 왕의 신주와 함께 종묘에 봉안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담제가 끝난 후에도 왕후의 신주는 혼전에 남아서 왕이 승하하여 담제를 치를 때까지 기다렸다가 왕의 신주와 함께 종묘에 봉안된다. 그 때까지 왕후의 혼전은 계속 궁궐에 남아 있다가 왕의 혼전이 철거될 때 같이 철거된다. 반면, 왕이 왕후보다 일찍 승하하면, 왕의 신주는 정상적으로 3년상을 치르고 담제를 치르자마자 혼자 종묘에 봉안되고, 후에 대비가 된 왕후가 죽어 3년상까지 마치면 그 때 가서 왕후의 신주를 종묘에 있는 왕의 신주 옆에 봉안한다.
4. 전호(殿號)
왕과 왕비가 승하하면, 시호와 묘호, 전호를 올리는데, 모두 승하한 인물을 가리키는 것이므로, 가끔 묘호나 시호 대신 전호를 써서 승하하신 왕이나 왕비를 가리키기도 한다. 예를 들어 명성황후에 대한 회고록을 쓴 한 궁녀는 명성황후를 가리키며 "경효전(景孝殿)께서는..."이라고 적기도 했다.
특히 시호와 묘호가 정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전호를 가장 먼저 올리기 때문에 시호와 묘호가 정해지기 전의 대행왕이나 대행왕비는 전호(殿號)로 통칭했다.
5. 기타
단종과 정순왕후 송씨, 폐비 윤씨, 연산군과 거창군부인 신씨, 광해군과 문성군부인 유씨 등은 사망 당시 왕과 왕비가 아닌 폐서인의 신분으로 사망했기 때문에 따로 전호가 없다. 신덕왕후의 혼전은 현재의
6. 목록
[1] 건물 자체를 철거하는 것이 아니라 혼전을 만들 때는 용도에 맞게끔 건물 내부를 개조하는데, 이를 다시 일반 건물로 바꾸는 것을 철거한다고 한다.[2] 왕과 왕후, 세자와 세자빈의 시신을 넣은 관을 말한다.[3] 이 때 인덕전은 봉성전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정종은 정식 임금으로 인정되질 않았서였다.[4] 전호를 따로 내리지 않은 듯 하고, 신덕왕후가 거처하던 인안전을 혼전으로 삼는다는 기록만 있다.[5] 옛 경희전을 고쳐 사용했다고 한다.[6] 성종실록에 나와있지 않아 경복궁 어디에 설치했는지는 알 수 없다.[7] 실록에는 어느 전각이라고 나와있지 않고, 1545년에 중종이 승하하면서 중종의 혼전인 경사전에 같이 봉안하였다고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