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민대학습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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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페이지
人民大學習堂 / Grand People's Study Hall
1. 개요
1.1. 인민대학습당의 내부 모습
1.2. 인민대학습당외 북한내 도서관들
1.3. 여담
2. 관련 항목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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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에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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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찍은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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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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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대학습당 건설을 보도한 로동신문기사. 1979년 12월 착공해 1980년 10월경에는 거의 공사가 끝난 상태였다.
人民大學習堂
북한 평양직할시 중구역에 자리잡고 있는 도서관으로 북한 지역에서 규모가 가장 큰 도서관이다.
원래 1945년 광복직후에 평양시립도서관으로 개관했고, 1948년에 국립중앙도서관으로 명칭을 바꿔 달면서 국가대표도서관으로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이후 1963년에 건물을 이전하면서 규모를 키워나갔고 1973년에 중앙도서관으로 개칭했다가 1982년 현 건물로 이전하면서 인민대학습당으로 명칭을 바꾸었다.
현 건물은 김일성의 지시로 1982년 지어졌으며 총면적 10만m²에 10층 규모로 원래 정부청사로 계획된 건물이었으나 김일성의 지시로 바꿨다고 한다. 이는 김일성이 도서관 확충과 독서문화 장려에 대해서 관심이 많았던 인물이었던 이유가 컸다. 국가지도자 자리에 오르자마자 도서관을 대대적으로 확충하는데 크게 신경을 썼고, 6.25 전쟁 직후의 전후 복구 과정에서도 도서관을 체계적으로 복구, 건설하는데 신경 쓰며 상당한 재원을 투입하였다. 그 덕택에 한동안 북한이 남한보다 뛰어난 인프라를 갖추고 있어서 1980년대 초반까지도 북한 도서관이 남한 도서관보다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우월했을 정도였다. 아무튼 그 덕택에 건물 면적 하나만큼은 국립중앙도서관보다 크다.
북한에서는 인민의 학습을 생각하는 김일성의 은혜의 상징이라고 선전하면서 외국인들이 방문하는 필수 관광 코스로 만들고 있다. 다만 북한의 정보통제 정책상 일반인들이 열람할 수 있는 책은 북한 서적 밖에 없다. 북한의 국립중앙도서관인 만큼 남한 국립중앙도서관은 못 하더라도 많은 장서량을 보유하고 있고, 고서들과 외국에서 수입해온 서적들도 다수 보유하고 있지만 열람은 전문가와 연구원 정도가 되어야 가능하다. 다만 건립 초기에 신간열람실에서 외국 서적도 상당히 자유롭게 열람할 수 있었다는 얘기도 있다. 물론 90년대 들어 사상 통제가 강화되면서 폐쇄.
사진에서 건물 앞에 굉장히 널따란 광장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로 북한 관련 뉴스마다 등장하는 대규모 열병식 장소로 유명한 김일성 광장이다. 선군정치다 뭐다 해서 이 광장에서 열병식이나 기타 대규모 시끌벅적한 군중 집회를 상당히 자주 하고 있는 터라, 학습당 이용객들에게 심한 애로사항이 꽃피고 있을 듯 보인다. 게다가 김정은을 비롯해 군부와 정계의 높으신 분들이 이들 의식과 집회를 참관하는 주석단이 학습당 코앞에 붙어 있어서, 최소한 행사 당일에는 아예 학습당이 문을 닫는다. 공식적으로는 격주 단위로 휴관하도록 되어있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휴관일이 많은 것이다.
참고로 인민대학습당 옆에 있으면서 김일성 광장 좌우에 있는 건물은 조선중앙력사박물관과 조선미술박물관. 남한으로 치면 세종로나 시청 앞 광장에 국립중앙박물관국립중앙도서관, 국립현대미술관이 모여 있는 격이다.
도서관의 정확한 장서량은 확인하기 힘들다. '3천만 권' 운운하는 루머가 있으나 이는 북한의 선전 문구를 오독한 것이다.
북한의 해외향 선전선동 웨브인 "우리민족강당"(김일성방송대학의 웨브페지)에서는 다음과 같이 선전하고 있다.

"인민대학습당은 그 규모와 건축술, 장비수준에 있어서 세계 그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수 없는 주체시대의 빛나는 기념비적창조물이다. 인민대학습당은 조선식건물로서 10개의 호동으로 구분되는데 크고작은 조선식지붕이 34개이고 방수가 600여칸이다. 3천만권의 장서능력을 가진 서고를 중심으로...(후략)"

출처

즉 책을 3천만 권 소장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 건물의 서고가 최대로 소장할 수 있는 책의 권수가 약 3천만 권이라는 것이다. 그 외 북한의 책 《조선건축사》 2권(과학백과사전종합출판사, 1989)에서는 인민대학습당에 대해 정확한 장서 능력이나 소장 권수를 밝히지 않고 "수천만 권의 장서 능력을 가진..."으로 얼버무리고 있다. 다만 인민대학습당으로 이관되기 직전의 중앙도서관에서 1980년대 초반 기준으로 약 130만 권 가량의 장서를 보존하고 있었고, 인민대학습당이 개관 된 이후로는 건축 과학 기술 도서를 많이 수집하여 현재는 디지털자료까지 포함해서 대략 3백~4백만 권 가량의 장서량으로 북한의 경제수준과 도서발행량 수를 감안하면 상당한 량의 장서량임을 추정할 수 있다.

1.1. 인민대학습당의 내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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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어를 공부중인 평양의대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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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답실. 은퇴한 학자들이 상주하거나 편지와 전화등으로 이용자들의 질문에 답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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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강의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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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검색 컴퓨터

1.2. 인민대학습당외 북한내 도서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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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북도 청진시 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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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령시 인민도서관

1.3. 여담


  • 이 건물은 김정일이 권력투쟁에서 승리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김일성은 인민대학습당을 지을 부지를 미리 선정해놓고 있었는데 어느날 부지를 시찰하러 와보니 처남인 김성갑이 지어놓은 대저택이 눈에 띄였다. 자신이 아끼고 아끼던 부지에 김성갑이 지은 집이 보이자 화가 난 김일성은 김성갑을 불러내어 훈계를 했고 그 날 저녁에 집에서 밥을 먹는데 아내 김성애가 김성갑을 두둔하고 처남이 그런집에 살면 안되냐고 역정을 부리고 밥상을 뒤엎었다. 국물을 뒤집어 쓴 김일성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나있었는데 그때 마침 기회를 노리던 김정일이 권력투쟁 대상인 이복동생 김평일과 계모 김성애 일가의 비리를 보고했다. 이로 인해서 김정일은 확고히 후계자 자리에 올랐으며 김성애 일가는 일약 쩌리 신세가 되었고, 김일성의 후계자로 유력했던 김평일도 유력 대권주자 자리에서 탈락하여 외교관 신분으로 동유럽 국가들을 전전했다. 김정일이 죽을때까지 북한에 귀국할수 없는 처지가 되었으며 김정은 집권기인 2019년 말이 되어서야 북한에 돌아올수있었지만 이미 나이가 상당히 들었기 때문에 비상사태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은 권력의 주변부를 맴돌듯하다.
  • 고려투어스나 영 파이오니어 투어스 같이 외국인 대상 북한 관광사들이 항상 패키지 투어에 집어넣는 곳이다. 유튜브에서도 외국인 관광객들이 여기에 올라 김일성광장대동강 그리고 건너편 대동강구역 등을 보며 사진을 찍는 영상이 많이 올라와 있다.

2. 관련 항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