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태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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印泰植
1902년 12월 17일 ~ 1975년 5월 22일 (향년 72세)
1. 개요
2. 생애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공무원, 정치인, 친일반민족행위자이다. 본관은 교동(喬桐)[1].

2. 생애


1902년 충청남도 당진군 외맹면 통정리(현 당진시 석문면 통정리)#에서 아버지 인익수(印益洙)[2]와 어머니 한양 조씨 조석원(趙石瑗) 사이의 5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일본 야마구치고등학교를 거쳐 도호쿠제국대학 법문학부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귀국 후 1930년 조선총독부 재무국 세무과에 속(屬)으로 근무하기 시작하면서 세무공무원 생활을 시작하였고 1934년까지 동 부서에서 근무하였다. 1935년부터 1936년까지는 경성세무서, 1937년 강경세무서, 1938년부터 1940년까지 홍천세무서 등지에서 속(屬)으로 근무하였으며#, 이후 홍천세무서장, 청주세무서장 등을 역임하였다.
8.15 광복 후에도 세무공무원으로 근무하였다. 강원도 재무국 간세과장, 재무부(현 기획재정부) 사세국장 등을 역임하고 1953년 9월부터 1954년 2월까지 관재청(현 관세청) 청장을 역임하였다.
1954년 제3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충청남도 당진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56년 5월부터 1957년 6월까지 재무부 장관을 겸직하였다. 1958년 제4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유당 후보로 충청남도 당진군 갑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0년 제5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하였으나 민주당 이규영 후보에 밀려 낙선하였다.
1963년 제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민주공화당 후보로 충청남도 당진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당선되었다. 1964년 민주공화당 정책위원회 의장, 대한민국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였다.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민주공화당 공천에서 탈락하고 자유당 전국구 국회의원 제2번으로 출마하였으나 낙선하였다. 이후 정계에서 은퇴하였고 동아건설산업 사장을 역임하였다.
2008년 발표된 민족문제연구소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중 관료 부문에 선정되었다.

[1] 참의공파 61세 식(植) 항렬.[2] 초명 인창수(印昌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