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송

 

張松
(? ~ 213)
1. 개요
2. 정사
3. 연의
4. 미디어 믹스


1. 개요


후한 말 군벌인 유장의 부하, 장표의 아버지.
익주(益州) 촉군(蜀郡) 성도현(成都縣) 사람으로 자는 자교(子喬).[1]

2. 정사


익부기구잡기에 따르면 형 장숙은 위엄이 있고 엄숙하며 용모가 매우 훌륭했지만, 동생 장송은 사람됨이 짧고 작으며 방탕하고 절개와 지조를 익히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식견이 높고 사물의 이치에 밝아 총명하고 과단성이 있어 재주가 있었다고 한다.
조조가 형주를 장악하고 중원에서의 영향력이 강화되자, 유장조조장로를 이용하여 서촉을 침공할까봐 두려워했다. 이에 여러 차례 사절을 파견하여 조조에게 복종의 의사를 밝히고 꼬박꼬박 각종 예물을 바쳤는데, 그러던 중 파견된 사절이 장송이었다. 문제는 장송이 파견된 때가 하필 적벽대전을 앞둔 시기였고, 손권을 관광태울 생각에 푹 빠져있던 조조는 장송을 무시하였다.[2] 관직도 영창군의 비소현령(比蘇―) 자리만을 주었고, 결국 장송이 불만을 품었다.
이내 조조가 적벽 대전에서 패하자 장송은 조조와의 관계는 끊고 유비와 제휴할 것을 유장에게 권하였다. 유장이 장송에게 누가 유비에게 사신으로 가면 좋겠냐는 묻자 장송은 평소 자신과 친한 법정을 추천하였다. 이로써 유장은 유비와 연합하였고 이어서 법정과 맹달을 통해 수비할 병사 수천 명을 지원해주었으며 전후로 선물도 막대하게 하였다. 법정이 돌아와 장송에게 이르길 유비에겐 웅대한 계략이 있다고 칭찬하였다. 둘은 이전부터 유장과는 함께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남몰래 탄식해왔던 터라 유비를 받들 모의를 하고는 때를 기다렸다.
이후 조조가 한녕태수 장로를 정벌하려 한다는 소문에 유장이 두려워하였다. 장송이 설득하기를, “조조군은 천하무적입니다. 장로의 자원을 이용해 촉을 경략한다면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유비는 같은 종실이고 조조의 오래된 원수이며 용병도 잘합니다. 유비라면 장로를 틀림없이 쳐부술 것이고 그러면 익주는 튼튼해져 조조라 해도 할 수 있는 게 없을 겁니다. 지금 방희, 이이(李異) 등은 자신의 공을 믿어 교만하며 그 마음도 외부 세력에 기운 것 같습니다. 유비를 부르지 않는다면 안팎에서 난을 접해 필패할 것입니다.”라 했다. 주부(主簿) 황권과 종사 왕루가 완강히 반대하는데도 유장은 법정을 시켜 유비를 불러들였다. 법정이 유비에게 유장 몰래 헌책하기를, “장군의 뛰어난 능력으로 유장의 나약함을 틈타십시오. 주의 고굉(股肱)인 장송이 내응하겠습니다. 연후에 익주의 부유함을 바탕으로 험한 지세에 기댄다면 대업도 손바닥을 뒤집는 것처럼 쉽게 이룰 것입니다.”라 하였다. 유비가 이에 응하였다.
유비가 삼파(三巴)를 거쳐 광한군 부현(涪縣)에 이르렀다. 유장이 직접 보병과 기병 3만여 명을 이끌고 마중 나가 성대한 환영 행사를 벌였다. 장송이 법정으로 하여금 ‘이 자리에서 바로 유장을 덮치는 게 가능하다’고 유비에게 고하게 하였다. 방통 역시 같은 진언을 하였으나 유비는 중대한 일이니 창졸간에 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유장은 유비를 행 대사마, 영 사례교위로 추천하고 유비는 또한 유장을 행 진서대장군, 영 익주목으로 추천했다. 유장은 유비의 군사를 늘려주어 장로를 공격하도록 하고 또한 백수군(白水軍-백수는 광한군 백수현)을 지휘하도록 했다. 유비의 군사는 통틀어 3만여 명에, 수레, 갑옷, 기계, 물자가 매우 많았다.
이 해, 유장은 성도로 돌아갔다. 유비는 북쪽으로 가맹(葭萌-광한군 가맹현)에 도착하고, 즉시 장로를 치지 않고 은덕을 후하게 베풀어 중심(衆心-민심)을 거두었다.
212년, 조조가 동오를 치려 하자 유비는 방통의 계책 중 두 번째 것을 선택해 유수구 전투중인 손권을 돕겠단 구실로 동쪽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장송은 유비의 진의를 몰랐기에 유비와 법정에게 편지를 써 ‘이제 막 대사가 실현될 참인데 어찌 관두고 가버립니까!’라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장송의 형인 광한태수 장숙이 화가 미칠까 겁이 나 유장에게 이 사실을 알려버렸다. 이에 정황을 알게 된 유장은 장송을 참하고 유비에게로 향하는 교통을 차단하였다. 유비가 이것을 빌미로 유장이 준 병사와 군량을 가지고 자신의 친족을 향해 전쟁을 개시하였다.
배송지가 《삼국지》선주전에 주석을 달며 인용한 위소(위요)의 《오서》(吳書)에서는 법정이 유비와 밀약하기 전에 장송이 먼저 유비를 대면해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고 하였다. 또 익주의 병기·물자·인마의 수량, 각 요해처의 거리 등 그 허실에 대해 유비가 묻자 모든 정보를 알려주고 지도까지 그려주었다고 하였다. 그런데 〈유장전〉, 〈선주전〉, 〈법정전〉에 의하면 장송은 유비한테 파송된 적이 없다. 사마광은 통감고이에서 이를 《오서》의 오류로 보아 《자치통감》에 삽입하지 않았다.

3. 연의


삼국지연의에서는 키도 짤막하고, 콧대도 낮아서 볼폼없고, 뻐드렁니까지 난 추남[3]으로 묘사된다. 당시 유장은 한중의 장로가 서촉을 위협하자 잔뜩 쫄아서 걱정을 하고 있었는데, 이때 장송이 나서서 조조를 설득하여 장로의 위협을 제거하겠다고 진언한다. 유장은 그 주장을 받아들여 허도에 파견하였지만, 사실 장송은 유장이 변변치 못해 서촉을 지키지 못할 것으로 생각하여 서촉을 진상할 인물을 찾고 있었다. 파촉지형도를 제작한 것도 그 이유에서였다.
그래서 일단 조조를 평가하고자 조조에게 갔지만, 당시 마초를 관광태우고 돌아와 거만해진 조조는 생기다 만 것 같은 놈이 말투까지 불손하다며 냉대한다.[4] 다만 장송의 언변에 흥미를 느낀 양수가 나서서 익주의 사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가 조조의 우월함을 보이기 위해 조조가 직접 집필한 맹덕신서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장송은 "이건 조조가 지은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지은 것이며[5] 서촉의 삼척동자도 암송하는 병법서"라 이야기했고, 양수가 헛소리 말라며 분노하자 보란 듯이 면전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암송했는데 양수가 책을 넘겨보며 대조하자 하나도 틀리지 않아서 깜짝 놀란다.
덕분에 양수의 추천과 설득으로 조조와 다시 만날 수 있었으나, 이미 장수는 조조에게는 관심이 전혀 없었는지 은근슬쩍 조조를 비꼬고 까는 발언을 했다가 분노를 사는 바람에 죽을 뻔 한다.[6] 하지만 양수가 설득한 덕분에 볼기만 맞고 쫓겨났다. 화가 난 장송은 조조를 욕하며 나왔으나, 그렇다고 주군에게 호언장담하고 구원병을 요청하러 나왔는데 빈손으로 익주로 그냥 돌아갈 수도 없어 형주의 유비에게로 향했다. 이 때 제갈량은 이미 첩자를 보내 장송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었기에 유비에게 진언하여 장송이 도착할 즈음에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극진히 대접한다. 이에 감명받은[7] 장송은 유비에게 서촉을 넘기기로 결심했으나 유비가 '유장은 같은 혈족인데 어떻게 손을 대겠나'라며 망설이자 '유장은 이미 그 운이 다했다'며 적극적으로 설득하는 것도 모자라 자신이 만든 파촉지형도를 헌상하여 진심을 전한다.
이렇게 유비와 합심하고 익주로 돌아와서 법정맹달과 먼저 의견을 공유한 후 유장에게 조조가 익주를 침공할 야심이 있다고 겁을 준 뒤 유비와 동맹하는 것이 좋다고 간언한다. 이에 유장은 혼란에 빠져 곧장 유비에게 항복할 뜻을 표했고, 그나마 제정신이었던 황권왕루 등의 충신들이 '대놓고 역적짓을 하는 놈 말을 믿으면 안 된다'며 만류했으나 유장이 장송의 말만 믿고 씹는 바람에[8] 어찌어찌 잘 넘어간다. 하지만 유비는 장송부터 법정, 방통 등이 재촉할수록 더욱 망설였고, 그나마 방통이 제안한 상중하 세가지 계책[9] 중 중책을 따라 거짓으로 형주에 돌아간다고 유장에게 알리고 상황을 보기로 한다.
그런데 장송은 그것이 진짜인 줄 알고 놀라서 유비에게 기회를 놓치지 말라는 밀서를 써서 전달하려고 했는데, 하필 출발하기 직전에 형인 장숙이 갑자기 방문하는 바람에 일단 형을 접대하기로 한다. 하지만 접대 내내 밀서 생각만 하느라 마음이 콩밭에 가 있었고, 결국 여행의 피로와 취기가 겹쳤는지 도중에 자다가 소매 속에 숨겨둔 밀서를 흘렸는데 그걸 장숙의 시종이 주웠다가 돌아갈 때 주인에게 바쳤다. 당연히 일족 말아먹게 생겼다고 판단한 장숙이 유장에게 일러바치면서 장송은 처형당하고 삼족도 멸해진다.
정사와의 차이점은 우선 용모에 대한 설명. 엄숙한 형과 대비된다고 했지 심한 추남이라는 이야기는 딱히 없는데 연의에선 상당히 못생긴 것으로 묘사한다. 조조와의 관계가 틀어진 것도 연의에선 유장의 위급함과 혼란을 강조하기 위해 마초를 정벌하고 오만해진 조조를 만나 까대는 것으로 바꿨다. 조조가 '맹덕신서'를 썼다는 것도 실제로는 조조가 손자병법에 주석을 단 것으로, '위무제주 손자병법(약칭 위무주손자, 현대식으로 쓰면 손자병법 조맹덕 주석판)'이라는 이름으로 아직까지 전하고 있다. 이 책은 당시 널리 통용되었으며 장송이 아니라도 병법 좀 한다는 사람은 다 읽어보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4. 미디어 믹스



4.1.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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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니가 튀어나온 추남으로 등장. 맹덕신서를 한번에 암송하여 양수를 무릎꿇린다.

4.2. 삼국전투기




4.3. 화봉요원


동명이인인지 동일인물인지는 알 수 없으나 총 4명이 나오거나 언급된다.
처음 나온 사람은 반동탁연합 시기에 유비가 경양성을 일부러 약탈하는 것으로 동탁으로부터 두 성을 구하려 했는데, 여기서 글방 선생으로 나와 유비를 황실의 종친이라 멋대로 칭하면서 동탁과 한패가 되었다고 비난하다가 장비에게 내던져져 성 밖에 있는 수레 위의 짚에 떨어졌다.
두 번째로 나온 사람은 적벽대전 이후 가짜 서촉 지도를 보냈다가 제갈량에게 고문을 당하는 모습이 나온다.
세 번째는 간옹이 강동에 심어넣은 객점의 주인장으로 위장한 첩자와 서천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그 첩자가 간옹에게 명사 장송이라고 들어보았냐고 말하는 것으로 언급된다.
네 번째는 마초에게 유장을 끌어내어 서천을 점령하는 일에 대해 보고하는 것으로 나온다.

4.4. 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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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인의 삼국지
삼국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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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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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14 일러스트
코에이삼국지 시리즈에서는 연의처럼 들창코에 외모가 못생기게 나온다.[10] 다만 몇몇 시리즈에서는 들창코가 없다. 시리즈를 통틀어 지력 80대 중후반 수준의 문관이기 때문에 그럭저럭 쓸만한 인재다. 보통 유장군에서 법정 다음가는 지력을 가지고 있다. 초기에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후기 시나리오에서는 서촉지형도를 소유하고 있다.[11] 다만 유비에게 서촉지형도를 주고 주군인 유장을 배신하기 때문인지 매력은 바닥이고, 전장에서 딱히 활약한 뭐가 없기 때문에 통솔, 무력도 바닥이다.
삼국지 3에서는 정치력이 91. 인재수색에는 이만한 장수가 거의 없다. 하지만 매력이 개차반이라서 등지와 팀을 짜서 인재수색팀을 꾸리는 게 최선책이다. 삼국지 3에서 등지는 매력이 90을 웃돈다. 정치와 매력 둘다 90을 웃도는 제갈량은 그걸 혼자 다해내지만 제갈량은 지력이 100이라서 그 용도로 쓰기엔 너무 아깝다. 그럼 장송은 인재를 잘찾아내고 등지는 잘등용한다. 등지 대신 손건을 써도 되지만 손건은 군사가 될 수 없기 때문에 잘못하면 영지가 위임상태가 될 수도 있으므로 등지가 더 좋다.
삼국지 5같은 경우는 지력 92/정치력 86의 군사로 등장한다. 유장 세력 내에서는 지력 94의 법정 다음으로 지력이 높다. 다만 법정과 장송 모두 충성도가 80대로 낮은데다 상성 역시 유비군에 더 가깝기 때문에 포상을 주어 충성도를 관리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다른 세력으로 갈 위험이 높다. 반대로 유장 세력을 공략하기 전 가장 먼저 빼와야 할 장수 중 하나. 무력이 매우 허접하긴 해도 시작부터 병사 2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확실한 메리트다.
삼국지 9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12/무력 3/지력 87/정치력 81. 혼란과 매도를 갖고 있지만 병법 숙련도가 조금 아쉬운 장수. 파괴는 서촉지형도의 템빨로 가지고 있으며 자체로는 보유하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지력이 더 높은 법정이 있는데도 유장군으로 시작할 때의 군사는 장송이다.
삼국지 10에서는 군사 특기도 있고 능력치가 통솔력 15/무력 12/지력 88/정치쳑 82/매력 19로 좋은 편이지만, 유비 입촉 이벤트에서는 방통과 같이 이벤트 제물용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보물인 서촉지형도는 유비가 이벤트 끝에 얻게 되지만 이벤트를 보지 않은 경우엔 초기 시나리오(장송으로 플레이하면 184년부터 가능)에는 장송이 가지고 있지 않고(211년 의신횡사 시나리오 때가 유일) 영웅 대결, 이릉 대전에서는 성도의 상회에 있다. 전체적으로 특기는 상업, 반목, 지리, 항변, 반박, 논파, 도발, 군사, 간첩으로 총 9개다.
삼국지 11의 특기는 비책이다. 비책 문서를 보면 알다시피 자기보다 높은 지력을 지닌 장수에게 계략 크리티컬을 먹이는 것으로 조조에게 한방 먹인 장송의 이미지에 맞는 특기. 다만 특기의 특성상 효용성은 그리 크지 않다. 능력치는 통솔력 15/무력 6/지력 88/정치력 82/매력 19로 지력과 정치력을 제외하면 영락없는 백하팔인이다. PK라면 능력연구를 통해 특기를 논객으로 바꿔보는 것도 좋다. 지력도 높은 데다가 성격이 소심이라서 논객으로 사용할 경우 설전에서 소진 장의가 부럽지 않은 맹활약을 보여준다.
삼국지 12에서는 전법이 '''파괴력약화'''라는 수성의 달인의 전법을 가지고 있고 지력이 보유자 중에서 가장 높아서 쓸만하다. 특히 장임과 같이 있으면 원맹사+파괴력약화으로 상대를 짜증나게 해주지만, 삼국지 12 PK에서는 전법이 '''전법봉인'''으로 바뀌었다. 일러스트는 유비에게 파촉지형도를 바치는 모습.
삼국지 13에서의 능력치는 통솔력 25/무력 6/지력 88/정치력 82. 병과 적성은 모두 C이며, 전법은 교란도발이다. 특기는 상업 2에 설파 6, 언변 6으로 전수특기는 설파다. 무엇인가 맞지 않다 생각되면 PK로 플레이 할 때 전수특기를 언변으로 변경해주자. 내정 쪽 스탯이 준수한 편이지만, 특기 레벨이 어중간해서 써먹기가 약간 난감하다. 하지만 이상위명이 사기전법인 적병수탈전법을 보유한 거괴이기 때문에 좋지 못한 전투 스탯에도 불구하고, 부장으로서 유용하다. 특히 대부분이 위나라 소속인 거괴 이상 보유자들 중, 유일한 촉나라 쪽 거괴 이상 보유자이다. [12] 거괴 보유자 중 지력 공동 1위. 보물로 통솔력과 공성을 1씩 올려주는 서촉지형도가 있다.
삼국지 14에서는 100만인의 삼국지 일러스트로 변경되었으며 능력치는 통솔 15, 무력 6, 지력 88, 정치 82, 매력 19로 전작에 비해 통솔력이 10 하락했다. 개성은 언독, 책사, 공명, 오만, 주의는 명리, 정책은 지세연구 Lv 4, 진형은 안행, 장사, 전법은 혼란, 도발, 매성, 친애무장은 맹달, 법정, 양수, 유비, 혐오무장은 형 장숙이다. 여담으로 장비와 같은 성을 가진 무장 중에서 지력이 제일 높다.
유비쪽에 서서 유장을 친건 법정도 마찬가지이건만, 어째서인지 여러 미디어 믹스에서는 장송만 묘택이나 진경동마냥 '일신의 영달을 위해 주인을 파는(賣主求榮)' 매국노나 배신자로 묘사하는 경향이 있다. 장송 입장에서는 억울한 것이 처음에는 조조, 최종적으로는 유비를 선택한 건 부귀영화에 눈이 멀어서가 아니라 유장은 도저히 지도자로서 가망이 없으니 더 훌륭한 지도자에게 익주의 미래를 이끌 수 있도록 하자는 의도였으며, 더 나은 주인을 찾기 위해 원래 주인을 배반한 사례는 여럿 있거늘 장송은 부정적으로 묘사된다. 물론 그것이 옳은 것은 아니지만, 결국 여포를 따라 죽지 않은 장요나 원소를 버리고 조조를 택한 장합 같은 경우는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고, 상술된 법정의 경우도 이렇게 부정적이게 묘사되지 않는다.[13] 또한 원소에서 공손찬으로 이미 주인을 한번 갈아탔으면서 공손찬도 그릇 작다고 또 전향의사를 밝히는 조운을 이런 식으로 비판하는 사람은 거의 전무하다. 오히려 충심의 아이콘으로 부각된다면 모를까.[14] 사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법정 뿐이 아니다. 같이 일을 꾸몄다가 훗날 또 위나라에 투항한 맹달도 이미지가 너무 좋진 않지만 그래도 장송만큼은 아니며, 단두장군만이 있다며 큰소리치던 엄안은 바로 다음 장면에서 항복한 뒤 다른 관문들의 투항을 종용하였으며, 처음에 유비의 입촉을 반대하던 이회도 마초를 설득하여 유비의 촉 정벌에 결정타를 날렸다. 심지어 황권은 작가인 나관중이 대놓고 몇 번이나 비판하는데도 장송만큼 대접이 나쁘지 않다. 못생긴 이미지 탓인가?(…)
반삼국지에서는 아예 매국노로 등장하며 서촉지형도로 추정되는 지도를 품고 조조에게 바치려고 하다가 장노의 부하들에게 잡혀 살해된다.[15] 참고로 이 작품이 대놓고 촉빠소설이라 유비에게 잘 해준 인물은 긍정적으로 묘사해주는데, 장송은 유비가 아니라 원래 조조에게 익주를 조공하려고 했던 걸 부정적으로 봤는지 영 대우가 안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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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에서는 배우 유아진(刘亚津)이 맡았다.
익주 특사로 조조에게 가는 것은 나오나, 그의 리즈시절인 맹덕신서 읊기는 나오지 않는다. 그냥 조조에게 곤장을 얻어맞고 곧장 유비한테 가버린다. 유비는 그를 맞이하게 위해 방통, 관우, 장비를 성 밖 멀리까지 보내서 장송을 맞아들인다. 그런데 이는 계산이 들어가있던 것이다. 유비가 서천을 칠 명분을 만들기 위한 방통의 계략으로 인해 죽는 것으로 나온다. 방통은 장송이 일신의 영달을 위해 주인을 파는 무리니 어차피 살려둬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거라 판단하고, 유비가 장송에게 보내는 것처럼 밀서를 꾸며 '''일부러''' 이웃집인 장송의 형인 장숙의 집으로 배달시킨다. 장숙은 그 길로 유장에게 고해바치고, 유장은 장송을 처형하여 목을 유비에게 보내어 유비에게 전쟁의 구실을 만든다. 참고로 장송역의 배우는 장송으로 등장하기 전에 다른 단역으로도 몇 번 나온다. 상당히 개성있는 외모이므로 바로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TV 삼국지에서는 초반에 허름한 복색으로 변장하고 유비 세력과 손권 세력을 번갈아가면서 정탐하며 조조의 침공으로 위기에 처한 익주를 구할만한 도량을 지녔는지 파악하고 다닌다. 이에 유비가 적당한 인물이라고 판단하고 즉시 익주로 돌아간 후에 정식으로 사신이 되어 유비앞에 다시 나타나 유비에게 익주를 구원해 줄것을 요청한다. 역사와는 달리 유비와 유장이 원활한 동맹을 유지한 관계로 끔살당하지 않고 줄곧 유장의 옆에서 호위하는데 조조와의 전투 장면에서는 병풍스럽게 나와 그리 비중이 없다.
모바일 카드게임 삼국 이터니티에서는 얀데레처럼 죽은 눈을 하고 있는 미소녀로 등장한다. 낙양에 갔다가 조조에게 무시당하고 보복하겠다고 썩소를 짓는 최종진화 일러스트가 압권.
영걸전 시리즈에서는 영걸전과 공명전에 등장하지만 사신으로 왔다가 이후에 죽기 때문에 전투에서 등장은 없다. 살해당하는 이벤트 때 유장의 신하들이 몰려들자 증발하는 모습이 은근히 섬뜩하다.
카츠마타 토모하루 삼국지에선 손권으로부터 편지를 받고 유비와 적대할지를 고민하는 유장에게 이는 신의를 어긋나는 일이라고 결사반대하다가 냉포에게 나라를 팔아먹으려 한다는 이유로 칼을 맞고 처참하게 죽는 등 비중이 많지는 않은 편.
[1] 삼국지연의에서 설정된 자인 '''영년'''(永年)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영년은 팽양의 자다. 《화양국지(華陽國志)》(삼국지의 배송지주로도 인용되어 있다)에는 장송의 자가 '자교'라는 기록이 있다. (松字子喬, 장송의 자는 자교다.) 신삼국에서는 이걸 착각하고 극중 장송의 자가 영년인 것으로 나온다.[2] 이 때 양수가 장송에게 조조가 지은 병서를 보여주자 술자리에서 한 번 본 것 만으로도 외워내 양수가 놀라워하며 조조에게 다시 장송을 추천했다는 내용이 일부기구잡기에 남아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연의 부분 참고.[3] 옵션으로 "구리종을 울리는 것 같은 목소리"도 따라붙는다.[4] 모종강의 해석에 따르면 전에 만난 방통도 추남이었지만, 방통은 연환계를 성사시키기 위해 조조에게 아첨하였기 때문에 조조의 마음에 들 수 있었다고 한다. 남양의 명사라는 명성도 한몫했겠지만.[5] "이 책 맹덕신서는 전국시대의 이름없는 선비가 썼는데, 왜 승상이 직접 썼다고 거짓말을 하십니까?"라고 장송이 조조를 비난하는 판본도 있다.[6] 김홍신 평역판에서는 조조가 호위군을 보여주며 "나의 군세가 정말 당당하지 않은가?"라고 자랑했는데 장송 왈, "과연 승상님의 위엄이 높으십니다. 여포와 복양에서 싸우실 때의 일이며, 마초에게 쫓겨 수염을 자르실 때의 일이며, 적벽에서의 일이며...(중략)...이 모두 승상의 위엄이 높다는 것을 나타내는 일들이었습니다."라며 '''조조가 참패한 일만 반어법으로 언급하는''' 간이 배 밖으로 나온 발언을 하였다.[7] 김홍신 평역판에서는 장송은 본래 유비에게 "약간의" 호감이 있는 정도였으나, 유비가 자신을 극진히 대접하면서도 막상 자신이 사는 익주(파촉)에 대해선 아무런 정보도 빼내려 하지 않는 걸 보고 더욱 호감을 느꼈다고 서술하고 있다. 거기다 장송을 배웅할 때 유비 특유의 눈물까지 더해졌으니 그 감동은 더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8] 게다가 막상 조조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지 대책을 세우지 못한 것도 한몫했다. 정작 그건 장송이 조조에게 협력을 구하러 가놓고 똥배짱을 부려 원한을 산 것이지만, 당사자인 장송이 입을 열지 않았으니 알 턱이 없었다.[9] 닥치고 성도로 쳐들어가는 것이 상책, 문제가 생겨 돌아가겠다고 하면서 간을 보는 것이 중책, 진짜로 형주로 돌아가서 훗날을 도모하는 것이 하책이었다.[10] 사실 이 얼굴은 요코야마 미츠테루 삼국지의 장송을 거의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11] 몇몇 시리즈에선 장송 사후 시나리오에서 유비가 소지한다.[12] 위나라-하안, 사마사, 제갈탄, 조예#s-2, 조식, 조충#s-1, 혜강, 촉나라-장송, 오나라-사지, 육적, 기타-장각, 장보#s-1, 도겸, 유종.[13] 이쪽은 오히려 현대에 와서 정사의 재발견으로 연의보다 더 고평가받기도 한다.[14] 확실히 조운이 유비 휘하에서 한 일은 충심으로 존경받을 만한 일이긴 하다.[15] 반삼국지가 20세기 초 중국인이 쓴 것이라서 그렇기도 하다. 한간(민족반역자)에 장송을 빗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