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혜진(양궁)

 

'''올림픽 양궁 여자 단체전 우승국'''
[image]

[image] 대한민국
(2012)

[image] '''대한민국
(2016)'''




'''올림픽 양궁 여자 개인전 우승자'''
[image]

[image] 기보배
(2012)

[image] '''장혜진
(2016)'''






[image]
'''이름'''
장혜진(張惠珍, Chang Hyejin)
'''국적'''
대한민국[image]
'''출생'''
1987년 5월 13일(36세), 경상북도 의성군[1]
'''학력'''
대남초등학교
경화여자중학교[2]
대구체육고등학교
계명대학교
'''종목'''
양궁
'''소속'''
LH(2010~)
'''신체'''
158cm, 50kg
'''가족'''
아버지 장병일, 4녀 중 장녀
'''종교'''
개신교
'''링크'''



1. 소개


대한민국양궁 선수이다. 2010년 LH 양궁팀에 입단해 꾸준히 대표팀에 승선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지녔다.
장혜진의 키는 158cm로, 활보다 조금 큰 정도다. 하지만 “키는 작지만 나는 팔이 길어 양궁에 유리한 편”이라고 말한다. [3]
유독 올림픽과 인연이 없었다가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국가대표로 선발되었고, 마침내 대회 2관왕을 달성하며 역대 여성 신궁 계보에 이름을 올렸다.
항상 ‘짱콩’이라고 적힌 작은 글씨 장식을 달고 경기에 나선다. 키가 작은 ‘땅콩’ 중에서 ‘최고’가 되라고 친구가 만들어준 것이다. 친구의 바람처럼 장혜진은 올림픽에서 최고로 우뚝 섰다.

2. 선수 경력



2.1. 어린 시절


대남초등학교 4학년 때 친구의 권유로 양궁을 시작했으나, 다른 선수에 비해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스스로도 "중학교 때까지 전국대회에 못 나갈 정도로 실력이 없었다"고 말한 바 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대부분의 선수가 20대 초반, 빠르면 10대 후반에도[4]태극마크를 다는 것과 달리, 장혜진은 계명대학교 4학년 때 처음으로 국가대표가 됐다. 첫 세계 대회 개인전 우승인 2014년 월드컵 대회 당시 나이가 27살이었다. 그는 "양궁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고 했다.

2.2. 2009년~2012년


2009년 국가대표로 첫 출전한 2009 베오그라드 하계 유니버시아드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따내며 이름을 알렸다.
2012년 국가대표 자격을 획득하긴 했지만, 4위를 기록하는 바람에 한끗 차이로 밀려 2012 런던 올림픽에는 출전하지 못하였다. 올림픽에는 3명만 출전하며, 4위는 부상 등에 대비하여 교체하기 위한 후보 선수이다.

2.3. 2013년, 2014년


2013년 세계선수권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따냈고, 같은 해 열린 양궁 월드컵에서는 단체전 은메달을 따냈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 자격을 획득하며 대회에 출전했다. 이특영, 정다소미와 함께 단체전 금메달을 따냈고, 개인전에서는 결승까지 갔지만, 결승전에서 정다소미에게 패하면서 은메달을 획득했다.

2.4. 2015년


2015년 9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열린 프레올림픽(테스트 이벤트 대회)에 출전하기 위한 국가대표 자격을 획득하긴 했는데, 이번에도 4위였기때문에 후보 선수였다. 리우에 방문하긴 했지만, 3명만 참가할 수 있기에 대회에 참가하지는 못했다. 장혜진은 다른 선수들이 활약하는 모습을 지켜 보면서 "올림픽 때 반드시 여기 다시 와서 활을 쏘겠다고 다짐했다"고 털어 놓았다.

2.5. 2016년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서최미선기보배에 이어 3위로 막차를 타며 마침내 올림픽에 나갈 수 있게 되었다. 신동으로 불리는 강채영과의 피말리는 접전 끝에 불과 1점 차로 리우데자네이루행 출전권을 땄다. 장혜진은 "이번 선발전은 가장 힘들었던 순간"이라며 "긴장 때문인지 지쳤다"는 심정을 밝혔다. 장혜진은 "이번 올림픽 선발전 마지막 날 경기를 했을 때 그 기억이 아직 생생하다"며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바뀌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2.5.1.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올림픽에 출전하긴 하였지만, 팀 동료가 세계랭킹 1위인 최미선, 지난 올림픽 2관왕인 기보배이다 보니 사실상 언론에 크게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래도 맏언니의 포지션으로 팀을 잘 이끌어 여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내는 데 일조하였다. 이후 개인전 16강에서는 한국 선수 최초로 북한 선수 강은주와의 남북 대결을 펼쳤는데 준수한 실력으로 강은주를 누르고 8강에 진출했다. 준결승전에는 런던 올림픽 개인전 챔피언인 팀 동료 기보배를 만났는데, 기보배를 상대로 접전 끝에 승리하여 결승전에 진출했다. 결승전에선 독일의 리사 운루를 상대로 세트점수 6-2(27-26 26-28 27-26 29-27)로 승리, 단체전에 이어서 개인전에서도 금메달을 획득하는데 성공하여 이번 대회 대한민국 첫 '''2관왕'''을 달성했다. 또한, 이로써 신궁 계보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장혜진은 결승전에서 한 발, 한 발 악착같이 쏘다가 마지막 한 발을 쏘고 나서야 ‘이게 바로 올림픽 결승이구나’라는 사실을 실감했다고 한다. “(과녁 한가운데 있는) 렌즈 한 번 깨 보려고 했는데 못 했다”라며 까르르 웃던 장혜진은 시상대에서 애국가를 따라 부르는 순간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8월 16일 오전 인천에 도착한 장혜진은 기다리고 있던 부모님들과 재회했으며 가족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낼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또한 인터뷰를 통해서 올림픽에서 펼친 경기들 중 16강의 강은주 선수와 4강의 기보배 선수의 경기가 가장 힘들었던 경기로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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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개인전 금메달에 입맞춤하는 장혜진

사랑하는 하나님께 이 모든 영광을 돌려 드립니다. 2014 인천 아시안 게임이 끝나고 많은 분들의 응원과 기도에 감사의 글을 썼는데요. 제가 이런 관심을 받아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이번 올림픽에서도 많은 분들이 예뻐해 주시고 응원해 주셨습니다. 너무 감사합니다. 덕분에 좋은 결과가 있었던 것 같아요. 정말 감사합니다. 진심으로 응원해 주시고 기도해 주신 분들께 이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리우 올림픽 금메달은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다들 밤 잠 설치시며 응원해 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다시 한번 감사 드립니다.

"장혜진이 페이스북에 올린 감사 메시지


2.6. 2018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8명만 진출하는데 2위로 통과되었다. [5] 마침내 최종선발전에서 1위로 올라가 생애 2번째 아시안 게임에 참가 자격을 획득하였다.
그러나, 정작 대회 개인전 8강전에서 멘탈 관리와 실력 부족으로 탈락했다. 리커브 혼성 8강에서도 굉장히 많이 흔들렸고 결국 몽골에 패해 탈락했다. 그래도, 여자 단체전에서는 금메달을 획득하며 자존심은 지켰다.

2.7. 2019년


9월 18일부터 24일까지 열린 국가대표 2차 선발전에서 탈락했다. 커트라인이 20위인데 장혜진은 여자부 종합 배점 34점으로 22위에 머물러서 탈락했다. 그런데, 도쿄 올림픽이 1년 연기되고, 대한양궁협회에서는 올림픽 대표를 새로 뽑기로 결정하면서 다시 기회가 생겼다.

2.8. 2020년


2020년 10월에 치뤄진 2021년 국가대표 선발전 2차전(20명 선발)에서 1위에 오르며, 다시한번 올림픽 출전권을 노릴 수 있게 되었다.

3. 수상 기록


올림픽
금메달
2016 리우데자네이루
단체전
금메달
2016 리우데자네이루
개인전
세계선수권
금메달
2013 벨렉
단체전
금메달
2017 멕시코시티
단체전
은메달
2017 멕시코시티
개인전
은메달
2019 스헤르토헨보스
단체전
아시안 게임
금메달
2014 인천
단체전
금메달
2018 자카르타·팔렘방
단체전
은메달
2014 인천
개인전
아시아선수권
금메달
2015 방콕
단체전
금메달
2015 방콕
개인전
은메달
2015 방콕
혼성 단체전
월드컵 파이널
금메달
2017 로마
혼성 단체전
동메달
2017 로마
개인전
유니버시아드
금메달
2009 베오그라드
단체전

4. 기타


  • 동안 외모와 작은 키 덕분에 나이를 자주 오해받는다. 거기다 성격도 매우 밝은 편이다.
  • 노래 듣는 것을 좋아한다고 밝혔다. 자신은 그 중에서 발라드를 선호하며, 좋아하는 노래는 소찬휘Tears.
  • 고등학교 때 사춘기를 겪으며 훈련과 기숙사 생활이 너무 힘들어 보름 정도 학교를 이탈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찾아가서 잡아오셨다고 한다.

  • 왼쪽의 사진은 바람에 안 날리려고 활을 얼굴에 바짝 댄 것으로 보인다. 리우올림픽 당시에 바람이 상당히 강했다. 또한, 양궁 선수 중 시위를 입술에 거는 경우는 흔하다. 장혜진처럼 꾹 누르는 경우는 드물지만. 특히 여성선수들의 경우 안정감을 위해 그러는 경우가 많다. 최강희를 닮았다는 이야기도 있으며, 배우 한선화와도 닮았다.
  • 본인이 밝혔다시피 독실한 개신교 신자다.[6]이번 올림픽에선 경기에 나설때 마다 끊임없이 성경 문구를 되뇌이며 집중했다고 한다.[7] 취미도 성경읽기라 하고, 가족들도 용인시 처인구의 산위의교회에서 응원했다고 한다. 리우 올림픽 선발전에서 1,2차 합산 12점을 받아야 3등 안에 들어 올림픽 출전이 가능한 상황이었는데, 1차에서 3점을 받고 좌절했다고 한다. 1등이 8점이기 때문에 2차에서 1등을 해도 올림픽 출전은 불가능했기에 아버지께 울면서 전화해서 이제 하나님 안 믿겠다고 선언했는데, 아버지가 "회개기도하라" 한마디 하셨다고 한다. 방문을 닫고 혼자 회개기도한 후 2차에서 8점을 받고 총점이 11점이 되었는데, 다른 선수간 순위가 변동되며 기적적으로 올림픽에 출전하게 되었다. 이후 믿음이 더 강해지는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개인전 직후 인터뷰에서 "할아버지, 할머니 사랑합니다~ 아빠 사랑해요~"라고 인터뷰를 했다. 태극기 세레머니 중 태극기 방향이 반대로 되어 있자 곧바로 바르게 고쳐들고 세리머니를 했다.
  • 올림픽 2관왕을 차지하자, 회사에서 직급이 과장에서 차장으로 특별 승진되었다.
  • 어릴적 어머니는 집을 나가 조부모, 아버지와 형제 4명이서 살았다고 한다. 형제는 4녀 중 첫째로 여동생들이 3명이나 있는 맏언니다. 동생들은 거의 엄마처럼 대했다고 한다.
  • 본인이 키가 작기 때문에 키가 큰 남자가 이상형이라고 한다. 만나보고 싶은 남자 연예인으로 공유를 꼽았다.
[1] 대구광역시 달서구에서 성장하고 학교를 다냈다.[2] 現 경암중학교[3] 덩치가 작고 파워가 비교적 약해 바람이 불때 몸이 많이 흔들리는 편이다. [4] 김수녕윤미진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올림픽에서 개인전 금메달을 땄다.[5] 참고로 기보배구본찬은 모두 예선에서 탈락했다.[6] 여의도 순복음교회의 월간지인 '신앙계'의 2017년 3월호의 표지 인물로 등재되어 있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8~15쪽에 기록되어 있다.[7] 빌립보서 4장 13절을 암송했다고 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