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궁
1. 神宮
1.1. 신라의 신궁
삼국시대에 신라 서라벌에 설립한 종교시설. 지금의 경주시 나정 자리라고 추정한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본래 신라에는 2대 왕 남해 차차웅 3년(서기 6)에 나정에 시조묘(始祖廟)라는 시설을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이 시조묘 관련 기록은 계속 등장하다가, 신라 21대 소지 마립간 7년(485)부터 기록에서 수백 년간 사라져버린다.[1] 그리고 바로 직후인 487년 소지 마립간이 시조가 처음 태어난 장소인 나을(奈乙)에 신궁을 설치했다고 한다.[2] 정황상 신라 초기 '시조묘'의 기능을 '신궁'이 대체, 흡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현대에 나정 터를 발굴조사해보니 신궁 건물 이전에도 좀 더 작은 원형의 건물이 더 과거에 그 자리에 있었던 흔적이 발견되었으므로 초기 시조묘가 아닌가 추정한다. 발굴 결과 건물 터 두 곳이 겹쳐 나왔는데, 기존에 원형 건물이 있었고 어느 순간에 그 원형 건물을 허물고 팔각형 건물을 새로 만든 듯하다. 여기에서 의봉 4년(679)이라 씐 기와가 출토되었는데, 삼국사기에서 문무왕 19년(679)에 삼국통일전쟁을 이제 막 끝마친 뒤 '궁궐을 웅장하고 화려하게 수리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때 팔각형 건물을 지었다고 추정하는데, 위 기록으로 미뤄보아 신라시대 당시 일종의 별궁처럼 궁궐 건축물의 하나로 간주됐을 가능성이 있다. 초창기 원형건물 시절은 불분명하지만 적어도 팔각형 건물은 명백히 '천원지방'을 표현하는 것으로, 훗날 조선의 원구단이나 중국의 천단과도 용도에서 통하는 면이 있다.
신라 왕들이 즉위하면 즉위 초기에 신궁에서 거의 반드시 제사를 지냈다.
시조에 대한 제사공간으로 후대 고려와 조선의 종묘와 비슷한 역할을 하던 시설이지만 중국식 유교적 종묘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이며, 유교식 종묘는 이후 통일신라시대인 687년 신문왕 때 따로 김씨 왕들만의 태조, 진지왕, 문흥대왕, 태종무열왕, 문무왕의 5위를 모셨다는 기록과 혜공왕(765~780)때 이르러서 5묘와 불천위를 정했다는 기록이 따로 나오므로, 신라에서는 전통적인 신궁과 중국적 종묘시설 둘 다 따로 존재했다고 봐야 한다.
신궁에서 제사 지낸 주신의 정체를 두고 이설이 많은데, 그 설들은 다음과 같다.
- 박혁거세설: 신궁을 설치한 곳(나을)이 신라의 시조 탄생지라는 삼국사기 기록에 착안한 설. 대다수의 왕들이 신궁 설치 후 신궁제사만을 올리는 기록에 근거해 시조묘가 신궁으로 변한 것을 근거로 든다. 더욱이 2003년 경주 나정 유적이 출토되고, 여기서 신궁으로 보이는 건축물 유물들이 다량 출토되어 고고학적 뒷받침도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나 이미 시조묘가 있는데 구태여 신궁이 필요하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말이 되지 않으며, 신라 후기인 애장왕, 헌덕왕, 흥덕왕대에 기록에 신궁제사와 시조묘제사 양쪽에 제사한 기록이 있어 시조묘와 신궁의 주신을 동일시할 수 없다는 반론이 있다.
- 김씨 시조설: 신궁에 모신 주신은 신라 왕실이 김씨세습이 고착화되면서, 김씨 왕족의 시조신을 모신 것이라는 주장. 그러나 따로 선대의 김씨 출신 왕들을 제사지내는 조묘의 기록이 나오는데다, 혜공왕때 유교적인 종묘제례 예법인 5묘를 세웠다는 기록이 나오면서, 동시에 혜공왕이 신궁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나오고, 박씨 왕족인 경애왕도 신궁에 제사지냈다는 기록이 있다는 반론이 있다.
- 천지신설: 신궁에는 특정 왕족의 시조가 아니라, 재래의 천신(天神)과 지신(地神)을 모셨다는 주장. 왕이 시조묘에 제사할 때에는 친사시조묘, 알시조묘, 친알시조묘라는 표현을 쓰면서 왕이 신궁에 제사할 때는 한 번의 예외도 없이 왕친사신궁, 친사신궁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에 기초한 설. 여기에 혜공왕때에 유교식 종묘(오묘 기록에 근거)를 세운 것을 시조묘가 종묘로 변했다고 보고, 시조묘가 종묘로 변한 것처럼 선덕왕대 사직단 건립 기록과 신궁을 연결시켜 시조묘->종묘, 신궁->사직단으로 보아 주신의 위격이 관련성이 있다고 보는 주장.(사직단은 산천신에게 제사지내는 곳이다.) 고로 산천신을 모시는 사직단과 관련있는 신궁의 주신은 자연히 천지신이라는 것. 그러나 고고학적인 증명이 약하다는 단점이 있다.
- 절충설: 사실상 현재의 정설. 박혁거세가 탄강했다는 나정과 신궁 유적이 발굴되었고,# 그곳에서 발굴된 건축물의 구조가 4각형 담장 안에 8각형 건물로 이루어져 전형적인 아시아 우주관의 천원지방의 구조이자 천지에 제사 지내는 제단의 구조라, 결론적으로 시조신이자 천손인 박혁거세와 박혁거세의 시조라 할 수 있는 재래의 천신/지신을 같이 제사 지낸 곳이라는 주장.#
1.2. 일본의 신궁
일본의 토착종교 신토의 신사 중 격이 높은 일부 시설을 신궁이라 칭한다. 아마테라스나 천황 및 일본 황실과 관련된 인물을 모신 곳 중 선별해서 신궁이라 칭함이 원칙이지만, 아무 상관 없이 지역 신사가 자기를 높이고자 신궁이라 칭하기도 한다. 그래서 신궁이라 불리는 시설은 대개가 유서 깊거나 지역에서 중요하다고 인정하는 곳이지만 반드시는 아니다.
나무위키에 등재된 일본의 신궁 목록
- 메이지 신궁
- 시라미네 신궁(白峯神宮) - 그 유명한 일본삼대원령인 스토쿠 덴노를 제신으로 섬기는 신궁. 메이지 덴노가 즉위 이후 그의 원혼이 에도 막부의 편을 들게 하지 않고자 사누키에 봉안된 스토쿠인의 영령을 교토로 귀환시켜 만들었다. 그의 무덤 시라미네능(白峯陵)에서 이름을 따 왔다.
- 이세신궁(伊勢神宮)
- 조선신궁
- 헤이안 신궁(平安神宮)
1.3. 전근대시대 동아시아의 사당 목록
2. 神弓
활이 사용되기 시작한 때부터 생긴 칭호. 말 그대로 활을 매우 잘 쏘는 사람에게 붙여주는 별칭. 가끔 인간이 다루기 힘들지만 성능은 매우 좋은 활을 일컫기도 한다.
- 관련 항목 - 명궁
2.1. 온라인 게임 메이플스토리의 직업 신궁
자세한 내용은 신궁(메이플스토리) 항목으로.
2.2. 대한민국 여자 양궁
대한민국의 양궁 역사를 통틀어 지대한 업적을 남긴 궁사들에게 비공식적으로 '''신궁'''이라는 칭호를 부여 하였다. 대한양궁협회나 국가에서 부여하는 공식적인 칭호는 당연히 아니지만, 인터넷과 언론을 통하여 널리 사용된다. 신궁 칭호를 부여 받은 선수들은 대략 다음과 같은데, 일단은 올림픽 개인전 금메달 정도는 따줘야 신궁 소리를 듣는다.
- 김진호 - 아쉽게도 올림픽 금메달과는 인연이 없지만, 세계 대회 금메달이 간단히 두자리가 넘는다. 신궁 계보에서 반드시 언급되는 큰 언니.
- 서향순 - 1984 LA 올림픽 에서 금메달을 따내면서, 김진호에게서 신궁을 이어 받았다.
- 김수녕 - 1988 서울 올림픽 2관왕 포함 올림픽 메달 6개(금4, 은1, 동1), 수많은 국제대회 우승, 수많은 세계신기록을 작성한 레전드 오브 레전드. 많은 신궁 중에서도 그 레벨이 다르기에, 신궁을 이야기할 때 김수녕 한사람만을 지칭하는 칭호이기도 한다.
- 조윤정 - 1992 바르셀로나 올림픽 2관왕.
- 김경욱 - 1996 애틀랜타 올림픽 2관왕. 카메라 브레이커.
- 윤미진 - 2000 시드니 올림픽 2관왕 및 2004 아테네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 박성현 - 2004 아테네 올림픽 2관왕 및 2008 베이징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 기보배 - 2012 런던 올림픽 2관왕 및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 장혜진 - 2016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2관왕
3. 휴대용 지대공 미사일 신궁
신궁 대공미사일 문서로.
4. 개그우먼 김지선의 별명 신궁
신이 내린 자궁의 준말로, 개그우먼 김지선의 별명.
[1] 801년 애장왕 때부터 시조묘가 다시 기록에 등장하는데 그 시차가 너무 커서 상대의 시조묘와 801년부터 다시 등장하는 시조묘가 같은 대상을 말하는지도 애매하다.[2] 단, 같은 <삼국사기>내에서도 제사지에서는 다음 왕인 22대 지증왕이 창립했다고 기록되었다. 보통 소지왕 때 갈문왕이었던 지증왕이 설립한 것으로 본다. 이 경우 소지왕 시기 만들어졌다는 것도, 지증왕이 만들었다는 것도 모두 참이 된다. 그리고 이러한 점을 감안해본다면 지증왕의 즉위에는 박씨 가문이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볼 수도 있겠다. 박씨 가문이 복호계의 수장인 지증왕과 손을 잡았다는 것이 된다.[3] 서정록 저, '백제금동대향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