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런던

 

Jack London
(1876년 1월 12일 ~ 1916년 11월 22일)
1. 개요
2. 생애
3. 평가
3.1. 비판
4. 반아시아
5. 영상화
6. 여담


1. 개요


미국의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 대표작으로 야생의 부름, 화이트 팽강철군화가 있다.

2. 생애


샌프란시스코에서 점성술사 윌리엄 체이니와 플로라 웰멘 사이에서 태어났다. 이 때의 이름은 존 그리피스 체이니(John Griffith Chaney)였으나, 플로라가 곧 존 런던과 재혼하면서 런던이라는 성을 얻게 되었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인해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그는 여러 고된 일들을 전전하면서 가족의 생계를 도와가면서 어린 시절을 보냈는데, 1889년부터는 한 통조림 공장에서 18시간 가까이 일을 하기도 했다. 이후 모은 돈으로 배를 사서 굴양식장의 굴을 훔쳐서 팔면서 지내기도 했다.
열아홉 살에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 있는 학교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런던은 공부를 하는 한편, 학교 잡지에 자신의 경험을 소재로 한 작품들을 투고하였다. 이듬해 버클리 대학에 입학하고도 공부를 계속했다.
그리고 1897년 런던은 그의 누이의 남편과 함께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클론다이크 골드러시 붐에 합류하였으나 건강상의 문제로 포기하였다. 오클랜드로 돌아온 런던은 본격적으로 작품을 썼는데, 몇몇 작품은 실제로 잡지에 실리기도 했다. 그리고 1900년에 '늑대의 아들'을 완성하고 이것이 출판된 날 몇 년 동안 친구였던 엘리자베스 베시 메던과 결혼하게 되었다. 1903년에 '야생의 부름'으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경제적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한편 1904년에 샌프란시스코 신문사의 러일전쟁 특파원 임무를 받아들이고 요코하마에 도착했다.
조선 여행 이후 일본군 전선에서 러일전쟁 과정 중 하나인 압록강전투를 지켜보았으며, 그 이후 전선을 떠났다. 한편 이 시기 조선에서의 경험을 살려 그는 조선에 대한 글을 썼는데, 1982년 프랑스에서 'La Corée en feu'란 제목으로 출판되었고, 이후 한국에서도 '잭 런던의 조선사람 엿보기'라는 이름으로 출판되었다. 이 책에는 구한말 조선 사회의 퇴행과 후진성, 조선인의 나태와 무기력, 양반계급의 수탈을 비판하는 내용이 있고, 전쟁이 나자 피난에 급급한 조선인들과 달리 압록강 너머 중국인들이 부지런히 생업에 임하는 모습을 보고,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 데에 성공한 일본이 중국의 개화에 자극을 준다면 장차 중국이 서양인들에게 큰 위협이 될 지도 모른다고 보았다.
1904년 말 그는 메던과 이혼하고, 샤미안 키트리지라는 여성과 교제하였는데, 이 때 '바다 늑대'라는 작품을 집필하기도 했으며, 이것 역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듬해 그는 키트리지와 결혼하였고, 오클랜드 시장 후보로 나서기도 했으나 언론의 뭇매를 맞았으며, 이혼한 뒤 키트리지와 곧바로 결혼한 문제까지 겹쳐 결국 낙선했다. 그는 낙선한 뒤에도 순회 강연을 계속했는데, 이 순회 강연에는 그의 미국 노동 문제에 대한 통렬한 비판이 녹아들어 있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겪어 온 미국의 가혹한 노동 환경에 대한 강력한 불신을 바탕으로 순회 강연 뿐만 아니라 집필 활동도 펼쳤는데, 그 중 하나가 1908년에 그가 쓴 소설 강철군화다. 그는 이 소설에서 자본가들의 횡포가 노동자 정권을 무너뜨리는 과정을 묘사했으며 이 문제에 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이것 말고도 그는 캘리포니아의 글랜 엘런에 있는 땅을 사들여 농장을 만들었다. 이곳에서 그는 아시아의 '지속 가능한 농업(sustainable agriculture)'을 미국에 들여오고자 했고, 농촌 공동체 건설을 지향했지만 경제적 실패를 겪었으며, 그가 이곳에 건설한 석조건물 울프 하우스 또한 전소되어 큰 낭패를 보았다.
그는 1916년 11월 22일 글랜 엘런에서 숨을 거두었다.

3. 평가



3.1. 비판


최초의 상업적 잡지 소설가로 유명하지만, 그만큼 다작을 하면서 벌인 행적 때문에 작품윤리적으로 논란도 많다. 신문기사의 일부를 발췌해서 글을 쓴 것은 양반이고, 무명 작가들에게서 '''소설 소재와 개요를 돈주고 사서''' 글을 쓰기도 했다. 이 때 잭 런던에게 소재를 판 대표적인 인물이 뒤에 미국인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게 되는 싱클레어 루이스이다.
위에 언급된 잭 런던의 조선사람 엿보기에서도 간략하게 언급되지만, 잭 런던의 인종차별적이고 백인우월주의적인 성향은 엄청나게 강하다. 이 책의 시각은 심각한 수준으로, 역자서문에서 '출판사인 한울에서 이 책 출판해야 되는가로 토론이 벌어졌다'고 기록하고 있고, 잭 런던의 팬인 장정일도 그 당시의 인종차별주의의 한계를 언급하면서 정 반대 시각에서 보는 다른 책도 같이 읽으라고 언급했을 정도이다.
한국인에게 거부감을 일으키는 점은 이 뿐만이 아니다. 조선을 철저하게 멸시한 것과 정반대로, 일본에 대해서는 관습이나 능력이 유색인 치고는 뛰어나다며 높이 평가했고 사쓰마 번을 직접 찾아가면서까지 그들이 숭상하는 무사도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피력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일본이 장기적으로는 서양 세계에 큰 위협이 될 것이라며 경계하기도 했다.[1] 그의 미완성 소설인 Cherry에서도 일본인들의 능력에 찬탄을 아끼지 않았는데, 이런 성향이 일본에 알려져서 일본인들이 그의 책을 많이 읽었다고 한다. 그러나 러일전쟁 취재 도중 기관총이 있는 러시아군의 진지로 반자이 돌격[2]을 감행하는 일본군을 보고는 이를 비판하기도 했다고 한다.
다만 잭 런던이 흔히 인식하는 사회주의자(즉, 좌파)의 범주에 부합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소 이론의 여지가 있다. 일단 잭 런던이 반 자본주의자였음은 명백하지만, 당시 반 자본주의는 좌파의 전유물이 아니라 극우파들 역시 공유하던 정서였고, 잭 런던의 작품에는 좌파적 색채 못지 않게 극우파적 색채 역시 강하게 드러난다.(대표적으로, 잭 런던의 주된 주제의식인 영웅주의는 좌파 작가보다는 우파 작가들이 선호하던 주제다.) 물론 잭 런던의 작품에서 좌파적 성향이 강하게 드러나는 것 자체는 사실이고 따라서 대체로 그를 좌파작가로 분류하는 경우가 많기는 하나 당대 좌파작가의 전형에 부합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조선을 비판하는 외국인도 많았지만 반대로 호머 헐버트와 같이 조선을 어느정도 호의적으로 바라본 인물도 있으니 조선역사를 공부하는 입장이라면 편향적인 내용 보다는 최대한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길 권장한다.
요약하면, 강철군화를 썼으면서 많은 돈을 벌어 농장주로 살았고, 사회주의자였으며 동시에 인종주의자였고, 이상과 욕망 사이에서 양가감정에 시달린 사람이라 할 수 있겠다. 자전적인 요소가 많이 담긴 마틴 에덴은 그 점에서 잭 런던의 분열적인 모습을 잘 드러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4. 반아시아


앞서 언급되었다시피 잭 런던은 상당한 인종차별주의자였다. 조선을 대할 때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의 어록은 지금까지도 혐한들에게 있어서 언급이 되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건 '잭 런던의 충동'으로 다음과 같다.

한마디로 말해서 백인 여행자가 조선에 체류할 때 겪는 일들은 조선에 도착한 처음 몇 주 동안 기분 좋은 것과는 영 거리가 멀다. 만약 그가 예민한 사람이라면 두 가지 강한 욕구 사이에서 씨름하며 대부분의 시간을 보낼 것이다. 하나는 조선인들을 '''죽이고 싶은 욕구'''이고 또 하나는 '''자살하고 싶은 욕구'''이다. 개인적으로 나라면 첫 번째를 선택했을 것이다. 지금은 면역이 되어서 여행을 계속하기에 충분한 이성이 생겼다.

다른 아시아 국가 사람에 대한 대우도 비슷했는데 20세기 초, 미국 서부에 아시아계 이민이 시작되자 우려를 표하는 에세이를 발표하기도 했다. 미국 사회당 대회에서 논의된 일본계 이민자에 대한 차별 반대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나 새비지 A. 랜도어와 구분되는 점이 이것이다. 당시 조선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아시아 거리는 더럽기 그지없었는데 (다만 비숍에 의하면 일본의 거리는 물청소를 해서 깨끗한 편이었다고 한다)[3] 이 때문에 대부분의 서양인이 위생상태에 기반해서 인종차별주의 내지 제국주의를 정당화했다. 그러나 비숍은 한국을 떠날 때쯤에는 한국의 문화와 전통을 이해하고 애정을 갖는 서술을 분명히 남겨 놓고 있다. 잭 런던과의 통찰력 깊이가 빛나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5. 영상화


미국의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를 다른 그의 소설들은 시대극 영화로 각색이 많이된 편이다.
1923년 영화를 시작으로 영화 6편, TV 드라마 1편이 나왔다. 2020년 영화 《콜 오브 와일드》는 해리슨 포드가 주연이다.
  • 바다늑대
7번 영화화되었다.
에단 호크가 출연한 1991년작 영화가 알려져 있다. 2018년, 넷플릭스에서 3D 애니메이션을 발표했다.
  • 올 골드 캐니언
코엔 형제의 넷플릭스 영화 《카우보이의 노래》로 각색되었다. 단편 에피소드를 모은 옴니버스 영화인데 노인이 혼자서 금을 캐는 '금빛 협곡' 에피소드가 잭 런던 원작. 이 영화는 베니스 영화제에서 각본상을 받고 아카데미 각색상 후보에도 올랐다.

  • 마틴 에덴
1914년 영화로 처음 영상화되었는데 필름이 유실되어서 현재는 볼 수 없는 영화가 되었다. 이후 소련 영화, 이탈리아 TV 드라마로 각색되었다. 2019년 공개된 이탈리아 영화는 1910년대 샌프란시스코 였던 원작의 배경을 20세기 중반 이탈리아 나폴리로 옮겼다. 영화 속에선 주인공 이름도 이탈리아어 발음인 마르틴으로 발음한다.[4]

6. 여담


오늘날 그가 살았던 글렌 엘런의 땅은 역사 공원이 되어 있으며, 1966년에 미국 국가 사적지(U.S. 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로 지정되었다. 분홍 코끼리라는 표현을 처음으로 썼다고도 알려져있다.

러시아 마가단 주 서부에 잭 런던 호수[5]가 있는데 러시아 작가였던 스코르냐코프가 이 사람의 이름을 따와 붙인 것이다.
릭 라이어던의 소설 올림포스 영웅전에서 헤르메스의 아들이라고 언급된다. 그가 만들었다 불탄 울프 하우스는 로물루스와 레무스를 기른 암늑대의 영역이자 로마측 반신들의 성지라고.
[1] 중앙일보 블로그뉴스 2009-10-02 작가 '잭 런던' 이야기[2] 다만 이는 어쩔 수 없는 것이, 본격적인 탱크의 태동 이전까지는, 참호 돌파의 유일한 수단은 기관총 진지를 향해 죽음을 감수하고 무작정 뛰는 방법밖에 없었다. 당장 백인들 또한 제 1차 세계대전에서 수백만의 청년들이 어떻게 죽어갔는지를 생각해보자.[3] 그리고 새비지 랜도어는 일본인들이 조선이 더럽다고 업신여기지만 정작 일본인들은 목욕물을 버리지도 않고 때가 둥둥 뜬 물에 여럿이 들어가는 주제에(...)라며 일본을 비꼬았다.[4] 자막에는 마틴으로 표기된다[5] Озеро Джека Лондон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