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 현대 다이노스/1998년
1. 프롤로그
2. 1998 시즌 선수단
3. 이적 시장
5.1. 조별리그
5.1.1. 1경기, 03월 25일 (수) vs. 전남 (원정, 1:2연장승)
5.1.2. 2경기, 03월 28일 (토) vs. 부천 (원정, 0:0 / PSO 5:3 패)
5.1.3. 3경기, 03월 31일 (화) vs. 포항 (원정 3:1 패)
5.1.4. 4경기, 04월 08일 (수) vs. 천안 (홈, 2:1 연장승)
5.1.5. 5경기, 04월 11일 (토) vs. 천안 (원정, 3:0 패)
5.1.6. 6경기, 04월 15일 (수) vs. 포항 (홈, 1:1 / PSO 4:2 승)
5.1.7. 7경기, 04월 19일 (일) vs. 부천 (홈, 3:0 승)
5.1.8. 8경기, 04월 22일 (수) vs. 전남 (홈, 1:2 패)
6.1. 1R, 05월 10일 (일) vs. 천안 (중립, 2:2 / 5:4 승부패)
6.2. 2R, 05월 13일 (수) vs. 전남 (원정, 0:1 승)
6.3. 3R, 05월 17일 (일) vs. 포항 (원정, 2:1 패)
6.4. 4R, 05월 20일 (수) vs. 수원 (홈, 1:0 승)
6.5. 5R, 05월 23일 (토) vs. 안양 (원정, 2:1 패)
6.6. 6R, 05월 26일 (화) vs. 대전 (홈, 2:0 승)
6.7. 7R, 05월 31일 (일) vs. 부산 (홈, 1:2 패)
6.8. 8R, 06월 03일 (수) vs. 울산 (원정, 1:2 승)
6.9. 9R, 06월 06일 (토) vs. 부천 (홈, 2:3 패)
8.1. 16강, 11월 18일 (수) vs. 수원 (홈, 0:1 패)
9. 시즌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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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롤로그
전북 현대 다이노스의 1998년 시즌을 서술한다.
2. 1998 시즌 선수단
※ 주의 이 틀은 기기 환경에 따라 볼 때 상당히 길 수 있습니다.
3. 이적 시장
3.1. 영입
• '''[영입]''' '''강성호'''
실업팀 이랜드 축구단에서 영입.[1]
• '''[영입]''' '''고티'''
체코 공격수 고티 영입, K-리그 첫 체코선수이다.
• '''[영입]''' '''정주완'''
안양 LG 치타스의 수비수 정주완을 영입했다.
• '''[영입]''' '''유강원'''
• '''[드래프트]''' '''이광석'''
1998년 K리그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전북 현대 다이노스에 입단하였다. [2]
• '''[드래프트]''' '''박성배'''
숭실대학교 박성배 를 드래프트 2순위로 영입했다.
• '''[드래프트]''' '''서혁수'''
경희대학교 서혁수를 드래프트 3순위로 영입했다.
• '''[드래프트]''' '''송우, 하은철'''
송우, 하은철을 각각 드래프트 4, 5 순위로 영입했다.
• '''[임의지명]''' '''김완철, 김창민, 이한용'''
연고 지역의 군산제일고등학교를 지원하고 그대가로 1998년 2월부로 해당 고등학교 축구부 졸업생에 한해 3명까지 임의지명할 수 있었다. 1군 엔트리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3.2. 방출 및 은퇴
• '''[임대]''' '''김도훈'''
J리그의 비셀 고베로 2년 임대 계약으로 이적했다.
• '''[이적]''' '''정종선'''
안양 LG 치타스로 이적했다.
• '''[이적]''' '''성원종'''
부산 대우 로얄즈로 이적했다.
• '''[은퇴]''' '''김태인'''
95년부터 전북소속이었던 수비수 김태인이 은퇴했다.
• '''[은퇴]''' '''김경래'''
명지대학교를 졸업하고 1988년 대우 로얄즈 입단 1994년부터 전북 선수로 활동하였으며 1994 시즌 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K리그 통산(정규리그와 리그컵 포함) 168경기 출장, 14득점, 4도움의 기록을 남겼다.
• '''[은퇴]''' '''김판곤'''
작년에 울산에서 이적한 미드필더 김판곤 은퇴 [3]
• '''[정보없음]''' '''황득하, 유철민, 김대식, 이정인'''
4. 유니폼
• 유니폼 스폰서는 아디다스로 작년과 동일, 스폰서 마킹은 현대자동차 모델을 바꿔가며 달았다.
• 자세한 정보는 전북 현대 모터스/유니폼 참고.
5. 1998 아디다스코리아컵
3월21일부터 4월25일까지 각 구단의 연고지에서 열렸다. 예선 조별리그에서 2조로 나눠 1,2위팀이 4강 토너먼트로 우승팀을 가렸다. 전북은 B조에 배치되었다. 정규리그와 같이 컵대회도 무승부가 폐지됐다. 90분내 승리시 승점 3점, 연장전 승리시 승점 2점, 승부차기 승리시 승점1점이 주어졌다.
5.1. 조별리그
5.1.1. 1경기, 03월 25일 (수) vs. 전남 (원정, 1:2연장승)
19시, 광양전용구장
전남 김기선 (40분 김도근), 전북 잔코(78분, 112분(김용갑))
5.1.2. 2경기, 03월 28일 (토) vs. 부천 (원정, 0:0 / PSO 5:3 패)
15시, 목동운동장
승부차기 승
5.1.3. 3경기, 03월 31일 (화) vs. 포항 (원정 3:1 패)
19시, 포항스틸야드
최문식(18분 자심), 박태하(49분 최문식), 이동국(78분) / 김본현(4분)
5.1.4. 4경기, 04월 08일 (수) vs. 천안 (홈, 2:1 연장승)
15시, 전주종합운동장, 관중:1,246명
김성구(90분, 박성배), 최진철(100분, 김용갑) / 이석경(35분)
5.1.5. 5경기, 04월 11일 (토) vs. 천안 (원정, 3:0 패)
15시, 천안운동장
천안 : 루비(51분, 신태용), 루비(58분, 김창원), 유인(70분, 이기범)
전북 : -
3:0 패
5.1.6. 6경기, 04월 15일 (수) vs. 포항 (홈, 1:1 / PSO 4:2 승)
15시, 전주종합운동장, 관중:526명
비탈리(55분 박성배) / 자심 (77분 코놀)
5.1.7. 7경기, 04월 19일 (일) vs. 부천 (홈, 3:0 승)
15시, 전주종합운동장, 관중:1,520명
박성배(28분,명재용), 변재섭(38분), 전현석(88분, 변재섭)
5.1.8. 8경기, 04월 22일 (수) vs. 전남 (홈, 1:2 패)
15시, 전주종합운동장, 관중:628명
전현석(81분, PK) / 김인완(26분, 노상래), 노상래(45분, PK)
6. 1998 필립모리스코리아컵
리그컵 추가대회인 필립모리스코리아컵이 열렸다. 1998 필립모리스코리아컵은 1998년 5월 10일부터 동년 6월 6일까지 개최된 K리그 컵대회를 말한다. 7위로 마무리.
6.1. 1R, 05월 10일 (일) vs. 천안 (중립, 2:2 / 5:4 승부패)
19시, 충주공설운동장, 관중:22,000, 주심:이기철
천안 : 루비(9분, 신태용), 황연석(16분 이석경)
전북 : 김호영(48분), 잔코(81분, 정경구)
승부차기
천안 : 5
전북 : 4
6.2. 2R, 05월 13일 (수) vs. 전남 (원정, 0:1 승)
19시, 광양전용구장
전남 : -
전북 : 김용갑 (90분, 김봉현)
0:1 승
6.3. 3R, 05월 17일 (일) vs. 포항 (원정, 2:1 패)
15시 30분, 포항스틸야드
포항 : 백승철(80분, 전경준), 전경준(117분)
전북 : 김범수(18분, 변재섭)
2:1 패
6.4. 4R, 05월 20일 (수) vs. 수원 (홈, 1:0 승)
15시, 전주종합운동장, 관중:712명
전북 : 김봉현(46분, 최진규)
수원 : -
1:0 승
6.5. 5R, 05월 23일 (토) vs. 안양 (원정, 2:1 패)
15시, 안양종합운동장
안양 : 정광민(23분), 무탐바(51분)
전북 : 하은철(69분, 김성구)
2:1 패
6.6. 6R, 05월 26일 (화) vs. 대전 (홈, 2:0 승)
15시, 전주종합운동장, 관중:827명
전북 : -
대전 : 공오균(20분), 신진원(44분)
0:2 패
6.7. 7R, 05월 31일 (일) vs. 부산 (홈, 1:2 패)
15시, 군산공설운동장, 관중:3,824명
전북 : 김호영(11분)
부산 : 샤샤(50분), 전재권(90+1분)
1:2 패
6.8. 8R, 06월 03일 (수) vs. 울산 (원정, 1:2 승)
19시, 울산공설운동장
울산 : 장철민(36분)
전북 : 명재용(7분,PK), 하은철(118분)
1:2 승
6.9. 9R, 06월 06일 (토) vs. 부천 (홈, 2:3 패)
15시, 전주종합운동장, 관중:1,612명
전북 : 최진철(4분), 박성배(51분)
부천 : 김봉현(30분, 자책골), 윤정환(39분), 이바노(85분)
2:3 패
7. 1998 현대컵 K-리그
K리그의 '''르네상스이자 황금기이자 지금까지 회자되는 진정한 중흥기'''였던 1998~99년의 첫번째 시즌. 아직까지도 K리그는 이 시즌 이상의 흥행은 거두지 못하고 있다.[4] 98년 프랑스 월드컵의 처참한 성적으로 인해 프로축구도 영향을 받을 것이 우려됐지만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고 오히려 월드컵으로 인해 높아진 축구에 대한 관심이 '''이동국''', '''안정환''', '''고종수''' 등 트로이카를 필두로 새로운 세대의 스타가 출현해 높은 인기를 끌었다. 왜 리그에 스타 플레이어가 필요한가를 보여준 시즌이었다고 볼 수 있다. 컵대회와 정규리그 모두 무승부를 없애고 연장전과 승부차기를 도입한 것이 큰 특징이다.[5]
8. 1998 삼보체인지업 FA컵
8.1. 16강, 11월 18일 (수) vs. 수원 (홈, 0:1 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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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시즌 평가
9.1. 주요 기록
9.2. 수상 내역
• 없음
9.3. 시즌 총평
막판까지 치열한 순위 경쟁으로 눈을 뗄 수 없는 경기를 선보였다.
98년도 전북 현대의 성적은 9승 9패로 승패의 균형을 이루며 지난해(97년도)와 같은 6위를 마크했다.
순위로만 따지면 예년과 다를 바 없었지만 마지막까지 손에 땀을 쥐는 4강 진출 쟁탈은 축구 팬들을 열광 시키는데 충분한 역할을 했다.
97년 말 공격 투톱인 김도훈, 비탈리와 수비수 정종선의 공백으로 힘든 시즌이 될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공격에서는 루키 박성배와 하은철을 축으로 한 신예들의 분전이 눈에 띄었고, 특히 박성배는 주전 스트라이커로 발돋움하면서 신인왕 후보에 오른것과 깜짝 카드인 최진철(8골 2어시스트)선수의 공격수로의 전향은 나름대로의 수확을 얻어내는 등 신예들의 선전에 큰 무리없이 한 시즌을 보냈다.
용병 선수들의 부진과 게임메이커인 김범수, 변재섭 등이 부상으로 인해 제 기량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며 미드필드에서 장약력이 아쉬웠다. 특히 게임운영 리더나 해결사의 부재로 인한 마무리와 고질적인 뒷심부족은 풀어야 할 과제가 되었다.
또 수비에서는 정종선의 공백을 최만희 감독 특유의 콤팩트 축구를 통한 전천후 시스템이 돋보이며 선전을 했으나 공격수로 전향한 최진철의 자리가 커 번번이 상대 공격수들에게 공간을 내주는 아쉬움을 남겼다. 하지만 올 해 전북은 박성배라는 걸출한 신인을 발견 했다는 것이 그나마 위안으로 작용했다.
이렇다 할 공격수가 없는 상황속에서 98년 시즌에는 32경기에 출전해 12골 3어시스트를 기록한 박성배는 99년 시즌에도 전북 공격의 선봉자로서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특히 현대자동차로 운영 체제가 전환되면서 고산 훈련장 내 전천후 실내 훈련장을 착공하는 등 모기업의 전폭적인 지원 방침과 우수 용병 영입을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99년 시즌 전망을 한층 밝게 해주었다.#
[1] 현재는 해체된 여주상업고등학교 축구부 출신으로, 여주상고 졸업 후 당시 실업축구팀이었던 임마누엘 축구단에 합류해 활약하였다. 1994년 경에는 기업은행 축구단에서 활약하며 실업선수권 재패 후 태국에서 열린 킹스컵 국제축구대회에 참가한 경력도 남아있으나 기업은행 축구단이 IMF 전후로 해체됨에 따라 1997년 경에는 이랜드 축구단에서 활약하였으며 1998년 이랜드 축구단의 경영 위기에 따라 K-리그에 입성해 전북 현대 다이노스에서 1년간 후보로 활동하였다. 전북과의 계약 해지 이후 은퇴한 것으로 보이며 이후 기록은 불명확하다.[2] 데뷔 시즌부터 주전 골키퍼 자리를 꿰찼지만 2000년엔 새로 영입된 국가대표팀 출신 골키퍼 서동명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었다. 2002년엔 군 복무를 위해 광주 상무에 입단하였다. 2번째 시즌인 2003 시즌 광주 상무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리그컵 포함 33경기에 출전하였다. 이후 전북으로 복귀하여 이용발에 이은 2옵션 골키퍼에 머무르다 2005 시즌 다시 주전으로 도약하여 2005 FA컵 우승을 이끌었다. 2006 시즌 권순태에 주전 골키퍼 자리를 내주자 2007년 겨울 이적 시장을 통해 프로 입성 때부터 활약해오던 전북을 떠나 경남 FC로 이적하였다. 2007 시즌엔 이정래에 밀려 리그컵 포함 8경기 출전에 그쳤다. 2008 시즌엔 주전으로 올라섰지만 이듬해 김병지가 경남에 둥지를 튼 후 주전 자리를 내주었다. 2010년 내셔널리그의 신생 클럽 용인시청에 플레잉 코치로 입단하였고 2012년 김해시청으로 팀을 옮겨 플레잉 코치로 활약하였다. 김해시청에서 1시즌 간 활약한 후 선수 경력을 마무리하였다.[3] 은퇴 후 2000년 홍콩에서 다시 선수생활을 했으며, 감독생활을 거쳐 2018년 1월 부터 대한 축구협회 국가대표 감독 선임 위원장으로 부임했다.[4] 물론 관중 수로는 월드컵 거품을 잔뜩 받은 2002년이 압도하지만 누구도 2002년을 황금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5] 승점을 매기는 방식이 독특한데, 정규시간 이내에 승리했을 경우에는 3점, 연장전 승리에는 2점, 승부차기 승리에는 1점을 부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