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호(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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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축구인.
현재의 직분은 성남 FC의 코치이며, 선수 시절 주 포지션은 윙어로, 스피드를 이용한 저돌적인 돌파가 장점이었다. 빠른 스피드를 이용하여 쉴 새 없이 상대 진영을 파고들어 제트기를 뜻하는 '쌕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 클럽
2.1. 울산 현대
2003년 울산 현대 호랑이에 입단해 팀의 준우승에 기여하였으며 주축 공격수로 활약하였다.
2005년 군입대를 위해 광주 상무에 입단하였으며, 잇단 활약으로 2006년 군인 신분으로 독일 월드컵에 출전하였다. 2006년 11월 상무 제대 후 울산에 복귀하였지만, 부상 등의 이유로 급격히 폼이 떨어진 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2.2. 전북 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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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여름 염기훈, 임유환과 트레이드되어 전북 현대 모터스로 이적했다. 문제는 당시 염기훈이 지속적으로 팀을 떠나려하는 자세를 보여 어쩔 수 없이 울산으로 트레이드하게 되었는데, 정경호로서는 타의에 의해 떠밀리듯이 한 이적이였던 것이다.
수원 삼성과의 전북 입단 첫 경기에서는 2 어시스트를 기록했고 2008년에는 주장으로 선임되었다.
2.3. 강원 F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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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튀'''
2009 시즌을 앞두고 자신의 고향 팀인 강원 FC에 창단 멤버로 입단하였다. 하지만 부상 후유증으로 인해 별다른 활약을 못 보여줬을 뿐더러, 출전하는 매경기마다 무기력한 플레이에 무의미한 백패스로만 일관하며 강원팬들의 큰 비난을 사야만 했다.
2010년에는 팀의 주장으로 선임되었고 부상으로 초중반에는 아쉬운 모습을 보였지만, 막판 흔들리는 강원을 위기에서 구해줄 믿음직한 조력자 역할을 성실히 수행했다.
시즌 막판 강원의 상승세를 유지하며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특히 측면에 배치되어 중앙까지 폭 넓게 움직이며 적재적소에 패스를 넣어주었고 수비 가담시에도 좋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을용이 잦은 부상으로 경기를 꾸준히 나설 수 없는 상황에서 팀의 기둥 역할을 나름대로 잘 해줬다.
2011년에도 왼쪽 정강이 부상으로 팀에 전혀 보탬이 되지 못하였으며, 강원은 리그 최하위를 기록했다.
애초에 정경호는 몸값이 비쌌지만 강원 구단이 프렌차이즈 스타로 내세우기 위해 큰맘 먹고 영입한 선수였는데, 그에 걸맞는 활약을 못하고 늘 부상으로 고전해 강원팬들로부터 먹튀 소리를 들었다.
2.4. 대전 시티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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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시즌을 앞두고 대전 시티즌으로 이적하였다.
젊은 선수들 위주인 당시 대전은 풍부한 경험을 가진 정경호를 합류시켜 경기 내·외적인 면 모두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불러 올 것으로 기대했다.
과거 울산과 전북 시절 동료였던 김형범과는 좌우 측면 공격수로서 호흡을 맞춘 경험이 있는 만큼 측면에서 좋은 활약을 보였다. 특히 유상철 감독 특유의 골키퍼를 제외한 10명의 선수들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상대를 압박하고 패스를 주고받는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한 '''벌떼 축구'''의 주축 선수로 활약하였다.
특히 공격수 외에도 수비수로도 기용되며 멀티플레이어로 활약하였으며, 시즌 중반부터는 자신의 본래의 포지션인 왼쪽 날개로 다시 기용되면서 측면에서 적극적인 플레이로 공격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지속적으로 측면 드리블 돌파를 시도하며 상대 수비진에 균열을 만든 뒤 스트라이커 케빈 오리스를 향한 날카로운 크로스로 기회를 창출해냈다. 왼쪽 측면뿐 아니라 공격수 황진산, 오른쪽 날개 김병석과의 쉴 새 없는 자리 이동을 통해 상대 수비를 흔들었다.
2012 시즌 종료 후 왼쪽 정강이 피로골절 부상으로 인해 은퇴를 선언했다.
3. 국가대표
2003년 9월 27일에 열린 오만과의 2004년 AFC 아시안컵 예선전에서 A매치 데뷔전을 치렀으며,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 와일드카드 출전이 유력했던 김남일이 부상으로 낙마하며 대체 선수로 참가하면서 처음 국가대표로서 메이저 대회에 참가했다. 이후 2004년 AFC 아시안컵과 2006 FIFA 월드컵 아시아 지역예선에도 참가했다. 2005년 스웨덴과의 평가전에서는 환상적인 중거리슛으로 득점을 만들어내기도 했다.6분50초#
2003년~2006년에 걸쳐 국가대표팀의 좌우측면을 40경기가 넘게 중용 받았는데 약 4년간 국대 41경기는 축구좀 봤다하는 사람이라면 금방 알아채겠지만 거의 부동의 주전 수준.[1]
그의 활약을 기억하는 국가대표팬들에게는 결과론적인 이야기이긴 하지만, 앞 2경기야 그렇다치고 스위스전에서 왼쪽윙포워드에 유망주박주영을 맞지도 않는 포지션에 억지로 썼다가 공격포지션 하나 버린 경기를 치른 것을 생각해보면 확실한 카드였던 정경호의 외면은 굉장히 아쉬운 부분.
4. 지도자
은퇴 이후 울산대학교 축구부 코치로 부임해 유상철 감독을 보좌하면서 스태프 생활을 시작하였다.
2016년 성남 FC 2군 코치로 부임하였으며, 2017년 상주 상무의 코치로 선임되어 김태완 감독을 보좌하기 시작하였다.
상주 상무에 있는 동안 김태완 감독의 '숨은 브레인'으로 평가 받았다. 김태완 감독이 큰 그림을 그리면 정경호 코치가 세부 전술과 세세한 선수 개인 맞춤형 전술을 책임졌다고 하며, 특히 2019 시즌 상주의 효율적인 변형 스리백 전술과 김건희, 박용지의 부활 등에는 정경호 코치의 역할이 컸다고 알려졌다.
이 때문에 2019 시즌 직후 1부리그에서만 4개의 팀이 정경호 코치에 러브콜을 보냈고 이중에는 우승권 팀도 있었다. 하지만 정경호 코치는 자신에게 가장 많은 권한을 부여하겠다고 약속한, 2006 독일월드컵 시절 대표팀 동료 김남일 감독의 부름을 받고 2020년 성남 FC의 수석코치로 부임했다.
보직은 수석코치이지만 사실상 '전술코치'로 볼 수 있으며 김남일 감독이 직접 전술적 훈련은 정경호 코치에게 일임한다고 밝혔다. 정경호 코치의 능력을 극대화 하기 위해 상주 시절 상대팀 전력 분석을 담당했던 이태우 코치도 정경호 코치를 따라 함께 성남에 합류했으며, 실제로 비시즌 기간 성남의 훈련 영상 등을 보면 김남일 감독보다 정경호 코치가 전술적인 부분을 지도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5. 플레이스타일
오른발잡이인데 왼쪽측면에서 중앙으로 치고들어오며 때리는 중거리슛이 트레이드마크였는데[2] 각종 평가전은 물론이요 독일월드컵 아시아예선까지 활약상이 꽤나 쏠쏠했지만, 정작 독일월드컵에서는 딕 아드보카트 감독에게 철저하게 외면 받으며 잊혀진 비운의 선수.
6. 여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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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정경호급 화질이라는 표현이 인기를 얻기도 했다. 2005년 2월 4일 이집트와의 평가전에서 골을 넣었지만, 오프사이드라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유니폼을 들어올려 "가자 2006 독일 월드컵!" 이라 적힌 속옷을 노출하는 뻘쭘한 장면이 있었는데 이게 과분할 정도의 매우 깔끔한 고화질로 잊을만하면 자꾸 업로드되어[3] 보는 사람들을 민망하게 만든 것을 두고 말한다. 그런데 이때 아무도 정경호에 와서 오프사이드라 말해주지 않아서 더욱 안습(...).#
- 상무 전역 후 전방 부대에 현역 시절 모은 월급 전액을 기탁하여 큰 화제를 낳기도 했다.
- 박지성과는 상당한 절친으로 현역 시절인 2007년 본인이 박지성보다 먼저 결혼하면서 박지성을 놀리기도 하고 군대드립도 주고받을 정도로 서로 장난도 많이 치는 스스럼없는 친구이다.
- 2005년 1월, 국가대표팀의 LA 전지훈련에서 당시 갓 입대한 정경호 이병은 말년병장인 이동국의 방 앞에서 종이로 만 가짜 총을 들고 불침번을 서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 재미를 위해서 잠깐 한 것 뿐이지만, 이제는 아는 사람만 아는 추억이 된 에피소드이다.#[4]
[1] 주로 좌측면.[2] 현대축구의 반대발윙어라는 개념이 잡히기전이라 요즘의 전문적인 인버티드 윙어같은 움직임은 아니다.[3] 지금이야 고화질 플짤이나 동영상들이 흔하지만 당시엔 포털사이트에서 고화질 하이라이트를 제공하던 시절도 아니었고, A매치 동영상도 저화질인 경우가 흔했는데 하필 정경호 동영상만 HD급 화질이었다. 하이라이트나 골장면 동영상에도 못 보던 화질이 하필 이 영상에 사용되다 보니 강렬한 임팩트를 남긴 것이다.[4] 이동국과 숙소를 같이 쓴 김상식은 2003년 광주 상무 당시 이동국보다 먼저 들어온 선임이었다. 이후 성남과 전북에서 동료로 지내면서 많이 친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