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범(축구)

 


'''김형범의 수상 이력'''

'''2008 K리그 베스트 일레븐 '''
FW
이근호
FW
에두
MF
'''김형범'''
MF
조원희
MF
기성용
MF
이청용
DF
아디
DF
마토
DF
박동혁
DF
최효진
GK
이운재


''' 대한민국의 前 축구선수 '''
''' 이름 '''
'''김형범'''
'''金炯氾 / Kim, Hyeung-Bum'''
'''출생'''
1984년 1월 1일[1] (40세)
서울특별시
'''국적'''
[image] 대한민국
'''포지션'''
미드필더
'''신체'''
174cm, 69kg
'''프로입단'''
2004년 울산 현대 호랑이
'''소속팀'''
울산 현대 호랑이 (2004~2005)
'''전북 현대 모터스 (2006~2012)'''
대전 시티즌 (2012, 임대)
경남 FC (2013)
부리람 유나이티드 FC (2014)
'''국가대표'''
3경기
'''별명'''
'''형컴'''
1. 소개
2. 경력
2.1. 울산 현대의 듣보잡, 전북 현대 모터스의 에이스가 되다
2.2. 부상, 부상 그리고 또 부상
2.3. 전북 현대 모터스의 에이스, 대전 시티즌의 소년가장 되다
2.4. 경남 FC로의 이적과 태국 진출 무산
2.5. 은퇴
3. 플레이 스타일
4. 여담
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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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개


대한민국의 前 축구선수. 전북 현대 모터스 팬들을 비롯한 국내 축구팬들에게는 뛰어난 프리킥 실력으로 인해 데이비드 베컴을 따서 '''형컴'''이라 불리우고, 타 팀 팬들에게는 잦은 부상 때문에 K리그오언 하그리브스로 불렸던 선수다.

2. 경력



2.1. 울산 현대의 듣보잡, 전북 현대 모터스의 에이스가 되다


[image]
전북 현대 모터스 시절
건국대학교를 중퇴하고 2004년 울산 현대에 입단, 이때에는 부상도 없고 출장하면 제 몫을 해주는 선수였으나 같은 포지션 경쟁자가 '''치트키 켠 시절의 이천수'''와 이어서 출장 기회가 적었다. 그래서 타 팀 팬들에게는 이름이 거의 알려지지 않은 듣보잡에 가까웠다.
그런데 그를 지켜본 이가 있었으니, 전북의 최강희 감독은 2006 시즌을 앞두고 그 전까지 전북 현대 모터스의 얼굴마담이라 할 수 있었던 국가대표 박동혁과 박규선을 울산 현대에서 제대로 출전도 못한 이 듣보잡 선수와 2:1로 트레이드해 버리는 수를 둔다. 2006 시즌에는 AFC 챔피언스 리그까지 참가를 해야하는데 중요한 선수를 듣보잡과 바꿨다며 전북 현대 모터스 팬들은 우려가 많았지만 2006 AFC 챔피언스 리그 첫경기인 2005 일본 J리그 우승팀인 감바 오사카와의 조별예선 1차전에서 패배에 끌려가던 팀을 2골을 몰아넣으며 역전승을 일구어 낸다. 이후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중요한 경기마다 장기인 프리킥과 중거리슛으로 팀의 역전을 이끌며 전북 현대 모터스의 우승에 가장 큰 기여를 했다.
게다가 AFC 챔피언스 리그 우승 자격으로 출전한 클럽 월드컵에서는 무회전 중거리슛 골을 넣으며 축구팬들에게 큰 관심을 받게 된다.
최강희 감독이 시즌 전에 한 2:1 트레이드가 '''신의 한 수'''로 떠받들어지게 된 것은 물론이다.

2.2. 부상, 부상 그리고 또 부상


2006년 시즌 중반 휴식기에 염기훈을 태우고 운전하다 교통사고를 냈다. 2006년의 좋은 활약은 2007년에도 이어질 것 같았으나 홈경기 개막전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경기에서 김남일의 태클에 넘어지고 '''십자인대 파열'''로 6개월 진단을 받는다. 부상 치료 후 그해 9월에 복귀하지만 별 보탬이 안되며 전북은 그해 플레이오프 진출과 챔스 4강 진출에 실패한다.
2008년에는 절치부심하여 시즌 내내 부상없이 좋은 활약을 보여주며 국가대표에까지 뽑혔지만 시즌 막판 성남 일화 천마와과의 6강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장학영에게 발목을 다친다. 김형범의 부상 후 전북 현대 모터스은 플레이오프에서 울산 현대에게 패배했다.
이 부상으로 또 6개월동안 치료와 재활을 하고 2009년 7월 수원 삼성 블루윙즈와의 경기에 복귀를 하였지만 복귀한 그 첫 경기에서 곽희주의 태클에 넘어지며 또 무릎이 부상당했다. 이 부상으로 김형범은 또 6개월 진단을 받아 시즌 아웃. 다행히 전북 현대 모터스는 이 해에 우승했다.
이후 2010년 큰 부상은 다 나았지만 훈련 도중 잔부상이 계속 발생해 출장을 별로 못했다. 2011 시즌을 앞두고는 팀에서 내보낸다는 소문까지 돌았으나 잔류했다. 4월까지 출장을 못하다가 5월 10일 AFC 챔피언스 리그 조별예선 6차전 아레마전에 후반전 교체출장하였고 로브렉의 골을 어시스트하며 부활을 알렸다.
2011년 중반부터 간간히 경기에 나서면서 부활하나 싶었지만 끊임없이 잔부상에 시달렸고, 결국 2011년 9월에는 전북 현대 모터스의 이흥실 코치에게 은퇴 결심을 밝혔다. 그러나 이흥실 코치의 만류로 수술과 재활에 들어갔고 2012 시즌을 앞두고 본인의 의사로 대전 시티즌으로 임대 이적했다.

2.3. 전북 현대 모터스의 에이스, 대전 시티즌의 소년가장 되다


[image]
2012 시즌을 앞두고 본인의 의사가 구단에 받아들여져서 대전 시티즌으로 1년 임대 이적하였다. 이후 2012 시즌 동안 몸을 완벽히 만든 후 고군분투하며 강등권으로 떨어진 팀을 먹여살리고 있었다. 계속 골과 도움을 기록하면서 6월 27일에는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개인 통산 20-20을 달성했다. 그리고 이러한 활약을 인정받아 2012년 8월 잠비아와의 친선 경기를 앞두고 4년 만에 재발탁되었다.
결국 대전 시티즌은 13위로 강등을 모면했으나 후반기 페이스가 좋지 못했고, 최종전 직전에 유상철 감독이 재계약 불가를 구단에게 통보받는 등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또 전북 현대 모터스가 시즌 초반부터 수비수 줄부상으로 고생했던 만큼 팬들은 김형범의 친정 복귀를 기정 사실이나 다름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2.4. 경남 FC로의 이적과 태국 진출 무산


2013년 시즌을 앞두고 뜬금없이 경남 FC로의 이적이 확정되었다. 2013년 6월 30일 전주성에서 열린 전북 현대 모터스와의 경기에서 4:0으로 패배한 뒤, 전북 현대 모터스 서포터즈에게 인사를 했는데, 몇몇 경남 FC 팬들은 배려심이 없다며 김형범을 깠다.
21경기 8득점의 준수한 활약을 펼쳤으나, 유리몸의 명성은 어디 가지 않았는지 8월 포항 스틸러스와의 FA컵 8강전에서 허리뼈 횡돌기 골절을 당해 거의 시즌 1/3을 날려먹고 시즌 막바지에야 복귀했다.
그렇게 허리 부상에서 복귀하고 시즌을 마친 뒤 '''또 부상을 당했다.''' 왼쪽 발등의 인대가 끊어졌지만 수술을 하면 엄청난 기간이 걸리기에 수술 없이 재활 치료만으로 이를 극복하려 했고 이것마저 상당한 시간이 걸리는지라 국내 팀들의 러브콜 제의를 사양할 수 밖에 없었다.
[image]
부리람 유나이티드 FC 시절
그러던 중 태국 프리미어 리그부리람 유나이티드 FC에서 영입 제의가 오자 '부상이 많은 선수는 따뜻한 나라에서 뛰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는 이흥실 前 경남 FC 수석코치의 조언을 받아들여 부리람 유나이티드 FC로 이적한다. 그러나, 입단 후 김형범이 결혼을 위해 잠시 태국을 떠난 사이 부리람에서는 김형범 대신 새로운 외국인 선수를 뽑아 리그 엔트리로 등록시켜놨고, 김형범은 리그 엔트리에 등록되지 않아 컵대회에서만 뛸 수 밖에 없었다. 부리람 유나이티드 FC 측은 2015 시즌에는 김형범을 리그 엔트리에 반드시 넣어 주겠다고 설득했지만, 김형범은 해당 지역이 너무 오지라 가족과 함께 생활하기에는 무리라 생각하여 계약을 해지하고 귀국을 하게 되었다.
국내로 돌아온 뒤에는 한 K리그 챌린지 소속 구단에서 '플레잉 코치처럼 편하게 뛰어달라'며 영입 제의가 있었지만 최선을 다 해 뛰지 않는 것이 싫어서 이를 거절했다 한다. 그 와중에 몸을 만들다가 허벅지 근육 파열을 당하는 등 부상이 계속되자 더이상 축구선수로 뛰는 것은 무리라 생각을 하게 되고.....

2.5. 은퇴


2015년 11월 칼럼니스트 김현회와의 인터뷰를 통해 사실상 은퇴했음을 시인했다. '은퇴 선언' 김형범 "나는 45점짜리 선수였다"
아내인 서규린조차 남편이 그라운드로 복귀할지 말지는 완전히 알지 못했던 듯. 위의 인터뷰가 뜨고난 뒤에야 일반인으로써의 삶을 살아가게 될 남편을 응원하는 포스팅을 올렸다.
남양주의 스크린 골프연습장과 가평의 펜션을 운영하는 중이다. 그러나 이는 생계를 위해 하는 것일 뿐이고 언젠가는 축구계로 꼭 돌아올 것이라고 한다.#
언젠가부터 꽁병지[2]의 고정 멤버로 출연 중이다.

3. 플레이 스타일


프리킥 스페셜리스트로, 왼발과 오른발, 일반적인 스핀킥과 무회전 킥을 가리지 않는다. K리그에서 프리킥으로 김병지, 이운재, 조현우를 모두 뚫은 전력이 있다.# 왜소한 체구이지만 강력한 중거리 슛도 일품이다. 하지만 그 놀라운 킥력 때문에 무릎이 많이 상했다. 유리몸이 발목을 잡은 셈.....
필드 플레이 스타일은 굳이 따지자면 베컴과 비슷한 스탠드 윙어로[3] 형컴이라는 별명은 여기에서 따온 것이다. 이천수최태욱처럼 경기장을 휘젓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크로스와 프리킥으로 경기를 뒤집는 한방형 선수이다.

4. 여담


  • 2006년 7월 무면허 상태에서 과속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일으켜 현역 군인 두 명에게 각각 전치 6개월과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혔으며 당시 차에 동승한 염기훈이 운전한 것 처럼 꾸미다가[4] 나중에 자신이 했다고 시인하는 등 문제가 커질 뻔 했으나 어찌저찌 합의가 됐다.#
  • 2009년 7월 수원 삼성 블루윙즈전에 8개월만에 부상에서 복귀하여 출장한지 10분도 안되어 곽희주의 거친 태클에 부상당하자 분노한 전북 현대 모터스 팬 수천명이 경기장에 물병을 던지고 수원 삼성 블루윙즈 선수단에 린치를 가하는 소동이 있었다. 이후 인터뷰에서 김형범이 곽희주의 플레이는 정당했다고 이야기했다.
  • 2009년 전북 현대 모터스가 정규 리그 우승을 확정짓자 최강희 감독이 우승 세레모니 도중에 셔츠를 벗었는데 그 안에 김형범의 유니폼을 입고 있었다.
  • 일본의 스포츠 브랜드 미즈노와 스폰서 계약을 한 선수다. 미즈노에서 김형범을 위한 커스텀 축구화 모델까지 출시했(.....)으나 축구화가 출시되자마자 부상당해서 별로 신지도 못했다.
  • 2012년말 압구정의 모 네일아트샵 원장인 서규린과 혼인신고를 했다. 결혼식은 그로부터 거의 1년반이 지난 2014년 6월에야 치렀다.

5. 관련 문서


[1] 원래 83년 11월 24일생이지만 어머니가 한살이라도 어리라고 일부러 1월 1일로 출생신고를 했다고 한다.[2] 꽁병지tv, 꽁병지 라이브 둘 다[3] 물론 베컴은 돌파에 능한 선수가 아니었고 뛰어난 킥력으로 영향을 발휘하는 선수였기에 스탠드 윙어로 분류하지만, 실제론 엄청난 하드워커라서 둘을 비슷한 유형으로 보긴 어렵다.[4] 염기훈도 이 교통사고로 인해 머리와 이마가 깨지는 부상을 당했다. 염기훈 머리에 있는 흉터가 바로 이 사고로 인해 생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