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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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닮고 싶은 사람은 있지만, 되고 싶은 사람은 없다.'''
대한민국의 축구선수. K리그 1 FC 서울에서 뛰고 있는 서울의 리빙 레전드. 포지션은 공격수이다.'''영원한 축구천재.'''
고등학교 때인 2001년 포항 스틸러스의 후원으로 1년간 브라질 축구유학을 다녀왔으며 청소년 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며 한국 축구를 이끌어 갈 유망주로 주목받았다. 2005년 후원해준 포항 스틸러스가 아닌 FC 서울에 입단해 놀라운 득점력으로 그 해 올해의 선수상, 신인상, 인기상 등을 휩쓸었다. 2008년 9월 프랑스의 AS 모나코로 이적한 박주영은 첫 경기에서 득점을 기록하는 등 매 경기마다 공격 포인트를 기록하면서 그 해 10월에 팀 최우수 선수로 선정되었다.
박주영은 2005년 6월 정식 국가대표로 A매치에 출장해 첫 경기에서 득점을 올렸으며, 2008년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에서 득점왕을 수상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서는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환상적인 프리킥 골을 넣어 2-2 무승부로 16강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후 2012 런던 올림픽 일본과의 동메달 결정전에서 그 유명한 '''박시탈'''을 선보이기도 했다.
2. 상세
동료를 이용하는 움직임, 빈 공간을 찾아 들어가는 날카로운 감각과 창의성 높은 플레이, 뛰어난 볼 컨트롤, 기존의 한국 공격수들에게서 보기 힘들었던 문전 앞에서의 침착한 볼 처리와 정확한 슛으로 한국에서 '축구 천재'로 불렸다. 청구중학교, 청구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 진학했다. 고등학교 시절인 2001년 프로구단 포항스틸러스의 후원으로 브라질에 1년간 축구유학을 다녀왔으며 2003년 대통령금배 전국고교축구대회 득점왕, 추계 중고축구연맹전 득점왕, 2004년 아시아청소년선수권대회 득점왕과 MVP 등 각종 청소년 대회에서 득점왕을 차지하며 한국축구를 이끌어갈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다.
2005년 FC서울에 입단해 32경기에 출장, 18골이라는 놀라운 득점력을 보였으며 그 해 프로축구 올해의 선수상, 신인상, 인기상, 득점왕 등을 휩쓸었다. 특히 프로축구 최초의 만장일치 신인상을 이끌었던 점과 당시 사기캐릭으로 불리던 고려대 선배 이천수와 MVP 경쟁을 했다는 점은 K리그 역사상 최고의 루키였다는 것을 보여준다.
2006년에는 33경기 10골로 부진했으나 2007년에는 잦은 부상으로 출장 경기 수가 줄었음에도 15경기 5골의 성적을 냈다. 2008년 9월 프랑스의 AS모나코FC로 이적한 박주영은 첫 경기에서 1득점과 1어시스트를 하는 등 매 경기마다 공격포인트를 기록하면서 단숨에 핵심선수로 부각되어 이적한 바로 다음 달인 10월에 팀 최우수선수로 선정되기도 했다. 2008-09시즌 35경기 출장 5골, 2009-10시즌 22경기 9골 등의 활약을 보였다. 그리고 2010-11 시즌은 강등권 팀에서 12골을 넣으며 공격 전체적인 면에서 팀을 이끌었으나, 모나코는 강등되었다. 동시에 여러 명문 팀들과 이적설이 돌았으나, 결국 아스날을 선택했다.
청소년대표로 일찍부터 국가대표로 뛰던 박주영은 2005년 6월 정식 국가대표로 A매치에 출장해 첫 경기임에도 득점을 올렸다.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는 뚜렷한 활약을 보이지 못했으나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 축구 국가대표, 2007년 아시안컵 국가대표, 2008년 동아시아연맹 축구선수권대회 등에서는 활발한 경기를 펼쳐 2008년 동아시아 축구선수권대회 득점왕을 수상했다. 2010년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에 참가하여 나이지리아와의 경기에서 1골을 넣어 2-2 무승부로 16강에 진출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였다. 그리고 광저우 아시안 게임 동메달에 이어, 2012년 런던에서 한국 축구 역사 상 첫 메달을 획득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3. 클럽 경력
4. 국가대표 경력
'''성인 대표팀 기록 (2005 ~ 2014)''': 68경기 24득점
- FIFA 월드컵 3회 참가: 2006 독일, 2010 남아공 (16강), 2014 브라질
- 올림픽 2회 참가: 2008 베이징, 2012 런던 (3위 동메달)
- 아시안게임 2회 참가: 2006 도하, 2010 광저우 (3위 동메달)
- EAFF 동아시안컵 2회 참가: 2005, 2008
5. 기록
5.1. 대회 기록
-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2008
- FIFA 월드컵 16강: 2010
-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 대한민국 U-20 축구 국가대표팀
- AFC U-19 챔피언십: 2004
- 카타르 8개국 초청 국제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2005
5.2. 개인 수상
- 대구 MBC배 고교축구대회 득점왕: 2003
- 금강대기 전국 중고축구대회 득점왕: 2003
- 대통령금배 전국고교축구대회 득점왕: 2003
- 추계 중고축구연맹전 득점왕: 2003
- AFC U-19 챔피언십 MVP: 2004
- AFC U-19 챔피언십 득점왕: 2004
- AFC 올해의 청소년 선수: 2004
- 카타르 8개국 초청 국제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MVP: 2005
- 카타르 8개국 초청 국제 청소년 축구 선수권 대회 득점왕: 2005
- 자황컵 체육대상 프로선수상: 2005
- 스포츠서울 올해의 프로축구 대상 올해의 신인상: 2005
- 스포츠서울 올해의 프로축구 대상 올해의 인기 선수상: 2005, 2006
- 스포츠서울 올해의 프로축구 대상 올해의 득점왕: 2005
- 스포츠서울 올해의 프로축구 대상 올해의 선수상: 2005
- 일간스포츠 - 아디다스 프로축구대상 신인왕: 2005
- 일간스포츠 - 아디다스 프로축구대상 골든슈: 2005
- 일간스포츠 - 아디다스 프로축구대상 골든볼: 2005
- K리그1 신인상: 2005
- K리그1 베스트 XI: 2005
- 동아시아 축구 선수권 대회 득점왕: 2008
- AS 모나코 이달의 선수: 2008년 10월, 2010년 11월, 2011년 12월
- AFC 아시아 베스트 XI : 2011
5.3. 통산 기록
5.3.1. 클럽
5.3.2. 국가대표
2017년 9월 5일 기준이다.
6. 플레이 스타일
지금은 폼이 많이 하락했지만 한때는 '천재'라는 수식어가 잘 어울렸던 선수로, 황선홍 이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원톱을 이동국과 양분했던 공격수다. 특히, 이전까지의 한국 축구의 공격수들은 골대 앞에서 잔뜩 힘이 들어간 플레이를 하기가 일쑤였는데, 신인이던 당시 언론으로부터 "한국 축구 최초로 골대 앞에서 침착함을 갖춘 천재"라는 평을 들을 정도로 골대 앞에서의 플레이가 여유있던 선수였다.[8] 특히 팀 동료를 이용하는 플레이나 빈 공간으로의 쇄도, 2선에서의 침투 능력에는 발군의 기량을 자랑했다.
순간 속도가 매우 빠르고 상황 예측, 판단이 빨라, 라인브레이킹에 능하다. 원톱 공격수가 위치한 1선과 상대 골대 사이 간격은 넓은 편이 아니라 ‘순간 속도’와 ‘가속도’가 좋으면 ‘스피드가 좋은 원톱’처럼 보이다보니 박주영이 ‘스피드가 좋은 선수다.’ 라고 인식 되긴 했으나 사실 실제 주력은 100미터를 12초대에 주파할 정도로 2002년 이영표, 송종국, 황선홍과 비슷한 수준
뛰어난 키핑력도 가지고 있었고 점프력도 뛰어나[9] 182cm라는 키를 생각해보면 상당한 제공권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 점프력을 이용한 정확한 포스트 플레이도 수준급이었다. 실제로 폼이 다 떨어져서 국민 역적으로 전락했던 2014년 월드컵 당시에도 제공권 분야에선 끝판왕급이던 김신욱급은 아니어도, 당시 폼을 감안하면 불가사의할 정도의 제공권 능력을 보여줬을 정도.
커리어 초기에는 섀도우 스트라이커로서의 능력을 바탕으로 판타지스타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다. 키핑력은 초년병 때부터 매우 뛰어났고 세계 레벨에서도 어느 정도 통했기 때문. 등진 상태나 회전하면서 다음 동작으로 전환하는 움직임을 자주 보여주었는데, 힘좋은 유럽 수비수들 사이에서 비비면서 약간의 틈만 보이면 바로 돌아들어가서 벗겨내려들어 수비수들의 골치 좀 썩혔다.
드리블의 경우 전성기 때에는 뛰어난 순간 속도와 예측력을 기반으로 한 번에 확 치고 나가는 스타일을 선호했다. 즉 일단 공을 잡아놓고 상대 수비수가 마크하러 오면 수비수의 다음 행동을 예측해서 반대 방향으로 순간적으로 확 치고 나가는 유형. 볼 키핑력과 예측력이 있기에 가능한 스킬이었는데 나이를 먹고 무릎 부상을 포함한 피지컬 하락을 겪으면서 고만고만한 수준이었던 순간 속도나 가속력이 죽어버리는 바람에 드리블은 잘 시도하지 않는다. 다만 아직도 예측력은 유효한 강점으로 상대 수비의 움직임이나 공의 흐름 같은 것을 잘 읽는 편이다. 그래서 흐르는 볼이나 라인을 깨는 능력에도 강점이 있다.
위치선정도 뛰어난 편. 특히 유럽 진출 전 선수생활 초기에는 오프사이드 라인을 타다가 침투해서 득점하는 경우가 많았다. 유럽 진출 이후 피지컬을 보완하면서 버티고 헤딩을 따내는 스타일로 변모했지만, 몸싸움이 부족한 커리어 초기에는 라인 브레이킹을 통해 침투해서 골을 넣거나, 나와서 공을 받고 수비수를 제껴서 넣는 2지선다형 공격수였다.
프리킥도 상당히 뛰어나다. K리그 역사에 손꼽히는 프리킥 장인 이천수, 김형범, 염기훈보다는 떨어진다. 하지만 상위권 K리그 팀에서 키커를 할 정도는 되었고[10] 대표팀 주축으로 활약하던 시기에는 박주영이 키커를 맡았다. 특히 남아공 월드컵 16강행을 결정지은 나이지리아전 프리킥은 박주영의 프리킥 능력을 잘 보여주는 장면으로, 2010년대 중반 이후 대표팀에서 프리킥을 전담하는 손흥민보다는 한 수 위였다.
커리어 초기 가장 큰 약점은 몸싸움. FC서울 1기 시절의 박주영은 높은 키핑력과 발재간, 센스가 돋보였지만 몸싸움에서 약점을 보였는데, 당시 정교한 패스로 상당수의 골 기회를 제공해 주었던 히칼도 역시 몸싸움이 약했다. 이 시기 박주영이 잘 나가던 것도 냉정히 얘기했을 때 데뷔 시즌 전반기까지일 뿐, 후반기 시즌에 들어서며 이미 박주영 공략법이 나왔다는 말이 다른 팀 수비수들의 인터뷰에서 흘러나옴과 동시에 박주영의 성적도 곤두박질쳤다. 상대가 터프하게 마크해오면서 후기리그에 FC 서울의 성적이 크게 하락하는 원인이 되었고, 2006년에도 2005년 후반기 시즌처럼 수비수에게 패턴이 읽혀서인지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그나마 2007년 세뇰 귀네슈가 부임한 이후에는 스트라이커가 아닌 사이드 미드필더로 뛰면서 경기력을 크게 회복했지만, 데뷔 시즌 말고는 스탯 생산력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모나코 이적 후 한동안 피지컬에 눌리고 스피드과 라인 브레이킹에만 의존해야 해서 다소 저조한 커리어를 기록했지만, 그대로 도태되는 대신 스스로를 갈고 닦아 몸싸움과 제공권 능력을 아주 크게 보완해 주축 공격수로 발돋움하는데 성공했다. 모나코 2년차인 09-10시즌부터 박주영은 한국에서 독보적인 중앙 공격수로, 이 시기 박주영이 골을 많이 넣는 한국 최고의 스코어러는 아니었지만 현대 축구에서 필수적인 원톱 역할, 수비진과 경합하며 골문 부근에서 공을 따내고 지키는 공성추 역할로서는 대체자원이 없었다. 물론 그 반동으로 청소년 대표 때의 화려한 모습은 다소 잃었지만 세계 무대에서 언더독 입장인 한국에게 포스트 플레이로 제공권을 확보하고 1선과 2선을 연계해 공격을 풀어나갈 수 있는 박주영의 존재감은 다른 공격수보다 뚜렷했다.
현대 축구에서는 대체적으로 원톱이 직접 때리는 임무만큼이나 상대 수비수의 집중력과 시선을 분산하면서 2선 공격수들에게 공간을 열어주는 연계력도 중요한데, 박주영은 동 시기 대표팀 공격수로 발탁되었던 이동국, 이근호, 정성훈, 김신욱, 지동원 등보다 이런 면에서 우위였다.[11]
박주영은 국가대표 레벨의 한국 축구에서 제로톱 역할을 어느 정도 수행할 수 있던 몇 안 되는 선수라고 추정되기도 한다.[12][13] 확실히 가상으로 능력치를 하나하나 따져본다면 박주영이 할 수 있었을 것도 같다. 또 어느 정도 박주영의 플레이가 제로톱의 플레이와 겹치기도 했다. 그러나 실제로 박주영의 전성기 시절 국가대표 플레이는 포스트플레이에 장점이 있는 원톱에 가까웠다. 점유율 위주의 공격 축구를 선호하던 조광래와 홍명보 체제에선 말 그대로 붙박이 주전 스트라이커였긴 한데 제로톱과는 큰 연관이 없었다.[14] 아다시피 홍명보 체제에서는 활약이라고 할 게 없기도 했고.[15] 그리고 사실 제로톱이라고 다 좋은 것도 아니다.
다만 플레이스타일이 변하면서 골 결정력은 늘 지적받는 요소였다. 아스날에서 박주영을 영입할 때 모나코 팬들은 아스날 팬들에게 기술이 뛰어나고 영리하지만 1:1 결정력이 약한 선수라고 소개했는데 컨디션에 따라 결정력이 들쭉날쭉했다.
집중력과 투쟁심 부족도 큰 약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침착하게 경기 내내 흐름을 유지하는 건 좋지만 페이스를 확 끌어올려야 할 지점에서도 본인의 페이스와 리듬만 유지하다 템포를 못 따라가 오는 패스를 멍하니 있느라 놓친다거나, 간단한 패스를 트래핑 실수로 못 받는 등 안일하거나 어이없는 플레이가 나오곤 한다. 수비가담에 대한 의지 부족도 자주 지적된다. 지금은 나이 때문에라도 상대 수비를 압박하거나 재빨리 자기 진영으로 돌아와서 수비하는 것을 기대하지 않지만 전성기 때도 수비가담과 압박이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단, 한국이 상대적으로 약팀과 경기하는 아시아권 대회에서 맹위를 떨쳐야 함에도 최용수나 황선홍, 이동국처럼 상대를 압살하는 플레이는 거의 보여주지 못한다는 말은 '''애매한 말이다.''' [16][17]
박주영의 최대 흑역사가 된 브라질 월드컵이 끝나고 2015년 K리그로 돌아온 이후에는 신체 능력이 크게 죽어버린 대신 유럽 진출 이전 보여주었던 키핑력과 경력이 쌓이며 나아진 시야와 패스 능력을 바탕으로 2선 공격수로 주로 뛰고 있다. 간혹 최전방 원톱으로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이런 경우는 신체 능력이 많이 죽어서 K리그에서도 좋지 않은 경기력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기에 조커로 쓰이거나 몸 상태가 좋은 시즌 초반에나 잠깐 투입되는 수준.
2015년 K리그로 돌아오면서 또 플레이 스타일이 달라졌다. 최전방에서 2-3선까지 내려오면서 연계 중심적인 경기를 펼치다가 서서히 톱으로 올라가고 팀이 약간 내려가 있는 상태에서라면 단숨에 치고 올라가 논스톱으로 슛을 때린다던가 혹은 중거리 슛. 전성기와는 다른 타입이 되어버렸다. 좋은 헤더 및 제공권 장악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무릎 부상의 여파에 따른 후유증으로 2018년부터는 코너킥 시 헤더가 아닌 키커를 담당하는 등 점차 킥과 키핑, 연계력을 바탕으로 뛰는 테크니컬한 플레이스타일로 바뀌었다.
위에서도 길게 설명했지만 가시적인 박주영의 능력치만 놓고 말하자면, 전형적인 육각형 스트라이커이자 황선홍의 뒤를 잇는 만능 공격유닛은 맞는데, 뭔가 능력치가 고르게는 분포하지 않은 '''살짝 작은 육각형 공격유닛'''에 가깝다.[18]
감독들 입장에선 전술적으로 상당히 편안한 스트라이커가 된다. 박주영은 세계 기준으로라면 몰라도 한국 기준이나 아시아 기준으론 많은 능력치가 상당히 뛰어난 공격수며 몇몇 능력은 세계 기준으로도 그렇게 처지진 않는다. '''이 말은 즉 소화할 수 있는 전술폭이 매우 넓다는 의미도 된다.''' 전성기에는 활동반경도 상당히 넓었서 공격작업을 하다가도 또다른 골대 앞에서 아군 센터백 뒤를 커버쳐주기도 하는 등 현대 축구에 충실하게 따른 공격수였다. 골대 앞에서 주워먹는 포처뿐만 아니라 점프해서 뜬공을 동료한테 떨궈주는 타겟맨, 2선에서 1선을 지원하는 처진 스트라이커 같은 공격수부터 수비라인에서 공격라인으로 공을 몰고 가는 플레이메이커같은 공미 역할도 어느 정도 수행 가능했으며, 심지어 상대 수비수들을 중원으로 몰고 다니며 공간을 창출하고 공미들의 공격 가담을 지원하하기도 하고 공격수로 수행해야 하는 대부분의 플레이가 가능했다.
이러한 넓은 전술폭은 만약 박주영이 골을 넣지 못한다 해도 팀에 확실한 도움이 되는 점이었다. 대표팀에서도 박주영이 상대 수비수들을 몰고 다니며 공간을 창출하는 동안 박지성, 이청용이나 구자철이 전방으로 뛰어들고, 이들이 득점하면서 팀이 승리하는 패턴이었는데, '''다시 말하지만 당시 한국 프로선수 전부 통틀어 전방에서 이런 플레이가 가능했던 건 박주영밖에 없다.'''[19]
이렇게 써놓으면 박주영의 결정력이 떨어진다 느낄 수도 있겠지만, 위에서도 말했듯 박주영은 스트라이커뿐만 아니라 공미도 충분히 소화 가능한 선수였음에도 선수 커리어 내내 국대에서 박주영은 항상 원톱 고정이었는데, '''당연한 얘기지만 박주영을 원톱 자리에서 밀어낼 정도로 박주영보다 잘하던 원톱이 한국에서 없었다는 얘기도 된다.''' 박주영의 원톱 자리에서 유일한 경쟁자라 할 만한 선수는 이동국과 김신욱밖에 없었는데, 김신욱은 좁은 전술폭과 키에 비해 부실한 피지컬 때문에 감독들이 선호하는 선수가 아니었고, 이동국은 전술폭의 문제와 유리몸의 문제가 겹쳤다.
다만 이러한 능력들이 유럽 최상위 티어 무대에서 먹힐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유럽 무대의 2티어 정도라고 볼 수 있는 프랑스 리그[20] 정도까지는 충분히 한 시즌을 믿고 맡길만한 스트라이커로 활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유럽의 1티어 리그인 EPL, 그것도 상위팀인 아스날 수준의 팀에서 박주영이 가진 장점은 상대적으로 평범 내지는 그 이하가 될 수밖에 없었고 주전 스트라이커로서 한 시즌을 맡기는 것은 무리였다. 게다가 그 자리에는 유럽 최고의 스트라이커이자 부상이 사라진 반페르시가 버티고 있었다. 결국 박주영은 영입되자마자 공격수 2옵션, 3옵션을 놓고 경쟁하는 처지로 내몰리게 되고 끝내는 2~3옵션 경쟁에서도 탈락하여 사실상 잉여선수가 되어버리고 만다.[21]
어쨌든 박주영은 한국 축구에서 아주 현대적이고 멘탈, 피지컬, 스킬을 통틀어 대단히 독특한 캐릭터를 지닌 선수라는 것은 확실하다.
7. 논란
8. 별명
인지도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엄청 까이는 인물이다 보니 별명이 무식하게 많다. 가나다순으로 정리되어 있으니 추가 시 유의 바람. 야구의 김별명 같은 항목에서 명확하게 영향을 받아 생겼으며, 김별명 등 이 위키의 별명 항목은 까는 별명이고 좋은 별명이고 아주 무차별적으로 기록되어 있고, 위키 전체적으로 볼 때 박주영만 이상한 항목이 아니다. 그리고 김별명 문서와 마찬가지로 스포츠 덕후들 특유의 억지 밈이 매우 많이 들어 있으니 90% 정도는 걸러 들어야 한다. 실제로 쓰이는 별명은 이중 두 세 개, 많이 쳐줘도 너댓 개정도가 끝이라고 봐야 옳다. '''밥줘''', '''주멘''', '''박따봉''' 정도가 많이들 아는 별명이고, 겨유득과 같은 것이 좀 애매한 사례라고 할 수 있는데 축팬들은 찰떡같이 알아듣지만 아닌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모른다.
- JYP : 원래 영문 표기는 Chu-Young Park 이었으나, 모나코 이적 후 마킹을 J. Y. PARK으로 달기로 하면서 진짜 JYP가 되었다.
- 관중영: 경기에 계속 나가지 못해서 관중이나 다름없는 신세라 관중+(박주)영.
- 겨유득 : 겨레의 유일한 득점 루트. 2012년 셀타 임대 당시 걸렸던 박주영 팬카페의 메인화면. #
- 공원 : 성인 박씨(Park)로 인해 쓰이는 별명인데 워낙 흔한 명사라서 박주영의 화제도가 한창 상종가를 칠 때나 좀 쓰였지 별로 잘 쓰이지도 않았다.
- 도주영 : 이 별명은 도주영 30년 축구 인생의 모토에 대한 압축적 표현이다. 행위의 결과는 이미 주체 안에 내재되어 있었다는 일부 철학 학파의 시선으로 볼 때 도주영 별명 석 자는 포항에서 서울로 달아날 때부터 예고되었다, 이후 모나코에서 릴로 이적하려다 벵거의 전화를 받고 아스날로 이적하며 도주영 3글자는 거의 수면 가까이까지 부상하였으나, 축구선수의 전격적 이적은 왕왕 있어온 일이라 현실화되기에는 아직 충분치 못하였다. 그러나 최강희 감독의 부름은 시종 무시하면서도 홍명보 감독의 부름은 덜컥 받아들여 병역에서마저 성공적으로 도주하는 기이한 솜씨가 아니고서야 도주영 세 글자 별명은 성공적으로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후에도 박주영은 표홀히 아스날, 왓포드, 알 샤밥 등지를 방랑하며 주급만은 쏙쏙 챙겨먹는 솜씨로 도주영 세 글자 이름을 드높였다.
- 동팡주영 : 비슷한 맥락에서 한 때 맨유에 존재하기만 했던 중국인 공격수 동팡저우에 빗대.
- 따봉박 또는 박따봉 또는 꿀엄지 : 유래는 너무도 명확하다.
- 따봉충(-蟲)[22]
- 모나코왕자 : 타 별명과 달리 박주영이 모나코에서 잘나가던 시절의 별명.
- 모나코인, 모나코박 : 병역기피 시도 후에 한국 브라운관에 자주 비치기는 하는데, 한국 스포츠계 초유의 국적미상 상태의 선수라 이 선수의 국적이 도대체 어디인지 논란이 분분했던 가운데 일부 인물들은 그가 모나코인이라고 여겼던 듯하다. 다만 지금은 박주영의 전성기 시절을 지칭하는 별명으로 정착되어 있다.
- 무슈 팍 : 만약 그가 모나코인이라면 마땅히 프랑스어를 사용해서 불러야 하기 때문에, 프랑스의 남성 호칭인 무슈를 활용하였다.
- 무적의 스트라이커 : 말 그대로 무적(無籍)의 스트라이커였기 때문에.
- 박시탈 : 런던올림픽에서 일본 상대로 선제골을 터트려서 얻은 별명. 당시 유행하던 드라마인 각시탈에 빗대어 등장한 멋있는 별명이다. 당시 런던 올림픽에서 대회 내내 경기력이 저조하다 일본 상대로만 선제골을 박은, 마치 항일 암살자 같았던 박주영의 모습을 빗대는 측면도 있다.
- 밥꼼수: 병역과 관련해서 일반인들은 듣도 보도 못한 온갖 법조항 사이를 누비는 모습을 보고 붙은 비아냥. '밥'은 박주영의 다른 별명인 '밥줘영'에서 유래.
- 박나모토 : 아스날에 잠시 소속되었던 일본 축구선수 이나모토 준이치와 같다 하여. 이나모토는 아스날이 경제적 목적으로 영입한 후 출전시키지 않은 것으로 유명했다.
- 박코치 : AS 모나코 시절 한창 폼이 좋았을 당시 팀 공격진 중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 생긴 별명. 축구를 배우러 갔는데 오히려 가르친다고.
- 박힐러, 프리스트 박 : 박주영이 아스날을 떠난 이후 몇몇 선수가 박주영 아스날 재직시에는 건강했으나 그 전후에는 부상에 시달리던 선수인 것이 발견, 박주영의 존재가치를 새롭게 발견한 팬들이 환호하며 찬양하기 위해 붙인 별명. 사실 박주영은 벤치에서 힐과 버프를 주며 선수들을 회복시키는 역할로 기용한 벵거의 혜안이었음이 밝혀졌다. 무엇보다 박주영이 가지고 있던 기존의 종교적인 이미지와도 잘 어울리며 성공한 별명.
- 박X발 : 일부 입이 거친 사람들이 지나친 비속어를 사용하여 이렇게 잠시잠깐 불렀다. 당연히 평소에는 한국 축구에 관심 없고 앞으로도 없을 월드컵 냄비들이다. 왜냐면 2014년 발효된 별명인데 그 전까지의 행보를 고려해 볼 때 월드컵에서 똥 쌀 것은 이미 예정되어 있었고 병역기피 등등의 행적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사실 어찌 보면 일반명사에 가까운 비속어들로 특정인물을 호칭하기에는 대한민국에 박씨가 너무 많다.
- 밥줘, 밥줘영: 박주영의 이름을 비슷한 발음으로 웃기게 비튼 것.[23] 줄여서 '밥줘'라고도 한다. 깔 때 쓰기도 하지만 그냥 쓰는 팬도 많으며 사실상 박주영의 주요 별명 중 하나로 정착했다. 알샤밥으로 이적하며 알샤밥줘영, 알샤밥줘, 알밥샤줘영 등의 바리에이션이 생겼다. 그러나 알 샤밥 시절에서 별다른 임팩트를 만들어내지 못하는 바람에 알샤밥줘영 등은 조용히 묻혔다.
- 버블팍 : 아스날 입단 후 여러모로 거품(버블)에 가까운 모습이 보여지며 붙은 별명. 발음 자체는 현아의 히트곡인 Bubble Pop!의 패러디이다. 기사 댓글에서 주로 "버블버블 팍팍"[24] 하면서 조롱할 때 자주 쓰였다. 곡의 연차가 오래되고 박주영의 거품도 꺼지면서 점차 생명력을 잃었다.
- 봉와주영 : 소위 황제훈련 도중 봉와직염을 앓으면서 유래했다. 많은 남성들이 군대 시절 행군과 함께 접하게 되는 병명이다. 대부분의 남성은 군생활 도중 행군경험이 있으므로 약간의 위생관리만으로도 발병을 억제 가능함이 널리 알려진 바이며, 주로 더럽고 게으른 고참이나 게으르진 않지만 바짝 쫄아붙어 있는 이등병들이 자주 걸리며 모두의 골머리를 썩게 하는 병으로 유명하다. 친숙하면서도 동시에 짜증스러운 주제였기 때문에 수많은 네티즌들은 프로 축구선수의 위생관리에 대한 의문과 함께 위생상태 불량에 관한 혐오감을 표시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그러나 애초에 더러운 질병이라 생명력이 길 수 없는 별명으로 잠시잠깐 반짝했다.
- 벤치영: 경기에 계속 나가지 못해서 벤치에 앉아 있는 신세라 벤치+(박주)영.
- 사우디박 : 사우디 시절 종종 사용되던 별명.
- 선례왕(先例王) : 합법적 병역 연기 및 면제는 물론 포항에서 서울로의 도주 등 박주영 인생 전반을 걸친 선구자적 면모가 일반인들에게는 상상의 영역조차 초월한 바, 박주영에게는 감히 왕의 칭호가 어울리다고 뭇사람들이 기림과 함께 얻은 영예로운 별명. 인간 박주영의 생애 전반에 대한 깊고 날카로운 통찰이 빛난다.
- 스텔스박 : 브라질 월드컵에서 공격수인데 마치 스텔스기와 같이 적의 시야에 잡히지 않았다. 엄지를 들어올릴 때 빼곤 아군의 시야에도 잘 잡히지 않았던 것은 덤.
- 스티붕밥(박): 모나코 장기 체류를 통한 병역 연기한 모습이 같은 예체능계에 종사하던 00년대 가요계의 전설적 댄스 가수 스티브 유와 같다 하여 그의 별명 '스티붕 유'에서 이름을 따와 사용되었다. '밥'은 밥줘영에서 온 것.
- 승부사 : 2010년 국가대표 훈련시 한 동영상에서 "야 형 승부사야 임마" 하면서 코너킥 위치에서 골대 안으로 공을 집어넣은 것에서 유래. # 이후 인생의 분수령이나 갈림길마다 귀신 같은 결단력을 보여주면서 재조명. 골결정력과는 전혀 관계 없음. 이따금 박주영의 경기력이 좋았을 때 신문 기사에서도 박주영을 승부사라고 호칭하며 이 별명의 영향인지 그 빈도가 다른 선수들보다는 조금 더 많은 것처럼 보이긴 하나 그 날 경기 폼이 좋으면 종목 불문하고 쓰이는 단어이기 때문에 크게 구별될 정도의 의미는 없다. 결국 기막힌 승부수를 던지고 연이어 성공한 그의 인생역정과 관계가 깊은 별명이다.
- 썬더 : 남아공 월드컵 때의 아디다스 광고문구 '모든 팀에는 썬더가 필요하다'에서 유래. #
- 영박 : 아스널 홈페이지에서 박주영의 성명을 영박으로 표기하는 바람에 생긴 별명.주 영박
- 액받이 무녀: 출처.
- 일류 : 브라질 월드컵 종료 당시 힘들 때 웃는 게 일류라는 이상민의 발언이 그의 과거 행적과 대비되며 비꼬는 의미로 이너넷에서 한창 유행하고 있었다. 때마침 벨기에전이 종료된 후 손흥민이 울고 있는데 박주영은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의 사진에서 유래하였다. 이후 귀국 사진에서도 비교적 여유로운 모습의 사진들이 찍히며 잠깐 유행했다. 2017년까지도 어리석은 족쟁이들이 승부 같은 것에나 집착하면서 울고불고하지만 박주영이 여유로운 모습을 과시하거나 할 때 가끔 쓰인다.
- 일본킬러 : 유독 일본만 만나면 강한 모습을 보여주면서 골도 여러 번 터트렸었다.
- 주님영 : 주멘보다는 좀 비꼬는 성향 이 덜하지만 어쨌든 종교색을 강하게 드러내는 박주영의 행태를 눈꼴시게 보는 일부 인물들이 이렇게 부른다.
- 주님요 : (기도 세리머니→)주님 + 브라질 축구스타 주닝요 패러디. 당연히 이 별명은 비꼬는 맥락에서나 쓰이며, 주님영보다 귀염성이 덜하다.
- 주멘: 박주영의 주요 별명 중 하나. 유래는 박주영(또는 별명에서 유래한 주님) + 아멘. 별 의미 없이도 잘 쓰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 주영 또는 주멘으로도 불린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라는 뜻으로도 쓰이며 야구의 종범과 비슷한 의미. 요즘은 K리그 공식 인스타그램, 인터넷 댓글, 심지어 구자철이 박주영 인스타그램에서 주멘이라고 부르는 것을 보면 그냥 애칭 및 찬양의 의미로 쓰이는 듯 하다.
- 주영신(갓주영) : 비꼬는 의미로 더욱 많이 쓰이나 가끔 가다 현실이 되기도 한다. 2012 런던 올림픽에서 동메달 결정전에서 한 골을 넣고 잠시 이런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가끔이라고 하기도 뭐한것이,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도 동메달 결정전 딱 한 순간뿐이고 그 이후에는 없다. 취소선 드립처럼 한계가 너무 명확하기 때문에 2017년까지도 가끔 축구 사이트에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도 있으나 집중포화를 맞고 사라지곤 한다. 그러나 슈틸리케호 말기 축구 국가대표팀의 부진이 너무나도 심했기 때문에 자조적인 의미로 상당한 호응을 얻기도 한다. 그러나 착각을 심하게 한 나머지 진지하게 주영신 같은 얘기를 과도하게 하면 집중포화를 맞고 버로우하게 되니 한계를 명확히 알고 주의하자. 박주영은 국대에서 잘 나갔던 시절은 정확히 말해 08-12년이 전부라 해도 과언은 아니다. 08년 동아시아컵부터 남아공시절엔 주전력으로 뽑혔고 본인도 피크시절 능력치지만 11년을 기준으로 터키 세르비아 가나 폴란드 는 평가전이었고[25] 브라질 예선은 최종예선 같이 한국과 호각을 이룰만한 팀들이 아니었다.[26] 하지만 알다시피 13년은 이적실패와 벤치를 달구면서 월드컵에서 주적이 되고 부진한것은 부정할수 없다.
- 주젊공, 공원, 젊은 공원 : 구글 번역기로 번역하면 박주영의 박이 공원으로 영이 젊다로 해석되어 주 젊은 공원이라는 해괴한 이름이 나오는데 이를 생략했더니 말맛이 생겨서 주로 쓰였다. 해외에서 돌아오고 나서 조금씩 사용빈도가 줄어들더니 현재는 잘 쓰이지 않고 있다.#
- 쪼꼬형 : SNS에 부인이 준 발렌타인 초콜릿을 인증하면서 쪼꼬라고 하는 바람에 쪼꼬형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제는 FC서울 공식 인스타그램에서도 박주영을 쪼꼬형이라고 부른다...
- 토템, 토템박, 토템풋볼, 토템사커 : 2011년 아스널 이적 후 생긴 별명으로, 당시 아스널에는 부동의 주전 스트라이커 로빈 판페르시가 있었는데 판페르시는 매년 크고 작은 부상 때문에 경기 출장수가 그리 많지 않은 전형적인 유리몸 선수였다. 그래서 한국 팬들은 박주영이 그 빈자리를 메워 빅클럽인 아스널에서 주전급으로 도약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큰 기대를 품었지만 하필이면 그 해에 판페르시는 리그 38경기 전경기 출전에 30골이라는 대업을 이루면서 박주영은 출전 기회를 거의 잡지 못하게 된다. 그래서 이전 시즌까지 유리몸으로 유명했던 판페르시가 강철몸, 일명 풀페르시가 된 건 벤치에 앉아 있는 주멘의 가호 때문이라는 우스개소리가 나오기 시작했고 당시 인기있었던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주술사가 토템으로 아군에게 각종 힐과 버프를 넣어주는 것에 빗대어 토템이라는 조롱성 별명이 붙여졌다. 그리고 이 별명은 브라질 월드컵에서의 추태로 인해 더욱 널리 알려졌다. 주로 퐈이야와 짝지어 불린다.[27] 이들 둘은 필드에 서 있을 때는 무용지물이지만 벤치에 앉고 나서야 마치 옥침대와 같이 이로운 영향력을 은은하게 발휘하기 때문이다.
- 합법줘: 합법적으로 병역을 연기했다며 비꼬는 의미에서 나온 별명. '줘'는 다른 별명 '밥줘영'에서 유래. 한국프로야구를 통해 이미 정착돼 있던 합법드립에다가 '밥줘영'을 결합했다. 물론 원래의 합법드립은 진짜 합법인 건 아닌데 합법화됐다고 오해해서[28] 비꼰 것이 정착된 것이지만, 박주영의 병역 연기는 진짜로 합법이었다는 점이 다르다.[29]
- 힐러 : 힐에 능하다.
9. 여담
- 청구고등학교 시절 체력을 키우기 위해 자신의 집에서 청구고까지 1시간 30분 거리를 뛰어서 등하교했다고 한다.
- 고교시절 또 다른 일화로 고교축구대회에서 본인이 해트트릭을 넣고 32강에서 패했는데 동료들은 대회가 끝나서 뒷풀이로 향했지만 박주영 혼자 훈련장에 남아서 밤늦게까지 훈련했다고 한다.
- A매치 전대륙 상대 득점자이다. 득점 순서대로 보면 2005년 6월 3일 우즈베키스탄(아시아), 2006년 1월 21일 그리스(유럽), 2006년 3월 1일 앙골라(아프리카), 2009년 8월 12일 파라과이(남미), 2009년 9월 5일 호주(오세아니아), 2011년 3월 25일 온두라스(북중미) 순이다. 다만 호주의 경우 OFC 소속이 아닌 AFC 소속일 때 기록한 득점이라 논란[30] 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2020년 현재까지 이 기록은 황선홍, 박주영, 이동국, 손흥민만 보유하고 있다.
- 기자들이 무척 싫어하는 선수들 중 한 명이다. 한창 박주영으로 뜨거울때 인터뷰 요청을 안 받아주고 피해다녀서 그렇다고 한다. 심지어는 셀타 비고 이적 후에도 저런 태도로 일관해서 결국 현지에서도 비난하는 기사가 나오기도 했다. 박주영의 인터뷰 거부에 대한 관련 글 공식 인터뷰는 피한 적이 없으나 축구 선수에게 이런저런 기자와 언론의 사적 인터뷰 제의를 다 거절하면 공식 인터뷰라는 것이 몹시 드물기 때문에 프로 선수는 구단의 사업을 돕고 지지해주며 돈을 쓰는 팬들에 대한 의리상 인터뷰에 적극적이어야 할 의무까지는 아니어도 필요가 있다. 여담으로 그의 성격자체가 한 몫했고 그 성격의 소유자가 어린 시절 국내 기자들에게 시달리다보니 그렇게 된 듯.[31]#
- K리그 팬이 아니면 잘 모르던 사실인데, FM 제작사인 스포츠 인터랙티브에서 이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2006버전부터 포항 스틸러스의 싫어하는 인물에 박주영을 넣어놨다. 그것도 FM21 기준 혐오도 100에 영구적으로 혐오 체크까지. 실은 한국 FM 평점 주는 것은 한국 사람이 한다. 그래서 이영표 선수가 싫어하는 선수에 이임생이 들어가 있을 정도. 하지만 주관적인 평가가 많이 개입되면 나중에 제작사에서 모든 데이터를 취합한 뒤 상식껏 조정을 한다고 한다.
- 풋볼매니저에서의 능력치는 K리그 시절에는 유럽 주요 리그를 제외한 타 리그는 스카우터를 파견하지 않고 리그의 수준에 맞춰 랜덤 포텐[32] 으로 대신하게 되어있는지라 선수의 능력치를 잘 표현을 못했으나 유럽리그인 AS 모나코 이적 이후에는 활약에 맞추어 능력치가 개편되었다. 개편 이후 2010까지 양발은 유지한 채 포워드의 능력치는 전체적으로 좋아졌으나 그에 맞춰 구단 내의 위상이 핵심 선수로 변경됨에 따라 초기 시작 시기에 영입을 타진하려면 400억 이상의 영입료를 지불해야 한다. 2011버전에 또다시 개편되어 양발 사용이 오른발 사용으로 바뀌면서 그에 비례해 전체적인 능력치가 올라갔다. 하지만 아스날에 가면서 제대로 출전하지 못한 탓인지, 2012에서는 골결정력이 11로 내려가는 등 폭풍 하향을 먹었다. 2013에도 골결정력이 또 10으로 내려갔으나 AS 모나코 시절의 능력치가 높게 평가되었는지 신체적 능력, 퍼스트 터치[33] , 정신적 능력은 그리 너프되지 않아 감독의 전술적 역량에 따라서는 다득점을 노릴 수 있다. 2015에서는 월드컵에서의 엄청난 활약과 아스날의 강제 방출 및 무적기간 덕분에 전작의 유럽 하부리그 준주전급 선수에서 유망주급 능력치로 변경되어 엄청난 너프를 먹었다.##. 모나코 시절까지는 중간은 가던 프로 의식도 아스널에서의 먹튀 행각과 셀타비고 임대 시절 보여준 워크에식 때문인지 FM 2018 기준으로 멘탈갑 수준의 6이다. 이게 어느 정도냐면 발로텔리와 동급이다. FM20까지도 100 남짓한 어빌을 보여주는데, 사실 박주영의 몇 시즌 활약을 감안하면 너무 박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럾다.
- 피파에서는 K리그 시절 초기에는 상당히 좋았으나 그 다음부터 부진해 능력치가 유망주 급으로 변화. 모나코 이적후 70대 중반의 아시아인 치고는 상당히 쓸만한 능력치로 둔갑했다. 피크시절에는 80까지도 올라가며 아시아 최강 포워드로서 이름을 날렸으나 아스날에서 셀타로 이적할시 약간 능력치가 하향되었다. 전체적으로 뛰어나고 결정력이 좋은 포워드임에도 셀타에서 삽질이 반영되어 아스날 재복귀시 70대 초반으로 다운되어 버렸다. 월드컵에서 삽질 후 60대 후반까지 떨어졌다. 15년 FC서울 복귀시엔 능력치가 60대 중반까지 너무 다운돼 대표팀에서도 써먹기 힘든 레벨까지 떨어졌다. 16년에 60대 후반까지는 복귀했으나 데얀(77) 아드리아노(72)에 비하면 조커 이상으로 쓰기 힘든 능력치가 되었다. 능력치로 보는 그의 일대기
- 위닝일레븐에서는 데뷔 때부터 20살 주제에 80대에서 70대 중반 능력치를 주렁주렁 달고 나오는데다 마스터리그에서 키우면 괴물이 되는 존재로 만들어 놓고 모나코 이적 후로는 피지컬에다 헤딩능력도 80대로 설정되어 대표팀과 팀내 에이스급 선수로 설정되었다. 너프를 잘안시키는 위닝 특성상 브라질 때까지도 손흥민에 이어 넘버2의 한국인 능력치를 받았으나 다음해부터 현실을 반영해 70대 초반으로 엄청난 너프를 받았다. 2017에서 약간 상승했으나 전성기에 비하면 부족한 능력치다. 그러나 피파시리즈와는 달리 이동국에 비해 언제나 높은 능력치를 자랑한다.[34][35]능력치는 2015국대 전체능력치 참조
- 고려대 졸업 당시 서울 동북고등학교에 교생실습을 나간 적이 있다. 당시 동북고등학교 학생들이 축구하고 있었는데, 박주영이 나와서 학생들 공을 뺏고 드리블 하던 도중, 학생들에게 공을 빼앗기고 마는데... 당황한 박주영은 다시 공을 빼앗아 중거리 슛을 날려 골을 넣었다는 일화가 있다.
- 2004년 청소년 대표팀에 소집되었으나 파라과이와의 평가전을 앞두고 정기전 출장으로 이탈, 언론에서 뭇매를 때렸고 연대 학생들은 어디 얼마나 잘하나 보자 하고 벼르고 있었으나...연세대와의 정기전에서 연세대 수비진을 완전히 농락, 고대의 2-0 승리를 이끌었다. 그것을 본 고려대 학생들은 다음 해 고연전 축구를 매우 기대했지만 정작 결과는 무승부. 그것도 끝나기 5분여 전 극적인 동점골을 내주며 무승부를 맞이했다.
- 모나코의 구단주이자 모나코 공국의 공작 알베르 2세에게 초청장을 받은적이 있다고 한다. 모나코에서도 프리킥 연습을 빠지지 않고 하고 있다고 하는데 문제는 감독이 프리킥 찰 기회를 안준다. 모나코TV에서 니마니와 친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근데 니마니는 박주영에게 패스를 안 한다. 니마니는 결국 박주영과의 주전경쟁에서 패해 프리미어 리그 번리로 임대갔다.
- 잘 안 알려져 있지만, 패션테러리스트다. 꼭 유니폼 팔 사이즈를 조금 크게 입어서 소매가 손을 덮고 있다. 소매로 손등 덮기는 어지간히 캐주얼한 옷을 입지 않는 이상 여자가 해도 드물게나마 지탄받을 수 있는 패션이다.
- 골을 넣으면 항상 기도 세레머니를 하는데 이에 대해서 항상 많은 말이 있다. 하지만 정작 팀동료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모양. 애초에 세레머니 후에 멀쩡히 동료들과 교류를 하기 때문에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리그앙 시절, 스타드 렌 FC와의 리그경기에서는 골을 터뜨리고 세레머니를 할때 오히려 동료들이 장난을 치는걸 보면 그들도 즐기는 듯. 여담이지만, 웨인 루니의 슬라이딩 세레머니에선 아무말도 없다가 박주영의 세레머니에선 무릎다친다고 까는 해축팬들도 간혹 있다. 본인은 안정감을 준다고 한다. 하지만 세레모니하다가 부상 당하는 선수들도 있기 때문에 팬들에게는 괜히 애먼 상황이 닥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줬는데... 2010년 12월 25일,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이 부상으로 무릎에 크게 무리가 가서, 아직까지도 훈련장에서 무릎찜질을 하는 모습이 종종 포착되며, 비시즌 기간에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 2011년 6월 12일에 한살 연상의 모교 선배와 결혼. 가까운 사람들만 참석한 비공개 결혼식을 올렸다. 사회자는 이휘재, 축가는 김태우. 가나전 이후에는 선수들이 여러모로 축하(?)해줬다. 결혼축하 헹가레 받고 내동댕이 쳐져도 웃는다. 백호에게서 음료수 세례도 받았다.
- 2012년 즈음부터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탓에 까들의 활동이 부쩍 늘었다. 본진이라 할 수 있는 다음 해축게에서 공개적으로 타 사이트 공대를 모집하고 있을 정도.참고. 이런 무개념 박까들의 난입으로 개소문닷컴의 청정지대(?)[36] 중 한 곳이었던 축구 게시판이 이미 큰 피해를 입었다.
- 박주영이 병역 논란 당시 귀국 후 최강희 감독의 기자회견 제의를 거절하고 최강희 감독은 물론 축협 등의 모든 연락을 거부하며 잠수 탔을 때 이를 비꼬는 사람들이 투명하다, 사라졌다, 보이지 않는다며 비꼴 때 사용되는 인터넷 은어 종범 대신 이제 대세는 주영이라며 대체하려고 했다. 은어로 쓰이는 종범 자체가 워낙 광범위하게 퍼진 말이라 대체되진 않았지만 그 후에도 이따금씩 사용례가 발견되곤 한다. 그런데 종범이 지역감정 문제로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것도 있고 은퇴하면서 존재감이 낮아진 반면 박주영은 아스널서 절정을 찍고 있기에 주영의 점유율이 치솟는 중.
- 2017년 들어 박주영의 토템설이 입증이 되었다는 의견이 해외축구판에서 늘었다. 우선 첫 유럽 리그 진출팀인 AS 모나코는 박주영이 뛰던 당시에는 잘 하는 팀은 아니었지만, 2016-17 시즌 챔피언스리그 4강과 리그 우승을 이루었고, 셀타 비고는 이후 이아고 아스파스, 놀리토 등의 활약으로 유로파 리그에 진출했으며, 왓포드 FC는 15-16시즌 EPL에 승격한 이후, 트로이 디니등의 활약으로 중위권에 랭크 되어 있다.
- 2006~2008년 사이에 '너구리알'이라는 사람이 제작한 박주영을 주인공으로 육성 시뮬레이션 플래시 게임인 '축구왕 박주영'이 있었다. 박주영을 키워 프로선수로 만드는 게 목적이고 중간 중간 '불멸의 이순신' 플래시 게임이 들어가있었지만 축구협회측에서 합의한 초상권 협의 종료로 결국 모든 자료가 소실된 상태 관련 사진.
제작자 너구리알은 이 게임을 제작 한 이후 입대를 하고 군복무 중 지만원에게 불멸의 이순신 플래시 게임의 내용 중 허위 사실 관련으로 고소크리 맞고 이후 이 게임을 포함 자신이 만든 게임을 전부 삭제했다. 제작자는 이 일로 국군교도소를 다녀왔다고 잘못 알려지기도 했다. 이후 불멸의 이순신 게임은 해당 인물을 모자이크 했지만 이건 별개로 다신 올라오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2017년 9월 경 중세게임 갤러리에서 원본 플래시 파일을 찾아냈다. 해당 링크
- SNS는 일절 하지 않다가 2016년 인스타그램 계정을 개설하였다. 그런데 계정을 파자마자 논란에 휩싸였다. 광주 FC로 이적한 정조국과 농담따먹기를 하며 돌 찾으러 갔냐는 말을 하는가 하면, 상주 상무로 입대하는 후배 박희성의 사진을 올리며 비웃고 외모를 조롱하는 포스팅으로 크게 논란이 되었다. 3월엔 태국으로 이적한 김진규가 그립다는 최용수 감독의 인터뷰를 올려놓고 ㅋㅋ를 연타하고, '푸하하', '짝사랑' '뭥미', '뜬금포' 등의 해시태그를 덧붙이면서 마치 감독의 인터뷰를 디스하는 듯한 뉘앙스를 남겼다. 사실 정확히 말하면 안티들이 논란을 만든거고 당사자들끼린 잘 지낸다. 최용수 감독과는 10번 가지고 농담 주고받고 15시즌 중반 최 감독이 중국 장쑤의 오퍼를 받자 가지 말라고 메시지를 보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고 FC 서울 동료들과도 친분이 깊다. 전북의 심판매수로 흉흉하던 시절 여유롭게 동료들과 야유회 나온 사진을 올려서 서울 팬들 사이에서 소소하게 화제가 된 바 있다.
- 페라리 488 GTB의 오너이다.
-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득점, 특히 멋지게 들어간 득점이나 팀의 승리를 결정짓는 결승골을 넣고도 운이 좋았다. 식의 코멘트로 길게 언급하지 않고 유야무야 넘어가고 있다.
- IQ 150으로 알려져 있다. 과거 한국의 IQ 뻥튀기식 발언을 생각하면 그가 정말 상위 0.3~1.5% 수준의 IQ를 지니고 있는지는 미지수이나, 평소 행동이나 축구 지능을 보면 최소한 머리가 나쁘지는 않다.
- 카메라를 극도로 싫어하는듯 하다. 구자철이 오프시즌에 FC서울 락커룸에 놀러갔을때 박주영을 찍으러 갔을때 극단적으로 카메라를 피할려고 하여 이런것좀 찍지마! 라고 말한적이 있었다.
- K리거들이 뽑은 매너가 가장 좋은 선수 1위에 선정되었다.
10. 관련 문서
[1] AS 모나코로의 이적 전에는 주를 Chu로 표기했지만, 모나코 이적 이후 Chu를 Ju로 바꿨다. 그러나 FC 서울 복귀 이후, 영문 마킹이 되어있는 ACL 전용 유니폼에는 Chu로 마킹이 되어있고, 해외 중계에도 Chu로 나온다.[2] 폴스 나인 역할의 중앙 공격수로도 뛸 수 있었다.[3] 프로 데뷔 2년차에 피지컬에서 어려움을 겪었을 때 뛰었다[3] 2012 런던올림픽 축구 '''동메달'''[4] 축구팬들이 조롱의 뉘앙스로 사용할 때도 있다[5] 승강PO 2경기 [6] 승강PO 1골 [7] 승강PO 1도움 [8] 사실 이건 지금도 드물지만 더더욱 축구에 전문적인 식견을 가진 언론인이 드물었던 당시 수준에서, 하여튼 문전 앞에서의 침착력 문제 or 정신무장의 부족 or 조직력 부재 or 기술의 부족 등등 정형화된 몇 가지의 레퍼토리만 가지고 있던 축구 언론인들의 주요 레퍼토리 중 하나였다. 즉 옛날 축구 언론인들이 가지고 있는 몇 안 되는 축구관으로 때려맞추다 보니까 나오는 평가였기 때문에, 옛날의 신인들은 종종 이런 평을 듣곤 했다.[9] 모나코 피지컬 테스트에서 점프기록 1M를 달성[10] k리그 통산 프리킥 기록을 감안[11] 이 능력을 플레이메이커라고 말하기엔 좀 애매하다. 그러면 현대 원톱들은 다들 플레이메이커니까.[12] 그최순호나 황선홍 정도가 제로톱 역할을 수행 가능했으나 이 둘도 그냥 본인들이 골잡이 역할을 맡았지 제로톱 역할을 맡았던 적은 별로 없다. 지동원의 경우 제로톱이라고 잘못 알려져 있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이 아니다. 제로톱은 공미가 원톱에 서는 것이 아니라 원톱이 상대 센터백을 유인하면서 중원으로 내려와서 중원에서 수적 우위를 만들고, 공미들과 패스플레이를 하면서 미드필더라인을 올리는 것이다. 지동원의 정확한 플레이스타일에 대해선 지동원 항목 참고. 김은중도 수행할 수 있으나 국가대표로선 능력치가 애매하다. 김은중의 경우 상당히 영리한 선수라 제로톱을 수행할 수는 있으나 한쪽 눈 실명 문제도 있고 해서 국가대표로서의 기량은 애매하다. 정조국은 김은중보다도 조금은 더 아래로 평가받는 선수다.[13] 박주영은 원톱 롤에 가깝게 플레이를 했는데 제로톱도 동료와의 궁합도 문제가 된다. 박주영의 전성기 시절에도 박주영은 득점 역할이라기보다는 포스트플레이에 주력했다. 손흥민과 조합이 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나, 2014년 월드컵에서 정작 박주영의 폼이 안 좋았기 때문에 최악의 경기를 생산하는 것으로 월드컵이 끝났다.[14] 박주영이 한국 국대에서 바르셀로나의 메시 역할을 했던 적은 거의 없다.[15] 홍명보가 박주영의 경기력에 관계없이 광저우 아시안게임부터 런던 올림픽, 브라질 월드컵까지 박주영을 주전 원톱으로 발탁한 것은 그 시기 청소년 대표부터 출발해 조직력을 다져온 홍명보호의 4-2-3-1의 1에 필요한 요소가 박주영에게 있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허정무 시절이 그랬고 조광래 시절에도 전반부에는 있었다. 그러나 옛날에 있었고 지금은 없는 능력을 끝없이 찾은 것은 감독으로서 실패다.[16] 이것은 관점에 따라 다른데 박주영이 분명히 더 할 수 있어 보이는데 생각보다 이상하게 활약이 저조하다는 얘기 혹은 선배 공격수들만큼 지배적인 활약을 보이지 못했다는 얘기다. 분명히 잘한 것은 맞으나 전설로 회자되는 아스날 이적 직전의 시기를 제외하면 강력한 지배력을 보여준 적이 없으며 그 시기도 상대적으로 짧은 편이다. 더 잘할 수 있어 보이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은 선배 축구인들도 박주영에 대해 표시하는 안타까움이다.[17] 박주영이 활약한 시기가 선배들이 활약했던 시기보다 좋았고 팀이 선진적으로 완성되어 있었다고 말하는 것도 이상하다. 물론 허정무호 시절 완성도가 좋긴 했다. 하지만 그것은 허정무호 2010년 월드컵 본선에서의 완성도가 좋았기 때문에 술회하는 과정에서 좋게 말하는 것이지 3라운드에서 북한과 승점 동점이었던 등 과정에서는 분명히 덜컹거렸다. 또한 아시아 하위권에서 중상위권까지 아시아가 상향평준화되던 시점인 것은 맞으나, 세부적으로 말하자면 사우디나 이란 등 한국과 급이 비슷했던 중동 라이벌들이 한국은 몰라도 북한에게까지 밀려서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는 등 폼이 저하된 시절이기도 했다. 박주영 시절 아시아 팀들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계속 올라가는 중인 것은 맞지만 사실 박주영의 활약시기는 최용수나 황선홍, 이동국의 시절과 그렇게까지 차이가 나지 않는다. 가장 후배인 이동국이 찍어누르던 시기가 2000년대 중반까지니까. 그리고 선배들 역시 2002년을 생각하면 박주영 혼자만 선진적이고 현대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할 수도 없다. 분명 박주영의 대표팀이 꽤 안정적이었고 그것에 박주영이 기여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90년대만 해도 아시아에서 조별리그 1위를 해야만 월드컵에 나가곤 했으니 2010년 월드컵 예선에서 보여준 박주영의 선진적인 점의 근거가 조별예선 1위이며 그 점에서 선배들과는 다르다고 말하기는 좀 그런 것이다.[18] 국가대표에서도 많은 능력치가 최고라고 할 수는 없어도 그 다음 가는 그룹쯤에는 무난하게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민첩성, 결정력, 집중력 등 아시아 무대를 압살하는데 필요한 능력치가 부족하기는 하다. 하지만 제공권이나 시야, 볼터치, 드리블, 축구감각 등 축구강국과 대결하기에는 적합한 능력치를 갖춘 선수라고 할 수 있다.[19] 허정무, 조광래 때 붙박이 주전이었던 건 맞지만 최강희 때는 아니었고, 홍명보 때는 홍명보의 아집이었다. 그렇지만 홍명보 최강희 때를 굳이 넣을 필요까지도 없을 정도로 정점에서의 플레이는 괜찮았다.[20] 박주영이 모나코에서 뛰던 당시에는 파리생제르망에 중동의 기름자본이 들어오기 전이었다.[21] 박주영이 아스날 시절 관련해서도 욕을 많이 먹는 것은 맞지만 그와 관련된 이유가 대부분이라고 볼 수는 없다.[22] 이 말은 페이스북 유저 비하 표현이기도 하다. 페이스북의 추천 버튼인 '좋아요'(영어로는 'Like') 버튼에 그려진 아이콘이 엄지를 치켜드는 것(따봉)이기 때문.[23] 사실 이는 상상플러스에서 네티즌 별명중 '축구스타 밥줘영'에서 나온 것이다.[24] Bubble Pop!의 가사 'Bubble Bubble Pop! Pop!'의 패러디.[25] 그렇다고해서 이걸 평가 절하할 필요는 없다. 전에 문서 작성에 세르비아는 2진 시차적응 등을 문제삼는 댓글이 있었으나 이런걸로 따지면 13년 스위스는 시합전날 입국했고 17년 콜롬비아는 3-4일전 입국해 더운데 사는놈들 추운데서 이겼다고 승리가 평가 절하될 이유는 없다.가나는 주전력은 빠졌지만 기안이나 월드컵 주전은 대부분 출전했다[26] 레바논이 그나마 최종예선까지는 왔지만 주전력이 약하고 결국 최종예선에서 하위권 팀이었다[27] 월드컵에서의 정성룡은 좀 억울한 바가 있지만.[28] 야구 드립을 잘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합법드립은 김동주 간통 사건으로 생긴 드립이다. 이 드립이 생겼을 당시 간통은 형법상 불법이었지만, 이때 사람들이 간통이 합법이 된 줄 오해하고 김동주한테 비아냥거린 것에서 합법드립이 시작됐다. 물론 현재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간통이 비범죄화되었다. 다만 이제는 간통을 저지르면 형사 처벌을 안 받는다는 거지 여전히 민사상 책임은 질 수 있다.[29] 합법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개념에 따라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어쨌건 국가에서는 박주영으로 인해 빈틈을 인지하고 바로 병역법을 개정하기는 했다.[30] 정말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는게 김도훈의 경우 오세아니아만 득점이 없는데 소속은 AFC지만 지리적으로는 오세아니아로 볼 수 있는 괌을 상대로 골을 기록한 적이 있다.[31] 2019년 최용수 감독의 발언에 의하면 후배들과 워낙 털없이 지내고 해서 아주 낙관적인 성격으로만 보이지만 실제로는 시크한 성격이라고 한다.[32] 첫 등장인 06버전에서 -9포텐, 07에서는 -8포텐[33] 정식 발매판에서는 볼 트래핑[34] K리그만 놓고보면 이동국의 스탯은 박주영이 비교하기가 힘들다. 그래서 그런지 피파시리즈에서는 이동국의 능력치가 그리 나쁘지 않다. 국대 레벨에서도 쓸만하고[35] 그러나 위닝에서는 얘기가 달라지는데 상당히 능력치가 편중되어 있다. 헤딩이나 몸싸움은 그럭저럭인데 연계 쪽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되었는지 슈팅력과 헤딩은 뛰어나나 전체적으로는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다. 반대로 박주영은 디펜스 골기퍼 스킬 빼고는 거의 모든 능력치가 70대 이상이다.[36] 사실 여기도 파고들어 보면 문제가 많은 곳이기는 하지만 최소한 서로간에 심한 욕은 안하는 분위기가 정착되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럭저럭 청정지대 소리는 들을 수 있을지도.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개소문닷컴에는 이것도 안 되는 지대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