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훈

 

祖承訓
(?~?)
1. 개요
2. 생애
3. 대중 매체
4. 기타


1. 개요


중국 명나라의 무장이며 임진왜란조선으로 파견된 장수. 생몰년 미상이지만 아들 조대수가 1579년생이므로 임진왜란 때는 40대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2. 생애


임진왜란 당시 조선에 파병 온 명나라의 장군. 직급은 명 요양(요동) 부총병이었다. 조선에서는 조 총병이라고 한 직급 높여 불렀다.
만력 10년(1582년) 요동부총병이 되었으며, 좌군도독에 오른다. 이후 몽고와 만주의 여러 부족에 대응하기 위해 심양에 주둔했다. 1584년 몽고인 300여기가 요서로 침입하자 조승훈은 이에 대응하여 수십명을 죽이는 공을 세웠다.
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조선은 명에 파병을 요청했고, 조승훈은 조선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주둔한 부대의 지휘관이었기 때문에 선발대로 파병된다.

“귀국은 중국에 있어서 순치(脣齒)의 관계에 있는 나라로서 운남(雲南)이나 섬서(陝西)와는 비교가 안 됩니다. 병마(兵馬)가 오래 머무는 동안 장수들이 좋은 사람 나쁜 사람 모두 한결같지 않았고, 이제 철수하여 돌아갈 때도 소란을 피우는 일이 없지 않을 것이니, 이상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선조 32년(1599년 기해 / 명 만력제(萬曆) 27년) 2월 9일 1번째 기사

선발대로 조선에 지원을 왔으나, 이 당시 명나라는 조선이 얼마나 심각한 상황인지 잘 모르고 있었으며 왜군이 얼마나 강한지도 잘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1] 그래서 왜군을 그저 왜구 정도로 생각했던 조승훈은 꼴랑 5천(혹은 기병 3천)의 군사로 평양성을 공격했으나 부장 사유를 포함해 절반이 넘는 명군이 전사하는 대패를 당하고 압록강을 넘어 본국으로 도주했다. 명나라는 이에 식겁해 이여송에게 5만 대군을 이끌고 조선을 구원하게 했다.
이후 대패했다고 짤리진 않고 다시 조선에 왔으며, 지위는 조승훈은 명의 조선 원병에서 북군이 중심이 된 좌우중군 중 우군의 부대장 격으로, 총병인 장세작 밑에 있었다. 송응창 밑에 이여송, 그 밑에 양호, 이여백, 장세작인 셈. 비슷한 급으로는 남군(왜구버마와 격돌) 출신으로 역시 부총병을 거쳐 서로 총병으로 승진한 유정이 있을 것이다.
이후 조승훈은 다시 평양성 공격에 참가해 공을 세우지만, 결국 우리에게 남은 이미지는 '파병 와서 깨진 장수'로 인식되는 정도.
요동 동령위(東令衛)에서 복무했기 때문에 자신이 조선과 한 집안 사람이라는 립서비스를 쳤다. 조선 쪽 사관은 이 말에 요동이 옛 고(구)려의 땅이었기 때문이라는 주석을 달았다.
대체로 아버지의 병역이 아들에 이어지는 명나라 관습 때문에 아들 조대수(祖大壽, 1579-1656)도 명나라 장수가 되었다. 이 조대수는 오삼계의 외삼촌이며 나중에 홍승주의 명나라군이 참패할 때 같이 청나라에 항복, 청나라의 중원 정복을 도왔다. 청나라에서 좌도독, 영록대부가 되었다.
그러니까 조승훈은 오삼계의 외할아버지가 되는 인물이다.

3. 대중 매체


임진록2에서는 기존 이미지와는 다르게 보병 근접형 장수들 중 최강으로 나온다. 다른 장수들이 모두 똑같은 피통에 공격력을 공유하고 있지만, 조승훈은 피통과 공격력이 훨씬 더 높다. 조선의 반격에서는 아이템 착용이 가능한데 몇 개만 끼워줘도 차원이 다를 정도.
1986년작 MBC 조선왕조 오백년 임진왜란에서는 평양성 전투에서 대패한 모든 책임을 조선 탓으로 돌린다. 그러다가 이여송에게 "패한 놈이 말 많다, 닥쳐라"는 욕이나 처먹는 찌질이로 나오며 퇴장했다.
역시 임진왜란을 다룬 불멸의 이순신에서도 등장. 배우는 대조영에서 대중상의 동생이었던 고돌발 역의 장순국 씨가 열연. 역사대로 조선군과 연합하여 평양성 수복에 나섰으나 막상 평양성에 가 보니 왜군이 성문을 활짝 열어놓고 자취를 감춘 상황. 누가 봐도 계략이였으나 조승훈은 "왜놈들이 천병의 기세에 겁이 나 모조리 도망쳤다"고 자뻑하며 그대로 성 안에 들어간다.
당연히 기습을 당해 탈탈 털리고 "퇴각하라!!"를 외치며 튀는데, 병력의 절반 이상을 말아먹은 것도 모자라 다이렉트로 압록강을 넘어 도망가는 어이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나레이션은 "조승훈이 명나라 조정한테 '조선군이 왜군에 투항해서 졌다'는 뻥카를 쳤다"고 확인 사살. 전투씬에서 왜군 엑스트라들이 조총을 들고 돌격해 20세기 총검술로 명군을 때려눕히는 장면은 덤.
또한 그가 선조에게 이순신에 대한 백성들의 칭송이 자자하다는말 한마디로 인해 선조가 본격적으로 이순신을 경계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징비록에서 역시 요동 부총병으로 등장. 평양성 전투에서 대패한 모든 책임을 조선 탓으로 돌리는 건 1986년 MBC 조선왕조 오백년의 임진왜란과 같다. 하지만 다시 이여송과 함께 조선으로 출전한다. KBS 불멸의 이순신에서 유정 역할을 한 손호균 씨가 열연.

4. 기타


우리나라에서는 똑같은 조씨랍시고 삼국지에 나오는 조운의 후손으로 알려진 듯 한데, '조' 한자를 보면 알겠지만 전혀 연관이 없는 사람들이다.
[1] 조선조차 허접한 군사 활동 때문에 심각성을 몰랐다. 조선이 명에게 평양성에 있는 왜군의 규모를 2천명 정도라고 알려주었다. 당연히 그 정보를 믿은 조승훈이 "5천명으로 함락할 수 있다"고 큰소리 치다가 처참히 깨진 거다. 당연히 명나라에서 '너님들 왜군 병력수를 왜 속이나요? 조승훈 말로는 2천명이 아니라던데? 너네들 진짜 왜군하고 손잡고 우리 나라 공격할 생각 아니겠지?' 라고 항의를 할 정도였고, 이 때문에 조선 측에서 '저희 쪽 첩보 활동으로는 왜군 병력 적다고 해서 그렇게 알려드렸는데...저희가 잘못 알았나봐요. 죄송해요.'라고 사과해야만 했다. 여담으로 이후에 평양성의 병력은 심유경이 일시 강화 협상을 맺고 난 뒤 고니시 유키나가에게 '곧 겨울이 오니 털모자를 선물해주겠다'는 전령을 보내 '털모자 15,000개가 필요하다'는 고니시의 답변으로 평양성 주둔 왜군 숫자를 대충 알아냈고, 이를 바탕으로 작전을 수립한 후 평양성을 함락시켰다. 이후 벽제관 전투 때도 왜군 3만과 교전을 벌여 명군이 처참히 깨지고 난 후 이여송은 정탐을 해서 한성 왜군 병력을 20만 정도로 예측했는데, 류성룡은 '적군 병력이 매우 적은데 왜 진격 안 하나염 징징' 소리를 할 정도였다. 이에 이여송은 "너네들은 사세를 알지도 못하면서 왜 시끄럽게 떠드냐"고 일갈할 정도. 확실히 이여송의 왜군 20만설은 오버이긴 하지만, 10만 이상이 운집했던 건 사실이고, 이 시기에 풍토병 때문에 명군 요동 기마대의 말 12,000필을 잃은 상태였던 데다, 고작 명군 5만명에 조선군 수천명으로 한성을 공격했다간 분명히 조명 연합군이 깨질 가능성이 높다. 이후 전란 내내 명군은 조선군이 제공하는 정보를 불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