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림동 성당
1. 소개
강원도 춘천시 죽림동에 위치한 천주교 춘천교구의 주교좌 성당이다. 정식 명칭은 천주교 춘천교구 주교좌 죽림동 성당이다. 성당 바로 옆에는 말딩회관(가톨릭회관)[1] 이 위치해 있으며 성당 뒤편으로는 한국 전쟁 당시 순교한 성직자 묘역이 자리잡고 있다.
2. 역사
2.1. 강원도 춘천 지역 신앙 전래
강원도 지역 가톨릭의 활동은 1800년대 초반부터 풍수원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상주 사제 없이 발전하여 오다가 제8대 조선대목구장 귀스타브 샤를 마리 뮈텔 주교가 1888년 서울에서 파견한 파리 외방전교회 르 메르(Le Merre, 李類斯) 신부가 주임으로 부임하면서, 풍수원이 본당으로 승격하였다.
풍수원 지역의 교세가 날로 늘어감에 따라 방인(한국인) 사제인 정규하(鄭圭夏) 아우구스티노 신부가 2대 풍수원 성당 주임으로 사목하던 1920년 죽림동의 전신인 곰실로 춘천 본당을 분할하였다.
춘천 본당의 모체가 되었던 풍수원 성당은 서울대목구로부터 춘천지목구(1939년 4월)로 분할되면서 춘천교구로 편입되었다가 1965년 원주교구가 춘천교구로부터 분리ㆍ독립해 나가면서 원주교구에 속해 있다.
2.2. 새 성당 건립
곰실 본당을 중심으로 한 신앙공동체는, 현재 죽림동 성당 아래 약사리 일대 집을 사서 1928년 5월부터 춘천 본당의 옛 성당으로 사용하여 왔다. 외국인으로는 처음으로 1938년에 춘천 본당 제 5대 주임으로 부임한 퀸란 토마스 신부가 인근 부지를 매입하여 1941년부터 새 성당을 짓기 위한 계획을 했지만, 일제 치하의 외국인 구금 및 연금으로 착공이 지연되었다. 해방 후에도 갖가지 어려움으로 인해 본격적인 착공은 1949년에 이루어졌다. 성당 벽의 라틴어 초석에 기공식이 1949년 4월 5일로 되어 있는 이유이다.
그러나 새 성전 건축 도중 한국전쟁의 발발과 퀸란 토마스 신부의 피랍, 그리고, 1951년 5월 유엔군의 반격 공습에 의한 일부 파손 등의 어려움을 겪었으며, 1951년 8월 제 13대 주임으로 부임한 커머포드 토마스 신부가 시작한 복구 작업은 미군과 교황청의 도움으로 1953년 대부분 마무리되었다. 그리고 다음 해인 1956년 6월 8일, 춘천교구와 죽림동 성당 주보 축일인 예수성심대축일에 새로운 모습을 갖춘 주교좌 성당 봉헌식이 치루어졌다.
문화재청 문화유산 정보에는
고 평가하고 있다.주 출입구 아치의 중앙에는 십자가 문양을 돋을새김 한 이맛돌(keystone)을 두어 웅장함을 더하는 등 건축적 완성도가 높으며, 우리나라 1950년대 석조 성당 건축의 모습을 잘 보여 준다.
2.3. 중창(重創) 및 성역화 작업
이어 1994년 12월 14일 춘천교구 첫 방인 주교로 착좌한 장익 십자가의 요한 주교는 2000년 대희년과 교구 설정 60주년을 앞두고 죽림동 본당 이정행 요한 주임 신부를 비롯한 많은 이들, 그리고 가톨릭 중진 미술 작가들의 적극적 협조와 참여에 힘입어, 1998년 4월부터 5달에 걸쳐 성당 안팎 공간의 형태는 역사적인 모습 그대로 보존하면서 순전히 우리나라 사람들만의 기량과 성의와 노력으로 전례 거행에도 합당하고 예술적으로도 흡족한 성당을 실현하는데 진력하여 9월 14일 십자가 현양 축일에 중창 축복식을 가졌다.
한편 죽림동 본당 설립 100주년(2020년)을 앞두고 말딩회관 내에 마련한 역사전시실 축복식을 2012년 11월 21일에 가졌다. 그리고 춘천교구장 김운회 루카 주교가 참석한 가운데 2013년 6월 14일 죽림동 성당 성역화 사업 기공식을 갖고 공사를 시작해 그해 12월 1일 축복식을 가졌다.
예수성심상(오광섭 다미아노 작)은 2014년 6월 1일 새로 제작한 것으로 높이 3.5m, 가로 3m의 청동 소재로 된 국내 최대 규모의 예수성심상이며, 시내 중심가를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성당 입구 언덕 위에 놓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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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기타사항
- 춘천교구는 장익 십자가의 요한 주교가 교구장으로 부임하기 전에는 아일랜드에서 진출해 온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사제들이 사목을 맡았다. 이들은 광주대교구와 춘천교구를 중심으로 활동했는데 일제 식민통치에 부정적이었다. 때문에 일제의 감시대상이 되었다. 태평양전쟁 말기에는 광주와 춘천지목구장의 지위를 뺏기고, 광주는 일본인 교구장이, 춘천은 노기남 바오로 주교가 대신하고, 사실상 연금상태에 놓였었다. 해방 후 활동을 재개했지만 한국전쟁으로 인해 성골롬반외방선교회 사제들과 수도자들은 북으로 끌려가고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이 옥사로 사망했다.
- 원래 죽림동 성당 주변에 한국전쟁 후 수녀들이 병원을 짓고 구호활동을 전개하였다. 수녀병원으로 불리던 성 골롬반 의원과 수녀원이 주변에 위치했으나 성당성역화 작업으로 지금은 허물어졌고, 주차장으로 사용중이다. 참고로 성골롬반수녀회가 활동한 광주대교구의 목포가톨릭병원 자리도 현재 목포 성 미카엘 대성당이 지어지고 있다.
- 죽림동 성당 주변은 춘천의 구 시가지로 성당 앞에는 2차선의 좁은 도로가 있었다. 그러나 2013년 경 도로확장 공사로 성당 입구 주변은 모습이 크게 변하였다.
- 춘천교구의 사제(주교,신부)가 선종할 경우 이곳에서 장례미사가 봉헌된다. 2020년에 선종한 6대 춘천교구장 장익 십자가의 요한 주교의 장례미사도 이곳에서 봉헌되었다.
[1] 성당과는 달리 법정행정구역은 죽림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