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북도청

 




'''충청북도청'''
忠淸北道廳
Chungcheongbuk-do Provincial Government


'''도청 소재지'''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상당로 21(문화동)
'''국가'''
[image] 대한민국
'''광역시도'''
[image] 충청북도
'''직원 수'''
1,157명[1]
'''예산'''
4조 1809억 8975만원(2018)
'''도지사'''
이시종 (3선)

'''부지사'''
김장회 (행정)
성일홍 (경제)
'''사이트'''
홈페이지
'''SNS'''
충북도청 공식 페이스북
충북도청 인스타그램
충북도청 공식 블로그
1. 개요
2. 위치
3. 역사
3.2. 충주에서 청주
3.3. 동헌 시절
3.4. 중앙공원 시절
3.5. 오늘날
4. 이전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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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충청북도도청.

2. 위치


현재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상당로 82 (문화동)에 있다. 본래 연못이었던 곳을 메꾼 것이라서 비좁은 도심지 내에서 (시청에 비해서는) 비교적 넓직한 부지를 차지하고 있다. 그래도 법령 기준에는 약간 미달해 공간을 물색중이다.# 북쪽에는 충청북도의회가 있다.
남쪽이 정문이지만 핵심 대로인 상당로가 서쪽으로 나있어서 그쪽 문으로 출입하는 게 더 편하다. 도로명주소도 서문을 기준으로 부여되어있다.
도청 정류장은 건너편 정류장이 서문 바로 건너편에 있고, 도청 쪽 정류장은 남쪽으로 길 건너서 좀 더 남쪽에 있다.
북부출장소제천시 남산로 10(동현동)에, 남부출장소는 옥천군 옥천읍 중앙로 73(삼양리)에 있다.

3. 역사


충청북도, 강원도, 전라북도광역시를 배출하지 못했기 때문에 도청도 이전하지 않아 꽤 역사가 깊은 편이다. 전주시전라북도청은 2005년에 신축하였고 춘천시강원도청1940년 전소하여 지금 쓰는 건물은 1957년에 지어졌기에 1937년에 지어진 충청북도청이 현재 도청으로 쓰이는 건물 중에서는[2] 제일 오래됐다고 볼 수 있다.
오래된 건물이니만큼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제55호이기도 하다.

3.1. 조선시대


본래 감영청주, 감사는 충주에 나뉘어있었으나 1602년 공주로 옮겼다.
1896년 충청도충청남도충청북도로 쪼개지면서[3] 충청북도에도 충주에 관청이 새로 마련되었다(순종 칙령 36호). 그와 동시에 '감영'(監營)이란 명칭 대신 '도관찰부'(道觀察府)라는 말을 자주 쓰게 되었다.[4]

3.2. 충주에서 청주


충청북도 도관찰부를 1908년 6월 5일 충주에서 청주로 이전했다(순종 칙령 30호).[5] 1923년 오오쿠마 슌포(大熊春峰)[6]가 쓴 청주연혁지(淸州沿革誌)[7] 17장: 관찰부의 이전(觀察府の移轉) 28쪽에서는 "때는 '''메이지 41년 6월 5일''', 그 날은 청주 시민의 잊어서는 안 될 기념일로 (중략) 자자손손 전해 특별히 '''청주 데이'''로서 영원히 기억해야만 하지 않을까 하고 절실히 권고하고 싶다."[원문](굵음 처리는 원문의 방점)라고 하고 있다(...). [8] 확실히 오늘날 청주시 성장의 기반이 된 결정적인 시기이기는 한데, 아쉽게도(?) 6월 5일이라는 날짜는 오늘날 청주 시민에게 잘 알려져있지 않다.
반대로 충주에서 '도청[9]을 빼앗기고 도시가 쇠락했다'라는 이야기가 꽤 있다. 근데 사실 충주에 도청이 있었던 건 12년밖에 되지 않는다.# 아마 이 도청 이전이 한강영남대로를 축으로 한 전통적인 교통로가 쇠락하고 경부선 축이 새로 부상하게 된 상징적인 사건이기에 그렇게 이야기하는 듯하다.[10]
일각에서는 이 도청 이전이 수탈을 위해서라고 주장하지만 교통이 편리한 곳에 행정 중심지를 두는 것은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아도 타당한 일이므로 그렇게 보긴 어렵다. 뒤의 의견서에서 경성부와의 교통을 언급하고 있는데, 관치 시절이니만큼 수도와의 왕래 편의성이 더욱 중요했을 것이다.

3.3. 동헌 시절


도 관찰사가 시도 관할하던 전통이 이때까지 있었는지는 몰라도 청주목에서 쓰던 청녕각(淸寧閣)[11][12]을 이어서 도청으로 쓴 듯싶다. 디지털청주문화대전 - 청주를 에두르며 방어하던 청주읍성 이 건물을 쓰던 시절 건물을 증축했던 도면이 국가기록원에 남아있다.#
[image]
오늘날 청주시청 제2청사(구 청원군청) 뒤에 있는데 청원군청과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는 것이 꽤 기묘하다. 콘크리트로 개조되었으며 청원군청 군청사의 일부로 사용하기도 했다. 개조 당시의 모습 아무리 봐도 문화재로 보존해두는 느낌은 아니었다. 콘크리트로 개조되어있던 것은 2007년 목조 양식으로 복원하였다.# 1982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09호로 지정되었다.
청녕각이라는 편액(扁額)[13]은 중앙공원의 병마절도사 영문으로 이동했다가 1988년 11월에 다시 옮겨왔다. 본래 동헌 건물이 청녕각인 걸 다들 잊어버리고 병마절도사 영문이 청녕각인 줄로 알고 있었다가 뒤늦게 동헌 건물이 청녕각이라는 사실이 다시 알려졌다. 충북inNEWS 이후 2007년 복원 과정에서 상량문(上樑文)[14]이 발견되면서(위 개조 당시의 모습 링크) 청녕각이라는 것이 다시금 확실해졌다.
동헌이 도청으로 쓰였다는 것은 '청녕각'이라는 이름으로 유추한 것이다. 위 기사에서도 보면, 앞서 이야기한 청주연혁지에서 청주로 관찰부를 옮기는 이야기를 하면서 "청주에 28칸 관아 건물이 있어서 옮겨도 청사가 부족하지는 않다"(37쪽)[15]라고 했는데 이는 마침 7*4 = 28칸인 청녕각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동헌 = 청녕각이라는 사실도 비교적 최근에 밝혀진 사실이어서 그런지 동헌 건물이 도청으로 쓰였다는 이야기는 웹에서 찾기가 어렵다. 만약 이것이 맞다면 1928년에 이전했을 때에는 약 200m 정도 남쪽으로 옮긴 것이 된다. 한편 아래 도청 본관 링크에서는 1908년 이전 직후부터 도청 청사가 중앙공원에 소재해있었다고 되어있어 차이가 난다.
150년 전에 시청으로 쓰였던 건물이 약 20년간 도청으로 쓰였고 오늘날까지 남아있으니 지방 도시로서는 꽤 잘 보존된 셈이다. 다만, 도청 주변을 이루고 있던 청주읍성은 1911년 철거되어 크게 훼손되었다.

3.4. 중앙공원 시절


1928년 운주헌 앞에 단층 건물을 지어 도청 건물로 쓰기도 했다.디지털청주문화대전 - 청주 충청북도청 본관 운주헌(運籌軒)은 오늘날 중앙공원에 있었다(위 청주읍성 링크).[16] 이 일대의 건물들은 본래 충청도 병마절도사가 쓰던 건물이었는데, 위 37쪽의 인용 원문에서는 그 글이 쓰여지기 1년 전인 1907년 (8월 1일)에 정미 7조약으로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어 오늘날의 중앙공원에 있는 병마절도사 건물들도 비어있으니 청사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내용도 들어있다. 애당초 청주로 도청을 옮길 때부터 이 부지와 건물들을 염두에 두고 있던 것.
아마 청녕각이라는 편액이 병마절도사 영문으로 간 것은 이 시기인 듯하다. 1911년 청주읍성을 철거하면서 조선총독부의 의도적인 문화 말살의 일환이라는 설도 있다(위 충북inNEWS 기사).
1937년 현 위치로 이전한 이후에는 병마절도사 영문(營門)만 남고 철거되었기에 지금은 모습을 찾기 어렵다.

3.5. 오늘날



'''대한민국의 국가등록문화재'''
54호

'''55호'''

56호
춘천 죽림동 주교좌성당
'''충청북도청 본관'''
대한통운 제천영업소

지금 쓰고 있는 건물은 1937년에 지어진 것이다. 본래 연못이었던 곳을 메워 지었다고 한다(위 도청 본관 링크). 본래 2층 건물이었으나 1959년 3층으로 증축했다.# 근래에는 서관에 한 층을 더 올리기도 했다.
동쪽에는 청주중앙초등학교(개교 당시엔 동정국민학교)[17]가 있었으나 2015년 이전하였고, 그 건물을 도청에서 냅다 인수해서 도의회로 전환 중이다. 2021년에 전환 완료 예정.

4. 이전 논의


청주시청 청사만큼은 아니지만 충북도청 역시 이전 관련 논의가 있다. 건물도 오래되기도 했고. 2018년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자유한국당 충청북도지사 후보 박경국이 도청 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도의회 공사를 잠시 멈추자고 주장했으나 낙선하였다. 구체적인 이전 위치를 밝힌 견해는 없었으나 서쪽으로 확장되는 청주시의 추세상 서쪽으로 이전할 가능성이 있다.[18] 그러나 청주시 동쪽이 밀리는 추세 속에서 그나마 행정 중심지라는 이점까지 잃으면 타격이 크기 때문에[19] 위치를 정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닐 듯하다.
다만 다른 도시로 이전하는 일은 청주시광역시가 되지 않고서는 일어나지 않을 것 같다. 여태껏 광역시 승격도 없었는데 선뜻 도청을 다른 도시에 내준 전례도 없었고, 1995년 지방자치제도가 실시된 이후부터는 충북 인구의 반이 청주 시민이니 그런 결정이 내려지기 더욱 어려워졌다. 청주가 광역시가 된다면 진천군/음성군에 있는 충북혁신도시# [20] 과거 도관찰부가 있던 충주시로 이전할 수도 있다. 다만 광역시가 되는 것 역시 충북 인구의 반이 청주 시민이라는 똑같은 이유로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1] 국가직 공무원 제외[2] 도청의 기능을 넘겨준 건물 중에서는 옛 전라남도청1930년에 지어진 등등 몇 개의 예가 있다. 여담으로 일제시대에 지어진 지방관청 중 제일 유명한 서울특별시청은 1926년 건립되었다.[3] 본래 좌도/우도의 구분이 있었고(도(행정구역) 참조) 특히 충청도는 그 경계가 현 남북도와 거의 일치하지만 이는 지역상의 구분일 뿐 관리가 각각 파견되지는 않았다.[4] 이후 1910년 일제시대가 되면서 도청으로 이름이 바뀌고 관찰사라는 이름도 '도장관'(道長官)으로 하였다가 1919년 오늘날의 '도지사'가 되었다.[5] 일성록에서도 해당 기사가 등장한다.[6] 위 기사에서는 이름 부분을 '쇼지'로 읽고 있으나 음독하여 しゅんぽう(슌포)가 맞는 듯하다. 심지어 어떤 기사에서는 '온보'라고 잘못 읽기도 했다.#[7] 국회도서관에 소장중이며 전자책으로도 제공중이다.#[원문] 時維れ'''明治四十一年六月五日'''此日は清州市民の忘れべからざる記念日で、苟も居を此地に構ふる者は子々孫々に傳へ、特に'''清州デー'''として永遠に記憶せねばならぬ事を痛切に勸告したい。[8] 여담으로 해당 일자는 환경의 날로 지정되어있다. 대개 청주(시민)의 날 하면 청주와 청원이 통합한 7월 1일로 기억하고 있다.[9] 사실 '도청'은 1910년에 개칭된 것이기에 충주에 '도청'이 있었던 적은 없기는 하다. 여기서는 '도관찰부'를 의미한다. 아래 비슷한 예로 언급되는 충남도청의 이전은 1931년이기에 충주와 달리 공주에는 '도청'이 있던 적이 있다.[10]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한 것도 이와 결부되어 자주 언급되나, 충남도청 이전은 1931년으로 시기상으로는 약 20년 뒤의 일이다. 그리고 공주에는 조선 후기 내내 감영이 위치해있었으므로 중심지 이동에 대한 충격이 훨씬 더 컸을 수 있다.[11] 본래 1656년(효종 7) 5월 24일 목사 심황이 초창했으며, 이후 1732년(영조 8) 목사 이병정이 중수했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청녕각). 영조(재위 1724∼1776) 때는 근민헌(近民軒)이라 했으며 고종 5년(1868)에는 이덕수(李德洙)가 다시 지으면서 청녕각이라 하였다.문화재청 - 청녕각[12] 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청주목사 이덕수가 1825년 개축했다고 되어있으나 1868년에 같은 이름의 사람이 또다시 등장한다. 40년간 같은 사람이 목사일 리는 없으니 동명이인이거나 어느 한 자료가 틀린 듯하다.[13] 건물의 이름을 나타내는 액자[14] 마룻대(용마루 밑에 서까래가 걸리게 된 도리, '상량')에 집을 새로 짓거나 고친 내력, 까닭과 공역(工役)한 날짜, 시간 등을 적은 글. 일반 가옥에서는 마루에서 올려다 보이지만 공공건물에서는 가려져 보이지 않게 한다.[15] 이전한 것이 1908년이니만큼 청주연혁지의 저자가 이렇게 말한 것이 아니라, 당시 서기관인 카미야 타쿠오(神谷卓男)가 조선통감부 내무차관(内務次官)에게 보낸 글을 인용한 것이다.[16] 상당산성 내의 관아 역시 이름이 '운주헌'(運籌軒)이었다고 하지만# 도청을 산성 안으로 이전할 리 없으니 같은 이름의 다른 건물인 듯하다. 도심지의 운주헌이 병마절도사 건물이었으니 군사 관련 시설로서 산하 청사 비슷한 것일지도 모르겠다.[17] 위키백과와 학교 홈페이지에서는 1946년에 개교했다고 했으나 1941년 총독부 직원이 파견된 문서가 있는 걸로 보아 일제시대에 개교한 듯하다.[18] 공식적으로 발표된 것인지는 불명이나, 청주 지웰시티 개발 당시 청주시청이 들어올 수도 있다면서 홍보한 적이 있다.[19] 가까운 사례로 이웃한 대전이 있다.[20] 근래에 도청 이전은 내포신도시, 남악신도시, 경상북도청신도시 등 신도시에 배치시키는 경향이 있으므로 그 경향성과도 잘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