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월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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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트남'''
중국어: 中越關係/中越关系 (Zhōngyuè Guānxi)
베트남어: Quan hệ Việt Trung (關係越中)
1. 개요
2. 역사적 관계
2.1. 21세기 이전
2.2. 21세기
3. 관련 문서


1. 개요


중국베트남의 관계.
중월관계는 여러 모로 역사적으로 한중관계, 이념적으로는 한일관계와 비슷하다. 서로 대립하지만 서로를 필요로 한다. 베트남 측도 서방의 인권-민주화 압력을 크게 받고 있기 때문에, 국민들간의 관계도 영 좋지 않고[1], 영토분쟁에서는 반중적인 스탠스이지만, 그 밖의 노선에서는 중국에 적극 협력하고 있다. AIIB일대일로, 그리고 서방각국의 인권압력에서 중국에 적극 협력하고 있다.

2. 역사적 관계



2.1. 21세기 이전


베트남은 수천년간 중국에 복속과 독립을 반복해 왔기 때문에 한무제의 남월 정벌과 쯩 자매의 봉기를 시작으로 필사적으로 투쟁하였기에 역사적으로 여러모로 사이가 나쁘지만(자세한 내용은 '''베트남사''' 참조), 1차 인도차이나 전쟁, 베트남 전쟁 시기에는 같은 사회주의 국가였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사이가 개선되기도 하였다. 많은 북베트남군 지휘관들이 중국에서 훈련을 받았고, 중국인민해방군과 중국 군사고문단이 북베트남을 도와 비공식적으로 참전하기도 하였다. 이때 전사한 중국군은 수천명에 이를 정도였다.
베트남의 국부로 추앙받는 호치민부터가 삼국지, 수호지를 즐겨 읽었다고할정도로 중국 문화와도 연관 깊었다 네이버캐스트 호치민 이렇듯 호치민이 살아있을 당시에는 중국과 베트남의 관계가 그럭저럭 괜찮은 편이였고, 1975년 베트남이 통일되면서 사회주의 국가로 많은 교류를 할 것처럼 보였다. 다만 그 호치민도 너무 중국에 붙으면 코 꿰인다고 경계는 하였다.
한편 남베트남중화민국과 우호 관계를 맺었으며, 중화민국은 월남전때 남베트남을 지원하고 미군을 위시한 연합군에 파병하러 했으나, '''남베트남이 막았다.'''[2] 이를 통해 베트남에서 반중 감정이 상당한 것을 볼 수 있다. 사실 이는 중공을 자극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통일 후에, 베트남은 남베트남에서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화교들을 탄압했고,[3]소련노선을 펴자 양국은 험악해지게 되었다. 베트남 전쟁시에도 북베트남 지휘부가 정말로 두려워했던 것은 북쪽으로 진격할 수 없는데다가 설사 쳐들어온다고 해도 베트남을 절대 집어삼킬 수 없는 미군보다는 역사적으로 베트남을 침공, 병합하여 1천여년 간 예가 지배하였으며 또다시 베트남에 쳐들어와서 20여년 간 통치한 끝에 쫓겨나가서까지 근현대까지 베트남의 종주국 노릇을 하던 중월관계에 비추어볼때 '''이후 중국이 세력이 커져서 중국군이 자신들을 도와준다는 명분으로 전면개입을 한 다음 자국 영토라고 우기면서 강제합병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니 흠좀무. 사실 역사적으로 중국이 베트남에게 한 역사들을 보면 이해 안되는 행동은 아니다.(...)
베트남이 친중국노선을 걷던 캄보디아를 침공하자 중국이 발끈하여 1979년에는 중월전쟁까지 벌어졌고, 이 전쟁은 베트남의 저항이 거센데다 소련의 압박을 의식한 중국의 일방적인 전쟁 포기로 끝났지만 그 이후에도 1990년대까지 계속 국경에서 산발적인 충돌이 일어났다. 일단 1991년에 두 나라 사이에 공식적인 국교가 수립되면서 본격적인 교류가 시작되었고, 이후 평화조약을 맺어서 육지의 국경은 잠정 확정되었지만 이걸 중국이 지켜준다는 보장은 절대 없으며,[4] 이제는 바다인 남사군도(중국 명칭, 월남명으로는 장사 군도)에서까지 충돌 가능성이 생겨난 상황. 베트남은 혼자 중국을 상대하기는 벅찼는지 '''이제는 옛 적국인 미국을 끌어들여 중국을 견제하려고 하고 있다.'''[5]

2.2. 21세기


2014년 5월에 베트남의 반중 시위로 베트남인과 중국인이 충돌하여 사망했다.연합뉴스,YTN, 뉴시스. 베트남에 거주하고 있던 중국인들이 본국이나 베트남 주변국으로 대피하고, 베트남 공안당국에서 수백명을 체포, 기소했다.# 한국에서도 한국에 거주하는 베트남인들이 반중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게다가 베트남에도 중국인 관광객이 늘어나면서 추태도 늘어나자 반발도 늘어나고 있다.# 거기에다 베트남에서는 중국인 관광객들의 노쇼 사태가 자꾸 일어나면서 베트남내 여행업계는 반발하고 있다.# 베트남 정부도 관광지에서 벌어지는 왜곡 등에 대해서도 단속하기 시작했다.#
2015년 11월부터는 시진핑 중국 주석베트남을 방문해 응우옌푸쫑 베트남 공산당 총비서와 남중국해 영유권 문제에 대해 평화적 합의를 하는 등 정치적 관계는 조금 앞섰지만 아직까지 민간 차원에서의 감정은 여전히 영 좋지 않은 상태다. 그리고 스플래틀리 제도에 로켓 발사대를 배치하는 등 중국의 위협에 대응하고 있다. 그리고 베트남은 남중국해에서 석유시추에 나섰다. 하지만 이에 반발한 중국의 위협 때문에 결국 석유시추는 철회했다. 그리고 베트남측은 중국 측에게 남중국해에서 군사훈련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2018년 3월 24일에 중국의 압력에 의해 베트남 정부는 남중국해에서 추진중이던 석유 시추 프로젝트를 잠시 중단시켰다.#
2015년 중국 열병식에도 베트남측이 참석했었다. 연합뉴스.
베트남 국방장관이 모택동 묘를 방문하기도 하였다.매일경제
퓨 리서치 센터의 2017년도 조사에 의하면 베트남인의 88%가 중국에 대해서 비우호적이라고 대답해 조사 대상국 반중 감정이 제일 강한 국가로 조사되었다. 중국 어선과 관공선이 베트남 연안에서 어업을 방해하고 석유시추를 방해하고 시설물을 잘라먹고 도망가는 일이 잦으니 감정이 좋을 수가 없다.
그런데 이렇게 반중이 강하지만 경제적으로는 꽤 교류를 하는지 블룸버그에 따르면 싱가포르, 대만에 이어 GDP가 중국과 가장 많이 관련된 나라로 꼽혔다. 뉴스
2018년 6월 6일에 베트남 정부가 알리페이의 사용을 금지한다고 밝히자 중국 측은 반발했다.# 그리고 베트남 내 SNS에서는 반중시위가 퍼진다는 소문이 확산되면서 주베트남 대한민국 대사관은 주의를 당부했다.# 거기에다 베트남에서는 중국의 경제특구토지임대기간에 대해 반중시위가 확산되고,# 베트남은 경제특구법안에 대해 연기했다.# 그리고 반중시위가 심각해지자 베트남 정부는 엄정대처를 하겠다고 밝혔다.#
2018년 8월 25일에 베트남에서 중드를 제공하던 베트남의 한 웹사이트가 남중국해 퀴즈로 중국을 자극했다고 로이터가 보도했다.#
베트남에서 반중 기류가 도는 가운데 한류가 인기를 끌자 일부 중국기업들이 한국기업인 척하며 짝퉁까지 파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그리고 미중간의 무역전쟁이 심해지면서 베트남 내에도 중국기업들이 진출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기업들중에는 베트남에서 생산된 중국제를 베트남제라고 허위표시하는 경우가 발생되자 베트남측에선 단속하고 있다.#
중국과 베트남 국방장관은 양국이 영유권을 다투는 남중국해의 평화를 유지하는데 공동 노력하기로 합의했다.#
미중간의 경제분쟁으로 상술했다시피 중국 기업들이 베트남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늘어났고, 또한 미국 정부의 관세를 피하기 위해 베트남 자회사를 활용해 수출하고 있다.# 중국의 베트남 직간접투자가 지난해에는 일본에 이어 4위를 기록했다.#
베트남에선 중국에게 맡겨 처음으로 건설하는 도시철도의 건설비가 배로 늘어나고 있지만, 시공은 더디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넷플릭스에서 방영된 미국드라마 마담 세크리터리에서 호이안을 중국의 랜드마크라고 표시하자 베트남 네티즌들이 반발했다.#
홍콩 보안법에 대해선 베트남측은 중국을 지지했다.# 사실 베트남 국민들이 중국을 싫어할 뿐, 베트남 정부는 원래부터 친중에 가까웠다. 베트남이 아무리 개방되었다고 해도 아직까지는 사회주의 일당독재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체제의 유지를 위해서라도 중국 공산당과의 연대는 필수불가결하며, 영토문제를 제외한 다른 정치적인 사안에 대해서는 중국과 같은 입장을 취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홍콩 문제의 경우, 비슷하게 자국 내의 인권 탄압이나 소수민족 문제도 있다보니, 중국 공산당 편을 들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당연히 미국을 비롯한 서방국가들이 좋게 보진 않을것이다.[6]
베트남측은 한국, 중국, 일본과 인적교류의 재개를 논의하고 있다.#
중국인들이 베트남으로 밀입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양국간의 갈등이 심해지면서 왕이 외교부장이 베트남을 제외한 아세안 국가들을 방문했다.#

3. 관련 문서


[1] 베트남인의 중국에 대한 인식도 나쁘지만, 중국인의 베트남인에 대한 인식도 극히 나쁘다. 1960년대 자국의 경제가 매우 안좋았을때도, 여러가지로 미국에 전쟁을 벌이던 북베트남을 원조해 주었는데, 통일되자마자 반중노선으로 선회했기 때문에, 배은망덕한 놈들이라는 평가가 주류.[2] 결국 소규모 파병하긴 했다.[3] 1980년대(통일 직후 말고) 한국에도 자주 찾아왔던 베트남의 보트피플은 대부분 화교였다. 한국에서는 이들을 반공선전의 소재로 이용했으나, 실제로는 공산주의보다는 민족갈등의 역할이 컸다. 베트남으로서는 중국계인 이들이 그런식으로 베트남을 떠나주면 손 안대고 코 푸는 격이고.[4] 모든 국제 조약은 힘의 논리에 따라 준수 여부가 좌우된다. 당장 정전협정만 해도 한국과 미국이 워낙 강하니까 북한이 전면적으로 무시하지 않고 파기하느니 뭐니 개소리 하거나 국지전 도발 깽판만 벌이는 선에서 끝내지 미국이 손떼고 한국이 극도로 약화되었다 해도 지킬 거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애당초 북한은 적화통일을 헌법 원칙으로 박아놓은 동네다.''' 물론 남한의 국력이 현재 시점에서 북한의 국력을 압도하는 이상 북한 주도의 적화통일은 현실성이 없다.[5] 사실 베트남은 미국을 싫어하지 않는다. 독립운동가 호치민이 미국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정도. 그러나 미국은 호치민이 공산주의자라는 이유로 배격하였고 이는 베트남 전쟁의 원인 중 하나였다. 미국이 스스로 베트남을 적으로 만든 셈. 하지만 당시 국제정세상 유럽냉전구도에서 주요한 역할인 프랑스의 지지를 잃지않기 위해선 프랑스의 식민지인 베트남 독립운동을 외면할 필요도 있었다. 이와 별개로 미국 내에서도 애초에 월남전의 만악의 근원이 누구임? 하고 불평하기도 한다.[6] 참고로 베트남은 국민들의 80%이상이 미국을 호의적으로 보는 동남아의 대표적인 친미국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