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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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전통적으로 쓰던 운반도구이다. 단어 형성법은 '(짐을) 지다'의 어간을 어근으로 한 '지-' + 도구 접미사 '-게'[1] 이다. 일반적인 전통가방의 개념 같지만 실재론 매우 다양히 쓰이던 만능 도구였다.
지게의 최초 사용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기록으로는 1690년 <역어유해>에 배협자(背狹子)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유물로는 무안 양장리 유적에서 지겟자루가 출토되었고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도 지게의 부품인 지게 발채가 무더기로 발굴되었다. 학계에서는 <위지 동이전>의 삼한조에 "나라 안에 공사가 있거나 관가에서 성을 쌓을 때는 용감하고 건장한 젊은이가 모두 등가죽을 뚫어 큰 새끼줄로 한 발(丈)이나 되는 나무를 꿰매고 온종일 외치며 일을 한다. 아파하지도 않으며 그것으로 일 잘하고 건장한 것으로 여긴다."는 기록을 지게를 묘사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2]
6.25당시에는 이 지게를 사용한 수송부대, '''지게부대'''가 존재했다. 영어 명칭은 '''A Frame Army''' 직역하면 'A자 골격의 부대'이다. 지게의 모습이 A프레임 배낭의 모습과 비슷하다 생각해서 지은 이름.[3][4] 한국전쟁 당시 주 임무는 '''수송'''. 주로 탄약, 식량, 식수를 고지로 보내주고 고지에서 '''부상자(!)''', '''전사자(!!!)'''를 내려 보냈다고 한다. 현 KSC의 임무도 현대화/기계화했을 뿐 수송과 후방지원 임무인 건 별반 다르진 않다
지금은 시골에서도 지게를 보기가 쉽지 않지만 6, 70년대만 해도 도시 지역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씨티 100이 보급되기 이전만 해도 도시 골목골목으로 물건을 나를 때 많이 사용되었는데, 당시의 지게꾼은 오늘날 퀵서비스의 조상 격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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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는 등산용품으로 지게배낭(프레임배낭)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으며, 미군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몸체는 주로 소나무로 만들었으며 처음부터 사용자의 체구에 맞게 제작했다고 한다.
몸체를 연결시켜주는 '세장'은 밤나무와 박달나무와 같은 단단한 나무를 사용하고, 몸체는 가지가 Y자형인 자연목 두 개를 마련하여[5] 사다리꼴 형태로 세운 다음 그 사이사이 3~4개의 세장을 끼우고 탕개로 죈 다음 사개를 맞추어 고정시켰다. 짚으로 멜빵을 만들어 세장과 목발에 위 아래로 멜빵을 걸어줌으로 지게를 등에 질 수 있는 구조. 무게는 보통 5~6kg 내외로 썼다고. 지게작대기는 지게를 내려놓으면 삼각대 구조가 되어 넘어지지 않게 세워둘 수 있고 이동시에는 지팡이가 되어 하중 지지를 돕는 역할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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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단순한 구조에 비해 '''그 위력은 상당하다'''. 써본 사람들은 알지만 신기하게도 제 힘의 몇 배를 끌어올릴 수 있다. 실제로 보부상들은 100kg정도 들고선 조선팔도를 누비고 다녔다. 비록 대단한 얼개는 아니지만 조상들의 수고를 꽤나 덜어준 건 어느 정도 사실인 셈.
당시엔 지게가 다양한 용도로 쓰였는데 단순 짐가방부터 배달부의 필수품이요 이동식 좌판이자 사람을 태우는 가마의 역할도 했다.[6] 위에서의 설명처럼 시신도 싣고 다녔다. 일본에서도 지게는 쓰였지만 보통 바구니를 애용했고, 이처럼 각양각색으로 써먹은 것은 조선이 유일했다. 거의 현실판 데스 스트랜딩.
공사장 같은 데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로 현대에서는 나무 대신 플라스틱 파이프나 쇠파이프로 만든 지게를 쓰기도 한다. 짐 싣는 부분이 옆에서 보아 L자 모양으로 생기고 각목에 합판을 덧대어 만든 지게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지 않는 소규모 건설 공사장에서 벽돌, 시멘트 부대 같은 것을 옮기는 데 쓴다. 이것도 그런 작업장에서 인력으로 짐을 옮기는 유일한 운반 수단이며, 별 기술 없이도 쓸 수 있기에 공사장에서 가장 낮은 일당을 받는 초급 단계의 일꾼이 쓰는 도구다. 그만큼 쓰기 쉽고 효과적이라는 얘기.
오늘날도 산속 암자들은 헬기라도 띄우지 않는 한 지게가 유일한 운반수단이다. 건축자재부터 냉장고까지 죄다 지게로 나른다.
이런 등 부분에 짐이 올라가는 표준형의 지게 외에 어깨 높이쯤부분에 가로로 긴 막대를 대고 그 양쪽 끝에 운반할 물건을 담는 용기를 하나씩 매단 지게도 있는데, 물을 넣으면 물지게, 인분(거름)을 넣으면 똥지게, 떡을 담은 상자를 매달면 떡지게(나무로 만들고 유리를 끼웠다. 주로 망개떡 장수가 애용하였다.)라고 불렀다. 80년대까지는 거리와 시장에서 꽤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표준형 지게와는 모양과 짐 싣는 위치가 좀 다른데, 일제 강점기때 일본에서 건너 온 일본 것(나무 통이 일본식이다.)과 20세기초부터 해방 후까지 쓰인 미국제 석유초롱의 양철통이 섞여 쓰인 것으로 보면 프레임 형상 자체는 전통 지게를 개조한 후 외국에서 도입된 통을 연결해 쓴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 하면 중국과 일본에서는 우리나라 지게모양이 아니라 긴 나무 막대기를 한 쪽 어깨에 메고 양 끝에 짐을 매달아 운반하는, 우리 지게에 비해 훨씬 비효율적인 짐 나르는 도구를 많이 썼기 때문. 이런 개조(?) 지게와 전통 지게의 가장 큰 차이는 지게 다리가 짧아서 지게작대기를 이용해 세워 놓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 것이든 지게라는 것이 거의 사라진 현재는 그 개조 지게의 기원과 쓰인 기간에 대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지게에 대한 논문이 나와 있기는 하다.)
조선에서 특히 지게가 대유행하게 된 것은 험악한 지형에 있다. 수레기술이 있긴 했지만 산지가 70%인 조선 입장에선 편한 바닷길을 애용했고 수레의 운용은 도시나 마을처럼 평탄한 곳에서나 주로 쓰였다. 산과 산을 넘고 수레로 건너기엔 까다로운데 징검다리로 건널만한 개울들을 건너야 했던 사람들 입장에선 본인의 발로 움직이는 것이 효율적이었고, 때문에 지게는 일상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고려장 관련 이야기로 할아버지를 버리려고 한 아버지가 아들의 재치로 뉘우친 '할아버지의 지게'가 유명하다. 스포츠 팬들은 노장이 저조한 성적을 내면 '지게 태워라'(ex. 지게뱅, 지게택)라고 하며, 반대로 대활약하면 가마 태우라는 표현을 쓴다.
미국 모 사이트#에 있는 1969년 한 주한미군의 목격담에 따르면, 부대에 누군가 침입하여 기름이 가득 찬 300파운드(약 136kg) 드럼통을 훔쳐간 것을 알고, 다수의 인원이 부대 펜스를 뚫고 트럭을 가져와서 가져간 걸로 판단하고 수색을 벌였지만, 알고 보니 지역 주민 한 명이 지게 위에 드럼통을 얹고서 경비병보다 빠른 속도로 언덕 위를 올라가고 있는 것을 목격, 하도 어이가 없어 그냥 보내줬다고 한다. 참고로 이 사람이 봤던 것 중에 가장 무거운 것을 운반했던 사람은 600파운드짜리 가마솥을 지게에 지고 절에 운반하던 노인이라고.
대학가에서는 A학점을 '지게'라고 부르는 일이 있는데, 이는 알파벳 A가 지게 모양과 유사하게 생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언가를 들기 좋게 만든 물건을 '지게○○'로 부르곤 한다. '지게차'가 그렇게 해서 생긴 말이며, 스타크래프트 2의 MULE[7] 도 한국어판에서 '지게로봇'으로 번역됐다.
戶라는 한자를 '지게 호'로 부르는 일이 많은데, 여기서 지게는 이 지게가 아니라 문의 일종을 뜻한다.
1. 개요
한국에서 전통적으로 쓰던 운반도구이다. 단어 형성법은 '(짐을) 지다'의 어간을 어근으로 한 '지-' + 도구 접미사 '-게'[1] 이다. 일반적인 전통가방의 개념 같지만 실재론 매우 다양히 쓰이던 만능 도구였다.
2. 역사
지게의 최초 사용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기록으로는 1690년 <역어유해>에 배협자(背狹子)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며, 유물로는 무안 양장리 유적에서 지겟자루가 출토되었고 부여 능산리 절터에서도 지게의 부품인 지게 발채가 무더기로 발굴되었다. 학계에서는 <위지 동이전>의 삼한조에 "나라 안에 공사가 있거나 관가에서 성을 쌓을 때는 용감하고 건장한 젊은이가 모두 등가죽을 뚫어 큰 새끼줄로 한 발(丈)이나 되는 나무를 꿰매고 온종일 외치며 일을 한다. 아파하지도 않으며 그것으로 일 잘하고 건장한 것으로 여긴다."는 기록을 지게를 묘사한 것으로 보기도 한다.[2]
6.25당시에는 이 지게를 사용한 수송부대, '''지게부대'''가 존재했다. 영어 명칭은 '''A Frame Army''' 직역하면 'A자 골격의 부대'이다. 지게의 모습이 A프레임 배낭의 모습과 비슷하다 생각해서 지은 이름.[3][4] 한국전쟁 당시 주 임무는 '''수송'''. 주로 탄약, 식량, 식수를 고지로 보내주고 고지에서 '''부상자(!)''', '''전사자(!!!)'''를 내려 보냈다고 한다. 현 KSC의 임무도 현대화/기계화했을 뿐 수송과 후방지원 임무인 건 별반 다르진 않다
지금은 시골에서도 지게를 보기가 쉽지 않지만 6, 70년대만 해도 도시 지역에서도 흔히 볼 수 있었다. 씨티 100이 보급되기 이전만 해도 도시 골목골목으로 물건을 나를 때 많이 사용되었는데, 당시의 지게꾼은 오늘날 퀵서비스의 조상 격이라 할 수 있다.
[image]
현대에는 등산용품으로 지게배낭(프레임배낭)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으며, 미군에서도 사용하고 있다.
3. 구조와 성능
몸체는 주로 소나무로 만들었으며 처음부터 사용자의 체구에 맞게 제작했다고 한다.
몸체를 연결시켜주는 '세장'은 밤나무와 박달나무와 같은 단단한 나무를 사용하고, 몸체는 가지가 Y자형인 자연목 두 개를 마련하여[5] 사다리꼴 형태로 세운 다음 그 사이사이 3~4개의 세장을 끼우고 탕개로 죈 다음 사개를 맞추어 고정시켰다. 짚으로 멜빵을 만들어 세장과 목발에 위 아래로 멜빵을 걸어줌으로 지게를 등에 질 수 있는 구조. 무게는 보통 5~6kg 내외로 썼다고. 지게작대기는 지게를 내려놓으면 삼각대 구조가 되어 넘어지지 않게 세워둘 수 있고 이동시에는 지팡이가 되어 하중 지지를 돕는 역할을 했다.
[image]
사진에서도 알 수 있듯이 단순한 구조에 비해 '''그 위력은 상당하다'''. 써본 사람들은 알지만 신기하게도 제 힘의 몇 배를 끌어올릴 수 있다. 실제로 보부상들은 100kg정도 들고선 조선팔도를 누비고 다녔다. 비록 대단한 얼개는 아니지만 조상들의 수고를 꽤나 덜어준 건 어느 정도 사실인 셈.
당시엔 지게가 다양한 용도로 쓰였는데 단순 짐가방부터 배달부의 필수품이요 이동식 좌판이자 사람을 태우는 가마의 역할도 했다.[6] 위에서의 설명처럼 시신도 싣고 다녔다. 일본에서도 지게는 쓰였지만 보통 바구니를 애용했고, 이처럼 각양각색으로 써먹은 것은 조선이 유일했다. 거의 현실판 데스 스트랜딩.
공사장 같은 데서 흔히 볼 수 있는 형태로 현대에서는 나무 대신 플라스틱 파이프나 쇠파이프로 만든 지게를 쓰기도 한다. 짐 싣는 부분이 옆에서 보아 L자 모양으로 생기고 각목에 합판을 덧대어 만든 지게는 엘리베이터를 설치하지 않는 소규모 건설 공사장에서 벽돌, 시멘트 부대 같은 것을 옮기는 데 쓴다. 이것도 그런 작업장에서 인력으로 짐을 옮기는 유일한 운반 수단이며, 별 기술 없이도 쓸 수 있기에 공사장에서 가장 낮은 일당을 받는 초급 단계의 일꾼이 쓰는 도구다. 그만큼 쓰기 쉽고 효과적이라는 얘기.
오늘날도 산속 암자들은 헬기라도 띄우지 않는 한 지게가 유일한 운반수단이다. 건축자재부터 냉장고까지 죄다 지게로 나른다.
이런 등 부분에 짐이 올라가는 표준형의 지게 외에 어깨 높이쯤부분에 가로로 긴 막대를 대고 그 양쪽 끝에 운반할 물건을 담는 용기를 하나씩 매단 지게도 있는데, 물을 넣으면 물지게, 인분(거름)을 넣으면 똥지게, 떡을 담은 상자를 매달면 떡지게(나무로 만들고 유리를 끼웠다. 주로 망개떡 장수가 애용하였다.)라고 불렀다. 80년대까지는 거리와 시장에서 꽤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 표준형 지게와는 모양과 짐 싣는 위치가 좀 다른데, 일제 강점기때 일본에서 건너 온 일본 것(나무 통이 일본식이다.)과 20세기초부터 해방 후까지 쓰인 미국제 석유초롱의 양철통이 섞여 쓰인 것으로 보면 프레임 형상 자체는 전통 지게를 개조한 후 외국에서 도입된 통을 연결해 쓴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 하면 중국과 일본에서는 우리나라 지게모양이 아니라 긴 나무 막대기를 한 쪽 어깨에 메고 양 끝에 짐을 매달아 운반하는, 우리 지게에 비해 훨씬 비효율적인 짐 나르는 도구를 많이 썼기 때문. 이런 개조(?) 지게와 전통 지게의 가장 큰 차이는 지게 다리가 짧아서 지게작대기를 이용해 세워 놓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느 나라 것이든 지게라는 것이 거의 사라진 현재는 그 개조 지게의 기원과 쓰인 기간에 대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지게에 대한 논문이 나와 있기는 하다.)
4. 기타
조선에서 특히 지게가 대유행하게 된 것은 험악한 지형에 있다. 수레기술이 있긴 했지만 산지가 70%인 조선 입장에선 편한 바닷길을 애용했고 수레의 운용은 도시나 마을처럼 평탄한 곳에서나 주로 쓰였다. 산과 산을 넘고 수레로 건너기엔 까다로운데 징검다리로 건널만한 개울들을 건너야 했던 사람들 입장에선 본인의 발로 움직이는 것이 효율적이었고, 때문에 지게는 일상 필수품으로 자리잡았다.
고려장 관련 이야기로 할아버지를 버리려고 한 아버지가 아들의 재치로 뉘우친 '할아버지의 지게'가 유명하다. 스포츠 팬들은 노장이 저조한 성적을 내면 '지게 태워라'(ex. 지게뱅, 지게택)라고 하며, 반대로 대활약하면 가마 태우라는 표현을 쓴다.
미국 모 사이트#에 있는 1969년 한 주한미군의 목격담에 따르면, 부대에 누군가 침입하여 기름이 가득 찬 300파운드(약 136kg) 드럼통을 훔쳐간 것을 알고, 다수의 인원이 부대 펜스를 뚫고 트럭을 가져와서 가져간 걸로 판단하고 수색을 벌였지만, 알고 보니 지역 주민 한 명이 지게 위에 드럼통을 얹고서 경비병보다 빠른 속도로 언덕 위를 올라가고 있는 것을 목격, 하도 어이가 없어 그냥 보내줬다고 한다. 참고로 이 사람이 봤던 것 중에 가장 무거운 것을 운반했던 사람은 600파운드짜리 가마솥을 지게에 지고 절에 운반하던 노인이라고.
대학가에서는 A학점을 '지게'라고 부르는 일이 있는데, 이는 알파벳 A가 지게 모양과 유사하게 생겼기 때문이라고 한다.
무언가를 들기 좋게 만든 물건을 '지게○○'로 부르곤 한다. '지게차'가 그렇게 해서 생긴 말이며, 스타크래프트 2의 MULE[7] 도 한국어판에서 '지게로봇'으로 번역됐다.
戶라는 한자를 '지게 호'로 부르는 일이 많은데, 여기서 지게는 이 지게가 아니라 문의 일종을 뜻한다.
[1] '집게' 등. '-개'와 기원은 같으나 '-개'와는 달리 오늘날에는 생산적이지 않다.[2] 참조자료:<한국의 농기구>,어문각[3] 이 부대의 후신이 미8군단 한국인지원단(KSC: Korean Service Corps)이다. 제50보병사단에 동원훈련 받으러 간 간부 예비군 중 소수가 간혹 여기서 훈련 받는 때가 생긴다. 훈련이래 봤자 미군기지 구경하는 거지만. 한국군 동원부대 간부들은 여기에 예비역 간부를 빼줘야 하는 걸 엄청 싫어한다카더라. 이 예비역들은 전쟁이 나면 '''미군 소속이 되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미제 장비 일체를 새것으로 지급받는다. 미군에 고용된 민간인 신분으로.''' 민간인이기 때문에 이때는 총도 안 준다고(...).[4] 최초의 현대식 A프레임은 1800년 후반 노르웨이에서 발명된 배낭이다. https://www.timetoast.com/timelines/the-origins-of-the-backpack [5] 그런데 크기와 굵기로 대칭을 이루는 두 개의 Y자 목재를 구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었다. 때문에 옛날 사람들은 산에서 지게감으로 적당하게 Y자로 가지가 뻗은 나무를 발견하면 그와 비슷한 꼴의 다른 나무를 발견할 때까지 산을 돌아다녀야 했다.[6] 지게위에 판을 깔고 그 위에 사람을 태웠다. 기록에는 사람이 넘어가지 말라고 새끼줄로 일종의 안전밸트를 만들어 묶었다고 한다.[7] Mobile Utility Lunar Excavator의 약자이나, 'mule'(노새)를 의식하고 지은 역두문자어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