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부상

 


褓負商
[image]
▲ 흔히 생각하는 보부상의 모습. 이미지 출처
1. 개요
2. 역사
2.1. 개항 이전
2.2. 개항 이후
2.3. 대한제국 시기 이후
3. 조직
4. 분류
4.1. 소규모
4.1.1. 보상 (褓商 : 봇짐장수)
4.1.2. 부상 (負商 : 등짐장수)
4.2. 전국단위
5. 영상
6. 창작물에서의 보부상
7. 관련 문서
8. 기타


1. 개요


보부상으로 많이 알려졌는데 부보상이라고도 한다.[1] 정확히는 등짐장수인 부상(負商)과 봇짐장수인 보상(褓商)을 아울러 일컫는 말이었다. 그 외에도 '장돌뱅이', '장돌림', '장꾼' 등 여러 가지로 불렸다.
조선시대 등 전통사회에서 장시를 중심으로 지게 등으로 물건들을 가지고 다니며 활동했던 전문적인 상인들이나, 이런 상인들이 속한 단체를 말한다.[2]

2. 역사



2.1. 개항 이전


조선 건국 당시 이성계를 도와 막대한 이성계에게 자금을 보태거나 정보책으로서 많은 도움을 주었다고 한다. 조선 정부는 이 대가로 보부상들에게 독점 판매 등의 여러 이권을 주었는데, 그래서 당시에 그들을 현대인들이 생각하듯 그냥 떠돌이 장사꾼으로 대했다가는 큰 코 다치기 일쑤였다고 한다. 즉,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것과 달리 보부상은 관허상인이다. 유통업 등록을 하는 것처럼 보부상들은 공식적으로 국가에 등록을 하고, 채장이라고 하는 신분증을 받고 활동했다. 당연히 국가에 세금 형태로 돈도 내었고, 국가에서 노역도 시켰다. 예를 들어서 임진왜란 시기 행주산성 전투의 경우 조선 정부는 보급을 보부상들을 동원했고, 보부상들이 직접 전투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런만큼 혜택도 있어서, 채장이 없으면 장시에서 장사를 하지 못하는 것은 기본이고, 객주를 이용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객주는 단순한 숙박업소가 아니라, 상품의 위탁 및 매개와 창고업무도 하였기 때문에 객주를 이용하지 못하는 것은 상당한 손해 요소였다. 조정도 반역 같은 중죄가 아닌 한 눈감아주는 일도 많았으며, 그런 특권에 기대 보부상들은 때론 독점 판매에 거슬리는 비보부상 장사꾼을 상대로 테러를 가하거나 죽인다든지 불을 지르는 일도 자행했다.[3] 국가의 비호 아래 활동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어용활동을 많이 하였는데, 동학농민운동때도 이들과 전투가 있었으며, 독립협회와 정치적으로 대립했던 황국협회를 만들기도 했다. 이때문에 원한을 많이 샀는지, 동학농민운동 당시 황토현에서 관군을 물리친 농민군이 향군은 도망가도록 놔뒀지만 감영병과 보부상만은 악착같이 따라가 죽였다는 말이 있다.[4]
온갖 병란이나 왜란같은 전쟁에서도 보부상이 용역으로 조선군 병량 및 군자금을 돕기도 하였다. 일제강점기를 전후로 하여, 친일파가 되기도 했지만, 반대로 갈라져서 의병에 자금을 보태주는 경우도 있었다. 조선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임에도 보부상에 대하여 다룬 드라마가 거의 없고, 혹 등장하여도 비중이 적었다. 역사 교과서에서 주로 왕이나 문무대신, 학자들을 다루다 보니 시청자들에게 보부상보다는 이들을 더욱 친숙하게 느낀 것이 크게 작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마차나 수레를 이용한 일반적인 행상인이 되지 않고 도보로 걸어다녔던 까닭은 한반도의 지형이 산지가 많고 도로가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마차나 수레가 갈 수 있는 지역이 한정되어 있었으며, 생산지와 소비지가 대규모로 발전하지 않았기 (어촌에서 농촌으로 팔러 가는 식으로) 때문으로 추정된다.[5] 이는 5일장으로 대표되는 조선 후기 장시의 발달을 이끌어내었다. 그러나 조선의 주요 상단들의 경우 국내 무역보다는 중국, 일본과의 무역에서 얻는 이익에 집중하였다. 또한 국제무역에서 획득한 이윤은 재투자로 이어지기보다 정치자금으로 흘러들어가기 일쑤였고, 그 결과 한양을 제외하고는 도시의 발달이 일어나기 어렵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다보니 정조 때 시전상인과 사상·난전의 갈등으로 대표되는 신해통공이 유독 강조되는 것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2.2. 개항 이후


보부상단이 본격적으로 주목받기 시작하는 시기는 개항 이후이다. 1866년 병인양요 이후 정부가 의병 모집에 관심을 기울이다가 보부상단 조직에 관심을 가져 보부청을 설치하여 이들을 관리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1883년 혜상공국의 설치로 이어졌는데, 갑신정변 때 혁신정강 14개조의 개혁안에 등장할 만큼 폐단이 컸던 듯 하다. 1885년 혜상공국이 폐지되고 상리국이 설치되며 부상은 좌단, 보상은 우단이라 불렸다. 이들은 정부의 후원을 받으며 동학농민운동 때 정부군과 함께 농민군 토벌에 앞장서기도 했다.

2.3. 대한제국 시기 이후


독립협회가 활동하던 시기에 황국협회를 결성해 독립협회와 대립했다. 이후 고종이 독립협회와 황국협회를 모두 해산하자 정부는 독립협회 해산의 보상으로 황국협회의 청원을 받아들여 상무회의소를 보부상 중심의 상무사로 변경하였다. 상무사는 관료가 고위직을 겸임하는 형태의 국가어용상단의 성격이라 할 수 있다. 이 상무사 중 제주에 있었던 대정상무사는 제주교안 시기 세금징수관과 결탁한 천주교 세력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일제 강점 이후 일제는 보부상 말살을 시도하여 전국의 보부상 단체는 거의 소멸되었다. 구한말 정치적 목적에 동원되다 보니 보부상단의 내적 발전보다는 외연적 확장에만 치우쳤고, 일제 자본에 밀려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3. 조직


보부상들은 오늘날의 상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엄격한 규율을 갖춘 집단이었다. 일각에서는 조선시대의 조폭이라 보기도 한다. #
사농공상에서 가장 말석을 차지하고 있고, 세상으로부터 천대를 받아 제대로 된 보호조차 받을 수 없었던 상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자신들끼리 뭉쳐야만 했고, 이를 위해 여러 엄격한 규율이 있었다.
소속이 다르더라도 같은 보부상[6]이 어려움에 처해있으면 항시 발벗고 나서야만 했고, 병에 걸린 동무가 있으면 일면식이 없는 이라도 병구완을 해야했으며 혹 상을 당하면 장례도 치뤄줘야만 했다. 아무리 바쁘고 장시가 열렸다고하더라도 행수의 지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수행해야 하며, 설혹 범죄에 연루되더라도 동료의 이름을 불어서는 안된다는 조항이 존재한다.
만약 행수나 윗사람의 정당한 지시에 따르지 않거나, 사전에 약조한 물건이 아닌 다른 것을 취급하거나, 도둑이나 사기, 겁간과 같은 범죄를 저지른 이는 정해진 법도에 따라 사형([7])을 내렸는데, 그 참혹함이 말할 수 없을 정도라고 여러 사서에서는 기록하고 있다.
특히, 보부상들이 자체적으로 형벌을 내릴 때는 육방관아의 관속들조차 형벌이 모두 끝나고나서야 개입할 수 있었으며, 이를 무시하고 형벌을 방해했다가는 관속들은 물론이고, 양반까지도 서슴지 않고 해코지를 해서 일반 백성들은 물론이고, 포졸이나 양반들까지도 자리를 피할 정도였다.
보부상은 대개 가족 없이 홀로 다니던 사람들이다. 그래서 일찍부터 상단을 조직하여 상부상조하며 상권을 확보하고자 했다. 보부상들에게 상단은 강한 단결력과 엄격한 규율을 바탕으로 한 절대적인 것이었다. 때로 상단 내에서 연락할 일이 있을 경우 사발통문(동학농민운동의 그것과 같다)이라는 독특한 연락방식을 활용하였다.

4. 분류



4.1. 소규모


'보상'과 '부상'으로 나뉜다.
보상과 부상은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이 없었으며 그들의 힘이 커지고 상권이 뚜렷이 구분되면서 별도의 조직을 갖추었다.

4.1.1. 보상 (褓商 : 봇짐장수)


상품을 보자기에 싸서 들거나 질빵에 걸머지고 다니며 장사했다.
주로 포, 면, 비단, 종이, 모시, 금, 은, 동, 인삼, 녹용, 수달피, 담비가죽, 갓 망건, 필묵 등 가볍고 작지만 값비싼 상품을 취급했다.
(걸어서 장사하는데 싸고 무거운 걸 취급할 수는 없다)
개항 이후엔 우산, 궐련초, 성냥, 옥양목, 광목, 사탕류 등 외국 상품도 판매했다.

4.1.2. 부상 (負商 : 등짐장수)


상품을 지게에 얹어 등에 짊어지고 다니며 장사했다.
생선, 소금, 나무그릇, 질그릇, 가마솥이나 무쇠로 만든 용기 등 무겁고 크지만 비교적 값싼 5가지 상품에 대한 전매특허권을 가지고 있었다.

4.2. 전국단위


전국단위로 활동한 대표적인 상인들은 지역에 따라 아래와 같이 나뉜다.
  • 경강상인 : 이쪽은 보통 서울(京)과 한강(江)을 거점으로 활동한 상인들이다. 서울로 들어오는 쌀을 전국 각지에서 조달하였다. 아무래도 수도권이다보니 정경유착이 심했다. 상행위보다는 쌰바쌰바의 비중이 높았다는 것.
  • 송상 : 이쪽은 개성(송악)을 거점으로 해서 상업 활동을 한 상인들을 말한다. 주로 인삼을 재배·판매하는 것으로 명성이 높았다.
  • 유상 : 평양(유경)을 거점으로 하던 상인들이다.
  • 내상 : 부산(동래)을 거점으로 하던 상인들이다. 일본과의 무역을 통해 부를 쌓았다.
  • 만상 : 이쪽은 일반 보부상들과는 달리, 의주(만부)에서 중국과의 비공식 무역을 주로 하던 보부상들이다. 즉, 국제상인들.[8]

5. 영상


물물교환을 기본으로 하는 원시 형태의 보부상이 나오는 영상이다. 자급자족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지 않는 곳에서, 문명세계의 물건을 전해주고, 전통 물건을 가져간다.
EBS 다큐, 인류 원형 탐험 - 울지 않는 여전사들 수단 다사나시족

21세기에도 실존하는 일본의 지게 배달꾼 '봇카'


6. 창작물에서의 보부상


게임에서는 보통 갑자기 불쑥 나타나서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얻을 수 없는 희귀한 아이템이나 효과가 좋은 아이템을 판매하는 NPC나 던전이나 사냥 도중 등장해 포션 등의 보급품을 판매하는 NPC로 나온다.
소설이나 드라마 등에서는 갑자기 나타나 말을 걸며 귀찮게 하거나 떠돌면서 방랑하는 모습이 중점적으로 그려진다.
  • 객주, 장사의 신 - 객주 2015 - 천봉삼
  • 게임 데스 스트랜딩포터는 일본의 보부상 봇카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 덴동어미화전가 - 규방 가사 덴동어미화전가 주인공인 덴동어미의 세 번째 남편인 울산 황 도령이 옹기를 파는 보부상이다.
  • 머털도사 -백팔요괴편- - 무기, 마기, 소비 아이템을 모두 파는 상인. 각각의 물건을 파는 상인(대장간, 무당, 주모)가 없는 마을이나, 몬스터가 안 나오는 구간에 등장한다. 후속작인 머털도사 2 -천년의 약속-에도 나오긴 하지만, 출연횟수가 별로 없고 , '국제상인'이라는 양복입은 외국인 상인이 거의 그 자리를 대신한다.
  • 메밀꽃 필 무렵 - 허생원, 조선달, 동이
  • 목계 장터 - 시적 화자[9]
  • 베니스의 개성상인 - 유승업
  • 상도 - 임상옥[10]
  • 소금장수 이야기 - 오씨
  • 아름다운 얼굴 - 나
  • 알라딘 - 보부상(디즈니 캐릭터)
  • 역마 - 체 장수 영감, 성기[11]
  • 육룡이 나르샤 - 적룡(육룡이 나르샤) 무명의 조직원으로 조직이 와해되자 본명(백달원)을 밝히고 보부상의 시초가 되어 때를 기다린다. 시리즈 후속작 샘이 깊은 물에서 한명회의 밀본과 충돌할 것으로 예상됨
  • 정읍사 - 남편
  • 천하제일상 거상 - 조선짐꾼
  • 렛츠고 시간탐험대/시즌3 - 출연자들을 괴롭히기 위한 것 마냥 고증을 해냈다(...)
  • 도타 2얼음폭군 스킨셋트인 "보부상" 셋트

7. 관련 문서



8. 기타


  • 계속해서 돌아다녀야 하는 직업적 특성상 역마살과 연관짓는 경우가 있다. 이를 메밀꽃 필 무렵 등의, 보부상이 주인공급인 많은 작품에서 이러한 연관성이 나타난다.

[1] 표준국어대사전에는 부보상과 보부상이 동의어로 올라 있으나, 한국전통상학회를 비롯한 학계에서는 부보상이 옳은 표현이라고 주장한다.#1, #2 참고로 위키백과에서도 부보상이란 제목을 사용한다.[2] 중세유럽의 길드나, 현대의 조합과 비슷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다.[3] 이를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작중 주인공 견자는 보부상을 건드리느니 새끼 데리고 있는 암곰을 건드리는 게 낫다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무슨 일에 대해 정보를 찾다가 우연히 보부상이랑 충돌했는데 여기서는 보부상들이 아예 칼뽑고 덤벼들기까지 한다! 이게 만화적 과장이 아니라 실제 보부상은 저처럼 조정 비호를 받다보니 무장도 하고 다녔으며 말이 상인이지 상당히 강한 칼잡이를 보부상으로 데려가서 경호를 서는 경우도 많았다. 민담에서 보부상을 산적이 털어버리자 관군이 출동할 것도 없이 보부상 스스로가 와서 산적들을 끔살시켰다고 할 정도로 힘이 있었다는 게 나올 정도.[4] 농민vs상인 구도는 전지구적인 현상이다. 생산자와 중간자는 밥그릇 제로썸 싸움을 하니까. 동학농민전쟁 자체도 반란을 일으킨 지방 농민vs진압하는 중앙정부+그에 결탁한 상인이다.[5] 다만 대보부상들의 경우 수운이나 우마차로 다량의 상품을 일시에 운반, 판매했다.[6] 채장(債帳:빌린 돈의 액수를 적는 장부)이 있는 이들만 같은 보부상으로 인정했다.[7] 공식적인 관청 또는 기관에서 집행하는 형벌이 아닌 사적 집단, 또는 개인으로서 내리는 벌. 즉 사적 제제다. 죽이는 형벌인 사형(刑)이 아니다.[8] 현대로 치면 국제보따리장수들을 생각하면 되겠다.[9] 정착하는 삶과 방물장수로서의 떠도는 삶 사이에서 갈등하는 모습이 형상화 되어 있다. 실제로 이 시를 지은 신경림은 2012년 6월 29일자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20대 때 삶에 대해 고뇌하면서 공사장이나 광산 등을 전전하다 방물장수들을 따라다니며 방랑했다고 밝혔다.[10] 실존인물이지만, 최인호의 이 소설을 통해 널리 알려졌다.[11] 작품 말미에 성기가 엿판을 맞추고 그와 동시에 팔 책과 잡동사니도 챙긴 후에 화개장터를 떠나게 되므로 엿장수 뿐만 아니라 보부상의 삶을 살게 되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