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청의정
1. 개요
昌德宮 淸漪亭
창덕궁 후원 옥류천 권역에 있는 정자이다. 창덕궁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초가지붕 건물이다.[1] 한국의 초가 정자 중 가장 오래되었다.#
정자 앞에 논이 있다. 여기서 벼를 심고, 수확 후에는 볏짚으로 정자의 지붕 이엉을 잇게 했는데 이는 백성들의 고단함을 몸소 느끼고, 또한 농사의 소중함을 백성들에게 일깨워주기 위함이었다.
2. 이름
‘청의(淸漪)’ 뜻은 ‘맑은(淸) 물결(漪)’이다. 옥류천 일대의 맑은 물을 따서 이름으로 지은 듯 하다. ‘청의’ 단어 자체는 《시경 - 위풍(魏風) · 벌단(伐檀)》에서 유래했다. #
3. 역사
헌종 때 지은 《궁궐지》에 따르면, 1636년(인조 14년)에 지었다. 그 책에는 정조의 시와 선조의 어필을 걸었다는 내용도 있다. 그런데 그 어필을 건 게 선조 때부터 남아있던 정자에 건 것인지, 아니면 나중에 새 건물을 짓고 선조의 어필을 가져다 건 것인지는 모른다. 아무튼 1636년에 고쳐 짓든 새로 짓든, 청의정 공사가 있었던 것은 확실한 듯 하다.# 이후 일제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도 살아남아 오늘에 이른다.
4. 구조
- 1층[2] 목조 건물로 북향(北向)이다. 칸 수는 정면 1칸, 측면 1칸으로 총 1칸이다. 옥류천의 물을 모아 만든 논 위에 돌로 섬을 만들고 그 위에 다시 장대석으로 기단을 2단 쌓은 뒤 건물을 올렸다. 논과 섬은 둘 다 네모나다.
- 건물 북쪽으로 출입할 수 있다. 정자가 섬에 있어서 드나들 수 있게 돌다리를 놓았다. 교각은 없고 작은 돌판 위에 올려놓은 돌 상판만 있다. 상판 북면의 가운데에는 구멍이 뚫려있다.
- 기둥과 주춧돌은 원형이다. 주춧돌에는 파련을 화려하게 조각해놓았다.
- 보통 1칸 짜리 정자들의 지붕은 사모지붕인데, 청의정 지붕은 다르다. 기둥 위에 도리를 8각으로 짜서 지붕을 8각으로 만든 뒤 짚을 올려 원형처럼 보이게 했다.## 지붕 한가운데는 솟아있다.
- 일반 궁궐 건물들과 다른 점이 많다. 위에 썼듯 초가지붕인 점도 그렇고, 건물의 부재들도 굉장히 얇다. 현판 역시 특이하다. 다른 전각처럼 걸지 않고 목판으로 만든 뒤 도리에 끼워 고정시켰다. 목판은 가운데에 글씨 틀이 있고 그 주변을 화려한 단청으로 칠한 형태이다. 글씨는 검은 바탕에 흰 글씨로, 글씨 틀은 주황색이다.
- 기둥 바깥 쪽에 주련을 걸었다. 주련에는 시를 적어놓았는데, 1957년에 작성한 《각궁주련조서》에 따르면 대한제국기 관료였던 동농 김가진이 썼다고 한다. 주련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僊露長凝瑤艸碧 (선로장응요초벽)
>신선의 이슬은 길이 요초(瑤艸)에 푸르게 맺혔고
>
>彩雲深護玉芝鮮 (채운심호옥지선)
>채색 구름은 깊이 옥지(玉芝)를 곱게 감쌌네.
>
>魚躍文波時撥剌 (어약문파시발랄)
>물고기는 물결 위에 뛰어 때로 첨벙거리고
>
>鶯留深樹久俳徊(앵류심수구배회)
>꾀꼬리는 짙은 나무에 들어 오래 서성거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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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의 이슬은 길이 요초(瑤艸)에 푸르게 맺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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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彩雲深護玉芝鮮 (채운심호옥지선)
>채색 구름은 깊이 옥지(玉芝)를 곱게 감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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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魚躍文波時撥剌 (어약문파시발랄)
>물고기는 물결 위에 뛰어 때로 첨벙거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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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鶯留深樹久俳徊(앵류심수구배회)
>꾀꼬리는 짙은 나무에 들어 오래 서성거리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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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여담
- 2006년부터 매년 봄과 가을에 문화재청과 농촌진흥청 관계자들, 일반인 지원자들이 이곳에서 모내기, 벼베기 행사를 한다. ## # 2020년에는 코로나 19 사태로 관련 부서 관계자들만 참여했다.
[1] 19세기 초에 제작한 《동궐도》를 보면 창덕궁과 창경궁에 초가지붕이 몇 채 있었다. 그러나 청의정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현재 없다.[2] 보통 전통 건축에선 단층이라고 표현한다.[3] 나머지는 태극정과 소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