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옥류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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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류천#


문화재청에서 제작한 옥류천 권역의 3D 입체 영상.
1. 개요
2. 물줄기
2.1. 창경궁의 금천?
3. 역사
4. 구조
5. 여담


1. 개요


昌德宮 玉流川
창덕궁 후원의 가장 안쪽 골짜기에 있는 시내이자 폭포이다.

2. 물줄기


옥류천을 흐르는 물은 북악산 응봉 자락에서 발원한 계곡물과 창덕궁 안에서 발원한 이다. 이 물은 창덕궁 동북쪽으로 빠져나가 성균관의 서쪽을 흐르는 흥덕동천으로 합류했다.#[1]

2.1. 창경궁의 금천?


창경궁의 금천 역시 이름이 옥류천(玉流川)이다. 이름이 같아 이 옥류천이 창경궁 옥류천과 같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둘은 완전히 다르다.# 창경궁 옥류천은 창덕궁 후원의 연경당 서쪽과# 부용지#, 관람지 권역#에서 발원하여 춘당지를 거쳐 창경궁 동남쪽으로 빠져나간다. 이후 계속 남쪽으로 흘러 종로 5, 6가동을 거쳐 지금의 예지동 광장시장 인근에서 청계천과 합류한다. 현재는 창경궁 경내를 제외한 전 구간을 복개해두었다.

3. 역사


조선 초, 중기에도 들이 휴식처로 사용한 듯 하나 확실한 기록은 없다. 지금의 모습은 1636년(인조 14년)에 조성한 것이다. 이후 마지막 임금 순종까지 이곳을 휴식 공간으로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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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궐도》의 옥류천 구역

4. 구조


  • 계곡이 흐르는 곳에 소요암(逍遙巖)이라는 큰 바위를 두었다. 소요암 위에 U자 형 홈을 파서 물길이 바위 한바퀴를 돌게 만든 다음, 물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바위를 수직으로 깎아 폭포처럼 물이 떨어지게 만들었다. 일종의 인공폭포이다. 이 물길을 이용해 임금이 신하들과 같이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하기도 했다. 유상곡수연은 술잔을 띄우고 마시며 술잔이 자기 앞에 오기 전에 를 짓는 놀이이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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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암#
  • 소요암에 인조가 옥류천(玉流川)이란 글을 써서 새겼다. 그리고 그 옆에 인조의 증손자 숙종이 오언절구시[3]를 새겼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비류삼천척(飛流三百尺)
>날아 흐르는 물이 300척이요
>
>요락구천래(遙落九天來)
>멀리 떨어지는 물은 구천에서 내리네
>
>간시백홍기(看時白虹起)
>볼 때 흰 무지개 일고
>
>번성만학뢰(翻成萬壑雷)
>골짜기마다 번개 소리 가득 하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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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류천 어정#

5. 여담


  • 1884년(고종 21년) 12월[4]에 일어난 갑신정변 당시 청나라 군인들이 창덕궁에 침입하자 고종은 옥류천을 거쳐 북묘[5]로 피신했다. 그때 고종을 모셨던 정변의 주역 홍영식박영교는 미처 궁을 빠져나가지 못하고 여기서 청나라 군인에게 살해당했다.



[1] 서반수천(西泮水川)로도 불렀다. 이 물은 흥인지문 안쪽에서 청계천과 만났다. 현재는 복개되었다.[2] 이 밖의 관련 유적으로는 경주신라시대에 유상곡수연을 즐겼던 유적 포석정이 있다.[3] 구 하나 당 글자 5개씩인 4줄의 한시(漢詩).[4] 음력 10월.[5] 관우사당. 혜화문 안쪽에 있었으며 창덕궁과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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