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덕궁 농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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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산정

문화재청에서 제작한 3D 입체 영상. 소요정, 취한정, 취규정, 청의정, 태극정과 같이 소개한다.
1. 개요
2. 이름
3. 역사
4. 구조


1. 개요


昌德宮 籠山亭
창덕궁 후원 옥류천 권역에 있는 건물이다.
이름은 정자이지만 사방이 트인 일반 정자들과 달리 마루온돌방이 있어서 사람이 묵을 수 있었다. 또한 부엌도 있어서 음식을 만들 수도 있었다.
이를 종합해보면, 이 쉬려고 만든 별당 혹은 옥류천 일대에서 가벼운 행사 등을 할 때 필요한 음식을 만드는 용도였던 듯 하다.

2. 이름


‘농산(籠山)’ 뜻은 ‘으로 싸여있다’이다. ‘농(籠)’은 직역하면 ‘대나무 바구니’, ‘같은 상자’를 말하는데 의미를 확장해서 ‘둘러싸다’는 뜻으로도 쓴다. 산 속에 둘러싸인 아름다운 경관을 건물의 이름으로 쓴 것이다.

3. 역사


창건 시기는 모른다. 다만, 1636년(인조 14년)에 지었다고도 한다.
공식 기록에 처음 나타난 때는 정조 때인 1792년(정조 16년) 3월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정조가 대보단에 참배하기 전에 여기서 여러 번 묵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1795년(정조 19년) 2월에는 현륭원 행차를 대비해 혜경궁 홍씨가마를 메는 예행 연습을 후원에서 한 뒤 수고한 신하들에게 여기서 음식을 대접했다.# [1]
순조는 여기서 관리 및 유생들의 학문을 시험하기도 했다. 입직한 음관들에게 를 짓게 하고[2]##, 성균관 유생의 응강[3]을 행했다.##
이후 큰 변화 없이 오늘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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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은 《동궐도》의 농산정(붉은 원 안), 오른쪽은 《조선고적도보》의 농산정

4. 구조


  • 1층[4] 목조 건물이다. 칸 수는 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총 5칸이다. 기단은 2단으로, 장대석으로 쌓았다. 기둥주춧돌은 사각이다.
  • 지붕은 맞배지붕, 처마는 홑처마로, 납도리집이다. 용마루와 내림마루는 기와로 쌓았으며, 용두, 잡상 등의 장식물은 올리지 않았다. 단청은 긋기단청[5]으로 칠했다.
  • 건물 앞면과 뒷면(동면과 서면)에는 쪽마루를 설치했다. 쪽마루를 받치는 기둥나무이다.
  • 남쪽부터 2칸이 대청, 2칸이 온돌방, 1칸이 부엌이다. 출입은 대청의 동쪽 면으로 할 수 있다. 온돌방과 대청 서쪽 면 하단에는 머름을 두었다.
  • 부엌의 겉면은 동, 서면이 다르다. 동면은 중인방을 두고 그 위에 을, 아래에 벽과 붉은 나무을 설치한 형태이다. 서면은 동쪽 면과 거의 비슷하나, 그 아래에 벽돌암석으로 쌓은 방화벽을 설치한 것이 다르다.
  • 양측면(남면과 북면) 하단에는 방화벽을 설치했다. 상단은 양쪽 면이 다르다. 남면은 이지만, 북면은 이다.
  • 온돌방 내부는 칸 구분 없이 트여있다. 대청천장은 서까래가 보이는 연등천장이다.
  • 일제강점기에 만든 《조선고적도보》를 보면, 동면에 현판이 걸려있었다. 현재는 없다.
  • 동궐도》에는, 농산정 남쪽에 취병[6]을 두르고, 취병 가운데에 아치 문을 설치한 모습이 나온다. 현재 취병과 문은 모두 사라졌다.

[1] 창덕궁 후원에서 옥류천 일대를 가려면 높은 언덕을 올라가야한다.[2] 이를 응제(應製)라고 한다.[3] 應講. 강경과(講經科)에 응(應)하는 것. 강경과는 과거에서 외운 경서를 암송시킨 후 등락 점수를 매기는 시험이다.[4] 보통 전통 건축에선 단층이라고 표현한다.[5] 가칠단청 위에 선만 그어 마무리한 단청이다.[6] 翠屛. 나무로 뼈대를 세운 뒤 뼈대 사이마다 키 작은 나무나 덩굴 식물을 심어 자라게 하는 형태의 담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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