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리안(포털사이트)
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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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로그에서 서비스했던 VT 기반 PC 통신 서비스이다. 맨 처음에는 비디오텍스 서비스였고, 전자사서함 기능(BBS)은 당시 데이콤이 운영하던 전자사서함인 PC서브와 1992년에 통합하면서 추가된다. 후에 GUI 타입의 서비스도 지원한다.
2. 역사
2.1. 전자사서함 통합 이전
1985년, 한국데이타통신이 대한민국 최초의 비디오텍스[1] 서비스를 시험적으로 실시했다. 당시 새로 시작하는 비디오텍스 서비스에 대한 설명회를 열고 이 서비스를 '천리안'이라는 가칭으로 불렀는데#, 이듬해에 이 이름이 정식 이름으로 채택됐다.# 이 비디오텍스 서비스는 1986 서울 아시안 게임이 진행될 때 공항, 호텔 등에 설치된 단말기를 통해 외국인들에게 관광정보를 제공하는데 사용했다.#
1987년에는 '천리안II'로 서비스의 이름을 바꾼 후 제주도, 부산해운대 등의 관광지에서 한시적으로 무료로 관광버스 시간을 제공하는 등# 시험운용을 계속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천리안의 기능을 다양화하는 등# 본격적인 서비스를 위한 준비에 들어간다.
1989년부터는 천리안 사용을 위한 단말기의 보급을 시작했으며# 그 다음 해에는 천리안의 전국서비스를 공식적으로 시작하는 등# 천리안이 일반 대중들에게 퍼지기 시작한다. 1989년에서 1991년 사이에 천리안을 통해 제공하는 정보의 종류도 계속 늘어가 1991년 8월 경[2] 에는 뉴스, 날씨, 경제, 기술, 규격, 사회, 건강, 물건 주문, 문화 등 매우 다양한 분야의 정보를 제공하기 시작한다. 당시 언론에서는 컴퓨터를 통해 정보를 받는다는 신개념 서비스에 대해서 정보화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는 등 대단한 일이 곧 펼쳐질 것처럼 표현했지만, 비싼 단말기와 통신료, 열악한 인프라 등의 이유로 실제로 서비스를 제공받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1991년 8월 말에서야 천리안II에 가입한 사람이 1만 명을 돌파했으니(...),# 이 기간에 천리안을 사용한 사람은 대기업과 같은 법'''"인"'''말고는 없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한마디로 '''사무용 서비스'''에 가까웠다는 것이다.
1992년에도 데이콤은 팩스, 과외 등 계속 다양한 기능을 추가했다. 1992년 12월에는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천리안을 당시 한국데이타통신주식회사에서 운영 중이던 전자사서함(BBS) 서비스 'PC 서브'와 통합해서 'PC통신 천리안'의 모습을 갖춘다.#
2.2. 전자사서함 통합 이후
1993년 10월에는 당시 하이텔의 운영회사인 한국PC통신과 천리안의 운영회사인 데이콤(현 LG U+)이 이용자의 통신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통신망을 제공하는 회사와 달라도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협의를 맺는다. 이전에는 한국통신의 통신망으로는 천리안을 사용할 수 없었지만, 이 협의 이후에는 그게 가능해졌다는 거다.# 90년대 초반까지 PC통신은 일반 대중에게 널리 보급되지는 못했지만 컴퓨터로 민원 처리 서비스를 처리하고 PC통신 이용자들이 방송 프로그램 제작에도 참여하는 등 활용 분야는 넓어져갔다.
90년대 중반부터는 고속전용망[3] 이 갖춰지고 컴퓨터의 보급도 늘어나는 등 PC통신이 퍼질 수 있는 환경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천리안 역시 본격적으로 이용자 수가 불어나기 시작한다. 1994년 10월 경에 천리안은 유료 이용자 수가 20만 명을 돌파했고, 천리안을 통해서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게 되는 등 제공하는 서비스도 계속 늘어갔다. 이 시기에 천리안이 해외로 진출하기도 했다. 1993년 2월에 미국에 진출했고, 이후 일본, 호주, 캐나다 등 다양한 국가에 진출해 주로 해외의 교포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했다.#
9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면서 PC 통신은 이용자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 전성기에 들어서게 되고, 천리안 역시 1997년 12월에 가입자 수가 100만 명을 돌파하는 등 대한민국 국민의 상당수가 사용하는 PC통신 서비스가 된다. 이 시기부터 천리안은 막 뜨기 시작하는 월드 와이드 웹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1997년 9월부터 웹을 기반으로 한 유료 서비스 시범 제공을 시작하고# '천리안 98(1998년 개발)', '천리안 2000(1999년 개발)'[4] 등 천리안의 PC통신 서비스와 웹 서비스를 모두 실행할 수 있는 웹브라우저를 무료로 CD에 담아 배달해주는 등 웹 서비스에도 나름 신경을 쓰기 시작한다.#1#2'천리안 2000'의 실행화면로그인 음악 1997년까지는 1등 인터넷 포털 및 검색엔진이었던 심마니를 1998년에 인수해 자회사로 둔 것도 이와 관련이 있다.#
2.3. 몰락
이렇게 웹 서비스에 신경을 쓰기는 했지만 천리안은 당시의 주요 PC통신 서비스 업체들과 같이 1999년 즈음부터 인터넷 포털에 의해 서서히 주류의 위치에서 밀려나기 시작한다. 90년대 후반부터 웹을 기반으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인터넷 포털들은 무료 이메일 등 다양한 무료 서비스를 내세우며 이용자를 끌어모았지만 PC통신 업계는 월 1만원 정도의 정액제 요금으로부터 오는 수익을 버리지 못하고 유료 서비스를 고집한 것이 상황이 이렇게 흘러간 주요 원인 중 하나이다. 그나마 초기에는 PC통신과 웹 서비스 사이에 제공하는 서비스가 각각 달랐지만, 두 서비스 사이의 차이가 점차적으로 희미해지면서 유료 서비스를 고집하던 천리안은 매우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 거기에 1999년부터 ADSL로 대표되는 멀티미디어 콘텐츠를 보급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초고속인터넷'''이 보급되기 시작하며 PC통신 업계는 급속한 유료 이용자 수 감소로 인해 위기에 처하게 된다. 결국 천리안은 2000년 6월에 포털과의 전쟁을 선언하며 동일한 날짜에 인터넷 포털 사업에 진출할 것을 선언한다. 이후 당시 신인이던 유지태를 모델으로 기용하여 대대적인 광고를 진행하는 한편 검색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당시 세계적인 검색 결과 제공 업체였던 잉크토미로부터 검색 결과를 사오기도 했고# 하나로통신과 제휴하여 하나로통신의 초고속인터넷을 이용하는 사람은 천리안을 사용할 때 추가 비용을 내지 않아도 되게 하는 등# 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한 시도를 했다.
하지만 인터넷 포털 사업에 진출한 후에도 천리안은 유료 요금제를 버리지 못했다.[5] 이메일 서비스를 유료로 제공하는 대신 용량을 무제한으로 늘리고 1:1 화상 전화를 제공하는 메신저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의 차별화를 지속적으로 시도했지만 별 반향은 일으키지 못했고, 인터넷 포털계의 후발주자여서 안 그래도 이용자 수가 적었던 천리안은 2000년 이후 이미 선점하고 있는 포털에 밀려 점유율이 계속 하락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런 와중에 경영 상 변화로 인해 2002년 11월에 천리안(인터넷 포털)-심마니(검색위주 포털)-고인돌스(군소 게임포털)가 합쳐져 그동안 데이콤의 사업부였던 천리안은 버림받아 '데이콤 MI'라는 회사가 운영하게 된다.
이후 데이콤 MI는 2004년에 LG텔레콤과 제휴하여 무선 콘텐츠 시장에 진출한다. 그래서 2005년에 LG 'ez-i'로 접속이 가능한 모바일 천리안 서비스를 열고 2009년에 한국형 트위터라는 이름으로 휴대전화를 이용한 마이크로 블로그 서비스를 실시하는 등 무선 콘텐츠 사업을 하긴 했으나 당시 무선 콘텐츠 사업의 상태가 상태인지라(...) 별 관심을 받지 못했다. 이후 LG텔레콤은 데이콤MI의 주식을 꾸준히 사들여 데이콤MI은 LG텔레콤의 자회사가 된다.# 데이콤MI는 2012년에 미디어로그로 사명을 바꿨고, 현재 포털 서비스보다는 콘텐츠 제공 사업에 집중하고 있다.
3. 전성기 시절의 이모저모
VT모드 시절은 ATDT 01420[6] , '''01421'''[7] 웹화시기 초기인 90년대 후반에는 도메인으로 http://www.chollian.net 을 사용했다가 2000년대 부터는 http://www.chol.com 으로 변경했다.
3.1. 빠른만큼 비싼 요금
당시 시대를 함께했던 케텔(=하이텔), 나우누리에 비해 압도적으로 비싼 시간제 요금을 사용했었으나, 비싼 요금만큼 당시 접속 인프라 시설 투자에 적극적이어서 01421 고속 전용망을 일찌감치 개설하여 접속 속도와 안정성 만큼은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라지만 일부 지방에서는 여전히 느려터지고 자주 끊기는 건 매한가지였기 때문에 그래서 불리던 별명이 일명 '''근시안'''(...).
당시 이 PC 통신 3강의 이용자 성향을 간단히 요악하면 '''하이텔은 늙었고, 나우누리는 철없고, 천리안은 돈 많다'''라는 이야기를 할 정도로 눈이 튀어나올 만큼 비싼 요금을 자랑했다. 안 그래도 PC통신을 장시간 이용할려면 전화요금을 몇만원씩 내야하는것은 기본이었던 시절인데 하이텔이나 나우누리는 그래도 기본 이용요금을 정액제로 책정하는 최후의 양심(?)은 있었지만 , 천리안은 그런것이 없었고, 덕택에 전화요금+천리안 기본정보 이용요금+정보이용료으로 수십만원 넘게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인터넷이 느려터지고 전화접속과 ISDN(!)밖에 없던 90년대 초중반 시절 궁극의 인터넷 돈발라때리기(...)는 01421 전용망 다이얼업 + 천리안 텔넷접속 + 하이텔 접속 or Dwinsock 기동 후 넷스케이프 켜고 인터넷 하기(...)[8]
그나마 나름의 노하우(?)와 정보교류를 통해 이용요금을 아끼는 방법을 알았던 올드비들은 그래도 버틸만했지만 멋모르고 천리안에 가입했던 뉴비들은 엿을 먹는 일이 위낙에 비일비재했고, 그 덕택에 '''부르주아 통신'''이라는 별칭도 있었을 정도였다. 아닌 게 아니라 멋모르고 천리안을 이용했다가 전화비가 '''한달 최저임금 이상씩으로 나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가장 악질이었던것은 보관함에 이메일이나 프로그램을 저장하면 보관료가 나왔다는 것인데 이게 상당히 악명이 높았다. 단순히 하루에 9원씩 나오는 것이라면 그려러니 했지만 문제는 '''1000자당 9원의 요금을 받아챙겼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멋모르고 보관함에 게임 자료를 모두 보관했다가 보관료만 수십만원이 넘게 넘게 나와서 PC통신을 끊은 뉴비들이 상당했다고... 아이러니하게도 이토록 비싼 요금에도 첫 흑자를 본것은 1996년이 최초이며[9] 이익을 낸것이 5년을 채 넘기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최초에는 분당 15원, 정보에 따라서 분당 50원~200원씩 받기도 했다. 그나마 좀 사용자가 늘고 하이텔과의 경쟁이 심해지자 10시간 이용에 9000원 이후에 추가요금이 가산, 이 요금은 업로드 시에도 적용된다. 단 추후에 나우누리, 유니텔 등 후발주자와의 경쟁에서 밀리는 듯하자 조금 더 관대한 30시간 기본형 요금제를 적용하고, 막판에는 타사들처럼 정액제로 전환했다.[10] 정액제로 전환한 이후에는 천리안에 얼마나 오래 접속하나를 주제로 하는 동호회까지 생기기도 했다.
3.2. 유명 동호회와 그 특징
이용자 수로 계산하면 하이텔과 더불어 2강에 속하나, 주 사용자층의 덕력(...)이 그다지 높지도 않았고(되려 이쪽은 나우누리 쪽이 강세였다), 각 동호회 간의 커뮤니케이션도 그다지 활발한 편은 아니었던 듯. 데이콤 측에서도 동호회간 행사에 대한 별다른 지원 없이 그럭저럭 서비스를 운영하였다.
나우누리에 나모모, 하이텔에 개오동, 넷츠고에 네오동이 있다면 천리안에는 네모동과 시뮬레이션 게임 동호회가 있었다. 천리안 게임동이 따로 존재하긴 했지만 이상하게 별로 활동이 활발하진 못했다. 그에 비해 공개자료실 게임(PDSGM)이 매우 활발했는데 현재 디시와 비견될 정도로 수준이 낮았기 때문에 천리안 내에서 멸시받았다지만 당시 각 게임 장르, 타이틀별로 세분화한 게시판을 제공하는 곳은 여기밖에 없었다. 그리고, 고정팬층이 많은 게임이나 히트작 같은 경우 항상 상주인원이 있었기 때문에 질문에 대한 답변도 빠른 등 장점이 없지는 않았다.
네모동은 네트워크 & 모뎀플레이 동호회의 준말로서 주로 멀티플레이 게임에 관해 다루며 사용자들끼리 직접 모뎀플레이를 즐기는 일이 활발했다. 하지만 스타크래프트가 나오면서 모플보다는 배틀넷을 주로 하게 되었고 나중에는 유저들이 리니지 같은 온라인 게임 쪽으로 옳겨가면서 조용히 사라졌다.
지금까지 남아있는 한국 세가팬 커뮤니티 사이트인 세가가가닷넷도 이곳의 세가 동호회가 웹사이트 시대까지 이어진 연혁을 자랑했지만, 2016년에 웹사이트 운영이 종료되었다. 천리안 시절까지 포함한다면 햇수로 딱 20년이 운영되었던 셈이다.
또한 당시 리즈시절이었던 투니버스에서도 3대 PC통신중 유일하게 이곳에 공식 포럼을 열었던 적이 있다. 그 이름하여 투니애니해피. 덧붙이자면 1997년도 즈음에 투니버스 오픈 이벤트가 있었고 당시 초딩...들을 상대로 이벤트를 했던 적이 있다. 지금 주니버 같은 어린이천리안이라는 초딩대상의 천리안 서비스에서 투니버스 공식 페이지를 운영했었고 가끔 이벤트 형식으로 초딩들의 글 뻘글(...)을 모아 어린이천리안 정기 소식지에 싣어 주기도 했다. 왜 투니버스 공식포럼이 천리안에 있었는지 1999년 이전까지는 동양그룹이 당시 데이콤의 최대주주였다는것으로 어느정도 설명이 가능할듯 싶다.
시뮬레이션 동호회는 RPG나 어드벤처가 아닌 시뮬레이션 게임만 전문적으로 다루었는데 특히 비행시뮬레이션 팬들이 많았다. 게시판의 글도 수준이 높은 편이었지만 이 동호회의 진정한 가치는 자료실에 정품 고전게임이 많이 올라왔던 것이다. 조이 SF의 운영자인 표도기가 이 동호회 출신이다. 그리고 시뮬레이션 동호회에 밀리터리 매니아들이 몰려들자 결국 밀리터리 동호회가 분리되었다.[11]
이 중에도 한국의 1세대 온라인 진보진영, 즉 '아고리언'의 원조격이라 할 수 있는 진보/운동권 계열 동아리도 있었는데, 천리안 내의 진보계열 학술동아리 '현대철학동호회(이하 현철동)'가 사노맹 등 사회주의 계열 단체들의 선언문들을 올렸다는 이유로 경찰이 국가보안법 혐의를 적용해 회원들을 구속시키고 게시판을 이틀간 폐쇄조치시켰다. 이 사건은 표현의 자유와 보안법에 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으며, 사이버 공간의 언론 자유와 이에 대한 정부의 감시/감찰, PC통신사의 권한 범위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 사건이 되었다. 당시 기사. 또 1994년에는 한 회원이 <공산당 선언>, <붉은 산 검은 피> 등의 사회주의 계열 서적들의 내용을 올렸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된 사례도 있었다.
그리고 1992년에 '신문모니터동호회'를 모태로 세워진 '사회비평동호회 희망터'는 나우누리의 '찬우물', 하이텔의 '바른 통신을 위한 모임'과 3대 진보 동아리의 축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1994년에 민중 노래극단 '희망새'의 멤버 이창렬 씨가 내외통신[12] 에서 보도된 김일성 신년사와 민중 노래극 <아침은 빛나라>[13] 의 미완성 대본을 올리다 국보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거나 1997년에 한총련 학생들과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현 진보연대) 등 재야계열 회원들의 아이디가 무단으로 삭제되는 등 공권력에 의한 온라인 검열의 희생양이기도 하다.
여성계에서도 이와 유사한 얘깃거리들이 꽤 있어서, 당시 김신명숙과 더불어 한국 1세대 페미니스트의 선두주자중 하나였던 신정모라 씨가 가슴 노출을 허하라! 운동을 제안했다가 이용정지 징계 + 게시글 전체 삭제조치를 받았던 사건도 있고, 1998년에는 아이디를 "화냥년" 이라고 정했던 한 유저가 수많은 여답돼(...)들과 스토커들의 음란성 쪽지 공세를 운영측에 신고했다가 도리어 "아이디를 그렇게 저속하게 만든 너님 잘못임" 이라며 본인이 비하적 아이디라고 블락을 당해서 일각의 비판이 일었던 적도 있었다.
3.3. 비판
정액제 전환 이후부터 몰락 직전의 시기는 현재의 디시인사이드에 뒤지지 않을 정도의 막장의 풍모를 풍겼다. 그 시절 천리안 공개광장의 수준은 그야말로 개판. 내용 없는 한줄글, 욕설, 음란한 글들이 1분에 몇십 개씩 올라왔으며 아무도 자정작용을 하려 하지 않았다. 3대 PC 통신 중 가장 빨리 인터넷에 밀려 그 권위를 잃은 데에는 분명 이유가 있다.
동호회를 개설해달라고만 하면 웬만하면 개설해 주는 정책으로 많은 비판을 받았다. 요금이 비싼만큼 사람들이 운영진 아이디를 노리고 온갖 잡 동호회를 만들었는데 그 결과 천리안의 수많은 사용자들이 여기저기 분산되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렇게 만들어진 동호회들에서는 불법 파일들을 주고받아 많은 문제가 되기도 하였다.
케텔 및, 그 후속인 하이텔과는 유저 인터페이스가 달라서 헷갈린다. (기본형 쓰지 말자.) 이것은 후속 주자인 나우누리와 유니텔(VT버전 한정)이 인터페이스를 하이텔 것을 거의 그대로 도입하면서, 졸지에 천리안만 독자적인 인터페이스를 쓰는 모양새가 됐다.
3.4. user.chol.com 웹계정
다른 개인 홈페이지 계정 제공 사이트에서는 지원하지 않던 PHP, CGI(Perl,C++) 등을 유일하게 지원했던 곳이다.[14]
처음에는 http://user.chollian.net/~아이디/ 였다가 나중에 http://user.chol.com/~아이디/ 로 변경하였고 이때만해도 이 주소로 cgi php 등을 전부 구동하였으나 이용자 폭증 및 서버폭주로 인해 이후 php.chol.com cgi.chol.com 을 이용하여 php실행서버와 cgi실행서버를 분산하는 정책을 펼쳤다.
4. 몰락 이후 현황
이후 2000년대 초 초고속 인터넷 서비스의 등장과 함께 몰락, 2003년에 VT모드 서비스가 종료되고 완전한 웹 기반 서비스로 바뀌나, 데이콤에서 천리안을 별도 법인으로 독립시켰으며, 후에 심마니와 합병하여 심마니천리안이 되었으나(이후 CHOL을 거쳐 천리안2.0이 됨), 지금은 그저 그런 평범한 웹 포털 사이트로서의 기능을 유지하는 중. 단, 아래쪽 메뉴를 잘 살펴보면 해외 인터넷 로밍 서비스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나마 명맥은 다른 둘에 비해 가장 오래 이어가는 중이다. 하이텔은 파란으로 바뀌었다 사라지고, 나우누리도 서비스를 종료했지만 천리안은 아직 웹 서비스가 유지되고 있다.
2015년 10월 1일에 블로그 및 일부 서비스를 종료했다. # 종료된 서비스 중에는 천리안의 자체적인 검색 서비스도 포함되었다.
그나마 남은 서비스들은 LG U+ 자회사로 이름까지 바꾼 미디어로그에서 관리한다. 요즘은 컨텐츠 배급사업에 재미를 붙인듯. 특히 제법 성공을 거둔 이미테이션 게임과 Her 배급에 참여하여 꽤 재미를 보았다.
2021년 현재는 유니텔과 마찬가지로 거의 명맥만 유지하는 상황. 제공하는 서비스가 메일, 뉴스, 게임, 운세, 인물 딱 5개밖에 없다.[15] 각 메뉴로 들어가봐도 제공하는 서비스는 타 포털사이트에 비해 부실하기 짝이 없다.
5. 여담
애니메이션 트랙시티에서 마스코트인 캐피맨이 등장하였다. 몇몇 사람들이 애니메이션에서 캐피맨을 무단 도용했다고 비난을 퍼부었는데, 애니 측과 천리안이 제휴한 것이 밝혀졌다.
PC 통신 서비스사에서 당시 PC 통신을 기반으로 활동하던 국내 힙합 뮤지션들을 끌어모아 프로젝트 앨범을 몇 장 냈다. '1999 대한민국'과 같은 앨범이 유명하다.
별칭으론 근시안 등이 있었다. 하지만 이용자들이 가장 많이 부른 별명은 개리안(...)이다. (개뤼안이라고 많이 부름.) 위에 나왔듯이 당시 PC통신 이용자들의 공공의 적 한국통신에 버금가는 돈 먹는 하마로 유명했기에 부르주아의 통신이라는 별명아닌 별명도 있었다.
천리안도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엄연히 서비스형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다. 하지만 RSS 피드가 전혀 지원이 안되는 등 이쪽 블로그 만들어서 글 써봐야 타 사이트에서 전혀 검색이 안되어서 사실상 무늬만 블로그라고 할 수 있겠다.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에서 헤어지게 된 김정봉과 장미옥이 다시 만나게 되는 매개체가 된다.
Play XP는 2002년 경에 잠시 천리안과 제휴를 한 적이 있다.
[1] '정보은행'이라는 용어로 부르기도 했다.[2] 이 시기에 한국데이타통신은 데이콤으로 사명을 변경하게 된다.[3] 28.8Kbps 망으로, 그 때 기준으로 고속이어서 이름을 이렇게 붙였다. 초고속인터넷과는 엄연히 다르다.[4] 천리안 2000이 천리안 98에 비해 더 인터넷에 무게를 둔 브라우저다.[5] 부분 유료화로 바뀌기는 했으나, 무료 회원은 이메일도 사용을 못하고 동호회에서도 활동을 못하는 등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매우 제한적이었다. 동시대의 다른 포털사이트에서는 무료로 메일, 블로그, 카페 등 다양한 서비스를 사용할 수 있었던 것과는 매우 대비되는 모습이다.[6] 초기 접속번호로 속도가 느려 고속망 01421 도입 후에는 잘 쓰이지 않았다.[7] 전국의 초고속 천리안 전용망으로 안정성과 속도면에서 발군이었다.[8] Windows 95부터는 Winsock이 내장되어 네트워크 설정 복잡하게 할 필요없이 IP와 DNS 게이트웨이만 제대로 설정해주면 인터넷하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지만 그 이전 버전에는 아예 윈도우에 인터넷 지원 솔루션이 없어서 트럼펫 윈속과 같은 네트워킹용 전용 인터페이스가 필요했다.[9] 참고로 하이텔은 1994년에 첫 흑자를 냈다.[10] 1999년 3월 기본료 13,000원 / 부가세 별도의 정액형 요금제를 도입했다가 이후 1999년 8월부터는 기존 30시간 요금제 (기본료 10,000원 / 부가세 별도)를 정액제로 바꿨다.[11] 여담으로 시뮬레이션 동호회는 하이텔에도 있었는데, 천리안 시뮬동에서도 활동하던 표도기가 운영자를 했다. 이쪽은 비행시뮬보다는 코에이의 삼국지나 대항해시대 등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 인기가 많았고, 비행시뮬은 개오동이 더 활발했다.[12] 1998년에 연합뉴스에 합병된 북한 관련 뉴스 전문 통신사.[13] 원작은 오봉옥의 빨치산 시집 <붉은 산 검은 피>이다.[14] 단, 라이코스 트라이포드는 국내에서만 cgi php를 사용하지 못했을 뿐 유럽쪽에서는 php를 지원했다 폐지한 이력이 있고, 미국에서도 cgi 스크립트를 사용할수 있었던 적이 있다. 지금은 전부 사용 불가능.[15] 직무는 2020년 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