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경

 

天符經
1. 개요
2. 전문과 해석
3. 상세
4. 관련 연구와 주장
4.1. 위작이라는 주장
4.2. 출처에 대한 주장
5. 평가
6. 기타
7.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1. 개요


대종교, 증산계통 종교 같은 한국 민족종교 등에서 신으로부터 내려온 우주 삼라만상의 이치를 축약했다고 주장하는 경전.

2. 전문과 해석


一始無始一析三極無
盡本天一一地一二人
一三一積十鉅無匱化
三天二三地二三人二
三大三合六生七八九
運三四成環五七一妙
衍萬往萬來用變不動
本本心本太陽昻明人
中天地一一終無終一
일시무시일석삼극무
진본천일일지일이인
일삼일적십거무궤화
삼천이삼지이삼인이
삼대삼합육생칠팔구
운삼사성환오칠일묘
연만왕만래용변부동
본본심본태양앙명인
중천지일일종무종일
하나(一)에서 시작하나 시작함이 없는 하나(一)이다.
삼극(三極)으로 나누어지나 다함이 없는 근본이다.
하늘은 하나(一)의 하나이고 땅은 하나(一)의 둘이며 사람은 하나(一)의 셋이다.
하나(一)가 쌓이고 쌓이어 열(十)로 커지면서 다함 없이 셋으로 변화한다.
하늘이 둘의 셋이고 땅이 둘의 셋이며 사람이 둘의 셋이라.
큰 셋이 합하여 여섯이 되어 일곱·여덟·아홉을 내며 셋·넷을 운용하여 다섯·일곱을 순환으로 이룬다.
하나(一)가 미묘하게 전개하여 만 번 가고 만 번 오면서 변화하나 근본엔 변동이 없다.
근본은 마음의 근본이니 태양보다 밝고 사람이 하늘과 땅의 중간에서 하나이다.
하나(一)에서 마치나 마침이 없는 하나(一)이다.
이상 81자(가로 9자x세로 9자)가 전문인데, 세상의 모든 이치와 우주의 법칙을 담았다고 한다. 농은유집본에서는 저 중 몇 글자가 다르다.

3. 상세


민족종교의 주장에 따르면 단군천부인(天符印)을 소지했다는 기록이 있고 환단고기가 등장한 이후로 환인이 환웅에게 전하여, 신라의 문인 최치원묘향산 바위에 새겼던 것을 1916년 9월 9일 계연수가 발견해 지금까지 내려왔다고 한다.
고대의 문서라 출처가 비교적 확실한 대종교의 경전(삼일신고, 신사기, 등)과는 달리 출처가 모호하다. 모호함은 신비화를 부추기기도 하는데, 그 덕에 훨씬 더 널리 유포되어 현재 이 경전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은 이게 '단군의 경전'이라는 점에 거의 의문을 품지 않는다.
기본적으로 대종교나 환빠계 종교단체를 포함해 국내의 도인, 깨달은 자로 불리는 이들은 천부경을 해석할 수 있냐 없냐에 따라 급을 달리한다 본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천부경 해석본을 내놓았고, 이러한 해석을 중심으로 다른 것들과 연관지어 자신들 집단의 교리로 삼았다. [1]
민족종교에서는 주로 천부경 구절을 낭송함으로써 '수련'하며[2], 이중 대종교는 매주 일요일 경배식의 천경신고 순서에서 천부경을 독송한다. 주문을 외우는 종교행위는 세계 여러 종교에서 흔하지만, 한국의 종교계는 특히 동학에서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천부경이 워낙 인기가 높다보니, 구한말에 나왔음이 명확한 태을주, 운장주 등의 주문은 증산계통 종교인을 제외하면 위세가 처지는 추세이다.
천부경을 믿는 사람들 중에는, 천부경 도입부의 "일시무시일(一始無始一)", 끝 부분의 "일종무종일(一終無終一)"을 들어, 화엄경, 정확히 말하면 의상대사의 《화엄일승법계도》의 한 구절과 같은 사상이라고 하는 이들도 있다. 해당 구절은 "一中一切多中一 一卽一切多卽一" 로, 그 뜻은 "하나 속에 모든 것이 있고 모든 것 속에 하나가 있으니, 하나가 곧 모든 것이요 모든 것이 곧 하나를 이룬다."이다.
불교 교리의 관점에서 대승불교는 하나(一)의 진리인 불성이나 여래장으로 모든 것을 총화하며, 원효대사의 일심(一心)에서도 하나를 내세운다. 하지만 불교에서 그것은 수행의 단계에서 필요한 방법이고, 모든 현상이란 인연의 법칙에 따라 현실세계에 전개된다는 데 촛점을 맞추므로, 천부경과 불교는 단지 하나(一)라는 단어가 유사할 뿐 논리는 매우 다르다.
출처의 모호함과 내용의 난해함, 그리고 민족의 경전이라는 배경 때문에 여러 해석이 있으며, 더하여 환단고기가 등장하자 이런 경향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일반 사학계에서는 '''한 사학자가 위작으로 확정'''한 이래 거의 위작으로 의견이 모인다.
그 한 사학자란 바로 '''단재 신채호'''이다.

4. 관련 연구와 주장



4.1. 위작이라는 주장


신채호는 1925년 동아일보에 연재하던 조선사연구초에서 '''"서적의 진위와 그 내용의 가치를 판정할 안목이 없으면, 후인 위조의 천부경 등도 단군왕검의 성언이 되는 것이다." '''라고 하였으며, 1931년 조선일보 학예란에 연재하던 조선상고사에서 '''"우리나라는 고대에 진귀한 책을 태워버린 때(이조 太宗의 焚書 같은)는 있었으나 위서를 조작한 일은 별로 없었으므로, 근래에 와 천부경(天符經), 삼일신고(三一神誥) 등이 처음 출현하였으나 누구의 변박(辨駁)도 없이 고서로 인정하는 이가 없게 되었다."'''라며 위작이라 주장했다.
민족이라는 실체적 현상을 이념적으로 거부하는 세계시민주의, 범민주의 도그마에 신채호는 힘을 실어 주었기 때문에, 그의 위작 발언은 천부경을 위작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기반이 되었다. 역사연구에서 신채호가 범한 여러 오류들이 그의 권위를 빌어 학계에 대한 공세의 도구가 된 것과는 반대의 사례로 꼽힐 듯하다.
천부경을 진본으로 지지하는 사람들은 조선사연구초를 연재하고 6년 뒤에 조선상고사를 썼으므로, 조선상고사의 문장을 근거로 '사실 단재는 조선사연구초 당시에는 천부경을 위작이라 부정했으나, 조선상고사 연재시에는 이를 인정하고 위작설을 철회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조선사연구초나 조선상고사나 단재가 같은 시기에 저술했다는 것이 독립운동사학계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또한 '''이 말은 조선상고사 총론의 '위서(僞書)의 판별과 선택에 대하여'에도 그대로 실렸다.''' 오히려 연재 당시의 조선상고사 내용 자체의 진위 여부도 애매하다. 연재 당시 신채호는 뤼순 감옥에서 수감생활 중이었고, 신채호가 쓴 원고를 조선일보에서 가져다가 연재한 것이다. 오히려 신채호는 연재를 원하지 않았는데, 아직 완성되지 않아서 더 손을 보아야 하는 원고였기 때문이다. 즉 연재 과정에서 신채호의 의도와는 달리 내용이 가필되었거나 삭제, 변형되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를 다룬 분석 기사
신채호는 민족사학자이기는 하지만 신숙주의 18대 손이자 성균관에서 수학한, 이른바 프로패셔널 학자 집안 출신이다. 신채호가 보기에는 아마추어 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 선전하는 천부경을 인정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또한 신채호는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으로 보는 민중에 근거한 사관을 따랐으므로, 천부경을 인정하기는 더욱 어려웠을 것이다.

4.2. 출처에 대한 주장


출처가 모호한 천부경이지만 학계에서는 출처를 밝히고자 노력해왔다.
1969년 한국 신흥종교 연구의 토대를 쌓은 이강오가 실사연구로 어느 정도 출처를 밝혔고, 2003년 삿사 미쓰아키(佐佐充昭)가 추가로 연구/검증하였다. 이들에 따르면 1910년 정훈모의 단군교가 나철·김교헌의 대종교로부터 분리되었고, 이후 1917년 단군교에서 천부경이 등장했다.[3] 물론 1911년에 '펴냈다고 하는' 환단고기에도 천부경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경우 환단고기 자체의 신빙성이 부족하기에 큰 의미는 없다.
문제는 단군교와 대종교 둘 다 친일 교단 논란이 있다는 점이다.[4] 다만 이게 사실이라면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이 단군 사상의 계승자이자 민족운동가'가 되었단 말이 된다.(...) 한마디로, 서로 모순된다. 친일이라면 일본을 위해 원래 있던 단군을 없애고 민족정신을 말살해야 하는데 오히려 정반대로 역사 속에 묻힌 단군을 발굴했을 뿐만 아니라, 일찍이 존재치 않던 경전을 만들어 항일정신을 살리고 민족투사를 양성하며 조선인들의 민족정신을 고취했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2015년 5월 펴낸 《단재 정훈모 전집》(총 3권) 중 1권에서는 천부경을 설명하며 1917년에 처음 등장하였다는 기존 학계의 설을 부정하였다. 이 책의 주장에 따르면 1913년 정훈모가 제정한 <단군교종령>에 천부경이 나온다는 것.(참조링크) 책에 인용된 <단군교종령> 제 55조에는 '''"天符經(천부경)과 覺辭(각사)를..."'''[5]이라는 구절이 나온다.[6] 다만 저자가 정훈모/단군교에 우호적으로 서술한 책이니 '"걸러읽을 필요는 있다'''.[7]
2018년 한국전통문화대학교 최영성 교수가 고려 말 이색의 문집 목은집에 나온 구절인 秘書初出鬼神驚 獨斷與天符契合에서 天符가 바로 천부경이라는 연구를 발표하였다.#
“비밀스러운 책 처음 나왔을 땐 귀신도 놀랐겠지(秘書初出鬼神驚)/…/‘독단’, ‘천부경’ 내용과도 부합하니(獨斷與天符契合)”
다만, 위의 연구결과만으로 천부경이 고려 말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판단하기에는 다소 미흡하다. '독단(獨斷)'이라는 책 이름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이 단어는 '임금이 혼자서 내리는 결정' 을 말한다.[8] 이색의 다른 글들에서도 이 의미로 '독단' 이라는 단어가 쓰였다. 하평촉표 평홍건적후진정표 그리고, "채옹의 책 《독단》에 '천자(天子)라는 호칭이 동이족, 즉 우리 민족에게서 시작되었다' 는 내용이 있다" 라고 처음 주장한 사람은 유사역사학계의 거물인 임승국인데(참고), 그는 《독단》에서 황제와 관련된 호칭들에 대하여 설명하는 첫 부분의 한 문장을 단장취의하고 내용을 변조해서 이런 주장을 폈다.[9][10] 또한, '천자'라는 호칭에 대해서는 《독단》뿐만 아니라 《여씨춘추》[11], 《춘추번로》[12], 《백호통의》[13], 《태평어람》[14] 등 다양한 서적에서 각자 조금씩 다른 설명[15]이 나오며, 《독단》의 내용은 이 여러 설 중의 하나이다.
언급된 이색의 시 〈호종백악산유작(扈從白嶽山有作)〉 의 배경은 1390년 공양왕의 한양 천도[16]로, 도참설에 의거하여 한양으로의 천도를 왕이 결정(독단)한 것이다. 이 시는 7언율시이고, 7언시의 해석은 대부분 4자/3자(2+2자/3자) 로 끊어지며, 7언율시의 함련(3~4번째 줄)과 경련(5~6번째 줄)은 각각 두 줄이 문장 형식과 단어의 품사 면에서 서로 같거나 비슷한 형태를 이루어 대구가 된다.
獨斷與天符契合 임금의 결정은 하늘(의 뜻)과 함께하여 부계(=부절)처럼 합하고
群官奉日佩環鳴 여러 신하들은 해(=임금)를 받들어 패옥 소리 울린다(예식을 치르는 모습)
( 獨斷↔群官, 與↔奉, 天↔日, 符契↔佩環, 合↔鳴 )
雲連翠蓋山增秀 구름이 어가에 잇닿으니 산은 더욱 빼어나고
風透羅衣水更淸 바람이 비단옷에 부니 물은 한층 맑도다
( 雲↔風, 連↔透, 翠蓋↔羅衣, 山↔水, 增↔更, 秀↔淸 )
3번째 줄인 '獨斷與天 / 符契合' 은 다음과 같은 일반 단어들로 이루어진 구절인데 (獨斷: 임금의 결정, 與: ~와/과, ~와 함께하다, 天: 하늘, 符契: 부절. 두 쪽으로 나뉘어진 물건을 합쳐서 명령의 진위 여부를 확인하는 도구[17], 合 : 합하다) 이를 '《獨斷》與《天符》契合' 로 다르게 끊어 읽고 고유명사로 파악한 것이 위의 연구결과에서의 해석이다. 일반 단어를 고유명사로 읽거나, 혹은 그 반대로 고유명사를 일반 단어로 읽거나 해서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다는 것이 한문 해독의 어려운 점 중 하나이다.

5. 평가


독립운동가인 홍범도, 오동진 등이 천부경을 암송하였다고 하며 이중 두 사람은 천부경에 대한 '찬'을 남겼다.

天施地轉 環成五七 一積而鉅 无匱而三 一像之眞 根核永生 大哉天符 萬世寶典

하늘이 베풀고 땅이 굴러, 5와 7이 고리를 이루었다. 1이 쌓여 커지나 다함 없는 셋이다. 1의 모습의 진실은 그 근본이 영생이로다. 크도다. 천부(天符)여. 만세의 보전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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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범도

乾坤正氣 創成倍達 授符遣往 率將而主 熊虎願化 平等與婚 假化之德 弘益人間

하늘과 땅의 바른 기운이 배달을 만들었고 천부(天符)를 주니 장수들을 이끌어 주인 되었다. 웅족과 호족이 교화받기를 원하니 평등하게 혼인을 허락하였다. 인간의 몸을 가탁하여 교화하신 덕은 홍익인간이 되어 널리 이롭게 하고자 한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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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


6. 기타


'농은유집본 갑골문 천부경'[18]이라는 것을 발견했다고 주장한 민홍규는 '''국새 제작시 황금을 떼어먹은 사기행위'''로 2010년 8월에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다.

천문학 박사 박석재[19]는 천부경의 내용을 실은 <개천기>라는 책을 출간하였다. #
최치원의 후손인 최국술이 금석문과 여러 책에 남아 있는 최치원의 문장을 모아 1926년에 고운집(孤雲集)을 냈는데, 여기에 단전요의(檀典要義)라는 제목 하에 천부경이 들어가 있다고도 한다.

7. 대중매체에서의 등장


어찌되었든 무협이나 판타지에서 깨달음의 '''소재'''로 많이 쓰이며 이거 하나만 외워 놓으면 나중에 차원이동을 해도 깨달음을 얻어 높은 경지에 이르는데 도움이 되는듯 하다(...)
김진명의 소설 '코리아닷컴'에서는 레무리아 대륙의 비밀이 담겨있는 경전 으로 나왔으며 동 작가의 소설 '최후의 경전'에서는 말 그대로 인류의 모든 지혜가 담긴 경전으로 나왔다. 한편 이우혁퇴마록에서는 지맥을 조종하는 주문으로 나왔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다.'고 하는데(......)
소설 이계인에서는 '천부신공'이라는 무공으로 등장한다.
무협소설 황제의 검에서는 처음에는 천마를 다룰수 있는 주문으로 나왔지만, 나중에는 신선이 될수 있는 법이 있는 책이라고 나온다. 이후 주인공이 전부 이해하면서 레알 이 되었다.
이외수벽오금학도에서도 나왔다. 물론 클리셰의 따름으로(...)
대구 동구 해맞이공원에 이 천부경을 새긴 대형 비석이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태고의 빛' 파트의 공연에서 하늘을 외치기 전에 한번(一),땅을 외치기 전에 두번(二),사람을 외치기 전에 3번(三) 천장부터 땅으로 빛이 소리와 함께 울리는 것을 표현하여 천부경의 天一 地二 人三 을 표현했다. (이에 대해 방송에서는 설명하지 않고 넘어갔다)

[1] 대부분 민족종교 생각하면, 이들이 단군이나 천부경 자체를 자신들만의 신 또는 경전으로 쓴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기독교 내에서 예수 가지고 내 예수, 니 예수 안하듯이 이들에게 단군, 천부경 그 자체는 민족 전체가 공유하는 공공재이지 어느 한 집단이 점유하는 존재가 아니다. 원래 민족 전체가 다 쓸 수 있는 건데 남들은 안 쓰고 자기네는 쓴다는 개념에 가깝다. 그들에게는, 한민족 중 누가 됐든 설사 기독교인이든 이슬람이든 무교든 간에 이 민족으로 태어난 이상 당신의 할아버지는 단군이고 당신의 경전은 천부경이라 생각한다. 어느 무당집이나 민족종교 단체를 찾아가도 개인 신으로 단군을 받는 자는 없고, 단군과 천부경 쓴다고 조직 간에 싸움 안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2] 불교로 비유하자면, 금강경의 해석본이 달리 있지만 그럼에도 금강경 자체를 읽는 것과 같은 거다. 경 자체가 가진 완벽함과 그곳에 담겼다 믿는 에너지 때문에 원문으로 읽는다.[3] 단군교에서는 1917년 계연수가 자신들에게 《천부경》을 발견했다는 내용으로 편지를 보냈다고 주장한다.[4] 단군교는 한일합방, 3·1 운동 탄압과 관계된 것으로, 대종교는 친일 거두 윤덕영, 민병석, 이재곤 등을 입교시킨 것으로 친일 논란이 있다. 출처:유영인․이근철․조준희, 《근대 단군 운동의 재발견》, 아라, 2016, pp.228~229.[5] 각사는 대종교 계열에서 기도할 때 마음 속으로, 혹은 입으로 읽는 주문이다. 한자로는 신령재상(神靈在上) 천시천청(天視天聽) 생아활아(生我活我) 만만세강충(萬萬歲降衷)인데, 현 대종교에서는 우리말로 풀어서 "세 검 한 몸이신 우리 한배검이시여, 가마히 위에 계시사 한으로 듣고 보시며, 낳아 살리시고 늘 나려주소서!"라고 한다. (대종교 홈페이지 출처)[6] 출처:《단재 정훈모 전집》 1권, pp.56~57.[7] 이 책에선 1906년 나철에게 두암이 전했다고 알려진 대종교의 경전 <삼일신고>도 1905년 두암의 윗사람인 백전이 나인영에게 전하고 단군교 입교를 인도했으며, 1908년 백봉의 수하 두일백이 일본 도쿄에 나인영과 같이 머무르던 정훈모를 만나 그에게 <삼일신고>를 전하고 영계식(단군교의 세례식)을 했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61쪽 참조) '''정말 1905년 나인영에게 전했다면 왜 굳이 1908년 또 전한단 말인가?(...) 나인영은 단군교 안 전하고 대체 뭘 했다는 건가???''' [8] 출전은 《관자(管子)·명법해(明法解)》 편의 "明主者,兼聽'''獨斷''',多其門戶。(현명한 군주는 의견을 골고루 듣고 '''혼자서 결정'''하는데, 그 경로는 다양하다.)"[9] 그 부분의 본래의 내용은 "존귀한 존재인 '왕'을 과거에 부르던 여러 호칭 중에서, 직할령에서는 '왕(王)', 중원 제후국에서는 '천왕(天王)', 이적(夷狄)의 지역에서는 '천자(天子)', 관리들은' 천가(天家)' 라고 불렀다" 는 요지이다.[10] '이(夷)'는 기본적으로 고대 중국의 중원 지역을 기준으로 하여 동쪽에 있던 종족을 통틀어서 일컬은 호칭으로, 자세한 기준은 시대와 지역에 따라 달라진다. 한민족을 특정하는 표현이 아니다.[11] "하늘이 낳은 것들을 기르면서 어지럽히지 않을 수 있으니, '천자'라고 한다."[12] "덕이 천지(天地)와 같은 자는 하늘이 그를 돕고 자식으로 삼으니, '천자'라고 호칭한다."[13] "'천자'는 작위의 명칭이다. 이 작위가 '천자'라고 불리는 것은 왜일까? 왕은 하늘을 아버지로 삼고 땅을 어머니로 삼아서, 하늘의 자식이 되기 때문이다."[14] "'천자'는 지극히 존귀한 존재에게 붙은 이름이다. 신명과 감응하여 이름을 받아 하늘의 자식이 되므로, 그를 '천자' 라고 한다."[15] '하늘의 아들' 이라는 기본 의미 위에 부가적으로 붙는 설명들이 조금씩 다르다. '天子'라는 단어에 대한 '의미 부여'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16] 같은 해 말에 개경으로 되돌아왔다.[17] 일반적으로는 '부절(符節)'로 많이 알려졌고, 부신(符信)이라고도 한다. '부계(符契)'라는 단어가 쓰인 예시도 적지 않다.[18] 다른 갑골문 유물들과 작성된 형태도 다르고, 현재까지 연구된 갑골문 문자에 없는 글자들이 여러 자 있는 등, 위작의 혐의가 매우 짙다. 지금까지 발견되지 않은 글자들이 다수 들어 있으니 이것이 진본이라면 갑골문 관련 연구에서 중요한 자료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런 일은 없었다.[19] 2005년부터 2011년까지 3-4대 한국천문연구원 원장을 역임한 사람이자 '''송유근의 박사학위 지도교수였고 송유근 논문 표절 사건의 공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