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유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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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근과 세계적인 석학 킵 손 박사의 만남.
<colbgcolor=#000> '''이름'''
송유근(宋幽根)
'''출생'''
1997년 11월 27일 (26세), 경기도 구리시
'''국적'''
대한민국[image]
'''본관'''
여산 송씨[1]
'''신체'''
183cm, 67kg
'''학력'''
심석초등학교 (졸업)
중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 (합격)
고등학교 졸업학력 검정고시 (합격)
인하대학교 (자연과학계열 / 중퇴)
국가평생교육진흥원 학점은행 (전자계산학 / 학사)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천문우주과학 / 석박사 통합과정 수료[2])
'''가족'''
아버지 송수진, 어머니 박옥선[3]
'''종교'''
무종교(무신론)
1. 개요
2. 생애
2.1. 대학원 입학 이전
2.2. 박사학위 취득 실패와 제적 처리
2.3. 병역 및 향후 진로
2.4. 평가
3. 사건사고 및 논란
3.1. 가짜 발명품 사건
3.3. 논문 문제제기 사건
3.4. 논문 문제제기 사건에 대한 불평 불만
3.5. 송유근 연구보고서에 참여한 연구원 논란
3.6. 진짜 천재인가?
4. 기타
5. 방송 활동
6. 약력
7. 참고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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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때 천재 소년으로 주목'''받았던''' 대한민국의 인물. 2005년 인하대학교에 입학한 후 중퇴했고, 이후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에 학적을 두고 석사 학위 과정을 밟았다.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석박사 통합과정을 진행했으며, 박석재의 지도를 받고 있다가 후술할 사건으로 인해 지도교수가 없어졌다.
2015년 하반기에 ApJ(The Astrophysical Journal)에 제1 저자로 논문을 제출하여 2016년 2월 세계 최연소 박사학위를 취득할 예정이었으나, 11월 25일(현지시간) 자기표절 및 인용누락 등의 연구부정행위로 논문이 철회됨에 따라 박사학위 취득이 무산되었다.[4] 이후 다시 치른 박사학위 심사에 탈락하였고 이후 2018년 크리스마스 이브인 12월 24일 육군 현역병으로 입대했다. 당시에는 재학생 신분으로 군복무를 시작하였으나, 2019년 7월 11일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총장을 상대로 낸 제적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패소하여 대학에서 제적되었다.#

2. 생애



2.1. 대학원 입학 이전


송유근은 1997년 11월 27일생이며 5세까지는 태열기가 있어서 집에서 누워만 있었다고 한다. 교사 경력이 있는 아버지는 사업을 했으며[5], 어머니는 현직 교사였고, 할머니와 외할머니가 함께 살며 송유근을 키웠다. 유치원에서 적응을 못하여 부모님이 '이렇게 적응을 못하는 아이가 공부까지 못하면 완전히 소외되겠구나' 싶어 유치원을 그만 두고 직접 공부를 가르치면서 처음으로 영재성을 발견하였다.
2004년 8월, '''만 6세의''' 나이로 정보처리기능사 자격을 얻었다. 또한 남양주에 있는 심석초등학교[6]의 자체 평가를 거쳐 6학년으로 입학했으나, 초등교육법상 조기 졸업은 저학년 입학 후 조기 진급해야 한다’는 당시 교육인적자원부의 주장으로 입학 취소 처분을 받았다. 이후 소송을 제기해 “의무교육은 교육받을 권리가 근본 취지로, 6학년으로 입학한 기득권을 보호하는 차원에서 송 군을 졸업시키는 것이 타당하다”는 판결에 따라 조기 졸업이 가능했다. 이후 중, 고교 졸업 검정고시를 1년 만에 마쳤다.
이 과정에서 공교육 과정을 불신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교육도 불신하여 영재교육원, 학원, 학습지등 일체 받지 않고 생업을 포기한 부모들의 지도로 집에서만 공부 하였다. 이때 부터 국가의 지원이 없다거나, 신뢰할 수 있는 영재 교육 과정이 없다고 하였다.
그리고 8살이 되었을 때 2004년 2월 SBS의 영재 "학교 안 보낸다"라는 뉴스 보도로 세상에 알려진다.#
2005년 10월 24일 인하대학교 2학기 수시 ‘21세기 글로벌리더 전형’ 특이경력 분야로 자연과학대학 자연계열에 지원하여 최연소 나이로 대학에 합격했다. 인하대 재학 시절, 1학기의 그는 일반역학, 현대 물리학, 컴퓨터 물리학 및 실습, 객체지향프로그래밍, 일반수학 등 5과목을 수강했으며, 일반역학에서 B학점을 받은 것 외에는 모두 A학점을 받아 평균 3.8/4.5을 받았다.# 10살의 나이로 인하대학교에서 3.8/4.5를 받았다는 사실은 언뜻 대단해 보이지만 학교 측에서 송유근의 학점은 체육특기생들의 경우처럼 아예 별도로 평가해서 점수를 부여했다고 한다. 즉 일반 학생과 동등하게 평가하였을 때 어떤 평점을 받을 수 있었을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인하대학교를 중퇴한 이후 학점은행제를 통해 학사 학위 인정을 받았다.
2007년 12월, 획일적이고 주입적인 대학교육에 흥미를 잃었다는 발언과 함께 구리시에서 제공한 컨테이너 연구실에서 독자적인 연구를 하겠다는 발표를 하였고, 2008년 3월에는 서울시립대학교 양자컴퓨팅 분야 연구조교로 근무하게 되었다는 발표가 나기도 했다.
2008년 12월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의 한국천문연구원 석박사 통합과정에 입학 허가를 받았고, 2009년 2월 학점은행제를 통해 전자계산학 이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2.2. 박사학위 취득 실패와 제적 처리


송 군과 같은 분야의 천체물리학자들은 공통적으로 “송 군이 그동안 뭘 연구하는지도 몰랐다”고 말했다. 납득하기 힘든 상황이다. '''보통의 석‧박사과정 학생이라면 학술대회나 세미나, 토론 등 공개적인 자리에 나와 자신의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게 자연스럽다. 여기서 1차적인 검증이 이뤄진다. 한 연구자는 “(학술적으로) 가차 없이 물어 뜯겨야 제대로 큰다”고 말했다. '''

'''허나 그간 워크샵이나 학회에서 송 군을 봤다는 동료과학자가 없다.''' 송 군이 연구하는 주제는 우리나라에 전문가가 많지 않다. 그나마도 지도교수와 단 둘이 연구실에서 지내느라 자신의 연구를 검증받을 기회를 상당수 놓쳤다. (중략)

송 군의 말은 사실과 달랐다. 천체물리학계의 전문가들은 송 군이 유도한 부분이 “큰 의미가 없는 작업”이라 평했고,''' “물리를 전공했으면 쉽게 할 수 있는 작업”이라며 독창성을 부인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논문의 기초인 선행연구 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만약 송 군이 자신의 연구결과를 학계 전문가들 앞에서 미리 이야기했다면 조언을 얻었을 것이고, 그는 지금과 같은 고충을 겪지 않아도 됐을 것이다. '''

- 과학동아변지민 기자

UST에서 송유근이 선택한 전공은 천문우주과학이다.
2010년부터 2013년까지는 충남대학교에서 양자장론, 핵물리학, 천체물리학에 관한 대학원 강의를 수강했다[7]. 2012년부터 2년간 이화여자대학교 수학과에서 위상수학에 대한 대학원 세미나를 들었고, 2014년부터는 한국천문연구원박석재[8]이화여대 수학과 조용승으로부터 논문 지도를 받고 있다고 한다. 박사 학위 취득 이후에는 초끈이론위상수학의 모스 이론(Morse Theory)이라고 하는 분야에 대한 연구를 생각중이라고 한다.
2015년 하반기에 SCI급 저널인 ApJ에 논문을 게재했으나 표절로 밝혀져 철회되었다. UST에서는 졸업 요건으로 SCI급 논문 1편을 제1 저자로서 게재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므로, 2016년 2월 졸업은 불가능해졌다. 그리고 송유근과 지도교수가 이로 인해 중징계를 당했다.[9] 지도교수는 해임당했다. 이제 송유근을 지도할 담당교수를 찾는 일이 시급해졌다.
일각에서는 송유근이 블랙홀 전문가인데 이 분야의 인재가 대한민국에서는 흔하지 않다는 것 때문에 지도교수 문제에 애로사항이 있을 것을 우려했다. 전 지도 교수가 해임당한 상태이고 지금 논란에 휩싸인 인물인 만큼 웬만큼의 명성을 걸어도 아깝지 않을 여유가 있지 않은 이상 엄격한 검열환경 속에서 지도를 해줄 사람이 나타날 확률도 상당히 희박하다.
2018년 8월 13일자 기사[10]에 의하면 송유근은 논문 표절 파동 이후 지도교수 없이 대만의 관련 연구소에서 연구를 지속해 왔고, 2017년 6월 대만 학자들과 함께 '''영국의 천체물리학 저널 APJ'''[11]에 논문을 실어 졸업 요건을 갖추었다고 송유근의 부모 측이 밝혔다. 단 송유근이 실었다는 영국 저널은 APJ가 아니고 MNRAS Letters[12]이다. 한편 UST 측은 송유근이 졸업자격은 취득하여 졸업심사를 진행하였으나, 2018년 6월의 박사 학위 최종심사에서 '''심사위원들의 질문에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는 등 기본적인 것을 갖추지 못해 불합격 처리'''했다고 밝혔다. 송유근은 2009년 UST 석박사 과정에 입학하였는데, 9년이라는 UST 석박사 학위 연한이 2018년 6월로 끝남에 따라 결국 UST에서의 학위 취득은 무산되었다.
SCI 논문 1편 게재는 국내 대학에서 박사를 따기 위한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이 아니기에, 논문 한 편을 썼다고 박사 졸업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참고로 UST는 일반 대학과 달리 정출연 연구실에서 운영되는 특징상 박사 학위를 빨리 받는 편이고, 천문연 UST 신입생 모집 공고를 보면 '''권장하는 박사 학위 과정 기간은 4년'''이고, 이 동안 SCI(E) 저널에 논문 2편을 게재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고 한다. 즉 논문의 숫자로 보면 9년이라는 시간 동안 1편을 겨우 낸 송유근은 4년 만에 2편을 쓰고 졸업하는 일반적인 UST 졸업생에 비해 '''반의 반도 안 되는 실적'''밖에 내지 못했다는 이야기다.

SBS 스페셜에서 진행한 인터뷰에 따르면 질문 중 하나가 '우리 은하의 블랙홀이 몇 개냐?'라는 질문이었다고 한다. 이 질문이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왔고 '잘 모른다' 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실제로 천문학적으로 아직 명확한 답은 없는 게 맞다.[13] 하지만 심사를 통과하려면 그냥 잘 모른다고 대답하면서 헛웃음 짓는 게 아니라 자신이 알고 있는 여러 학설에 따라 예측되는 블랙홀의 개수를 말하는 등 그냥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천문학적 근거를 알기에 모른다고 하는 사람이라는 입증, 즉 심사위원이 납득할 수 있는 답이 필요하다.[14] (참고: 그의 삶이 고난을 맞은 근본적인 원인을 추측해 본 글. #)
그런데 군입대 직전인 2018년 12월 초 갑자기 언론들과 연속 인터뷰를 한다. 이때의 인터뷰를 보면 계속 "7년간의 대학 생활 동안..."이라며 자꾸 7년을 강조한다. 2009년 2월에 학점은행제를 통해 학위 취득하며 바로 UST에 들어갔고 2018년 6월 졸업 심사를 통과 못 했으니 아무리 봐도 9년인데 인터뷰마다 대학 생활을 7년 했다고 꼭 말해서 독자들을 아리송하게 만들었다.
2018년 12월 22일 소송을 통해 UST 제적 처분 효력 정지를 얻어내 당분간 대학원생의 신분을 다시 회복하게 됐다. 이때 "2015년 미국 천문학회지인 천체물리학저널(The Astrophysical Journal·ApJ)에 발표한 논문이 표절 의혹에 휘말리고, 2016년 초 지도교수가 해임돼 실제로 UST에서 교육받은 기간은 7년에 불과하다"는 신박한 논리를 펴 냈다.
그러나 군입대는 2018년 12월 24일 예정대로 진행되며, 앞으로 군복무 후 복학했을 때의 행보를 지켜봐야 할 것이다. 이후 2019년 7월 11일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총장을 상대로 낸 제적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패소하여 대학에서 제적되었다.#[15][16] 이에 불복하여 항소심까지 갔으나 또 패소했다.# 따라서 영구수료로 학업을 마치게 되었다.

2.3. 병역 및 향후 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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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근 역시 대한민국 국민이기에 병역판정검사를 받고 국민의 의무 중 하나인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2015년 4월 21일 'SBS 뉴스토리'와의 인터뷰에서 송유근은 현역으로의 복무를 생각하고 있다고 밝혔다.
신체검사를 받는 해에 박사 학위 취득이 된다면 전문연구요원으로 병역을 대체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17], 현역을 선택하려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제가 현역으로 입대하게 되면 아마도 많은 젊은 친구들이 마음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에 가고 싶다”'''고 입대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물론, 현역이라는 게 현역병 입대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학사장교, 부사관 등으로 입대하는 것도 포함되며, 그의 적성을 살리고자 한다면 교수사관이나 과학기술전문사관 시험을 보는 것도 엄연히 법에서 보장하는 병역의무 이행 수단이고 윤리적으로 비난할 이유도 없지만 그의 학문적 역량을 볼 때 요원하고, 무엇보다 학위취득 실패로 인해 불가능해졌다. 무엇보다 저 발언은 대체복무 중에서도 전문연구요원을 합법적인 병역기피 수단으로 매도했다는 비판이 가능하다. 전문연구요원은 이공계의 박사 또는 박사급 인재가 군 복무로 인해 연구역량이 저하되는 것을 막고자 만든 제도인데,[18] 그 이유가 이들 인재의 안정적 확보가 바로 과학기술에서의 국가경쟁력과 직결되기 때문이다.[19]
표절 판정 이후 이루어진 인터뷰에서는 징병제를 '칸트의 정언명령'에 비유하며 국가가 명령하는 것은 그 자체로 선이라고 답변하였다. 징병제 자체를 문제 삼는 것 그 자체가 문제라고 한다. 참고로 정언명령은 무조건적이며, 어떠한 선행적 목표나 목적에 의존하지 않는다. 칸트가 정언명령은 '''그대가 하고자 꾀하고 있는 것이 동시에 누구에게나 통용될 수 있도록 행하라'''고 정의했다. 개인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닌 행하고자 하는 것이 있는 모든 존재에 적용된다. 고로 '''국가가 명령하는 것을 무조건 선으로 단정하는 것을 시작해, 국가가 시행하는 제도에 문제 삼는 것은 안 된다'''고 하는 것은 정언명령을 잘못 인용한 것이 된다.[20][21] 또한 칸트는 (고등학교 생활과 윤리 시간에 영구평화론이라는 이름으로 배우는) 본인의 저서인 "영구평화를 위하여"에서 국가 간의 영구 평화를 위한 예비 조약 중 하나로 '''상비군 폐지'''를 주장하였다. 즉 칸트의 사상으로 징병제를 정당화하는 것은 사실 칸트 본인의 주장과는 배치된다.
그리고 송유근의 저런 논리는 아무리 생각해도 과학기술전문사관이 될 능력이 없어서 현역병으로 입대하는 것을, 마치 현역병으로 군복무를 해야만 애국심을 발휘하는 것이라 주장하며 미화하고 있다고 밖에 납득이 되지 않는다. 현역병으로 입대하지 않을 경우 매국노라는 논리마저 성립되는데 그렇게 따지면 장교부사관으로 군복무를 하고 그것을 생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을 비하하는 발언이다. 송유근은 아주 잘못된 발언을 한 것이다.

권위에 대한 맹목적인 복종이 진실의 가장 큰 적이다. -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아돌프 히틀러의 유태인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하면서.

송유근과 정 반대의 주장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천재의 대명사로 불리는 그 아인슈타인이 했다. 아인슈타인은 송유근과는 정 반대로 국가가 너무 복종을 강요하면 그게 바로 진실의 불구대천이 된다고 했다. 물론, 상황이 상황인지라 아인슈타인은 자신을 탄압하는 나치 독일과 히틀러가 당연히 미울 수밖에 없었고 저 발언은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도망쳐야만 했던 상황에서 한 발언이다. 송유근은 아인슈타인이 무슨 고초를 겪은 사람인지만 알아도 칸트의 정언명령을 들먹이는 헛소리는 절대로 못 한다.
그는 2018년 12월 현역입대를 앞두고 있는데, 군대를 다녀오면 22살이 되어 과학고를 조기졸업하고 SKP를 4년만에 졸업한 이공계 특기생들에게 병역을 제외하고는 커리어상 뒤쳐지게 된다. 아니, 평범한 인문계고 이과 학생이 공대를 진학한 경우보다도 뒤처진 것이 된다. 전문연구요원을 위해 다른 대학원에 재입학할 계획도 밝히지 않았으므로 아마 (한국)학계를 떠나거나 제대 후 유학을 떠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점쳐진다. 하지만 사실상 논문 표절로 찍힌 상황에서 받아줄 외국대학이 있을지도 의문.
거기다 송유근은 한국에서는 비주류이며 사실상 제대로 먹고 살려면 박사 학위를 따야 하는 천문학 분야에 오랫동안 있었기 때문에 취업 분야도 매우 한정되어 있다. 당연하겠지만 학자로서 이룬 것도 변변찮고 논문 표절이라는 불명예를 쓰고 있기 때문에 학계에서 인정받는 곳에서 일이나 연구를 할 가능성은 높지 않으며, 어찌저찌 취업을 하더라도 주변 시선이 그를 그냥 두지 않을 것이다. 다른 분야의 연구를 한다고 해도, 오랫동안 '천재'로 떠받들여지던 것에 익숙할 그가 자존심을 죽이고 다른 분야에 매진을 한다고 한 들 눈에 띄는 성과를 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9~10년(2009년 3월 입학 ~ 2018년 6월 졸업)을 바쳐도 박사 학위를 못 딸 정도의 역량인데, 재도전한들 별반 다를 바 있겠는가?
다만 그가 학계에서 저지른 물의에도 불구하고, 대중적 여론은 여전히 우호적이다. 군대 다녀와서 계속하면 되니 힘내라는 등 옹호하는 여론(#, 인터뷰)이 많다. 논문 표절에 대해서도 어차피 논문 서론들은 다 비슷비슷해서 표절 걸릴 수도 있는 거 아니냐, 박사 디펜스를 통과하지 못한 건 교수들이 이상한 질문을 해서 그런 거 아니냐는 엉뚱한 댓글들이 기사에 달리고 있는데 이공계에서 석박사 과정을 거친 사람들이 보기에는 정말 어처구니 없는 주장이 아닐 수 없다.
2018년 10월, 일본에서 ‘오카모토 방정식’의 신화를 만들어낸 오카모토 명예교수와 공동연구 중이라고 한다.[22] “가슴 아프지만 내 나라에서는 내가 어떤 것을 하더라도 안티가 생길 것이다. 그래서 해외에서 연구를 계속하기로 했다”며 이유를 밝혔다. # 또한 “올 겨울에 군입대를 해야 한다. 입대 전까지 완벽한 2개 이상 논문을 완성하는 것이 목표다"라고 발언했다.
2018년 12월 24일 강원도 철원 6사단으로 입대했다. 입대했다는 소식 말고는 별다른 기사도 없는 걸 보면 위에서 언급한 목표는 달성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2019년 2월부터 현재 이천에 있는 제7기동군단 소속 7공병여단 본부대로 자대배치를 받았다.[23] 전역예정일은 2020년 8월 2일이다.
이후 2019년 7월 11일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총장을 상대로 낸 제적 처분 취소 청구 소송에서 패소하여 대학에서 제적되었기에 제대 후 활동이 불투명하게 되었다.
2020년 6월 19일, 대전고등법원 2심 재판부는 제적 처분 취소청구 항소심에서 “원심이 정당하고 원고 주장에 이유가 없다”며 원고 항소를 기각했다. 따라서 제적이 확정되었다.
2020년 8월 2일 병장으로 전역했다. 현재까지 송유근에 대한 최신 기사가 2020년 8월 26일자 기사이다.[24] 이후 4개월째 뉴스 소식은 없다.

2.4. 평가


'''송군의 표절 파문은 방송이 판을 벌이고 여론이 밀어주고 대학이 가담한 ‘천재소년 프로젝트’가 과연 필요했는지 되묻는다.''' UST는 저널 게재가 취소되고 나서야 지난달 25일 “책임을 통감한다”며 공식 사과했다. '''하지만 송군이 7년간 제대로 된 교육을 받았는지 의문은 계속 남는다.''' 연구자 ㅁ씨는 “송군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자신의 논문 인터넷 다운로드 횟수가 2200건이었다’며 ‘자부심을 갖는다’고 주장했다. 논문의 가치는 동료 학자들의 인용 횟수 등으로 결정되지 대중의 관심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다. 지나치게 폐쇄적인 환경에 있었고 언론의 관심을 의식하는 것 같다”며 “언론과 대학 등에 큰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 - 경향신문 박은하 기자

아직 20대이니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여줄지는 모르지만, 현재 송유근은 천재라는 이유로 국민의 혈세를 들여 장기간 국가적인 지원을 받았으나 그에 걸맞은 역량을 증명하지 못했고 논문 표절로 인해 연구자로서의 윤리성까지 의심받는다.
국내 학점은행제 학위 취득은 학사 학위에 준하는 학력을 인정받는 것이지 엄밀히 말해서 정규 학사 학위가 아니다. 그래서 외국 대학원 유학학점은행제 취득 학위는 받아주지 않는 경우가 많다.
송 씨와 그의 지지자들은 한국의 교육과 연구 환경에 대해서 불평 불만만 늘어놓고 있다. 물론 한국 고등 교육에는 개선해야 될 점도 많으나 엄연히 선진국형 대학 자원을 갖추고 있다. 보통 국내에서 실력이 좋은 사람이 외국에 나가면 인정 받는 경우가 많으나 단순히 한국이 싫어서 외국에 간다면 잘 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샌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비이성적인 네티즌들의 한결 같은 반응도 비판받을 점이 많다. "천재를 키워주지 못할 판에 질투심에 눈이 멀어 망쳐 놓았다.", "겨우 논문 그거 하나를 눈 못 감아주나." 라든지 "한국에서 태어났다면 아인슈타인도 이렇게 망했을 것이다." 같은 비이성적이고 윤리를 망각한 반응을 보면 사람들이 학술적 글쓰기(Academic writing)의 대원칙과 연구부정행위의 심각성을 제대로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 드러난다.

3. 사건사고 및 논란



3.1. 가짜 발명품 사건


인하대학교 합격후에 송유근의 아버지가 송유근이 발명했다고 언론에 (7살 송유근이 직접 시연까지 하며)공개한 발명품이 알고보니 송유근을 후원한'''중소기업 제품을 빌려왔던 것으로 밝혀진 과거'''가 있다.
2005년 10월 부친 송수진 씨는 당초 입학하려던 인하대에서 오명 당시 과기부총리 앞에서 송 군이 발명했다는 공기정화시스템을 시연하는 행사를 마련했다. 송수진 씨는 “유근이가 만든 공기정화기가 몇개월 안에 상용화되면 나라가 깜짝 놀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해당 중소기업은 “해당 공기정화기는 송 씨가 빌려 간 자사의 공기측정장비”라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이 장치를 개발한 당사자는 사과가 없으면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문제가 터지자 송유근의 아버지는 대규모 기자회견은 처음이어서 '''분위기에 휩쓸려 잘못 설명했다'''고 해명했다.
이 기기를 개발한 해당 중소기업은 송유근의 후원을 위해 200만 원을 송유근의 부모에게 지원했는데, 송유근의 아버지 송수진 씨는 이 회사에 찾아와, "송유근의 인하대학교 입학 행사에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참가하니, 이때 기계를 소개해 대량으로 납품할 수 있게 해주겠다"고 하고 이 기계를 대여했다고 한다. 분위기에 휩쓸린 게 아니라 원래부터 송유근의 발명품으로 띄우려는 악의적인 의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피해자나 금품거래가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넘어가 해프닝성으로 치부되고는 있지만, '''이 사건은 송유근의 부모의 심리나 행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가 된다.''' 실제로 송유근의 아버지인 송수진씨는 지속적으로 "국가적 영재인 유근이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지원이 부족하다"는 식으로 언플하면서, 국가나 학교 측으로부터 특별대우를 받아내기를 원했고 실제로 총 '''수억 원'''이나 되는 예산이 송유근을 위해 집행되었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송유근의 부모는 본업[25]도 그만두고 송유근의 "영재교육"에 몰두하고 있었으며, 송유근의 "영재성"을 높이 평가한 여러 후원자들의 지원으로 생계를 꾸렸다고 알려져 있다. UST소속의 천문연구원은 송유근의 어머니를 보조연구원 자격으로 채용한 바 있다.

3.2. '''저널 게재 논문 표절 및 철회 사건'''


2015년 8월엔 상대론적 우주론에 관한 논문과 블랙홀 자기극권에 관한 논문을 썼으며, 이를 SCI급 논문인 천체물리학 저널 'The Astrophysical Journal' 에 제출하여 2016년 2월 18세로 국내 최연소 박사가 될 것으로 보였지만, '''그 논문이 표절로 밝혀짐에 따라 박사 학위 취득이 무산되었다.'''[26]
자세한 것은 해당 문서를 참고.

3.3. 논문 문제제기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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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근이 2016년에 새 논문을 arXiv[27]에 올렸는데 이 내용은 디시인사이드물리학 갤러리의 유저에게 논문 내용의 실체를 의심받게 된다. 원문 추가 보충설명
사건의 발단은 김물리라는 논객이 물리학 갤러리에 '''『송유근 논문과 조용승 교수의 논문을 비교해봄』'''이라는 글을 올리면서 논란이 시작되었다.
[image]
이 글 끝에서 김물리는 "송유근의 베끼기 실력이 예전보다 많이 향상되었다"는 말을 관련글 마지막에 붙이면서 유사한 부분을 체크하고 출처와 주석까지 달아놓았다. 상세하게 표기를 해놓아 수포자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3.4. 논문 문제제기 사건에 대한 불평 불만


2018년 10월 21일 SBS 스페셜 <천재소년의 자화상 ‘스무 살, 송유근’>이 방송됐다. 기사 송유근은 자신이 조용승 교수의 논문을 베낀 것을 김물리가 비판한 사실에 대해 잘 알고 있는것으로 추정하지만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은 아니다. 다만 방송에서 송유근은 외국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것에 대해 “슬픈 얘기지만 내 나라에서는 뭘 해도 안티가 있을 거고 그래서 아예 외국에 나와서 연구를 계속하기로 했다”고 말했고 “앞에 몇 부분이 비슷하다고, 핵심 부분도 아닌걸. 그래서 그걸 가지고 (사람들이) 미국천문학회지 측에 메일도 보내고 항의하고 철회하라고 하니까. 그때는 그런 게 좀 화가 났었다”고[28]말했다.기사

3.5. 송유근 연구보고서에 참여한 연구원 논란


송유근의 연구보고서에 기록되어 있는 참여 연구원의 명단도 논란의 대상이다.
  • 박필호
  • 정연수
  • 윤양노
  • 이경숙
  • 최보실
  • 이문영
  • 백인영
  • 권현호
  • 안유섭
  • 조명화
  • 송유근
  • 송수진
  • 박옥선
친지를 연구원 목록에 끼워넣어 실제 기여도와는 상관없이 스펙 만들기에 활용하는 사례가 빈번히 있는 만큼 주의가 필요하다.

3.6. 진짜 천재인가?


생리학, 교육학적으로 6~9세 정도의 아동은 인지적으로 미성숙한 단계이기 때문에 여러 사고가 어렵다. 송유근은 만6세에 정보처리기능사를 취득하고 만7세에 검정고시를 합격했는데 이 나이대에 이 정도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29]
일단 초졸 검정고시의 경우 만12세 이상이 되어야 응시자격이 있다. 송유근의 경우 그래서인지 한국에선 보기드문 6학년으로의 특례입학까지 하면서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졸, 고졸 검정고시를 합격했다. 중졸,고졸 검정고시는 초졸검정고시 합격자혹은 초졸학력이면 제한없이 볼 수 있다. 물론 고졸은 중졸학력이 있어야한다. 어찌되었든 당시 송유근이 또래 아이들보다 학습능력 자체는 매우 뛰어났던 것은 맞다.
하지만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 및 국가적 관심이 필요할 정도의 '인재'였는지에 대한 의문은 점점 커져가고 있다. 특히 생리학적으로 성장 과정에서 의 성장 패턴에 따라서 지적 능력이 남보다 앞서다가 처지는 경우도 있고[30], 그 반대의 경우도 있는데, 단순히 어릴 때의 기초학습 능력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 가지고 영재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31]
달리기와 높이뛰기가 다른 종목인 것처럼, 성장의 빠르기(speed)와 최고점은 완전히 다른 영역이다. 진짜 천재라면 최고점이 높아야 한다. 성장 속도가 빠른 것은 천재나 영재가 아니라 조숙이다.
디씨의 한 물갤러는 송유근이 언론에 노출되기 시작한 2005년부터의 TV프로그램을 철저히 조사, 송유근이 기본적인 연산(분수의 나눗셈이나 2차정식)도 제대로 못했다고 주장했다. 링크 조사한 바에 의하면, 송유근은 '''수식을 이해없이 암기하여''' 답을 풀고 있었으며, 어떤 경우는 과정은 엉터리인데 답은 맞는 기현상도 발생했다는 것. 적분을 구분구적법으로 하는 기행도 저질렀는데, 구분구적법은 계산이 어려우나 문제가 쉬운 반면에 인테그럴은 계산이 쉬운 반면 경우에 따라 문제가 상당히 까다롭게 나올 수 있어서 그런 것으로 추정된다. 과학의 경우에도 암기를 하고 있었을 뿐이고, 증명문제 같은 것이 나오면 엉뚱한 방식으로 이상한 답을 내거나 슈뢰딩거 방정식을 계산할 때 의미없이 변수들을 돌리는 등 눈속임에 불과한 행동을 자주 했다. 당시에도 송유근을 면담해본 영재교육 전문가들은 대부분 ''''송유근의 영재성에 회의를 표했다''''는 사실도 뒤늦게 다시 알려졌다. 무엇보다도 수학이나 과학에서의 계산은 실제로 자기 머릿 속에서 암산이 된다고 해도 그 수식을 보여줌으로서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이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국가적인 천재에 대한 지원이 부족해서 혹은 교육과정이 잘 커버해주지 못해서 천재성이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는 송유근의 부모 측의 꾸준한 언론플레이가 있어왔지만, 국가적인 지원 투입 이후 '''송유근의 천재성이 검증된 사례는 전혀 없다.'''[32] 송유근 부모의 언플을 반박해주는 한 사례로, 만 15세 3개월의 나이로 2009학년도 서울대 자연대 수리과학부에 합격한 이수홍의 경우, 평범한 정규 교육과정을 밟으면서도 초등학생 때부터 영재 올림피아드를 2연패했고 6학년 때 중등 수학 대회에서, 중학교 1학년 때 고교 수학 대회에서 각각 금상을 탔으며, 고등학교때부터는 국제 수학 올림피아드 대표로 나가 금메달을 따는 등 각종 대회에서 기록을 세우며(심지어 이 모든 우수상을 최연소로 기록하며 세웠다.) 꾸준히 본인의 천재성을 입증했었다. 기사 링크
특별전형 입학도 다수의 연예인이나 운동 선수들이 특별전형으로 대학에 입학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유명한''' 사람이라면, 그리고 대학을 홍보하고자 하는 대학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다면 쉽게 할 수 있는 것이다. 송유근 부모는 한국의 교육현실을 계속 탓해왔지만, 정작 대학에서 송유근 한 사람만을 위해 자유롭게 원하는 분야를 공부할 수 있도록 특별 프로그램을 만들어주었을 때 정상적으로 졸업하지 않았다. 인하대학교에 입학한 이후 송유근은 B+ 정도의 성적을 받았다. 학점이 미래의 천재성을 증명해주는 것은 아니지만[33] 다른 대학교 1학년들보다 우수하다고는 할 수 없다. 이에 대해서 송유근이 다른 대학생보다 훨씬 어렸다는 점을 생각하면 B+도 훌륭한 성적 아니냐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 성적은 다른 학생들과의 수평적 경쟁이 아닌, 마치 체육특기자들이 실제 학업 실력과 상관없이 성적을 받는 것처럼[34] 교수 재량으로 별도 사정을 통해 받은 것이다. 그러니 만약 블라인드 채점을 했더라면 더 낮은 성적을 받았을 것이다.
결국 송유근은 인하대학교를 자퇴하고 학점은행제도를 통해 전자계산학과 학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즉, 평범한 인하대 물리학과 2학년 학부생 수준에도 못 미치는 학업능력을 가지고 물리학 학위가 없는 채로 물리학과 대학원에 진학한 것인데[35] 성인이라도 이 상황에서는 정상적으로 졸업하기 어렵다. 그리고 대학원에서 7년을 보냈지만 위의 논란에서도 볼 수 있듯이 성과를 얼마 보이지 못했다. '''나이가 어리다'''는 점과 어릴 때에 '똑똑하다더라'는 풍문으로 '''유명하다'''라는 점을 제외하고 본다면 송유근은 인하대 자연과학계열 1학년 B+ 정도 학업능력 및 학점은행제 전자계산기학과 학위를 가지고(즉, 학부과정 물리학도 제대로 공부 안 한 상태에서) 국내에서 일류라고 보기 힘든 UST 대학원[36]에 장기간 재학했음에도 거의 성과를 보이지 못한 석박사 통합과정[37] 학생일 뿐이다. 게다가 이번에 표절로 어마어마한 논란까지 저질러 버린 상황. 인재분류상으로 보면 '''신동이 아니라 조숙'''으로 남들에 비해 지적수준이 빨리 성장했다 뿐이지 남들보다 특출나게 뛰어난 지적수준이 있다고 말하긴 어렵다. 현재까지의 행보만으로 보면 그렇다. 사실 나이가 어리다 라는 말도 시간이 지나면서 의미가 많이 바랬는데, 송유근과 동갑인 97년생은 20세에 대학을 진학하여 미필, 무휴학으로 대학을 다녔다면 2020년에 학사학위를 취득한다. 이는 빠른년생(또는 조기입학), 과학고 또는 대학 조기졸업, 석박통합과정 등의 조건을 집어넣지 않아도, '일반적인 한국인 코스'를 착실히 밟은 여학생이 천재 소년 송유근과 동등한 학력(어쩌면 더 나은)을 갖게 되었다는 뜻이다. 송유근이 2018년 12월 25일 현역병으로 입대했기 때문에 과고를 조기졸업하고 ROTC나 학사장교로 군대를 간 사람과는 송유근이 상병, 이 사람들이 소위인 상태에서 만날 수 있다.
학습능력과 연구능력은 상당히 다른 경우가 꽤 있다. 이미 정답이 있는 문제를 해결해서 맞추는 학습능력은 시험을 통해서 검증이 가능하지만, 자신의 주장을 근거로 뒷받침하는 형태의 연구능력은 주제 선정부터 기존 연구 확인, 자료 확보, 실험까지 하나의 완결된 과제를 해결해야 입증이 가능하다. 거기다 수능이나 경시대회, 올림피아드 등 비교적 새로운 문제들이 매해 등장하는 시험의 경우에는 사고력 측정도 일부 가능하지만, 국가기술자격, 검정고시, 학부 시험 등은 상대적으로 나왔던 문제가 반복되는 경향이 강해 단기 기억력이 좋을수록 쉽게 높은 점수를 받는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송유근의 단기 기억력이 또래 학생들보다 유달리 뛰어나다면 이런 암기력이 유달리 요구되는 의과 대학에서는 잘 적응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 그것도 천재들이 주로 도전하는 자연과학 분야의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자 했다는 건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니었던 것 같다.
사실 송유근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비교할 수 없는 성과를 내는 진짜 신동들은 수학, 과학 경시대회 캠프 등에 가보면 널려 있다. 이들은 어릴 때부터 천재라고 언플하지도 않고, 한국의 교육제도와 입시제도에서 높은 경쟁을 뚫고 실력을 발휘한 경우이다. 그리고 한국의 영재교육은 송유근 부모의 주장처럼 형편없지 않고, 국제 수학과학 경시대회에서 한국은 최상위권의 성적을 유지 중이며 이들 중 절대 다수는 세계 유수의 최상위권 대학/대학원에 큰 문제없이 진학하여 이후의 삶에서도 연구자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한 예로 1세대 영재들로 꼽히는 90년대 중후반 수학/과학 경시 국가 대표들의 현재 진로를 보면 MIT 교수, 서울대학교 교수, 카이스트 교수, 포항공대 교수, 미국 주립대 교수, 실리콘벨리 중견기업 고위 임원, 전문의 등 매우 화려하다. 물론 어릴 때 두각을 발휘하던 아이들이 나중에 꼭 우수한 연구자가 된다는 보장은 없으나, 적어도 제도권 내에서 충분한 기회는 주어진다고 말할 수 있다.
2000년대 초의 실제 사례로, 초등학교- 중고교 검정고시로 스킵 (1년) - 너무 어린 나이에 대학을 보낸다는 게 걱정된다고 고졸 후 과학고 입학 후 조기졸업 (2년) - 연세대 의대 6년 - 인턴+레지던트 (5년) 같은 식으로 최연소 임상교수를 하고 있는 사례도 있다. 기사링크 또, 2010년대에는 초등학교 - 중학교 1학년 재학 중 영재학교 합격 (1년) - 영재학교 2년 - 서울대 자연대 같은 사례도 있다. 여기에다 대학원(석박사 통합과정) 5년으로 20대 중반에 군대를 전문연으로 해결함과 동시에 박사학위 취득이 가능하고, 해외유학의 길도 예전과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넓은 상황에서 환경 탓을 하는것은 도저히 납득하기 힘들다.
게다가 연구윤리에 대한 자각이 부족한 게 아니냐는 전문가들의 평도 있다. 표절로 논문 취소가 발표된 이후인 11월 28일 인터뷰에서는 자신의 잘못에 대한 반성을 하기는커녕 "자부심을 느낀다"는 발언으로 여러 과학 연구자들의 어안을 벙벙하게 했다. 여기에 첫 논문부터 표절판정을 받은 상황에서 "논문은 문학 작품처럼 써지는 게 아니다"[38][39]라며 타 분야를 폄하하여 겸손을 잃은 모습까지도 보였다. 정언명령(칸트)을 끌어온 군 관련 답변에서도 볼 수 있듯 철학적 이해에도 역시 오류가 존재한다. 게다가 덧붙이자면 생각의 폭도 좁아서 획일적인 것밖에 못한다. 설사 천재가 맞다고 해도 인성적인 문제가 상당한데, 이런 경우가 현실에서는...
마지막으로, 천재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단순히 일찍 무언가를 시작해서가 아니라, 그 분야에서 동시대 최고 수준의 어떤 결과물을 내놓았기에 그렇게 불리는 것이다. 리처드 파인만같이 정규 박사과정을 거친 사람도 천재라고 부르고 테렌스 타오같이 어린 나이에 빠른 속도로 통과한 사람도 천재라고 부른다. 알베르트 아인슈타인같이 학부만 제 시기에 졸업한 사람도 천재라고 부른다.[40] 이들은 독보적으로 뛰어난 연구 결과들로 자신의 탁월함을 증명해 보였고 바로 이것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천재로 인정하는 이유이다. 다시 말해 '''다른 사람이 못 하는 걸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천재'''이다. 물론 상위 1% 이상이긴 했지만, 단순히 남들보다 일찍 지식을 터득한다고 해서 천재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결론을 말하자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천재는 당연히 아니며[41], 신동이나 조숙 정도로 볼 수 있겠다. 분명 어렸을 때에는 자신의 또래 아이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는 보통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42] 이는 영재가 아니라 조숙이다. 영재라면, 어른이 되고 나서도 영재의 흔적을 남겨야 하는 게 원칙이지만 송유근은 어른이 된 이후 그 어떤 영재의 흔적도 없다. 김진태의 만화 영웅열공전 11화에서도 이런 인물이 나오는데 어렸을 때 자기 몸뚱이만한 바위를 짊어질 정도로 괴력이라 소년장사로 불리웠던 사람이 어른이 되어서도 딱 그만큼밖에 힘을 내지 못했고 사람들은 그런 그 소년 장사에게 더이상 장사라 부르지 않고 있다. 송유근과 똑같은 것이다. 언론에 의해 만들어진 모습이 아니라 송유근이 이루었던 것들 사실 그대로를 영재 발굴단이라는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영재들과 비교했을 때 정말로 압도적인가 하면 절대 그렇지 않다. 여느 영재들과 마찬가지로 '''부모의 욕심이 망친 케이스'''로 보는 것이 중론. 똑같이 또래보다 일찍 대학교에 진학했다 하더라도 빌 클린턴 대통령의 딸인 첼시 클린턴은 17살에 대학생이 되었어도 제대로 공부하고 대학교도 제대로 졸업했다. 그러나 송유근의 대학 생활은 그저 교수들의 좋게 말하면 배려, 나쁘게 말하면 특혜 투성이였는데 그 특혜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중퇴, 기껏 학점은행제로 겨우 학사 학위만 건졌으며 석박사 역시 그 많은 특혜를 받고도 계속 탈락했다. 송유근이 원하는 관점의 천재란 그저 학교를 일찍일찍 졸업하고 '''최연소 타이틀'''에 집착하는 것에 불과한데 정작 송유근은 그렇게 일찍 졸업하는 것조차 실패했다. 뭐 그런 비슷한 종류 ー 조기졸업 따위를 천재의 기준으로 삼는다 하더라도 도리어 첼시 클린턴이 더 천재에 가깝지 송유근을 천재라고 하면 '''말이 안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송유근의 안티테제이기 때문에 진짜 천재인 인물이 하나 있는데 그가 바로 바둑기사이창호 9단이다. '''송유근의 부모가 그렇게 자기 아들과 나란히 세우면서 칭송하던 그''' 이창호는 되려 송유근과는 정반대로 성장이 늦고 혼자 머리조차 못감을 수준[43]이었지만 '''바둑 하나만큼은 천재의 경지를 뛰어넘어 완전히 신(神)'''이다. 그러니까 어렸을 때 반짝 문제만 잘 풀고 아무것도 못하는 송유근과 바둑 하나만큼은 세계 최강자인 이창호 중에 누구를 천재라 칭하는지 굳이 물어볼 필요조차 없다. 천재란 이창호 같은 사람을 천재라 하지 송유근같은 사람을 천재라 하지 않는다. 더구나 송유근은 끊임없이 국내 정규교육과정을 디스하면서 계속 특혜를 받아서 편법과 꼼수로 통과'''(조차 못)'''했지만, 이창호는 (바둑과는 아무 상관없는) 초-중-고등학교 제도권 교육과정도 충실하게 다니면서, 바둑공부에 매진하였다. 오히려 그는 바둑에 매진하기 위해서 '''대학은 문턱조차 가지 않았음에도 천재 소리 듣고 산다.''' 이창호는 만 16세의 나이에 최연소 세계대회 우승을 했고 그의 전성기인 1990년대 중후반에는 말그대로 초토화시켰다. 알파고 이전에 이창호가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정도고, 세계 바둑계에 있어서 영향력을 끼친 두사람을 꼽는다면 '''우칭위안과 이창호'''를 꼽을 정도다. 하다못해, 스타크래프트의 이영호도 송유근보다는 천재라고 말할수 있다. 이미 10대 때 그 종목을 아예 초토화시켰다.
일례로 1978년생의 맷 세토는 1990년대 초반에 대한민국으로 따지자면 중학생 나이로[44] 윌가 주식시장을 뒤집어 까버려서 윌가의 천재소년이라는 호칭을 얻었는데 그 이래로 주식 투자에 관한 100가지 법칙을 만들어냈고 지금까지도 주식 투자의 화신이라 불리우고 있다. 이런게 진짜 천재나 영재에 속하는 것이지 송유근처럼 어른이 되고 난 이후에는 되려 평범하게 성장한 사람보다 더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은 조숙했다고 할 수 있을지언정 천재나 영재라고 할 수 없다.
'음악의 신동'으로 불리는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도 3살에 누나가 친 곡을 듣기만 하고 바로 따라 치는 것으로 시작하여 초등학생쯤 (내지는 그보다 어린 나이)에는 귀족들 앞에서 리사이틀을 열였고 35세에 눈을 감을 때까지도 교향곡 41곡을 포함한 수많은 명작들을 지었다. 송유근의 상황은 귀족 연주회에서 끝났을 뿐 자라서 죽을 때까지는 더 이상 좋은 작품을 못 내고 표절이나 하다가 비참하게 죽은 것으로 비유할 수 있다. 위의 맷 세토 예시에서 기술했듯 천재는 커서도 더 큰 천재성을 발휘할 수 있어야 천재지 커서도 제자리라면 그냥 어릴 적에 잠깐 '번쩍'한 조숙에 불과하다.
차라리 정상적인 제도권 교육을 착실히 이수하고 평범한 애들보다는 조금 더 괜찮게, 혹은 그런 능력이 없다는 것을 진작에 알고 그냥 평범하게 살았으면 그게 본인이나 가족들한테 나은 결과를 줄 수도 있었는데 부모 욕심 + 본인의 자만이 몰락의 길을 자초했다고 볼 수 있는 사례다.
물론 보통 평범한 사람들보다 학업을 일찍 마쳤다고 해서 이런 부실한 자원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빌 클린턴미국 대통령의 딸이자 대학 교수첼시 클린턴은 대학교를 또래보다 2년 일찍 입학했으며 그 이후 당당히 석사 및 박사 과정을 밟아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재직 중이다.
송유근에 의해 '''검정고시의 지독한 결함'''이 발견되었을 뿐 딱히 송유근이 학교를 짧게 다녔다고 해서 이렇게 된 것이 아니다.

4. 기타


채식주의자다.
2015년 SBS 《영재 발굴단》에 출연한 송유근은 2012년부터 운동을 좋아하게 되었으며, 공부와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체력이 뒷받침이 되어야한다면서 일과 중 가장 우선순위를 두는 게 운동이라고 전했다.# 특히 스노보드를 즐겨 탄다. 그뿐만 아니라 일렉트릭 기타드럼[45] 연주도 상당한 수준급이라는 언플을 했지만 실제로 드럼 연주자들의 평은 전혀 잘 친다고 할 수 없는 수준. 군 동기들의 증언에 따르면 운동 역시 대단히 잘하는 것이라고 하기 힘들며 체력도 평범할 뿐더러 상기된 축구 농구 등을 하는 모습은 거의 목격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2015년 기준으로 한국천문연구원 캠퍼스 내의 밴드 동아리에서 보컬기타를 맡고 있다.# 좋아하는 과학자는 리처드 파인만킵 손이라고 한다.
초등학교를 6학년으로 입학한 뒤 졸업하고 그 나머지 모든 학력을 죄다 검정고시로 올라가고 대학교만 인하대학교에 입학한 관계로 동창이 거의 없다. 대학 동창생들이라고 해봐야 최소 10살 이상 형이나 누나들이고 그나마도 같이 지낸 시간조차 얼마 되지 않으니 친분 같은 건 거의 없다. 게다가 이렇게 평판이 나빠진 이상 더욱 친분이 생길 수가 없다.
아울러 인간극장 출연 당시 송유근은 초등학교 재학 시절 같은 반 학생들과 좀처럼 어울리지 못했는데 그것은 본인의 친화력 탓인지 아니면 수준 차이가 너무나도 현저해서인지 아예 친구들을 피해 땡땡이를 치는 모습까지 나왔다. 김웅용 교수와의 만남에서 김웅용 교수가 친구를 많이 사귀라고 충고하였지만, 본인은 친구는 없어도 된다며 거절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론은 송유근에 거의 항상 호의적인 편이며 가장 큰 논란이었던 논문 표절사건에 대해서도 별 것 아닌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석박사 과정을 거쳐 본 적이 없는 일반 대중들이 그 심각성을 모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공교육, 특히 한국의 영재교육에 대한 불신을 적절하게 자극해주는 케이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일단 군입대를 19년도 초에 했으니, 2021년이 되어서야 이전과 비슷한 행보를 걸을수 있는 시간이 그제서야 주어지겠지만, 워낙에 유명세를 일찍 타서 그렇지, 20년말 제대를 한다쳐도 겨우 만 23세일뿐이다. [46]
너무 어린시절부터 학교를 다니지 않으며 또래와의 교류가 전혀 없다시피 하는 바람에 사회성이 결여되어 그런지, 지능이 낮아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현실을 전혀 자각하지 못하며 주변 사람들의 조언을 잘 수용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예를 들어 논문 표절 건에 대하여 전혀 반성하지 않고 '두고보자'라는 말을 한다거나, 한국에서는 무조건 학위가 필요하다는 김웅용 교수의 말을 듣고[47][48] 밤하늘의 별을 보는 데에는 학위가 필요없다는 뜬구름 잡는 소리를 한 적이 있다. 또한 한창 표절로 논란이 되었을 때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하여 '논문 다운로드 수가 2200개를 넘겼는데 상당히 이례적인 경우라고 들었다'라고 하며 자부심을 나타낸 적이 있다. 당연히 사람들이 정말 표절논문인지 확인하고자 했기 때문에 다운로드 수가 그렇게 많이 나온 것이다. 이는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이유를 추측할 수 있는 것인데, 당시 충분히 사리분별을 할 수 있었던 19살의 나이에 그런 발언을 한 것은 웬만큼 사회성이나 지능이 결여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발언이다.

5. 방송 활동


''''송유근=인간극장 천재소년''''이라는 이미지가 있다. 사실 그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KBS의 인간극장이 아니라 2004년 SBS의 뉴스 보도가 첫 시작이었다. 영재 "학교 안 보낸다"
2005년 1월 인간극장에 출연하여 '천재소년' 송유근으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2005년 11월에 코오롱건설의 아파트 '하늘채'의 모델로 발탁되어 광고를 찍었다. 당시 광고는 집중력을 강화시켜 준다는 파란색으로 방 색깔을 바꿔주자 열심히 공부를 하게 된다는 '컬러 테라피' 개념을 강조하는 내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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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뉴스토리에서 공개한 어린시절 송유근 씨의 모습. 이 짤방이 '송유근의 천재성'이라며 여러 커뮤니티에서 인기를 끌었다. 반면 초끈 이론과 드럼의 음파가 도대체 무슨 연관이 있냐며 의문을 표하는 사람도 있었다.[49]
2015년 4월에는 SBS'영재발굴단''뉴스토리'에 출연하여 한국천문연구원에서 석·박사 통합과정 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5년 5월에는 SBS가 주최하는 '서울 디지털 포럼(SDF)'에서 연사로 초청된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이자 영화 인터스텔라의 책임프로듀서인 킵 손 박사와 인터뷰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행사 당일 있었던 기자회견에서 본인도 나중에 영화를 제작해 보고 싶다고 말하기도 하였다.
SBS의 뉴스 보도로 세상에 알려지게된 인연 때문인지 SBS에서 종종 불러주는 듯하다.
이후 2018년 10월 21일 SBS 스페셜 <천재소년의 자화상 ‘스무 살, 송유근’>이 방송됐다. 기사 해당 방송에서는 UNIST에서 아무런 이유 없이 송유근의 세미나 참가 및 발표를 취소했다는 나레이션이 나와서, 송유근이 피해자로 보이게끔 연출하고 있다. 그런데 방송에 나오는 이메일의 내용을 보면 송유근과 SBS 측이 UNIST의 절차를 무시하고 참가하려는 무례함을 보여 세미나 참가가 취소된 것이다. 이메일이 띄어진 컴퓨터 화면 장면이 일부 네티즌에게 캡쳐되어 알려지면서 의혹이 제기 되고 있다.#, # 결국 해당 방송은 "사건의 중심이었던 박석재 전 지도교수와 송유근 씨의 주관적인 인터뷰만을 담아내 논문 표절을 다뤘으나 이슈를 다루기에는 너무나 감상적인 연출이었고 편파적 의견들은 방송의 균형을 흔들어 놓았고, 또한 방송 내레이션과 출연자의 인터뷰 내용도 문제가 된다. “인용 문구를 넣지 않은 게 화근” “앞에 몇 부분이 비슷하다고. 핵심 부분도 아닌 걸”이란 발언은 논문 속에 언급된 것에 대한 도를 간과한 위험한 발언"이라는 비판이 있다. 또한 조작 방송 논란은 많은 비판거리가 되었다.#, #

You should know the typical visiting manner(당신은 일반적인 방문수칙을 알아야 합니다.)

송유근의 언론플레이를 나타내주는 학회 세미나 참가 취소를 알리는 이메일 문구 [50]


6. 약력


  • 2004년 인하대학교 영재교육원 입학
  • 2004년 정보처리기능사 합격
  • 2004년 심석초등학교 입학(6학년)
  • 2005년 심석초등학교 졸업
  • 2005년 고등학교 입학(중학교 졸업) 검정고시 합격
  • 2005년 고등학교 졸업(대학교 입학) 검정고시 합격
  • 2005년 인하대학교 합격
  • 2006년 인하대학교 자연과학계열 입학 / 중퇴
  • 2009년 학점은행제 전자계산학 이학사 취득
  • 2009년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입학(석박사 통합과정)
  • 2018년 군 입대
  • 2019년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 영구수료(재학연한 초과)[51]
  • 2020년 예비역 병장 전역

7. 참고 문서



[1] 지신공파 36대손[2] 재학연한 초과로 제적되어 영구수료[3] 외동아들이다. 아버지 나이 40세, 어머니 나이 39세에 그를 보았다고 한다.[4] UST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려면, SCI급 저널에 1개 이상 제1 저자로 논문을 게재해야 한다. 논문이 철회되어 박사 학위시험 자체가 취소된 상황.[5] 사업이 제법 잘 됐는지 연봉이 억대였다고 한다. 송유근을 교육하기 위해 부부가 모두 직장을 그만뒀다.[6] 전국의 사립 초등학교 중 농촌 지역에 있는 유일한 사립 초등학교이다.[7] 충남대 물리학과는 2000년대 이후 고체물리랑 광학 비중이 높은 곳이라고 한다. 다만 00년대까진 천문학과와 학부로 묶여있었고 전공간에 상관관계가 밀접한지라 교류가 있긴 하다.[8] 서울대학교 천문학 학사, 텍사스대학교로 한국천문연구원 원장직을 5년간 역임한 바 있다. 별명은 블랙홀 박사. 대중저술가로 잘 알려져 있다. 여담으로 이 사람은 환단고기매우 사랑하는 듯하다.#[9] 중징계 결정이 내려지기 며칠 전에 다시 이슈가 된 논문 문제제기 사건으로 징계를 당했다는 기술이 있었으나 이는 사실이 아니며, 2015년 후반에 발생한 표절 및 게재 철회 건에 대한 진상조사 및 심의가 몇 개월간 이루어진 끝에 결론이 내려진 것이다.[10] 이 와중에 이 기사를 쓴 기자는 송유근이 왜 박사학위를 딸 수 없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점은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영재 한명도 제대로 못 품는 한국교육시스템이라며 비판하고 있다.[11] 참고로 APJ는 미국 저널이다.[12] APJ에 준하는 SCI급 저널이긴 하다.[13] 2016년까지는 수십 개 정도로 알려져 있었으나 2016년경 수만 개라는 결과가 네이처에 게재되었다.[14] 사회성 문제인 동시에 추론능력이 있는지, 그래서 논리적 사고력을 갖춘 독립적인 연구자가 될 수 있는지 그 자격을 물어본 것이다.[15] 굳이 변호하자면, 재판부는 “표절의혹 자체가 네 책임” 이라고 송유근의 주장을 부정했지만, 그 표절한 논문이 지도교수 박석재의 옛 논문이라는 것은, 결국 박석재의 지시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송유근 딴에는 억울할 수도 있는 부분.[16] 앞의 주석에 한마디로 쉽게 반박이 가능한데 바로 '''송유근도 표절 논문의 공동 교신저자'''라는 사실이다. 해당 논문에 문제가 발생했을 시에 송유근은 박석재와 동등한 수준의 책임일 졌어야 했던 상황이다. 즉, 표절 처리된 직후 박석재 박사와 함께 UST에서 바로 쫓겨나도 할 말이 없던 상황. 다만 UST에서 비슷한 시기에 여러 최연소 박사 후보들을 입학시켰는데, 최연소 박사학위 타이틀 확보에 성공한 이후 제적처리 한걸로 보아. 송유근 입장에선 먹버당한 듯한 배신감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17] 전문연구요원 복무도 엄연한 합법적 병역의무 수행의 방법 중 하나이다. 다만 현역이 아니라 보충역이며, 복무가 끝나면 보충역 이등병으로 소집해제된다. 현행 전문연구요원 법에 따르면 지원자격은 석사학위 및 '''석박사통합과정 수료자'''이기 때문에 지원자격은 있다. 하지만, 과연 송유근이 과연 그 시험을 통과할 능력이 있는지는 의문이다. 객관적으로 송유근은 학업능력을 증명했다고 볼 근거가 부족하다[18] 이공계 박사 하나가 배출되기 위해 드는 시간과 비용이 얼마인지 생각해보자[19] 무엇 때문에 그 일본 제국이 미쳐 날뛰던 그 때에도 이공계 대학생의 징병을 면제했는지 생각해보자. 심지어 이 면제혜택은 피지배자인 조선인에게도 해당되었다.[20] 대한민국을 지키기 '''위해서''' 군대를 가는 것과 같이 수단적이고 조건적인 것은 정언명령이 아니다.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와 같이 무조건적이고 우리의 의지가 시키는 것이 정언명령이다. 쉽게 말해 맹자가 '우물에 빠진 아이를 보면 (자신의 평판이나 업적을 위해서가 아니라 무조건) 누구나 구하고 싶어진다' 고 말하는 것과 비슷하다.[21] 또한 칸트의 정언명령 이라는 것은 개인의 준칙으로서 혹은 철학사적 영향력으로서의 의의는 있을지언정 현대 철학계에서 진지하게 논의되는 주제는 아니다. 더군다나 모든 것의 인과관계를 밝히고자 하는 과학계에서는 말할 것도 없다. 당장 위에 예시로 든 '사람을 죽이면 안된다' 라는 사고방식까지도 생물학적(살인을 금기시함으로서 생존 능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진화), 역사학적(살인에 대한 사회 전반의 인식의 변화), 인류학적(살인에 대한 상반된 태도를 가진 두가지 이상의 사회의 비교연구)등 인과관계를 밝히려는 학문 연구의 대상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또한 애초에 무신론자를 자처하는 과학자가 정언명령을 진지하게 이야기한다는것 자체가 넌센스다.[22] 이 오카모토 교수라는 사람도, 현재는 현역일선에서 연구를 하고 있지 않은, 사실상의 '명예교수' 라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한마디로 딱 박석재 교수 급이라는 것. # [23] 동일 시기의 제7기동군단 군단장이 병력들을 쥐어짜기로 악명 높은 '''윤의철 중장'''이었다. 그는 7군단에서 2019년 11월까지 재임하고 이임되었다. [24] 아직도 정신 못차리고 자신과 송유근이 부당한 처벌을 받았다고 밑도끝도 없이 우기는 박석재씨 주장이 압권. 이 사람이 진짜 박사학위 가진 과학자 맞나 싶어 보는 사람이 부끄러워질 수준이다.[25] 둘 다 교사 출신. 다만 교사생활은 그만둔 지 오래되었고, 퇴직 후 학원 운영을 오래했다고 한다.[26] 공식 철회 내용[27] 코넬대에서 운영하는 논문 저장 사이트로 정식으로 발표한 게 아닌 논문을 올려서 피드백을 받기 위한 일종의 지식 공유의 장이라고 보면 된다.[28] 후술된 바와 같이 이건 사실이 아니다. 앞에 몇 부분 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표절이었고, 핵심 부분도 표절이다.[29] 사실 검정고시 난이도가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고졸 검정고시도 중학교 공부 + 수학 공부 조금으로 쉽게 합격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다만, 7살 아이가 중학교 수준 이상의 공부를 한 것은 사실이다.[30] 키도 초등학교 때 큰 키였는데, 중고교 때 안 자라는 경우도 있고, 반대의 경우도 있는 것과 비슷하다.[31] 이 점은 과학뿐만 아니라 예체능계도 마찬가지다. 어릴때 신동이라고 불렸던 여러 운동 선수들이 성인이 되어서도 그런 능력을 발휘하는 경우도 많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다. 일례로 보얀 크르키치가 그렇다. 보얀 키르키치는 어렸을 때는 축구선수로서의 천재성을 보인 데다가 그 리오넬 메시의 10촌 동생인지라 혈통까지 완벽해서 천재인 줄 알았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나서는 되려 어지간한 축구약소국 국가대표 백업 선수보다도 기량이 못하며 결국 보얀 키르키치의 인재가치는 조숙으로 최종 결론이 났다.[32] 천재들에 대한 국가적인 지원이 없다는 것 자체도 헛소리다. 우리나라는 법률로 영재육성에 필요한 정책을 수립할 것을 요구하는 나라다. 그 결과 특목고가 있는 것이고, 영재학교도 있는 것이다.[33] 학점이 매우 낮은 사람 중에서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사례가 몇 번 있고 학점이 좋았는데도 불구하고 대학원에서 쓸려나가는 경우는 훨씬 많다.[34] 정유라 사건으로 학사 관리가 본격적으로 강화되기 전 운동 선수들은 일반 학생들이라면 제적당하고도 남을 학사경고 횟수로도 살아남을 수 있었다. 1996년 임선동이 졸업 이수 학점 취득 미달로 제 때에 졸업하지 못했던 것이 그래서 유난히 돋보였던 이유다.[35] 인하대생의 증언에 의하면 평범한 인하대생이 대학원에 진학하면 보통 자대 대학원에 진학하며, 학점이 높거나 뛰어나다면 국내 최상위 대학원, 또는 해외 대학 진학을 노리는데, UST의 경우 학점을 어느 정도는 보지만 대학원 진학을 진지하게 고민할 정도로 공부를 제대로 한 인하대생 입장에서는 그렇게 어려운 커트라인도 아니고 하여튼 연구 분야로 나가든 말든 보통의 인하대생은 갈 이유가 없는 학교라고. 후술한 UST의 특수성을 생각해보면 더더욱.[36] 전국의 내로라 하는 국가연구원들의 연합체이긴 하지만 강의와 본인 연구 중심의 일반대학과 다르게 정부 과제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연구기관이기에, 강의를 계속 하면서 교수가 원하는 주제를 일관되게 연구 할 수 있는 일반 대학에 비해 학생을 가르친다는 측면에 집중하는 것이 어려울 가능성이 있다.[37] 일반적으로 석사와 박사를 거칠 경우 석사 시기에 논문 작성을 해야되지만, 석박사 통합과정을 거칠 경우 석사 시기에 논문 작성을 생략하고 바로 박사로 간다. 석사 시기에 논문 작성을 하는 방법이나 논문 주제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있었다면 이러한 사태를 피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38] 이것도 실은 타 분야 폄하 및 겸손 상실 정도가 아니라 그냥 무지한 거다. 마치 이학 논문만이 오랜 시간 머리를 많이 써서 공을 들여야 잘 나올 수 있고 문학 작품은 머리를 많이 안 써도 즉흥적으로 빨리빨리 양산할 수 있다는 식의 말인데, 문학 창작도 논문과 마찬가지로 많은 생각과 오랜 퇴고 작업이 필요하다. '''창작의 고통'''이라는 말이 절대 괜한 소리가 아니다. 물론 일부 문인 중에는 글을 즉석에서 바로바로 청산유수로 쓸 수 있는 능력자들도 있으나 그들도 작업을 절대 초고에서 끝내지 않는다. 퇴고를 거쳐 다듬는 과정은 천천히 썼을 때랑 똑같이 거친다. 고대 중국의 어느 유명 문인은 초고를 방 벽에 붙여놓고 그 안에서 살면서 몇 달간 수시로 퇴고를 했더니 최종 작품은 초고에서 적혀 있던 한자 위치가 전부 바뀌어 있었다는 일화가 전해질 정도이다.[39] 음악 즉흥 작곡도 예시가 비슷하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처럼 머릿속에 악상이 마구 떠올라 즉석으로 오선지를 휘갈기는 사람은 많이 있지만 그들도 다듬는 과정은 항상 거쳤다. 루드비히 판 베토벤의 경우 심각하게 꼼꼼하고 신중하여 음표를 그리다가도 오선지에 수정 취소선을 자주 긋는 등 작곡 속도가 다른 작곡가들에 비해서 심히 느렸는데도 불구하고 작품 발표 후에조차 수정을 할 정도였다. 베토벤이 선배 모차르트와 달리 오페라를 피델리오 하나밖에, 교향곡도 9곡밖에 못 쓴 이유 역시 그의 완벽주의 성향 탓에 '양산'이 불가했기 때문이었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자필 악보 유품을 보면 오선지 위의 취소선 수 및 정정 횟수가 눈에 띄게 차이가 난다. 사족이지만 베토벤을 시작으로 9번 교향곡의 저주가 시작된 이유 역시 교향곡의 아버지 프란츠 요제프 하이든 및 모차르트(41곡)가 활동 시기에는 고용형 음악가가 많아서 양산을 해야 했던 과거와 달리 낭만주의 시대 이후로는 프리랜서형 음악가들이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하면서 작품을 대량 양산 대신 진정한 소량 예술 창작의 개념으로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40] 아인슈타인은 학업 능력 여부를 떠나서 정치감각이 상당히 탁월했는데 아돌프 히틀러가 어떤 인물인지 일찌감치 간파하고 미국으로 도망쳤을 정도였다.[41] 다만, 조선시대 '''4~5살 때 천자문, 사서오경 떼었다''' 같은 관점의 천재라면 천재라고 볼 수는 있겠다. 현대 사회가 생각하는 천재가 아닐 뿐...[42] 심지어는 반에서 2~3등을 하고 평범하게 대학을 졸업한 뒤 박사 학위를 취득한 사람보다도 지적 수준이 훨씬 뒤떨어지는 게 송유근이다. 적어도 그 사람들은 송유근이 취득하지 못한 박사 학위를 보유했다. 그사람들도 영재라고 부르지 않는 판국에 그 사람들보다 훨씬 못한 송유근은 영재라 불릴 자격조차 없다. 송유근이 영재라면 박사 학위를 받은 모든 사람들이 전부 영재라고 불려야 한다.[43] 농담이 아니라 실제 사실이다. 이창호는 10대 초반까지도 혼자서 머리도 못감고, 신발끈도 제대로 못맬 정도로 일상 생활에선 심각할 정도로 발달이 늦었다. 11살 나이에 조훈현 9단의 집에 내제자로 들어가 숙식하며 바둑을 배웠는데, 조 9단의 부인인 정미화씨는 이창호가 거의 1~2년 동안 머리 감기, 세수, 신발끈 묶기 같은 기본적인 일상생활에 필요한 활동을 하나도 할 줄 몰라서 자신이 해 주었고, 결국 아기들이나 신을 벨크로 신발을 사서 신겨야 했다고 술회했다. 그럼에도 이창호의 바둑 실력은 이미 국내 정상권에 근접하고 있었다. 심지어 이창호는 군대 훈련소에서도 신발끈을 제대로 못 묶었다는 일화가 있다. 보다 못해 조교가 직접 군화에 바느질해 똑딱이 단추를 달아주었다.# [44] 실제로는 1987년 9살 나이에 주식 투자를 처음으로 공부하기 시작했다.[45] 신해철의 '그대에게'를 연주하는 동영상이 유튜브에 올라온 적이 있다. 데일리한국 [46] 이미 일반 이공계 군필 3학년 학부생과 비교되는 순간부터 무언가 꼬인 상태라는 의미다. 그리고 교양과목인 기초자연과학(미적분학, 일반 물리학 등)을 제외하면 이공계 지식이 하나로 묶이지도 않는다. 자연과학부 내에서도 각 학과의 과목과 실험 방식은 매우 상이하며, 천문학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고 해서 컴퓨터공학이나 토목공학 등의 공학 지식이 생기는 것도 아니다. 일반 자연계 학부생이 전기전자공학 + 화학과 같이 복수전공을 하면 (제대로 커리큘럼을 따라가는 경우) 피똥 싸게 되어있다.[47] 과학자로서 커리어를 쌓기 위해 학위가 필요한 것은 서양 선진국들도 마찬가지다. 김웅용 문서를 확인해보면 알겠지만, 이 양반도 송유근처럼 어린시절 천재소년으로 알려졌었는데, 자신이 콜로라도 대학교 박사과정을 청강하고 NASA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학위가 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한국에서 인정받지 못했다고 주장하는 언론플레이를 하고 있다. 물론 본인이 말하는 콜로라도 대학교 박사과정 청강과 NASA 근무 경력은 검증된 바 없으며, 다시 말하지만 학위가 없으면 과학자로 인정 못받는건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다.[48] 물론 일본에서는 다나카 고이치라는 '''학사 출신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오기는 했다만, '''이 사람은 20년 가까이 자기 직장에서 지도교수나 대학원 선배 같은 도와줄 사람 하나 없이 열심히 본인의 일에 꾸준히 매진하면서 그런 결과를 얻어낸 것이다.'''[49] 초끈 이론은 모든 물질의 입자는 초대칭을 이루는 하나의 끈이며 이 끈의 성질(진동, 장력 등)에 따라서 입자의 패턴이 결정된다는 이론으로 드럼의 파동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50] 세미나 참가를 할 때 지켜야하는 절차를 무시해버린 문제도 있지만, 일개 발표자, 그것도 정규 발표자도 아닌 extra one으로서 예외적으로 참가 및 발표를 배려받은 발표자가 학회를 자기선전, 언론플레이의 수단으로 삼으려는데 어느 학회가 이런 행위를 용납하겠는가. 학회씩이나 되는 곳에서 저런 표현까지 썼다는 것은 사실상 대놓고 쌍욕한 것이나 다름없는 수준이다.[51] 2018년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의 재학 연한을 초과하여 제적 처분을 받아 소송을 거쳤으나 2019년 최종 제적 처리되어 학위 취득에 실패하고 영구수료자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