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원군/행정
[image][1]
4읍 7면이다. 김화읍을 제외한 읍 지역은 모두 과거 철원군, 김화읍과 면 지역은 모두 과거 김화군이었다. 취소선을 그은 면은 일반 주민이 거주할 수 없는 구역인데, 옛 철원군 지역의 휴전선 인근 면들이 인근 읍에 병합된 것과는 달리 옛 김화군 지역에 속한 이들 면들은 통일을 대비해 면 행정단위 자체는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이들 지역의 봉인을 해제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남북통일 뿐이다.
1945년 기준으로는 철원군이 1읍 9면, 김화군이 1읍 11면이었다. 6.25 전쟁 전에는 전지역이 북한지역이었으나, 1953년 휴전협정 체결 결과
- 철원군은 마장면 전지역, 내문면의 6개리 중 5개리, 북면의 6개리 중 4개리, 인목면의 6개리 중 2개리, 묘장면과 어운면의 북쪽 극일부를 제외한 철원읍을 포함한 나머지 1읍 5면을 수복하였다. 묘장면과 어운면은 대부분이 한국령임에도 불구하고 행정구역을 더 두기 귀찮다는 이유로 각각 철원읍과 동송읍에 편입되어, 지방의회 선거구를 읍면마다 1개씩 뽑던 당시 부활운동이 벌어지기도 했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2&oid=087&aid=0000005474 수복지구와 동인접지구의 행정구역에 관한 임시조치법에 따라 1963년 1월 1일을 기해 철원군 신서면(과 신서면에 편입된 인목면 수복지역)이 경기도 연천군으로 이관되었다.
- 김화군의 경우 김화읍을 포함해 1읍 2면(김화읍[2] , 서면, 근남면)을 완전히 또는 거의 대부분 수복하였으며, 5면(근동면, 근북면, 원동면, 원남면, 임남면)은 부분 수복하여 휴전선(비무장지대)을 사이에 두고 남북에 걸쳐 있다. 금성권 4면(금성면, 원북면, 창도면, 통구면)은 면 전체가 미수복지역이다. 대한민국은 수복한 김화군 지역에 김화군을 재설치하였으나 수복지구와 동인접지구의 행정구역에 관한 임시조치법에 따라 1963년 1월 1일을 기해 김화군 관할지역 1읍 7면이 철원군으로 편입되었다.[3]
1. 舊 철원군 지역
마장면, 내문면, 북면은 전지역 혹은 거의 대부분이 북한지역이며, 인목면과 묘장면, 어운면은 전술한 대로 상당 지역이 한국령이지만 묻혔다. 묘장면 혹은 무장면은 없어진지 50년이 되었는데 이태준의 출생지여서 그 이름(畝의 한자 독음)이 어디가 맞는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진다. #
1.1. 철원읍(구철원)
1.2. 동송읍
1.3. 갈말읍(신철원)
2. 舊 김화군 지역
2.1. 김화읍
2.2. 서면
2.3. 근남면
2.4. 근북면
3. 민통선 안에 있는 행정구역
3.1. 근동면
인구는 '''0명'''. 과거 면소재지는 교전리이며, 광삼리·방통리·수태리·아침리[4] ·하소리를 관할한다. 이 중에서 광삼리와 방통리만 수복되었으며 민통선 내에 있다. 광삼리에 승리전망대가 있으며 승리전망대로 이어지는 도로가 하나 있다. 금강산선이 휴전선을 넘어간다.
3.2. 원남면
인구는 '''0명'''. 과거 면소재지는 개야리이며, 경상리·구룡리·남둔리·노동리·백양리·월봉리·주파리·죽대리·진현리·풍동리를 관할한다. 이 중에서 노동리·주파리·죽대리·진현리·남둔리가 수복되었으며 민통선 내에 있다. 철원군에서 유일하게 화천군 농어촌버스가 다니는 지역. 주파령을 통해 화천군 상서면으로 빠진다. 당연히 민간인은 탑승 불가, 군 장병 휴가용 되시겠다. 칠성전망대가 주파리에 있으며, 방문을 원하는 민간인은 차량을 가지고 화천군 산양리에서 출입신청을 하면 방문 가능하다. 월요일은 휴무.
3.3. 원동면
인구는 '''0명'''. 과거 면소재지는 장연리이며, 등대리·방평리·세현리·송실리·용연리·율사리를 관할한다. 이 중에서 등대리와 세현리만 수복되었으며 민통선 내에 있다. 아래의 임남면과 더불어 다른 지역에서 연결되는 도로가 아예 없는 지역이다.
3.4. 임남면
인구는 '''0명'''. 과거 면소재지는 사천리이며, 과호리·노남리·달전리·두목리·면천리·봉잔리·상판리·수동리·어운리·좌패리를 관할한다. 이 중에서 유일하게 수동리만 수복되었으며 민통선 내에 있다. 철원군에서도 가장 추운 곳 중 하나로 기온 관련 뉴스에 자주 나온다. 예시 미수복된 북한 지역의 임남면(달전리)에는 '''금강산댐'''으로 잘 알려져 있는 임남댐[5] 이 있다. 평화의 댐이 지어진 원인이 된 그 금강산댐 맞다. 여기도 화천권일 뿐만 아니라, 원동면으로 넘어가려면 북한강을 헤엄쳐서 건너지 않는 이상 화천군으로 우회해야하는 실질월경지이기도 하다. 한편 구 면소재지를 비롯한 북한 지역 임남면 대부분은 금강산댐에 수몰되었다. 위의 원동면과 더불어 다른 지역에서 연결되는 도로가 아예 없는 지역이다.
4. 미수복지역
4.1. 舊 철원군 지역
4.1.1. 내문면
과거 면소재지는 창동리이며, 내문리·독검리·마방리·반석리·오동리를 관할한다. 1914년 철원군에 부분흡수된 경기도 삭녕군에 해당한다. 독검리만 수복되어 철원읍에 편입되었다.
1952년, 1953년 화살머리고지 전투가 일어난 '''화살머리고지 '''가 독검리에 있다. 2018년 판문점 선언이후 남북 전술도로가 처음으로 이어진 곳이며 남북공동 유해발굴을 추진중이다. DMZ 평화의길 철원코스 사전 신청시 가볼 수 있는 곳이다.
4.1.2. 북면
과거 면소재지는 회산리이며, 보막리·외학리·용학리·유정리·홍원리를 관할한다. 유정리와 홍원리가 수복되어 철원읍에 편입되었다. 홍원리는 통칭 '풍천원(楓川原)'이라 불리며, 태봉국 철원성(통칭 '궁예도성') 터와 경원선 월정리역이 바로 이 곳에 있다.
4.1.3. 인목면
과거 면소재지는 도밀리이며, 갈현리·검사리·덕산리·승양리·신현리를 관할한다. 검사리와 승양리를 제외한 나머지는 부분 수복되었다. 원래 인목면은 1914년 삭녕군이 폐지되면서 철원군에 편입되었으나, 1954년 수복지구임시행정조치법에 따라 신서면에 흡수되었다. 1963년 신서면이 경기도 연천군에 편입되면서 같이 넘어가 버렸다(…). 어찌보면 좀 기구한 면. 덕산리에 열쇠전망대가 있다.
4.1.4. 마장면
과거 면소재지는 장포리이며, 남원리·대전리·밀암리·왕피리·입석리를 관할한다. 舊 철원군의 읍면 중 유일하게 전 지역이 북한령으로 넘어간 곳이다. 1914년 철원군에 부분흡수된 경기도 삭녕군에 해당한다. 북한 철원군의 첫 소재지.
4.2. 舊 김화군 지역
4.2.1. 금성면
과거 면소재지는 방충리이며, 경파리·매회리·별양리·상리·어천리·초서리·탑거리·후천리를 관할한다. 1917년에 군내면(郡內面)에서 개칭되었다. 북한 김화군 소재지.
4.2.2. 원북면
과거 면소재지는 추의리이며, 감천리·고대리·고직리·당현리·법수원리·탄감리를 관할한다.
4.2.3. 창도면
과거 면소재지는 창도리이며, 기성리·득사리·방성리·성현리·유창리·태백리·학방리·회현리를 관할한다. 1914년에 기성면(岐城面)과 오산면(梧山面)이 합병되어 기오면(岐梧面)이 되었고, 1939년에 개칭되었다. 일부 지역은 금강산댐으로 수몰됨. 이름대로 북한 창도군의 첫 소재지(1952년 설치)였으나, 설치 2년만인 1954년에 북한이 김화군을 설치하면서 이 지역을 편입해 아래의 통구면으로 소재지를 옮겼다.
4.2.4. 통구면
과거 면소재지는 현리이며, 당평리·도파리·보막리·북둔리·삼대리·장안리·통현리·화사리·화평리를 관할한다. 구 면소재지를 비롯한 대부분 지역은 금강산댐 수몰크리. 북한 창도군의 두번째 소재지였으며, 금강산댐 건설로 시가지가 수몰되면서 소재지를 지금의 위치(이북 5도 기준 회양군 회양면 신안 일대)로 다시 옮겼다.
나중에 이 지역이 수복되어도 금강산댐을 부숴 없애지 않는 이상 부활할 가능성이 없을 가능성이 크다. 아마도 다른 지역과 통합할 지도.
5. 기타
근자와 원자가 붙은 이유는 1914년 일제가 김화군과 금성군을 병합하여 행정구역을 획정할때 김화쪽에 근(近), 금성쪽에 원(遠)을 붙여놓아서이다.
[1] 사진은 이북 5도 기준 행정구역으로, 수복지구와 동인접지구의 행정구역에 관한 임시조치법에 따라 철원군으로 편입된 김화군 지역(김화읍, 서면, 근남면, 근북면, 근동면, 원남면, 원동면, 임남면)까지 포함되어 있다. 해당 지도에서는 한가지 오류가 있는데 전 지역이 미수복지역인 금성권 4면(금성면, 원북면, 창도면, 통구면)은 위의 법률의 적용 대상이 아니라 여전히 명목상 김화군 관할인 것과 달리 지도에는 회양군으로 편입된 것으로 그려져 있다.[2] 단 감봉리 일부지역은 남북에 걸쳐 있다.[3] 이 당시 舊 김화권 주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미수복지역을 수복하고 나면 김화군을 재설치한다는 조건으로 편입을 강행했다고 한다.[4] 일제시대 금강산선 운행 당시 여기서 아침을 먹고 움직이면 내금강 지역을 하루만에 돌아볼 수 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5] 문화어로도 이 댐의 이름은 임남댐이다. 임남의 한자인 任자가 원래 음이 임이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