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전군
[clearfix]
1. 개요
恩全君 李禶.
생몰 기간 : 1759년 8월 14일 ~ 1778년 8월 26일.
조선의 왕족으로 사도세자의 5남이자 막내 아들이다. 본관은 전주, 이름은 이찬(李禶), 자(字)는 연재(憐哉)[5] , 별칭은 하엽생(荷葉生), 시호는 효민(孝愍)이다. 어머니는 경빈 박씨#s-2 빙애(氷愛)이다.[6] 의소세자와 정조, 은언군, 은신군의 이복 남동생이다.
2. 생애
1759년(영조 35년)에 태어났다. 그러나 그가 3살 되던 1761년(영조 37년), 의대병이 있던 사도세자가 옷이 몸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갑자기 발광하여 그의 생모 수칙 박씨 빙애를 구타하고 살해한다. 빙애를 구타할 때 사도세자는 빙애와의 사이에서 낳은 돌이 갓 지난 왕자 은전군도 칼로 치고 문 밖 연못에 던져버려 죽을 위기에 처했다. 그러나 이를 알고 영조의 계비이자 은전군에겐 새할머니가 되는 정순왕후 김씨가 은전군을 구하여 이름을 하엽생(荷葉生), 곧 '연잎이'라고 불렀다.
고작 3살의 나이에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구타당해 죽은 것만으로도 끔찍한데, 약 1년 뒤에 아버지는 자신의 할아버지에게 죽었다. 당시 혜경궁 소생의 적자 정조도 위태로운 상황이였고, 하루아침에 부모를 모두 잃었기에 상궁들이 은전군을 길렀다고 한다. 사도세자와 정조를 견제하던 노론 벽파의 강경파는 은전군이 아버지 사도세자의 손에 어머니를 잃었기에 아버지에게 적개심을 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사도세자의 자녀들 중에서 그를 유독 주목하며 왕위계승자로 추대하려고도 했다. 은전군을 추대하려던 이들 중에는 정조의 친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친정 일족들도 끼어 있었다.[7]
1771년(영조 47년) 종친부 유사당상이 되었고 이후 수덕대부, 오위 도총부 도총관, 사용원제조를 거쳐서 흥록대부, 현록대부를 거쳐서 이복형인 은언군과 함께 수은묘에서 전작례를 행하였다.
1776년(영조 52년)에 영조가 훙서한 후, 이복형인 정조가 즉위하였다. 정조는 자신의 대리청정을 방해하고 전횡한 홍인한, 정후겸을 처형하고 고모 화완옹주를 사저로 내쳤다. 하지만 조정의 지배자들이었던 그들을 내치자 홍상범, 효임 모자가 강용휘, 전흥문을 포섭해 존현각에 침투시킨 것을 시작으로 남양 홍씨를 비롯한 그들의 잔여 세력이 대거 역모를 꾀했고 차례로 처형당했다. 이 때의 주모자 중에는 '''정조의 친 외삼촌'''(그러니까 '''혜경궁 홍씨의 친동생'''이란 말이다!!) 홍낙임도 끼어 있었다. 이덕일 세력이 "혜경궁 홍씨의 친정이 사도세자에게 적대적이었다"는 걸 강조할 때 홍인한 외에도 써먹는 떡밥 중 하나이다. 참고로 이 사건을 다룬 영화가 바로 현빈, 한지민 주연의 역린이다.
이들이 은전군을 옹립하려 한 것으로 드러나자, 온 조정 대신들이 대의를 위해 은전군을 법대로 죽일 것을 요구했다. 모든 대신들 및 삼사에서 요청을 수십번이나 했을 때 정조는 처음엔 '내 형제 중에 은신군 이진은 일찍 죽고, 은언군 이인은 병약해서 목숨만 겨우 붙어 있다. 겨우 사람 꼴 하고 있는 건 은전군 뿐이니 양해해 달라' 라고 거절했지만 조정 대신들의 요구가 완강하여 어쩔 수 없이 눈물을 흘리며 은전군에게 자진할 것을 명했다. 물론 은전군은 자신이 죽을 이유가 없다며 거부하고 반항했다. 특히 왕족은 자신도 모르게 역모의 수장으로 추대된 경우 이렇게 억울하게 죽는 경우가 많다. 당연히 영문도 모르고 죽는 은전군은 반항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신들이 은전군의 사형을 강력히 주장했고 정조도 이에 못이겨 하는 수 없이 그에게 사약을 내려 은전군은 사사된다. 이때가 1778년(정조 2년), 은전군의 나이 갓 20살 때의 일이었다.(만 19세)
조카인 전계대원군의 아들 철종이 즉위한 후, 1850년(철종 1년)에 대사헌 서영순의 상소로 복권되었다. 1871년(고종 8년)엔 고종이 '효민'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3. 사후
묘소는 경기도 과천군 북면 당정리, 현재의 경기도 군포시 당정동 미좌(未坐)에 안장되었다고 하지만, 후에 위치가 잊혔다.
4. 미디어에서
- 전현[9] - 1989년 MBC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 - 한중록》
정순왕후 김씨(김용선 분)가 따로 불러 몸 조심하라고 당부하는 장면으로 첫 등장. 직후 홍상범 등과 자주 어울리며 그들에게 여러 번 예물을 받은 일로 홍국영(김동현 분)에게 경고를 받는다. 결국 홍상범이 일으킨 역모에 추대되었다는 죄로 사약을 받고 죽는다.
기방 출입을 자주 하여 간간히 왕실 행사에 얼굴을 드러내는 정도이다. 다만, 5. 후손
평양 조씨 조성의 딸 조씨와 결혼했지만, 20세의 나이로 요절했기 때문에 자식이 없다. 대신 형 은언군의 아들 풍계군 이당을 양자로 삼았는데, 은전군과 풍계군 둘 다 죽은 이후에 이루어진 입양이다.(...) 이후의 계보에 대해서는 풍계군과 완평군 항목 참조.
[1] 경평군을 대신해 풍계군의 새 양자로 입적했다.[2] 군호는 충청남도 논산시의 옛 지명인 은진(恩津)에서 유래했다.[3] 후술하겠지만 양자이다.[4] 현재 경기도 군포시 당정동.[5] 할아버지 영조가 은전군을 보고 가련하다는 뜻으로 지어준 것이다.[6] 생전에는 경빈이 아니었다. 세자의 승은을 입었으나 세자의 후궁에 맞는 첩지를 받지 못하고 단지 궁녀의 품계인 종6품 수칙(守則)의 신분이었다. 1899년(광무 3년) 사도세자가 장조의황제로 추존되면서 같이 경빈으로 격상되었다.[7] 각종 영화나 드라마에서 묘사된 것과는 달리, 정조는 왕권 강화를 위해 권모술수도 쓸 줄 알고 가까이 하던 자를 토사구팽 할 줄도 아는 왕이었다. 그래서 세손 시절부터 이미 자기 외가 식구들, 즉 혜경궁 홍씨의 친정 식구들이 왕실의 외척으로서 세력을 키우는 걸 꺼려했다. 혜경궁 홍씨의 친정 사람들은 이런 정조의 심중을 잘 파악하지 못하고 행동했기 때문에 정조와 사이가 멀어졌다.[8] 태조 이성계의 6대조.[9] 《태조 왕건》에서 견금강, 《무인시대》에서 이의방의 동생이자 조선 왕실의 조상인 이린[8] , 《불멸의 이순신》에서 무의공 이순신, 《정도전》에서 조준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