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기계공업고등학교 야구부
1. 연혁
청주고 야구부 사건으로 사라진 청주고 야구부를 재건하기 위한 시도가 1994년에 있었다. 그러나 사건 발생으로부터 불과 3년밖에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다시 야구부를 창단하기에는 주변의 시선이 여전히 따가웠으며, 결국 청주고 동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야구부 재건은 실패로 돌아갔다. 문제는 야구부 재건을 위해 선수는 다 모았다는 점인데, 어린 선수들을 졸지에 무적 선수로 만들 수는 없으니, 대신 청주기계공업고등학교(2011년 청주공업고등학교로 교명 변경)에 야구부를 만들게 된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청주기공 야구부가 탄생했다.
창단 3년째인 1996년 당시 2학년이던 언더핸드 에이스 마정길을 앞세워 대통령배 4강에 들면서 처음 이름을 알렸고, 2001년 마침내 첫 우승에 성공했다[3] . 2001년 당시 아시아청소년대회 참가 관계로 주축 선수들이 모두 빠진 틈을 타서 청주기공과 구리인창고가 돌풍을 일으키며 결승에 올랐는데[4] , 청주기공은 유격수에서 투수로 막 전향한 노병오와 언더핸드 투수 신주영, 좌완투수 박정규의 활약을 앞세워 구리인창고를 15:1로 누르고 첫 우승에 성공했다. 노병오는 결승전에서 완투승을 거뒀고 최우수선수, 우수투수상, 최다타점상(12개)을 수상했다.[5][6] 이 때도 청주기공 동문들도 좋아라 했지만, 청주고 시절에 오매불망 첫 우승을 꿈꿨지만 이루지 못했던 청주고 동문들도 동대문야구장을 더 많이 찾아와 응원을 했다는 후일담이 있을 정도였다.
청주기공이 창단했던 1994년 학교 재정으로는 팀의 정상적인 운영이 어렵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총동문회에서는 무려 3억원을 내놨던 훈훈한 이야기가 있다. 그리고 매년 야구부에 후원금을 전달하고 전용구장이 없어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연습하던 부원들에게 음식을 날라다주기도 했다.
그 뒤 꾸준히 세광고등학교 야구부와 함께 충북 지역 야구를 대표하는 팀으로 있다가 2008년부터 선수들이 모두 청주고로 전학을 가는 형식으로 야구부가 청주고로 이관되면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청주고등학교 야구부로 역사가 이어지는 듯 하지만, 학교가 같은 것은 아니니...[7]
2. 출신 선수
[1] 2011년에 교명이 청주공업고등학교로 변경(정확히는 환원)되었으나 야구부 이관은 교명 변경 전의 일이다.[2] 4대 메이저 + 협회장기[3] 정작 청주고 야구부는 해체 전에도, 재창단 후 지금까지도 우승 경험이 없다.[4] 두 팀 모두 전국대회 통틀어 첫 결승전 진출이었다.[5] 당시 두 팀의 감독은 북일고등학교-동아대학교 1년 선후배 전대영(청주기공), 김진욱(구리인창고)이었다.[6] 전대영 감독은 8강전에서 만난 휘문고가 가장 큰 난관이었으나, 휘문고에게 승리를 거둔 뒤 우승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고 밝힌 바 있다. 이 당시 투수코치는 이승훈, 타격코치는 신경수였다.[7] 청원정보산업고에서 이관한 청원고등학교 야구부는 사립학교에 같은 재단이니 역사도 이어지는 것으로 간주하지만 청주고와 청주공고는 둘 다 공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