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프로야구/2010년/신인드래프트
1. 개요
2010년 KBO 신인 드래프트(공식 명칭: '''2010년 한국 프로 야구 신인선수 지명 회의''')는 2009년 8월 17일 서울특별시 양재동 교육문화회관 3층 거문고홀에서 개최되었다.
특기할 사항이 크게 두 가지다. 먼저 KBO 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전면 드래프트가 실시되어 1차 지명이 폐지되고, 모든 구단이 10개의 지명 픽을 가지고 선수를 뽑는 방식이 도입되었다. 그리고 사상 최초로 KBO 리그 신인 드래프트가 방송으로 생중계되었다는 점이다. MBC 스포츠플러스와 네이버 스포츠 등을 비롯한 여러 매체를 통해 생중계되었는데 해설은 한명재 캐스터와 박동희 기자가 맡았다.
중계 방송 상으로는 1라운드부터 4라운드까지만 각 팀의 스카우트들이 신인 선수를 호명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으며, 이후에는 1라운드 지명 선수 인터뷰나 지명 선수 소개 등이 진행되었다.
고등학교 및 대학교 졸업 예정자, 상무와 경찰청 소속 선수들 등 총 749명이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했다. 대한야구협회에 선수로 등록된 고교, 대학 졸업 예정자들은 전원 자동 지명 대상이다.
2. 지명방식
1라운드부터 10라운드까지 진행되며 각 팀은 최대 10명의 선수를 지명할 수 있다. 단, 지명을 원치 않는 팀의 경우 해당 라운드에서 '''패스'''할 수 있다.
지명방식은 홀수 라운드는 전년도 순위의 역순, 짝수 라운드는 전년도 순위대로 지명하는 방식이다.
3. 지명 결과
※표시는 지명권 포기나 대학 진학으로 인한 지명권 소멸 등으로 지명팀에 입단하지 않은 선수.
'''볼드'''표시는 스탯티즈 기준 통산 war이 2 이상 되는 선수한테 부탁드립니다.
4. 드래프트 평가
- 한화 이글스 - 북일고와의 관계 때문에 김용주를 1픽으로 지명했으나 김용주는 사이버선수가 되었으며, 오히려 3픽 안승민, 5픽 이태양, 7픽 김경태가 1군에서 자주 모습을 보였다. 이태양은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대표로 뽑혀 병역 특례를 받는 데 성공했지만 2015 시즌 직전 팔꿈치 부상을 당해 팔꿈치 수술을 받은 뒤 재활 기간이 더 필요한 선수였음에도 감독이 너무 일찍 당겨쓰는 바람에 2016시즌 후반기 반짝후 2017시즌 다시 부상을 당해 또 수술 후 재활을 반복했다. 다행히 2018시즌 필승조로 부활하여 한화 불펜의 핵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 2020년 노수광의 반대급부로 SK에 트레이드 되었다. 안승민은 공익으로 입대했으나 스포츠 도박 논란으로 처벌받고 육성선수로 강등되었고, 김용주는 지명 당시 평가대로 도무지 오르지 않는 구속 덕에 1군에서 기회를 많이 받지 못하다가 2차드래프투에서 좌완이 부족한 kt wiz의 지명을 받아 2018시즌 부로 팀을 옮겼다. 그나마 2017시즌 이상군의 지시대로 투구 폼을 쓰리쿼터 스로로 바꾼 뒤(!)[5] 데뷔 첫승을 거두는 등 원 포인트 릴리프로 활약해준 김경태만이 건강하게 살아남았다.
- 두산 베어스 - 2라운드에서 지명한 대구고 투수 이재학은 2011년 11월에 열린 2차 드래프트로 NC 다이노스로 이적하여, 제대로 터졌다. 그러나 직구-체인지업 투피치 투수의 한계에 부딪힌 건지 2017시즌 이후로 내리막이다. 장민익과 좌완 정대현도 간간히 1군 경기에 등판하긴 했지만 기대 이하의 모습만 보여줬다. 정대현은 2014 시즌 종료 후 kt wiz의 20인 외 전력보강 선수로 이적했고 군 입대를 미뤘다. 그러나 3시즌동안 시즌 초 반짝 후 부진, 워크에씩 등의 문제를 드러내다 2017시즌 중반 윤석민 의 트레이드 대상으로 지목되어 서의태와 함께 넥센으로 이적했다. 2군에서 선발수업을 받고 있다고.
- LG 트윈스 - 신정락이 선발투수로서 2013~14시즌동안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으나 소집해제 후 다시 불만 지르다가 2019년 7월 한화로 트레이드 되었다. 이승현, 김지용이 간간히 1군에 모습을 드러냈다. 2016년에는 김지용이 LG 트윈스의 불펜을 책임졌으나 2017시즌 구속 하락으로 아쉬운 모습을 보여주더니 2018년 혹사 당하면서 팔꿈치가 완전히 망가져버렸다. 다행히 2020년 복귀에는 성공. 이승현은 차우찬의 보상선수로 삼성으로 이적했으나 투수(...) 정찬헌에 2타점 적시타를 얻어맞는 등 기대 이하의 모습을 보였다. 이후 2019년 전반기에 필승조로 좋은 모습을 보였지만 이번엔 부상이 발목을 잡았다. 5년 전에 지명했다가 동국대학교 진학으로 지명권이 소멸된 뒤 다시 지명한 이태원은 지명 당시에 보인 태도로 LG 팬들에게 찍혔고 일찌감치 상무에 입대해서도 말썽을 일으켜 상무에서 쫓겨난 후 일반병으로 전출되었다. 전출 사실이 알려진 후 LG에서 방출 조치되었다. 전역한 후 NC 다이노스에 합류해 김태군의 백업으로 뛰었지만 또 말썽을 빚었는지 2015년 육성선수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소리소문 없이 시즌 후 방출. 2020년 기준으로는 김지용 단 1명만 남았다.
- 롯데 자이언츠 - 사실상 망한 드래프트라고 볼 수 있는데, 그나마 오승택이 2014년 이후로 조금씩 두각을 보였으나 2017 시즌 중 트레이드로 KT에 이적해 쏠쏠히 활약했다. 변용선은 2013년 시즌 후 방출당했고, 청대 출신 좌완 투수 이현준은 소리소문없이 은퇴했다가 2015년에 육성선수로 돌아왔다. 8라운드 지명을 받은 내야수 오윤석은 연세대학교에 진학한 후 2014년에 육성선수로 입단했는데, 이듬해에는 동명이인의 유신고 출신 선수가 롯데에 육성선수로 입단했다.
- KIA 타이거즈 - 팀 내 좌완투수 멸종 상태를 해결하기 위해 심동섭을 1픽으로 데리고 왔지만 매년 받는 기대에 비해 고질적인 제구 불안으로 2011, 2013, 2015 시즌을 제외하고는 기대만큼의 성적이 나오지 않았다. 2017시즌 삼성을 상대로 생애 첫 선발승을 거두기도 했지만, 나이가 나이인지라 큰 성장을 기대하긴 힘든 상황. 그나마 홍재호가 백업 내야수로 1군에서 활약했다가 2014년에 경찰청에 입대했다. 2픽 임기준도 2017년부터 잘 해주고 있다.
- 삼성 라이온즈 - 완전히 망했다. 1픽 임진우는 2차 드래프트로 두산 베어스로 이적했으며, 현재까지 삼성에 남아있는 김현우, 백상원, 문선엽 모두 기대에는 한참 못 미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김현우는 큰 기대를 받았으나 허리 부상이 발목을 잡는 모양새이고, 문선엽도 부족한 수비력과 부상으로 인해 1군 출전 기회를 거의 얻지 못하고 있다. 백상원은 14년도부터 백업으로 1군에 나오고 16년 경쟁자들의 줄부상으로 기회를 얻었으나, 낮은 타격생산력과 부족한 수비력으로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 17시즌 시범경기 4할을 기록하여 부활하나 싶었으나 시범경기는 시범경기였을 뿐이었다. 좋지 않은 워크에씩과 팬서비스 등으로 비난받은 것은 덤. (...) 2017 시즌 후 문선엽과 김현우가 방출당하면서 남아있는건 백상원 한명 뿐이다... 18시즌 후 백상원도 방출되어서 070809에 이어 망픽 인증.
- SK 와이번스 - 1픽 문광은이 군 복귀 이후 2014시즌 선발로 몇 차례 등판했다가 2015시즌 부터 계투로 전향해 15년 전반기 좋은 모습을 보여준 후 아직까지 발전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2018년 7월 31일, LG에 트레이드 되며 SK는 내야수 강승호를 데려왔다. 강승호는 2018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기여했다. 2픽 박종훈은 상무 야구단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난 뒤 15시즌부터 5선발을 맡아 2017년에는 12승을 올려 신승현과 SK 잠수함투수 최다승 타이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17년 이후부터는 탄탄한 SK 선발 로테이션에서도 3선발 내에 들 정도로 활약하고 있다. 이 해 드래프트 선수들 중 가운데 이재학 다음으로 높은 swar를 기록 중이고, 이재학도 NC로 옮겨가서 낸 성적인 것을 생각하면 가장 성공적인 픽이라고 볼 수 있다. 5픽 최윤석은 수비형 야수로서 타격 면에서 갑갑한 모습을 보여주다 2차 드래프트로 한화 이글스로 이적해 간간히 백업으로 1군에 모습을 드러내는 편이다. 그 외에 이상백이나 조성우가 간간히 1군에 이름을 올렸다가 잊혀졌다.
- 넥센 히어로즈 - 4픽 문성현이 하위선발로 제 몫을 해 줬지만, 불안한 모습을 보이며 팬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그나마 군경팀에 입대해 그럭저럭 호성적을 기록했고 구장도 홈런공장 목동에서 넓은 고척으로 바뀌었으니 성적이 입대 전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평이 있다. 그리고 김대유는 낮은 구속으로 부진하다가 2014년에 열린 KBO 리그 2차 드래프트를 통해 SK 와이번스로 이적했으나 팔을 내리는 등 여러 시도를 하고 있음에도 2군 기록에 비해 1군 기록이 너무나도 처참하다. 전형적인 하드웨어만 보고 뽑힌 좌슬아치(...)라는 평. 이후 SK에서 방출 후 kt를 거쳐 다시 2차 드래프트로 LG행.
5. 이모저모
- 드래프트 시작 전 7명의 선수[7] 가 미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구단과 계약을 맺는 바람에 상대적으로 인재 풀이 적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가운데서도 안승민, 문성현 등이 예상보다 지명 순번이 뒤로 밀리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8]
- KBO는 당초 2009년 2월 5일 규약을 개정해 지명받지 못하고 미국이나 일본으로 나간 선수에 대해서는 2년 유예기간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으나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7명의 선수들이 한꺼번에 미국행을 택하자 4월 28일 다시 규약을 개정해 이를 없었던 일로 하는 한편 해당 선수의 소속 학교에 계약 시점부터 5년 동안 지원금을 지급하지 않고 최종 소속 팀과의 계약이 종료된 시점부터 7년 동안 KBO 소속 팀에 지도자로 등록할 수 없다는 조항도 추가했다.
- 2010 신인지명부터 신인 신고선수 영입에 제한이 생겼다. 신인 지명에서 7명 이하를 지명한 경우엔 고졸 선수 3명을 신고선수로 받을 수 있고 8명 이상을 지명한 경우엔 고졸 선수 5명을 신고선수로 받을 수 있도록 바뀌었다. 단, 대졸 선수들은 예외.
- 한화에 지명된 김동빈은 김용국 삼성 코치의 아들이고, 이성곤은 이순철 해설위원의 아들이며, 롯데에 지명된 이정윤은 이종운 감독의 아들이다. 김동빈은 2012 시즌 후 방출되었으나 군 복무를 마친 뒤 2015년 롯데에 육성선수로 들어갔고, 이성곤은 연세대학교 진학 후 두산에 2차 3순위로 지명되어 선수생활을 하고 있다. 이정윤은 고려대로 진학한 후 중간에 야구를 그만두고 입대하였으나, 전역 후 다시 야구를 시작해서 2016년 드래프트에서는 LG에 2차 10순위로 지명되었다.
- 두산은 지명선수 중 5명만 입단했고, 4명은 모두 대학 진학을 선택했다. 남은 1명인 10라운드에서 지명한 김선민은 두산에서 지명권을 포기했다.
- 지명받은 고졸 선수 중 11명은 대학교에 진학해 지명권이 소멸되었으며 중도 하차한 1명, 중간에 휴학해 졸업이 늦어지게 된 1명을 뺀 나머지 선수들은 2014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다시 지명 대상이 된다. 2013년 8월 26일 실시한 2014년 2차 지명에서는 3명(문상철, 이성곤, 조윤성)만이 다시 지명을 받았다.[9] 그리고 고려대 입학 후 중간에 군 입대를 이유로 휴학한 이정윤이 2016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었다. 나머지 7명 중 김건효와 김경도는 육성선수 입단 후 얼마 못 가 방출.
- 삼성에 6라운더로 지명된 안성필은 한때 사고로 임탈 조치되었으나 2013 시즌 후 팀에 복귀했다(그러나 1년만에 다시 방출). 정민우 또한 개인 사정으로 이듬해 임탈되었으나 군대를 해결하고 마찬가지로 2013 시즌 후 팀에 복귀하였다.
- 삼성의 선동열 감독은 신인 지명을 앞두고 고졸 투수는 뽑지 말아야겠다고 말했고, 실제로 삼성이 지명한 투수 6명 중 4명이 대졸 투수였다. 그나마 뽑힌 고졸 투수 중 1명인 길태곤은 당시 김응용 삼성 사장의 모교인 개성고 출신으로, 김응용은 모교인 개성고 야구부 발전위원장을 맡으면서 개성고 지원에는 열심이었는데다 서울 출신인 길태곤을 개성고로 진학시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3라운드에서 뽑은 정민우도 개성고 진학에 김응용의 영향이 있었다. 이 때문에 감독이나 사장이나 너무 노골적으로 신인 지명에 개입한 게 아니냐는 반응이 있었다. 이러한 사례 때문에 2011년 신인 지명을 앞두고는, 김응용이 길태곤이나 정민우보다 더 애지중지했던 김민식[10] 을 뽑지 않겠냐는 얘기도 나왔지만 실제로 그러지는 않았다.
- 대학야구 전통의 강호 연세대에서 1명도 지명을 받지 못하는 굴욕을 당했다(...) 라이벌 고려대는 1차 지명 두 명을 포함해 3명이나 지명됐는데 말이다. ... 그러나 정확히 9년 뒤 정반대의 상황이 일어났다.
[1] 김건태로 개명했다.[2] 후에 오태곤으로 개명. [3] 2009년 청소년대표 출신으로 다리부상으로 은퇴. 최근 근황으로는 the K baseball 아카데미에서 코치로 활동 중이며 썩코치의 야구쑈에서 등장하여 썩코치가 야구단을 창단하는 첫번째 창단멤버로 소개되었다.[4] 강릉영동대를 1년 더 다닌 뒤 성균관대로 편입했으며 졸업 후 LG의 신고선수로 들어갔다가 불펜 포수로 전환했다.[5] 이상군은 사람만 좋지 코칭 능력이 그다지 좋지 않음에도 모기업 임원진과 KBO 리그 사상 그 누구보다 친밀한 사이인지라 철밥통 코치로 악명이 높았다. [6] 이쪽 드랲은 망했다고 확정해서 볼 수 있는이유가 이때 뽑힌 선수들은 20시즌 기준으론 30은 먹은 그니까 나이고 그렇다고 1군 아니 2군에서 조차 활약하는 선수가 없으니... [7] 북일고 김동엽, 세광고 김선기, 덕수고 나경민, 제물포고 남태혁, 충암고 문찬종, 화순고 신진호, 동산고 최지만. 2019시즌이 마무리되어가는 시점에서는 최지만 혼자 버티고 있다. 나머지 선수들은 나경민, 문찬종이 AAA 무대를 잠깐 밟은 것을 제외하면 A+가 한계였다. 이들 중 최지만 다음으로 오래 뛴 문찬종만 빼고 모두 KBO 리그에 들어왔으며, 문찬종은 2016시즌을 끝으로 마이너리그 FA가 된 후 새 팀을 찾지 못했고 뒤늦게 사회복무요원으로 입대하는 바람에 3년의 실전 공백기를 겪다가 2020년도 신인 2차 지명에 참가해 키움 히어로즈에 2차 6라운드 지명을 받았다.[8] 사실 문성현은 당시 현장에 나가있던 스카우터들이 예상 외로 김대유를 먼저 뽑아서 하마터면 지명되지 못할 뻔했다. 이 소식을 듣고 격노한 이 문성현을 픽하지 않는다면 모두 잘라버린다고 엄포를 놓아 간신히 뽑힌 것. 이후 스카우트 현장에 직접 나와 스카우터들을 지휘하고 조상우를 픽하는 등 여러 점으로 미루어 볼 때 선수 보는 눈 하나는 확실히 있는 듯. [9] 참고로 이 11명 중 문상철, 조윤성, 김경도, 김건효, 이정윤 다섯 명이나 고려대로 갔다(...)[10] 마찬가지로 김응용의 영향으로 개성고로 진학했을 뿐만 아니라, 삼성의 연고지 선수가 아닌데도 김응용이 삼성 2군 훈련장인 경산볼파크에 데려와 훈련시킨 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