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주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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崔周鍾
1922년 ~ 1998년
1922년 10월 5일 함경북도 성진에서 태어나 만주 용정시의 동흥중학교를 나왔다. 1943년 만주국 신경군관학교를 제3기로 졸업하여 만주군에 복무하다가, 1944년 5월 일본육군사관학교에 편입해 1945년 6월 제58기로 졸업했다.
1945년 8월 18일 소련군신경에 입성하자 정일권, 이한림, 김동하, 윤태일 등과 논의해 만주군관동군 출신의 조선인 군인 400여명을 모아 신경보안사령부를 조직해 정일권에 이어 김석범이 사령관을 맡았다.
1946년 군사영어학교를 졸업하고 육군 소위로 임관하였으나, 곧 월북하여 청진으로 갔다가 보안서에 끌려가 1년간 투옥되었다가 석방되었다. 1947년 월남하여 이범석이 만든 조선민족청년단에 가입해 활동하다, 정부 수립 후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해 특별 임관하였다.
6.25 전쟁에 참전하였고 제8사단장, 육군 전투발전사령관 등을 지내다 제31사단장으로 있던 1961년 박정희가 주도하는 5.16 군사정변에 적극 가담하여 군사혁명위원회 위원과 국가재건최고회의 최고위원을 지냈다.
1963년 제5군관구사령관으로 재직시 반혁명사건[1]에 연루돼 구속되었다 풀려났으며, 이후 군수기지사령부 사령관을 거쳐 육군 소장으로 예편하였다.
1970년대 대한주택공사 사장을 지냈고, 1998년 3월 3일 사망하여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되었다.
민족문제연구소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다.

[1] 군내 함경북도 출신의 만주군 인맥이 대부분 숙청된 사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