캉딩급 호위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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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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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개요
캉딩급은 중화민국 해군이 운영 중인 호위함으로 프랑스 해군이 운영 중인 라파예트급을 기반으로 자체적인 무장을 탑재한 함이다. 6척 모두 프랑스 로리앙 해군 조선소에서 건조 후 대만에 인도되었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는 호위함이다. 대만의 건함 사업에 나쁜 쪽으로 큰 영향을 끼쳤다.
3. 도입 배경
대만은 1980년대 10년간의 장기 해군 건설계획인 광화 2호 계획을 수립한다. 이는 1,500톤급 호위함 16척을 조달하는 내용으로, 이를 위해 미국, 한국, 독일, 아르헨티나, 프랑스 등 각국에 제안서를 발행하였는데, 이 중에서도 가장 유력한 후보는 한국군이 운용 중이던 울산급이었다. 당시 양국은 깊은 우호 관계였고, 울산급은 저렴한데다 선체 기술 이전 조건도 좋았다. 선체만 도입 후, 대만이 선택한 전투장비를 채울 계획이었다. 1988년 한국의 해군 함대가 대만을 방문하면서 도입 직전까지 이르렀으나 당시 대만은 조선업에서 한국과 경쟁하고 있었고, 경쟁심이 반대 여론에 불을 붙이면서 울산급 도입은 백지화되었다.
이후 일부는 당시 베스트셀러 호위함인 독일의 MEKO 200의 도입을 주장하였으나 독일은 이미 대만과 단교한 뒤였던데다, 중화인민공화국과의 관계를 중시하였기에 도입 가능성이 없었다. 미국은 1,500톤급의 군함을 운영하지 않았기에 적당한 설계가 없었다. 한편 올리버 해저드 페리급은 하이-엔드급 호위함 도입 계획인 광화 1호 계획을 통해 도입을 진행 중이었다.
제안서를 아르헨티나에게 보내기도 하였는데, 아르헨티나는 MEKO 360 모델을 수입해서 사용하고 있었으므로, 독일로의 중계를 기대했던 것 같다.
어쨌든 대만은 당시 외교 정책을 변경하여 대대적으로 무기 수출을 홍보하던 프랑스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 1989년 대만의 관계자들은 프랑스 현지를 방문했고 결국 라파예트급 호위함을 인도받기로 했다.
이 선택은 많은 문제를 낳았다. 원래 라파예트급 6척의 건조 비용은 1989년에는 70억 프랑이 제시되었으나 1991년에 계약할 때의 가격은 160억 프랑으로 수직 상승한다. 이때문에 광화 2호 계획은 저렴한 로우급 8~16척 도입이 목표였는데도 결국 올리버 해저드 페리급보다도 적은 6척만을 도입하기로 결정한다. 이후 4척 추가 도입의 옵션도 있었지만, 높은 가격과 함께 뇌물수수 등의 비리가 드러나면서 추가 도입도 백지화된다.
이후 스캔들에 휘말리면서 해군 정책 결정권자들이 증발하게 되어 건함 사업 전체가 꼬이게 된다. 무장 통합에서도 문제가 발생하였다. 중국의 외교적 힘이 커지면서 프랑스에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하였고, 이로 인해 프랑스가 무장 수출을 거부하여 업그레이드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4. 성능
상기의 이유로 프랑스제 무기를 장착하지 못하게 된다. 무장이 없는 상태로 인도 받은 뒤 대만에서 무장 통합을 실시하여 미국제 무기를 장착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라파예트급과 차이점이 생기게 되었다. 통합된 무장은 오토멜라라제 Mk.75 76mm 62구경장 함포를 함수에 1문, 함미 헬기 격납고 상단 측면에 각각 1기씩 보포스 40mm 단장 기관포 2기, 대함 미사일은 자국산 슝펑2 4연장 2기다.
개함 방어를 위한 대공 시스템은 20mm 팰렁스 CIWS가 헬기 격납고 상단 중앙에 위치, 대공 미사일은 AIM-9D를 장착한 4연장 시 채퍼럴이다. 시 채퍼럴은 사이드와인더를 이용하여 레이더의 도움이 필요 없는 적외선 유도 방식의 미사일을 발사하는 체계이다. 그러나 사거리가 고작 3~9km 수준이다. 그나마도 60년대 수준의 공대공용 AIM-9D라서 명중률도 크게 떨어져 개함 방공 능력 정도에 그친다.
탐지 체계 중 레이더는 탈레스社의 트리톤-G 와 DRBV-26D 주피터-II로 구성된다. DRBV-26D는 2차원 장거리 대공 수색 레이다로 분당 최대 회전 속도는 15회이며 탐지거리는 360km, 64개의 목표를 동시에 추적 할 수 있다. 트리톤-G는 중거리 대공/대수상 수색 레이다로 최대 탐지거리는 60km, 동시 목표 추적 수는 32개이며 분당 회전 속도가 40회로 빨라 고속으로 이동하는 미사일 등의 목표를 탐지·추적하는데 뛰어나다. 사격 통제 레이다도 탈레스社의 카스토르-IIC로, 76mm 함포와 40mm 기관포를 통제한다. 이처럼 우수한 프랑스제 레이다들을 탑재하였지만 시 채퍼럴 수준의 대공 무장으로 장점을 살리지 못하게 되었다.
캉딩급 원형은 원래 라파예트급 대잠형이였기에 대잠 능력은 우수한 편이다. 대잠 헬기 운영을 위한 격납고와 헬기 갑판이 있으며 대잠 헬기로 S-70C(M)-2 썬더호크 1기를 탑재한다. 대잠 무장으로는 Mk46 324mm 어뢰를 탑재한 Mk.32 3 연장 발사관 2기를 장착하며, 선저 소나로 스페리온-B 중주파 소나 (탐지 거리 약 32km, 5개의 목표 추적)를, 예인 소나로 ATAS(v)3(탐지 거리 약 100km, 10개의 목표 추적)를 각각 1기씩 장착하고 있다. 이런 다양한 무장의 증가로 승무원은 라파예트급에 비해 많은 176명이 탑승한다.
캉딩급의 무장은 원판인 라파예트급과 달리 모두 매립 형태가 아니고 돌출되어 있다. 라파예트급은 모터보트 다음으로 낮은 RCS을 자랑하였다. 그러나 캉딩급은 함포 커버를 등 선진적인 스텔스 형상이 도입되지 않아 상대적으로 높은 RCS를 가진다. 또한 프랑스제 전자 장비들과 미국제 무기들의 통합 수준도 만족할 만한 수준이 아니라서[3][4] 대만 해군의 다른 함선에 비해 가동률이 낮은 편이라고 한다. 심지어 6척 모두가 항구에 머무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원본인 라파예트급 호위함이나 자매함인 싱가포르의 포미더블급 호위함은 평가가 좋다. 특히 포미더블급은 높은 자동화와 신뢰성으로 대공, 대함, 대잠전 모두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러나 캉딩급은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성능에 아쉬운 점이 많다.
5. 클리어 스트림 스캔들
라파예트급을 도입하는 과정에는 비리에 대한 이야기가 계속 흘러나왔다. 1993년 12월에는 무기 획득실의 인칭펑(尹淸楓) 상교(한국의 대령)가 피살되어 이란 현 쑤아오 인근 해변에서 발견되었다. 인칭펑 상교는 라파예트급 도입에 대한 비리를 고발하기 위해 자료를 준비하고 있었던 중이었기에 의혹은 더욱 커졌다. 90년대 군 당국의 수사는 군내의 비호 세력과 외부의 압력으로 지지부진하였다. 2000년 천수이볜이 집권하면서 인칭펑 상교의 유족의 탄원을 받아들여 특별 수사팀이 발족하면서 구체적인 비리의 규모가 드러나게 된다. 도입가격 160억 중 무려 35억 프랑이 뇌물로 군에 제공되었고, 그중 11억 프랑은 정관계 인사들에게 흘러 들어갔다고 추측되었다. 이 수사를 통해 군 관계자 6명이 체포된다. 그러나 이후 증거 및 혐의를 찾아내지 못해 2010년에 6명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고 비리의 몸체는 밝혀내지 못했다.
한편 이 스캔들은 프랑스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35억 프랑 중 프랑스 쪽으로 흘러 들어간 뇌물은 룩셈부르크에 있는 클리어 스트림 은행이 관리한다는 소문이 돌았다. 2001년 6월 22일 룩셈부르크의 반 림베크 예심판사 수사를 진행한다. 그러나 2004년 증거부족으로 불기소처분 되었다.
2004년 5월 3일 상황이 반전된다. 익명의 고발장이 크리어 스트림 은행에서 라파예트 비리 자금을 관리하고 있는다는 내용이 전달된 것이다. 고장발에는 편지와 함께 CD가 동봉되었는데 관련자의 명단이 들어 있었고, 당시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인 니콜라 사르코지가 포함 되어 있었다. 이에 7월 부터 프랑스 검찰의 대대적인 수사가 진행되었다. 그러나 숨겨진 계정을 발견하지 못함에 따라 10월 허위 제보로 결론을 내리고 수사를 종결하였다.
사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06년 사르코지가 소송을 내면서 다른 방향으로 튄다. DGSE의 수장이던 필린 론도 장군은 사실 2004년에 당시 외무 장관이며 2006년 총리던 도미니크 빌팽 장관에게 호출을 받는다. 수사기관이 아닌 DGSE가 국제 테러리스트와 연관을 이유로 라파예트급의 비리에 대해 조사 할 것과 그 중에서도 니콜라 사르코지의 계좌를 조사 하라는 지시를 받았다는 것이였다. 또한 익명의 고발장을 작성한 이는 EADS의 부사장이던 장-루이 제르고랭이었다. 제르고랭은 빌 팽 총리와 친한 사이였다는 사실은 이러한 의혹을 증폭시키게 되었다. 특히 2004년 당시 니콜라 사르코지와 빌 팽 총리는 차기 대권을 두고 경쟁하던 사이였다. 사르코지는 빌팽이 정보기관을 움직여 허위로 목록을 작성하고 수사함으로 자신을 몰락시키려는 음모라며 강하게 반발하였다. 심지어 당시 대통령이던 자크 시라크의 개입 의혹도 제기하였다. 사르코지와 빌팽은 언론을 통한 공방전을 펼쳤고 빌팽은 2009년 거짓 고발, 위조 문서 등 4개의 혐의로 기소 되어 공판이 진행되게 되었다. 최종적으로 2010년 1월 28일 파리 형사법원에서 빌팽이 문서의 위조 사실을 알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며 무죄 판결을 내린다. 2011년 9 월 14 일 항소심에서도 무죄 판결을 받고 프랑스 검찰이 승복함에 따라 사건은 종결되었다.
즉 라파예트급의 비리는 프랑스와 대만 양국에서 큰 문제로 불거졌으나, 양국 모두 구체적 정황을 잡아내지 못하게 되었다. 하지만 인친펑 해군 대령이 의문사 이후 충호 계획 때부터 쌓아온 군함 건조 계획들이 정지되었다. 건함 관련 기술진들도 사라져버리면서 연구개발 통합 및 프로젝트 관리를 수행할 동력이 소멸되었다고 추정된다.# 2010년에 이르러 대만은 강력해진 중국 해군과 맞서야하는 어려운 과제를 맡게 되었다. 낙후한 함정을 대체하려 막대한 예산과 기술적 모험을 해야할 지경에 이른 것이다. 캉딩급 도입의 후폭풍은 현대 대만 해군에 큰 악영향을 끼쳤다.
6. 개량
2004년 캉딩급은 완벽한 디지털 데이터화를 구축하기 위해 미국의 링크 16 합동 전술 정보 분배 시스템 (JTIDS)을 50기를 세트 도입한다. 2005년 완벽한 통합에 성공하였다.
대공 능력도 향상을 위해 자국산 중거리 공대공 미사일인 톈첸 2 (天劍, 천검)를 이용한 함대공 미사일의 개발을 진행한다. 개발기관은 대만의 ADD에 해당하는 국립 중산 과학 연구원(NCSIST)이다.
톈첸2는 공중전용 능동 레이더 유도 미사일이다. 암람 초기형과 비슷한 성능이며 공대공에서 함대공으로 전용하면서 사거리는 줄어들 수밖에 없었지만, 최소 30km 이상의 사거리를 목표로 하였다.
VLS 콜드런칭 방식을 모색하다가, 나중에는 일반적인 핫 런칭 방식으로 선회하였다. 시제형은 2005년 완성되었고, 톈첸 미사일을 위해 위상배열 레이더를 중산 과학 연구원에서 개발하여 탑재하기로 하였다. 대공 강화 계획은 2008년에 완성을 목표로 진행되었으며, 이 계획이 완료되면 동시 교전 능력은 10개 수준으로 향상될 것으로 전망되었다.
그러나 여러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VLS 개발이 예상보다 어려웠다. 실용화를 위해서는 상당한 비용과 예산이 소모해야만 했다. 이에 VLS 대신 시 채퍼럴의 위치에 8연장 발사기를 장착하는 방안을 고려하게 된다.
톈첸 2에서도 큰 문제가 있었다. F-CK-1 징궈의 충족량을 채운 후 라인이 닫혔기에, 이를 되살리기 위한 막대한 예산과 노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결국 2009년 비용 상승으로 계획이 중단된다.
다만 폭증하는 중국 전력에 맞서야 하므로 공대공 능력 향상을 포기하진 않았다. RIM-116 RAM과 오리콘社의 35mm GDM-008 밀레니엄 기관포의 조합을 주목하였다. 그러나 오바마 정권 이후로는 미국을 통한 무기 도입이 다시 어려워졌기에 언제 실현이 가능할지는 미지수인 상황이었다.
한편, 대함 미사일은 자국산 슝펑 2 (雄風, 웅풍)을 탑재하였기에 성능 향상에 유리한 편이다. 2013년 2월의 보도에 따르면 1~2년 안에 초음속 대함 미사일인 슝펑3을 통합할 예정이라고 한다.
2020년 4월에 본격적인 개량 계획이 입안되어서 2022년부터 개량에 들어갈 계획이다.# 가장 큰 개량안은 역시 시 채퍼럴 시스템을 자국이 개발한 VLS체계로 대체하고[5] 해궁 함대공미사일을 인티하는것. 이외에도 전투체계와[6] 레이더와 전자전 체계 개량 또한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7. 캉딩급 호위함 목록
함명은 국부천대 이전의 중화민국의 각 성도(省都)에서 따와 지어졌다.
[1] 한국식 독음으로는 강정급 순방함. 한어병음을 한글 표기로 옮기면 캉딩 지 쉰팡젠.[2] Sequential Turbo Charged, 순차식 터보차징[3] 무장의 통합(인티그레이션)은 생각보다 간단한 것이 아니다. 특히나 각기 다른 나라들이 제작한 전자장비와 무장을 하나의 전투 시스템에 통합하기 위해서는 그에 맞는 소프트웨어 제작, 테스트와 운용 인원의 관리 및 훈련 등의 과정이 필수적이다. 탑재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가 잘 통합되지 않으면, 함정 자체의 성능을 까먹고, 다른 해/공군 무기 체계들과의 공통성도 해치게 되기 때문에 전투 체계 소프트웨어의 대대적인 수정 작업은 대만 해군으로서는 리스크가 큰 작업이었고, 결국 프랑스제 전자장비에 완전한 통합엔 실패했기 때문에 만족 할만한 수준이 아닌 것이다. 2010년대에 들어서야 이런 리스크는 에뮬레이터 방식의 구현 기술로 조금은 줄었지만 근본적으로 소프트웨어가 일치해야만 한다.[4] 4대 핵심기술의 하드웨어는 개발이 가능하지만 그것을 통합할 기술을 미국에서 이전받지 못했을 때 논란이 일었던 KFX의 경우를 생각하면 비교적 이해가 갈 것이다.[5] Mk41 VLS에 대한 이야기도 있었으나 록히드 마틴은 대만쪽에서 기술지원등에 대한 돈을 낸적은 없고 기술지원도 이루어진 적 없다고 언급했다.[6] 탈레스가 경쟁입찰을 통해서 캉딩급 개량을 수주했다는 소문이 있다.[7] 시캉 성의 성도이다. 지금은 중화인민공화국 쓰촨 성의 현급시(市)이다.[8] 칭하이성의 성도이다.[9] 윈난성의 성도이다.[10] 신장성의 성도인 우루무치의 옛 이름이다.[11] 후베이성의 성도이다. 지금은 중화인민공화국 우한 시의 일부인 우창 구 이다.[12] 러허성의 성도이다. 지금은 중화인민공화국 허베이성의 지급시(市)이다.